
불타의 본질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을 계기로 하여 제자와 재가신자들 사이에서
부처님은 자기들에게 무엇이었던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추모와 존숭의 생각이 생겨났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같은 생각은 부처님을 신격화·신성화하는 것으로 발전했으며 한 걸음 나아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오랜 과거세 동안 선근공 덕을 축적해 온 결과라고 믿게 됐다. 또한 80세로 열반에 든 것도 하나의 방편이며, 부처님은 불생불멸하여 영원하다는 생각도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생각은 부처님은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견해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불교학자들은 불신(佛身)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불타관(佛陀觀)'
또는 '불신론(佛身論)'이라고 불러왔다. 불신론은 기독교신학의
'그리스도론'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조를 점차 신격화시키는 점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흥미 있는
대조를 나타내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이 일회적(역사적)이었음을 강조하는데 비해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특수성·역사성이 점점 약해지고 있으며 그 본질을 보편적인 절대자로 환원시킴과 동시에 그 체험은 모든 사람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부처님의 칭호
생전에 부처님은 스스로 '각자(覺者)'이며 제자들에 있어서는 '교사'였다는 것을 자인했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스스로를 타타가타(如來)라고
불렀다고 하나 진위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은 부처님을 여래라고 생각하고 대사문(마하사마나)으로 불렀다. 직접 만나서는
바가바트(世尊)라고 불렀다. 또 세인으로부터는 샤카무니(석가족의 성자)라고 불렸음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라문 등 제자 이외의 사람들은 부처님을 고타마(瞿曇) 또는 사문 고타마라고 불렀다. 그밖에 옛날의 시에는 샤카(석가족의 사람)·샤카푸타(석가족의 아들)·대선(大仙)·자이나
(勝者)·마하비라(大雄)등의 이름으로도 불렀다. 부처님은 부르는 또 다른 이름 아라하트(아라한)는 도덕이 높고 수행을 완성한 자는 당연히 세상의 존경을 받고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세간의 상식에서 생긴 칭호다.한편 '붓다(佛陀)'라는 말은 교주에 대해서 쓸 때에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삼붓다(正覺者)라는 칭호를 썼으며 여기서 덧붙여 '바르게'라는 부사를 써서 삼먁삼붓다(等正覺·正遍智)로 불렀다. 특히 그 위에 '무상(아뇩사라)'이라고 하는 최상급의 형용사를 붙이기도 했다.(無上正等覺 ; 阿 多羅三 三佛陀. 그 깨달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또는 타타가타에 대해서도 교리적인 해석이 붙어졌으며 그밖에도 '일체지(一切智)'등 부처님의 특성을 나타내는 칭호도 덧붙여졌다. 이같은 칭호의 가장 주된 것들은 나중에 '여래10호'라는 이름으로 정리되 었다.
여래 10호
여래 10호란 ①여래(如來:진리의 체험자) ②응공(應供:아란한) ③정변지(正遍智:정등각자) ④명행족(明行足:지와 행을 겸비한자) ⑤선서(善逝:행복을 얻은 사람. 불교도를 인도에서는 간혹 Sauhata라고 불렀다.) ⑥세간해(世間解:세간의 모든 일을 잘 아는 자) ⑦무상사(無上士:최상의 인간) ⑧조어장부(調御丈夫: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조복 제어하는 사람) ⑨천인사(天人師:신들과 인간의 교사, 인간과 하늘의 큰 스승) ⑩불·세존(佛·世尊:깨달은 사람·세상에서 존경받는 분)을 말한다. 최후의 불·
세존을 나누어서 11호라고 하나 여래의 10호는 여래의 별명을 의미하므로 응공 이하의 수만 세어 10이 된다. 굳이 10을 쓰는 것은 10이 원만수이기 때문으로 보인다.여래10호는 따로따로 떼어서도 부르지만《법화경》서품에 보이듯 '이 때 부처님이 있었으니 일월광명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 세존이라고 불렀다'라고 부처님의 이름 뒤에 모두 다 붙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최초의 3가지 칭호인 '여래·응공·정변지' 또는 '여래·응공·정등각'으로 하고 있다.
이상의 호칭에서 한가지 공통된 점은 부처님을 부르는 별칭은 당시 종교가들에 대해 널리 쓰였던 존칭이 많고 전혀 신격화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하비라는 자이나교에서도 사용하는 존칭이며 사문○○도 당시 수행자에게 붙였던 이름이다. 여래10호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이는 다시 말해 초기의 제자들이나 그밖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인간의 성자, 교사로 인식했을 뿐 신이나 절대자로 파악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뒤에 이르러 불교도들이 불이나 여래라는 이름에 신격화, 절대화된 의미를 담은 것은 교리발달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다. 여래10호 가운데 교리발달과 더불어 의미가 달라진 대표적 칭호로는 '응공*應供)'이 있다. 응공은 아라하트의 역어로써 그 어의는 '∼할 가치 있는'의 뜻이다. 한문으로 번역할 때 '응(應)'자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의 존경과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뒤에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아라한은 소승의 수행자가 도달하는 최고위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은 흔히
아라한 또는 나한이라고 불렀다. 이 때의 아라한은 불·세존과 동의로서가 아니라 대승보다 못한 소승의 위계를 지칭한다.
아라한이라는 용어가 불이나 여래보다 하위개념으로 쓰이게 된 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신비화, 이상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다시말해 제자들의 깨달음과 부처님만의 그것과는 무엇인가 다르며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경전에 보면 제자와 스승의
깨달음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었고 호칭에 있어서도 똑같이 아라한이라고 했던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깨달음은 부처님만이 특수하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가능하다는 보편성이 불교의 원리이고 이는 이론이나 관념이 아닌 실제로서의 진실이다.
불(佛)과 여래
여래10호의 명칭 가운데 불타의 본질을 나타내는 술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佛)'과 '여래(如來)'다. 이미 설명했듯이 붓다란 각자(覺者)이며 깨달았다고 하는 과거분사에 유래한다. 그 원어가 갖는 의미는 '눈을 뜨다'라는 것이다. 또 어리석음의 반대인 '현명하다'는 의미로도 일반에서는 쓰여졌으나 '진리를 깨달은 자'라는 의미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교주를 부르는 용어가 된 후에는 가장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나타낸 말로써 보편성을 갖게 됐다. 이것은 불교의 종교적 특색이기도 하다. 부
처님의 경우는 일반적인 깨달음의 체험과 구별하는 뜻에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과 같은 수식어가 많이 붙여지기도 했다.이와 같이 불타는 언어의미상으로도 명백하게 의심을 가질 여지가 없지만 이와는 달리 그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타타가타(如來)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타타가타 부처님 재세시에 이미 수행을 완성한 사람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쓰여진 이름의 하나로 생각되고 있으나 그 의미는 '이와 같이 훌륭하게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타타가타는 산스크리트어의 복합사로서 ①tatha+gata ②tatha-agata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①은 '여거(如去)'로서 티베트어역은 이 해석을 나타낸다. ②는 '여래(如來)'로서 한역에서 통상 쓰이는 말이다. ①의 gata에는 안다(知), 이해한다(解)는 의미도 있다. 이 번역의 예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티베트 불교는 깨달음을 중요시하고 중국불교는 부처님의 자비를 표면에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의 아가타는 다시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먼저 영어의 Come과 같은 a-gam(오다)이라는 동사는 어느 지점에의 도달을 나타낸다. 때문에 시점의 위치에 따라서 여기나 저기 어느 곳에도 쓰여진다. 《대지도론(大智度論)》등의 설명에서도 여래의 어의는 이 아가타가 가진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여(如)는 미오(迷悟)에 치우침 없이 불변이나 그것이 청정하게 되었을 때 여래라고 불리우는 해석도 있다(대승장엄경론). 또 a-gta를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즉 점차 전래해 왔다는 해석도 있다(보성론). 그러니까
여래라는 말은 교리의 확립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다. 다시말해 '여(如)'라는 것은 진여(眞如)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고 '이와 같은(tatha) 것이었다(ta)'라는 뜻을 가짐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것을 나타내는 말이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에 의해서 깨달아진 진리(제행무상 또는 연기의 진리)를 말한다.
불전에서 부처님은 '자각각타각행원만(自覺覺他覺行圓滿)'한 사람으로 불려지고 있다. 여기서 자각이란 지혜의 활동을 말하는 것이며 각타는 자비의 마음을 의미한다. 붓다는 따라서 지혜와 자비의 두 발(雨足)에 의해서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지혜, 자각이라고 하는 측면을 깨달은 진리와의 관계에 의해서 호칭할 때 붓다는 '이와 같이 온 자(여래)'로 해석된다. 그래서 중생구제를 위해 중생과 함께 세간에 모습을 나타내어 각타의 활동을 하는 점을 '이와 같이 왔다'고 해석하고 '여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거'와 '여래'는 깨달음과 중생구제라고 하는 붓다 활동, 말하자면 왕상(往相)과 환상(還相)이라고 하는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타타가타라고 하는 하나의 말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첫째, 산스크리트형의 복합사가 가진 다의성(多義性)이며 그것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붓다, 즉 진리를 깨달은 자를 진리(如=法)와 일체인 자, 진리를 체득한 자라고 생각되는 불교적·인도적 절대자관이다. 그러나 이 점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승에서의 불신관(佛身觀:法身)의 확립 과정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앞서 지
금은 그에 대한 경과를 먼저 고찰해야 하겠다.
불타의 전쟁
성도 이전의 부처님을 호칭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은 '보살'이다. 이 용어는 탄생 이전의 전생에까지 소급 적용되고 있다. 보살은 보리살타의 약칭(또는 訛音의 음사)으로서 성도를 전제로 한 붓다 전신의 호칭으로 사용되어 왔다.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은 역사상의 부처님 경우는 6년의 고행이 있었을 뿐이지만 입멸이후 부처님에 대한 신격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 수행은 탄생이전의 전생으로 소급되어 다시 그 기간도 3아승지겁라는 까마득한 기간까지 소급되었다.
아승지라는 것은 무수(無數)라는 의미의 최고의 수단위로써 10의 1백 40승을 말한다. 겁도 또한 많은 햇수(年數)의 단위로써 그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서는 우주가 성립, 존속, 파괴되는 일순환을 의미하고 이를 대겁(大劫)이라 한다. 1대겁은 수십만억 년에 해당한다. 부처님은 이같이 많은 세월동안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닦아 왔다고 한다. 6도라는 것은 보시에서 반야에 이르는 6바라밀을 말한다. 그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은 여러 가지《자타카》에 나타나 있다. 그 결과 부처님은 열 여덟가지의 보통사람이 따르지 못하는 불덕(佛德:18不共佛法)을 구비하
여 서른 두가지의 위대한 인물의 모습(32相)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18불공불법(十八不共佛法)은 아함경에 의하면 10력(十力)·4무외(無畏)·삼념주(三念住)·대비(大悲)의 열 여덟항목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아비달마에서 확정된 교리다.
10력은 부처님 특유의 10가지 지역(智力)으로 ①도리·비도리를 판별하는 힘 ②법과 그 과보와의 관계를 아는 힘 ③여러 가지 선정에 통달한 힘 ④중생의 근기를 아는 힘 ⑤중생의 욕구와 이해 정도를 아는 힘 ⑥중생의 성격을 아는 힘 ⑦업에 따라 생기는 세계를 아는 힘 ⑧과거세의 기억을 아는 힘 ⑨미래를 예견하는 힘 ⑩번뇌가 다해서 해탈을 자각하는 힘 등이다.
사무외란 부처님이 다음 네가지 점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①일체 모든 법을 평등하게 깨달아 다른 이의 힐난을 두려워하지 않음(正等覺無畏) ②온갖 번뇌를 다 끊어 외난을 두려워하지 않음(漏永盡無畏) ③보리를 장애하는 것을 다 알아서 다른 이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음(說障法無畏) ④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요긴한 길을 표시해서 다른 이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음(說出道無畏)등이 그것이다.
삼염주는 부처님은 다음의 경우 정지정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①중생이 부처님을 신봉해도 부처님은 환희심을 내지 않고 마음이 평정한 상태. ②중생이 한결같이 귀를 기울여 설법을 듣지 않아도 마음이 태연한 것. ③한 곳에서 하나는 열심히 듣고 하나는 전혀 듣지 않아도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아니하는 것 등이다. 이는 부처님이 남의 칭찬이나 희롱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비라는 것은 부처님이 항상 중생의 고난을 구제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대승에서는 18불공불법을 앞에서 말한 것과 약간 달리 설명한다. 대승의 18불공불법은 ①∼③신구의(身口意) 3업에 대해 과실이 없는 것 ④중생에 대한 평등심 ⑤선정에 의한 안정 ⑥모든 것을 포용하고 버리지 않는 힘. 이상 여섯 가지는 계학(戒學)에서 생기는 것이며 무주열반(無住涅槃)의 인(因)이 되는 것이다. ⑦∼⑪중생제도의 의욕·정진노력·염력·선정·지혜 다섯가지 점에 대해서 감퇴하지 않는 것 ⑫해탈해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 이상 여섯 가지는 정학(定學)에서 생긴다. ⑬∼⑮중생제도
를 위해 지혜의 힘으로 신구의 3업을 나타내는 것. ?∼?과거·미래·현재의 일을 잘 아는 것. 이상은 혜학(慧學)에서 생긴다.
18불공불법과는 달리 32상은 부처님의 형상에서 불덕(佛德)을 찾는 방법이다. 32상을 세는 방법은 일정하지 않으나 주가 되는 것으로는 머에 육계(肉 )가 있을 것, 미간에는 백호(白毫), 손가락사이에는 물갈퀴, 발가락에는 천복륜(千輻輪), 음부가 감추어져 있을 것, 신체 전체가 부드럽게 융기되어 있을 것, 마흔 개의 치아, 두 개의 흰 이빨, 오른쪽으로 감겨 돌아간 모발, 목에는 세 개의 턱주름 등이 있어야 한다. 이는 옛부터 불상을 조각할 때 주안점이 되어 왔다. 부처님에게는 또 부차적인 특징으
로 '80종호'가 붙어져서 32상과 합해서 '상호'라고 불리운다.
부처님은 또한 3명 6통 등의 신통력을 구비했다고 생각되어졌다. 3명 6통이란 ①숙명통(과거세의 일을 아는 힘) ②천안동(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힘) ③누진통(현재의 인생고를 알고 그 원인인 번뇌를 끊는 힘) ④천이통(세계의 모든 소리를 듣는 힘) ⑤신족통(자유로이 세계를 변현하는 힘) ⑥타심통(타인의 마음을 아는 힘)등이다. 이 가운데 최초의 세 항만을 별도로 떼서 3명이라고 한다.
이같은 불덕과 상호, 신통력은 오랜 보살로서의 수행기간 중에 항상 제불을 모시고 공양했으며 한량없는 선근과 복덕을 닦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이 불교도들의 믿음이다.
삼세의 제불
과거불의 생각은 불교사상 매우 오래된 것이다. 아쇼카왕의 비문 가운데 이미 구나함모니불에의 공양이 기록되어 있다. 이 부처님은 오래된 아함의 자료에서 과거세의 다섯 번째 부처님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기준에 의해 석가모니부처님은 일곱 번째로 세상에 출현한 부처님이다. 이를 통틀어 과거칠불이라 하는데 그 이름은 다음 같다.
①비파신 ②시키 ③비사바부 ④크라쿠찬다 ⑤카나캄무니 ⑥카사파 ⑦샤카무니이 같은 과거불의 생각의 성립은 자이나교에서 개조 마하비라(大雄)에 앞선 24조설을 채택한데서 영향받은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 교리상으로는 부처님의 입적을 말할 때 과거부터 있어온 진리를 발견한 사람으로 보는데 있다. 그것은 부처님을 '숲속의 옛성'을 찾아낸 발견자로 비유하는 데서도 알수 있다. 여기서 옛성이란 절대적인 진리(法)이며 부처님은 그것을 찾아 낸 선각자, 즉 진리의 발견자(佛)였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도 그것을 발견하는 또 다른 발견자(佛)가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진리의 발견은 석가모니부처님 이전에도 가능했고 이후에도 가능하며 따라서 많은 부처님의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과거불에 대해서는 다시 소급하여 연등불을 최초로 하는 15불설, 또는 25불설이 나타났으며 다시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부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무량무수한 부처님을 상정하게 됐다. 과거불의 명칭은 과거7불 이외는 각 문헌과 부파교단별로 전승이 다르다. 따라서 과거7불은 원시교단이 제부파로 분열하기 이전에 성립한 사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정광여래(연등불)의 이름과 그 역할(석가모니불의 출현 예언, 즉 授記)은 모든 부파에 공통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광여래는 가장 오래된, 또는 최초의 부처님이라고 생각되어졌다. 이밖에 과거성숙겁·현
재현겁·미래장엄겁에 각각 1천불의 이름이 거론되는 일도 있다
(佛名經). 이 경우 석가불은 현겁불의 하나다.
한편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기 이전에는 도솔천에서 살았다고 하는 전설과 또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님이 될수 있는 보살은 석가모니와 마찬가지로 현재 도솔천에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이것을 '일생보처보살'이라고 한다(一生補處란 나머지 일생동안 윤회전생에 속박되어 있고 다음 생은 해탈하여 부처가 된다는 뜻, 즉 부처님 후보자). 다음번에 부처님이 될 보살의 이름은 마이트레야. 미륵은 56억7천만년 후에 용화 세계에 태어나는데 현재의 중생들은 미륵부처님의 원에 의해 도솔천에 태어났다가 미륵이 하생할 때 이 세상에 같이 태어나 제도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미래불 신앙이다.
시방의 제불
과거에서 미래에 걸쳐 무수하게 많은 부처님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과 함께 공간적으로도 무한한 세계를 예상하고 그 곳에 부처님이 있다고 하는 생각도 나타났다. 이러한 생각은 대중부의 일파에서 시작됐다고 하나 현저하게 교리적으로 중요성을 갖게된 것은 대승불교시대에 들어와서였다.공간적으로 많은 세계가 있다고 할 때 전제가 된 것은 하나의 세계에는 일시에 일불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경전에는 어디에도 일시에 이불의 동시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세계란 원래 전륜성왕이 지배하는 구역을 예상해 나온 것으로써 그 범위를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사대주, 즉 지구가 있는 곳을 포함한 지역을 말한다. 사대주란 동쪽의 승신주, 남쪽의 염부주, 서쪽의 우화주, 북쪽의 구로주다.
이중 남염부주는 석가모니불이 출현한 땅으로서 통상의 인간세계이다. 불교의 세계관에는 이 수미산을 중심으로 세계의 아래에 지옥 등이 있고 위에 천계가 있다고 본다. 천계는 선정의 힘에 의해서 상승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하고 그것을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로 나누어서(사천하와 하방의 지옥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욕계) 삼계의 범위가 세계에 포함되어 있다. 이 삼계는 윤회하는 자의 생존공간이다. 또한 공간적으로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세계를 일소세계라 하며 그 일천 개분을 소천세계, 다시
그 일천 개분을 중천세계, 다시 그 일천 개분을 삼천대천세계라 한다.
다시 말해 소세계의 십억 배(1000×1000×1000)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석가모니불의 설법이 미치는 범위로서 그 세계는 사바사계라고 이름한다. 사바세계는 고뇌가 많은 세계로서 '예토'이다. 이 세계의 중생들은 십악을 참고 견디며 이 국토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없으므로 자연히 중생들이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써 '감인세계'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 시방(동서남북 사방과 그 간방에 다시 상하방을 보태면 시방이 된다.)에는 무수하게 많은 세계가 있고 그것은 '정토'이며 고뇌가 없는 낙토로 생각됐다. 이와 같이 정토에는 따로따로 부처님이 존재하는
데 사바세계와는 다른 세계라는 뜻에서 타방정토라고 부른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외에 정토나 천국이 있다는 생각은 고대 이집트나 기타 다른 지역에서도 있었다. 이것은 인류가 스스로 생각해 낸 보편적인 견해이며 특이한 인종에 의한 발상은 아니다. 하지만 대승불교시대에 이르러 이같은 생각이 현저하게 된 것은 고대 페르샤 근방의 광명사상 영향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시방세계에 무수한 불국토가 있고 그곳에 일불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됐다. 예를 들어 동쪽에는 아촉불이 있는데 그곳을 묘희세계라 하고 서쪽은 아미타불이 있으며 그곳을 극락세계라고 부른다. 이들 세계의 부처님은 법장보살이 서원을 세워 수행하여 그 완성에 따라 아미타불이 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발심(서원)→수행→성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석가모니불이 깨달음을 얻은 것과 같은 과정이며 그 결과로 정토를 건설했다는 생각이다.
대승경전에는 과거에도, 현재·미래에도 이와 같이 한없이 많은 부처님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많은 보살(또는 중생, 성문과 제천용신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청문하는 한)이 미래에 성불을 예약받고 있다. 이를 '수기'라고 한다. 보살이 수기를 받을 때는 반드시 세계(불국토)의 이름과 부처로서의 이름(佛名)을 함께 받는다. 이들 제불을 대승불교에서는 '삼세시방 제불'로 요약해서 부르고 있다.
한편 사바세계는 예토이므로 불국토라 하지 않는다. 《유마경》같은 대승경전에는 마음이 깨끗하면 이 세계도 깨끗하다는 사상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바세계를 정토라고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석가모니불은 아미타불과 같은 수행의 결과로서 성도한 부처님과는 틀리다는 생각이 나타났다. 석가모니불의 화신설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아미타불 등 정토의 부처님은 보신으로 불려졌다.
색신과 법신
부처님의 본질에 대한 생각으로써 최초로 나타난 것은 '부처님은 진리(法)를 본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함의 경전에서 볼 수 있다. 아함에서 법(法)은 범(梵)과 대비되었다.
범에 대신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법이며 범의 인격화로서의 범천에 대신해서는 법의 인격화인 불이 대비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반드시 명백하지 않다.부처님이 임종할 때의 표현 가운데 불의 본질을 알게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계와 혜와 정과 해탈은 무상(無上)이다.
명성 있는 고타마에 의해서 이 법은 각지(覺知)되었다.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은 알고 비구들에게 법을 설했다.
고를 멸한 눈을 갖춘 스승은 반열반했다."
이에 의하면 계·정·혜·해탈 네가지 법과 또한 그것을 알았다고 하는 다섯 가지가 불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다섯 가지 자격 가운데 마지막 것은 나중에 '해탈지견'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 다섯 가지는 아비달마교의에서 '오분법신'이라고 한다.
여기서 법신이란 계·정·혜·해탈·해탈지견 등 다섯 가지 법의 집결을 말한다. 그러니까 법신이란 교법의 전체를 모아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부처님을 대신하는 것은 부처님이 남긴 가르침뿐이라는 해석이다(유교경). 이는 법신이라는 말이 갖는 또 다른 의미이다.
법신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첫째 부처님은 '법을 몸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어인 동시에 둘째로는 그 구체적 내용으로써 '5분에 의한 교법의 집합' 즉 8만 4천 법문이라는 두 가지 뜻이 부파시대의 아비달마 교학에서 성립되었다.법신에 관한 논의는 나중에 80세로 열반한 부처님의 본질을 논함에 있어서 그것이 육신(색신)이냐 법신이냐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유부 계통에서는 이에 대해 어디까지나 색신설을 채택했으나 대중부 계통에서는 법신의 화신설을 주창했다. 그리고 이 대중부 계통의 사고방식은 다시 대승불교의 불신론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금강경》에 '만약 모양으로써 나를 보려거나 소리로써 나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끝내는 부처(여래)를 보지 못하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는 말은 여래가 법을 떠나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는 가르침이다. 이밖에 《반야경》에도 여러 차례 여래는 '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까지 '법신'에 대한 독립된 개념의 성립은 볼 수 없다.
나가르쥬나는 이에 대해 《방야경》의 주석서인 《대지도론》에서 불신의 '법신'과 '생신'으로 나누고 있다. 생신이라는 것은 부모가 낳아준 몸을 뜻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을 지칭한다. 법신과 색신을 나누는 2신설은 그 후 많은 대승 경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2신설과 앞에서 말한 정토의 부처님과 예토의 부처님의 구별을 합치게 되면 3신설이 성립되나 이것이 이론적으로 확립된 것은 유가행파의 이론에 의해서다.이와 같이 법신이라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대로 '불은 법을 몸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발전한 것이나 대승에서 확립된 것
은 법이라는 것은 부처님에 의해서 깨달아진 법(所證의 법)으로서의 진리 그 자체이다.
이것은 부처님에 의해 가르쳐진 일체의 법(所說의 법, 교법)에 근원을 둔 것으로써 '법계(法界;聖法出生의 因)'로도 불려지며 또는 '법성(法性;법의 본성, 법의 본질)'이라고도 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의 모든 현상(일체법)의 근원이다. 이 법계는 공간적으로는 무한이라고 생각되어졌으며, 또한 시간적으로도 불변하고 상주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부처님은 본질에 있어서 이러한 법계와 일체이며 불 그 자체가 시간·공간으로 무한·불변한 절대적 존재라고 보고 이것이 법신(여래의 법신)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법신이라는 보편적 존재성 위에 존재하는 일체중생도 또한 그 본질에 있어서 법신과 동일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특히 여래장(如來藏)사상에서 발달된 생각이지만 가능성으로서는 이미 《화엄경》의 교리에 충분히 담겨져 있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이같이 무한대한 공간에 침투한 존재로서의 법신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이 법신은 비로자나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인간의 언어로 설법하지 않으나 광명을 발하여 그것이 보살들의 머리로 들어가서 입으로 나와 설법이 된다. 이것이 형상으로서는 경문이 된다.비로자나불은 밀교에서 말하는 대일여래로서 설법하는데 이것은 여래의 3밀행의 하나인 구밀(口密;설법)이다. 이 경우 법신은 다른 쪽에서 볼 때 법계, 법성과 같은, 말하자면 '이(理)' 그 자체이나 동시에 불(佛)인 이상 그곳에 지(智;깨달음)의 계기가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그 지(智)의 활동은 만물을 고르게 비추는 광명에 비유할 수 있다. 이것은 만물을 기르는 태양 활동에 비유되기도 한다. 비로자나란 두루 비친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자비를 뜻하는 말이다.
즉 법신은 이(理)와 지(智)를 겸비한 부처님을 의미하며 이것이 법신의 본질인 것이다.
삼신설
법신과는 달리 개별적인 법의 체득자(여래)는 스스로 수행의 과보를 갖는다. 여래란 수행의 과보를 받는 자를 말하며 '보신'으로 불리운다(또는 應身이라고도 하거니와 깨달음의 과보를 받는다는 뜻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리(自利)이기 때문에 자수용신이라고 하나 정토의 존재는 그곳에 중생을 받아들여 중생들로 하여금 함께 깨달음을 수용케 하므로 이타(利他)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자수용신은 결과적으로 법신과 동질성의 몸이 되며 자리를 위해 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수용신을 '타자에게 법을 깨닫게 하기 위해 받은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처님은 색신을 갖추고 있으나 이 세상에 있는 범부들(예토의 중생)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다만 보살들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은 같은 이타의 색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우리들 범부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법신이 특별히 변화하여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화신, 응신)이다. 이것이 '이와 같이 왔다'고 하는 여래의 의미다. 여기서 법(法)·보(報)·응(應) 또는 법·응·화의 3신 또는 자성신·수용신·변화신이라고 하는 3신설이 성립하여 대승 불교 불신론의 기본이 됐다.
3신설은 뒤에 자수용신·타수용신을 나누어 4신설로 발전했으며 나중에는 다시 5지5불신설로 전개됐다. 5불신설은 밀교의 교설로서 중앙에는 법계체성지의 대일여래, 동방에는 대원경지의 아촉불, 남방에는 평등성지의 보생불, 서방에는 묘관찰지의 아미타불, 북방에는 성소작지의 불공여래를 각각 배치시키고 있다.
[천상천하 유어독존 ......](성불하소서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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