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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군림한 ‘女帝’ 비너스의 요염한 처세술]

문수봉(李楨汕) 2009. 2. 3. 19:39

사파리 군림한 ‘女帝’ 비너스의 요염한 처세술

▲한국호랑이 십육강이 사자집단 2인자인 테크노의 관자놀이를 후려치고 있다. 한국호랑이는 덩치가 커 사자와의 일대일 싸움에서 유리하다. 벵골호랑이는 사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암사자 비너스(11세)는 색공을 무기로 수사자를 거느리며 실력자로 군림한다. 비너스가 으르렁거리면 수사자들의 갈기털이 곤두선다. 비너스는 마음에 안 드는 호랑이가 있으면 그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면 사자들이 떼로 그 호랑이에게 덤벼든다. 호랑이들은 얼어붙은 듯 오금을 펴지 못한다. 영특하면서도 비겁한 처세술로 비너스는 승승장구해왔다.

- [화보] ‘들쇠고래’ 안타까운 구조현장!

 

 12월16일 오후 와일드사파리(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비너스는 흙냄새를 맡으며 사자왕 아이디(8세) 곁에 앙칼진 자태로 앉아 있었다. 수사자들의 목덜미, 옆구리를 핥는 비너스의 혀는 현란하다. ‘큰 대(大) 자’로 누워 속살을 보여주며 앙탈도 부린다. 비너스는 사람의 눈으론 종잡을 수 없는, 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학명: Panthera tigris
                                      분류:  식육목(食肉目) 고양잇과의 포유류
                                      분포지역: 한대, 열대, 온대
                                      수명: 15~20
                                      몸길이: 186∼400cm


‘집단의 힘’ 사자에 눌려 호랑이는 눈치만

 비너스는 2002년 여비(9세)가 집권했을 때부터 여제로 군림했다. 비너스의 관능에 포박당한 젊은 수사자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새 권력자가 노쇠하면 또 다른 젊은 수사자가 반역을 일으키면서 맹수제국의 왕위를 이었다.

 

 아이디의 왕위를 노리는 에니카(5세)는 지금 비너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비너스도 에니카를 부쩍 챙긴다. 아직은 아이디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녀석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빌 클린턴이나 로널드 레이건 같은 정치가들은 유권자들의 ‘엉덩이를 핥는(ass-licking)’일에 능란했다고 ‘타임’의 전 편집장 리처드 스텐젤은 말한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아래·윗사람을 다독거리고(stroking) 빨아주는(sucking up) 데 뛰어나야 한다는 것. 비너스가 그렇다.

 

 “사자와 호랑이 싸움의 승자는?”이라는 말초적 호기심의 정답은 “살아남은 놈이 강하다” “힘센 놈이 이긴다”는 것이다. 뭉칠 줄 모르는 단독자(單獨者) 호랑이와 적에게 떼로 맞서는 사자집단의 싸움에서 패권은 늘 사자의 몫이었다. 호랑이들은 후미진 곳에서 비너스의 눈치를 봤고, 비너스는 무료할 때마다 사자들을 데려가 호랑이를 팼다.

 

 비너스는 2006년 1년간 실권했다. 호랑이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2005년 11월 비너스가 사자들을 이끌고 호랑이 구역으로 향했다. 호랑이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한국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십육강(6세)은 예외였다. 녀석은 배를 땅에 붙이고 어깨를 곧추세웠다. 그러곤 뒷다리로 서서 두 앞발로 테크노(8세, 당시 사자집단 2인자)의 관자놀이를 거푸 후려쳤다.

 

 

                                    학명:  Panthera leo
                                    분류:  식육목(食肉目) 고양잇과의 포유류  
                                    분포지역:  아프리카, 인도 
                                    수명:  10~15년  
                                    몸길이:  165∼250cm 

 

 십육강의 별명은 그때까지 ‘마을 이장’이었다. 순박한 데다 멍한 구석도 있었다. 그런 그가 2인자를 때려눕힌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십육강은 아이디마저 무찌른다. 사자들은 후미진 곳으로 밀려났고, 호랑이들은 제멋대로 쏘다녔다. 2006년 여름, 십육강은 틈만 나면 아이디와 테크노를 두들겨 팼다. 마을 이장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벼락출세한 십육강은 광포했다. 이빨을 드러내며 사자를 위협하기도 했다. 맹수들의 싸움은 대개 주먹질로 끝난다. 패배한 녀석이 꽁무니를 빼면 그냥 놔둔다. 이빨은 최후의 일격을 의미한다. 야생 호랑이는 상대가 타격을 입고 약점을 보이면 이빨로 숨통을 끊는다.

 

 십육강은 결국 사람에 의해 거세됐다. 최강자인 사람이 녀석을 우리 안에 가둔 것이다. 십육강이 축출된 뒤 비너스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 아이디도 왕위에 복귀했다. 호랑이들은 구석진 곳으로 쫓겨났으며 사자들은 예전처럼 호랑이를 윽박지른다. 벵골호랑이 세강(8세)이 이따금 반항하지만 아이디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인간의 권력다툼 닮은 맹수의 이전투구

 맹수의 권력욕은 영토, 먹이, 암컷에서 비롯된다. 권력자는 제멋대로 초원을 쏘다니며 먹이와 암컷을 우선순위로 차지한다. 권력에서 밀려나면 2인자가 아니라 바닥이다. 사람도 돈, 지위, 명예를 놓고 경쟁한다. 맹수의 권력투쟁은 꼭대기에 올랐기에 매섭고, 힘을 가졌기에 더욱 거칠다. 힘센 사람들이 벌이는 권력다툼은 때로 맹수의 이전투구를 닮았다.

 

 비너스는 사람 나이로 쉰 안팎이다. 폐경이 코앞이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 털색이 더욱 짙어지고 얼굴엔 검버섯이 늘었다. 암사자 니케(4세)는 비너스를 쏙 빼닮았다. 니케를 따라 수사자들이 호랑이에게 덤벼든다.


도움말 : 문인주 에버랜드 사육사, 황수전 전 에버랜드 사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