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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Ⅵ - ▣서 민▣최창집▣김광두▣강준만▣허희영▣김현철

문수봉(李楨汕) 2021. 5. 28. 03:50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Ⅵ - ▣서 민▣최창집▣김광두▣강준만▣허희영▣김현철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Ⅵ ···목차

▣ 서 민 1. 촛불, 방역, 반도체까지… ‘숟가락 얹기’의 제왕이 나타났다.

▣ 최창집 2. “문재인 정부 법 초월·우회, 민주주의 원리와 충돌 많아”-진보학계 최장집 교수 진단

▣ 김광두 2. “이재명 따라하는 포퓰리즘 확산… 정치 무기력하니 기업이 나서야”

▣ 강준만 3. '독재'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 허희영 4. 신공항 검증 보고서,이런 수준이면 대학원도 졸업못해-항공대 항공우주정책연구소장

▣ 김현철 5. “국민 피눈물 나게 하면 대가 치러… 文, 가장 불행한 대통령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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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Ⅰ https://blog.naver.com/ohyh45/221731872658

① 서 민, ② 김경율, ③ 한민호, ④ 박상인, ⑤ 김명자, ⑥ 장영수, ⑦ 홍성걸,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Ⅱ https://blog.naver.com/ohyh45/222042866423

① 양승태, ②송재윤, ③ 한상진, ④ 김헌동, ⑤ 신평,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Ⅲ https://blog.naver.com/ohyh45/222204179741

① 최창집, ② 김우창, ③ 홍세화, ④ 한홍구,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Ⅳ https://blog.naver.com/ohyh45/222272195169

① 한승주, ② 전인범, ③ 김호기, ④ 김규항, ⑤ 김광두, ⑥ 한상진,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Ⅴ https://blog.naver.com/ohyh45/222327920243

① 문희상, ② 빅터 차, ③ 최진석, ④ 송재윤, ⑤ 김정길, ⑥ 윤덕민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Ⅵ https://blog.naver.com/ohyh45/222370756753

​ ① 서 민, ② 최창집, ③김광두, ④ 강준만, ⑤ 허희영, ⑥ 김현철,

◆『진보진영과 '문빠'에 대한 고언』를 더 보실려면 아래 URL을 클릭하세요

『진보진영과 '문빠'에 대한 고언』Ⅰ[우석훈·김형석·한상진·민경우] https://blog.naver.com/ohyh45/221904701435

『진보진영과 '문빠'에 대한 고언』Ⅱ[송재윤·이종훈·최창집·강준만] https://blog.naver.com/ohyh45/222141749030

『진보진영과 '문빠'에 대한 고언』Ⅲ[최진석·홍세화·김경율·진중권] ​https://blog.naver.com/ohyh45/222202826310

▣서 민

1. 촛불, 방역, 반도체까지… ‘숟가락 얹기’의 제왕이 나타났다

황정민의 숟가락 수상소감 - 16년 만에 다시 소환된 까닭

일러스트 안병현

“도연아,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한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고마워.” 2005년, 배우 황정민은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에이즈에 걸린 여성 (전도연 분)을 사랑하는 순정남을 연기한다.

영화가 관객 수 300만을 넘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더 좋은 일은 황정민이 이 영화로 제26회 청룡영화상에서 생애 첫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수상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건 다음 말이었다.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근데 스포트(라이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그런데 언론들이 그의 말을 ‘스태프가 잘 차려준 밥상에 자신은 숟가락만 얹었다’고 요약하는 바람에 황정민의 겸손한 수상 소감은 ‘남의 밥상에 숟가락 얹는다’는 말로 변질돼 후대에 전파된다.

영화가 흥행하고 평단의 찬사를 받는 데 있어서 황정민의 공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한 말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생색만 낸다는 의미로 바뀐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원이 어떻든 숟가락 얘기가 심심찮게 쓰이게 된 건 남의 공을 가로채는 이가 제법 있기 때문인데,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후 이 말은 국민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 됐다. 가히 ‘숟가락의 제왕’이라 할 분이 등장한 게 그 이유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대통령이 되는 데 자기 힘을 가장 덜 들인 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 감정에 도전하자며 낙선을 거듭할 때는 물론이고, 험난한 민주당 경선을 통과해 대통령 후보가 될 때도 변호사였던 문재인은 그에게 일말의 도움을 준 바가 없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로 문재인 변호사를 민정수석에 임명했을 때 캠프 내에서 약간의 파문이 있었다고 한다.

문통이 민정수석 일을 잘했다면 얘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노통이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고 결국 돌아가시게 된 원인이 재임 시절 저질러진 가족과 측근의 비리 때문이었으니, 문통에게 여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맞는다.

그런데 노통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좌파들은 엉뚱하게도 검찰과 언론을 범인으로 몰았고, 장례식장에서 상주 역할을 하던 문통이 노통의 복수를 대신해줄 이로 떠오르게 된다. 노통의 퇴임 이후 정계를 떠났던 문통은 그 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거쳐 결국 2012년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동의하고, 통합진보당 후보마저 사퇴함으로써 민주 진영이 사실상 총집결한 이 선거에서 문통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참패하는데, 표 차이가 너무 어이없었던지 김어준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더 플랜’이란 영화를 만들기까지 한다.

그 후 4년간, 문통이 이끄는 민주당은 지리멸렬했다. 정상적으로 대선이 치러졌다면 정권 교체를 장담할 수 없던 시점, 갑자기 대통령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 대통령 하야와 처벌을 외쳤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등 정치권도 ‘박근혜 퇴진 후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 와중에 문통이 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습니다. 퇴진 후에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촛불 혁명의 과실은 기이하게도 탄핵 국면에서 별다른 역할을 한 적이 없는 문통에게 돌아갔고, 결국 그는 2017년 5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전직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쫓겨난 상황, 적당히만 해도 ‘성공한 대통령’이라 칭송받을 유리한 상황에서 문통은 지독히도 일을 못했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와 외교 등 모든 곳이 삐걱댔지만, 문통이 그래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비결은 그가 선보인 숟가락 얹기 신공 덕이었다.

예컨대 문통이 추진한 ‘문재인 케어’를 보자. 특진비와 상급병실료, 고가의 검사비 등 기존에 비급여였던 항목들을 급여로 전환함으로써 62.7%에 불과한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린다는 게 문재인 케어의 골자. 이를 위해 건강보험료를 대폭 올리는 건 필수였다.

국민의 저항이 따를 수 있는 이 위기를 문통은 다음과 같이 피해간다. ‘보험료는 거의 올리지 않겠다. 대신 건강보험공단에 적립된 20조원을 쓰겠다.’ 미래는 어떻게 되든 지금 당장 의료비 잔치를 벌이겠다는 발상도 나쁘지만, 더 어이없는 것은 20조원의 출처였다. 이 돈은 문통이 적폐로 몰아 구속시킨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쌓아 놓은 돈이었으니 말이다.

2019년 2조8000억원의 적자가 나는 등 빠르게 줄어들던 적립금은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않게 되면서 고갈 속도가 둔화됐지만, 문케어로 인해 고질화된 의료비 잔치는 후대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보장률 70% 달성마저 실패가 확실해 안 하느니 못한 정책으로 판명됐지만, 문통은 취임 4주년 연설에서도 문케어를 언급하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문케어가 적폐 시절 적립금에 숟가락을 얹었다면, 이른바 K방역은 안전에 예민한 국민의 성향에 숟가락을 얹은 사례다.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하는 게 인권 침해가 되는 유럽과 달리, 우리 국민은 마스크 안 쓰는 주변 사람에게 호통을 치고, 5인 이상 모이면 신고할 정도로 정부 지침을 잘 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마저 자기 역할을 잘 했다면 우리나라는 대만을 능가하는 방역 1등국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통은 코로나 사태 초기 중국발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았고, 백신 구하는 일조차 게을리함으로써 국민을 힘들게 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미안해하는 게 맞지만, 문통은 국민 덕에 만들어진 낮은 확진자 숫자를 자신의 공으로 치부하며 K방역을 선전하기 바쁘다.

여기에 재미를 붙인 탓일까. 지난 5월 13일, 문통은 2030년까지 종합 반도체 강국의 목표를 이뤄내겠다며 K반도체 전략을 제시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발언에 어리둥절했다.

삼성 등 재벌 기업들이 노력해서 일군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여기에 1도 기여한 바 없는 분이 가로채는 느낌을 줘서였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것도 그렇지만, 2019년부터 정부가 반도체 기업과 함께 뛰며 뚜렷한 성과를 올렸다는 대목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뒷목을 잡게 된다.

대통령님, 숟가락 좀 그만 내려놓으세요. 명색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어떻게 스스로 밥상 한 번을 안 차립니까?

[출처] : 서민 단국대학교 기생충학교수 : <문파타파> - 촛불, 방역, 반도체까지… ‘숟가락 얹기’의 제왕이 나타났다 / 조선일보, 2021, 5.22.

▣최창집

2. “문재인 정부 법 초월·우회, 민주주의 원리와 충돌 많아”

- 진보 학계 원로 최장집 교수 진단

최장집 교수가 지난 7일 제주도청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제주도청]

문재인 정부는 2016년의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규정한다. 문 대통령이 "촛불혁명은 대통령으로서 나의 출발점”(2017년 6월)이라고 한 일도 있다.

민주주의 위기 특강, 원희룡 지사와 대담 - ‘촛불혁명’ 규정, 87년 민주화 협약 깨

도덕적 정당성 자임, 상대 척결은 위험 - 스포츠 중계하듯 여론 중심 정치

자유주의 대의제적 민주주의 일탈 - 4년 중임제, 단임제보다 더 나빠

개헌 어렵다면 의회서 총리 선출 - 경제민주화, 헌법 전문에 규정 안돼

진보적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촛불혁명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내로남불이란 표현도 있지만 스스로 도덕적이고 정당하다고 자임하고 믿게 되는 동안 상대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척결의 대상이 되는 건 민주주의 하에선 굉장히 위험한 발상” 이라고 반박한다.

 

농민·노동자·청년 등 ‘폭넓은 의미에서 사회로부터 요구’였던 촛불시위를 문재인 정부가 ‘혁명’으로 정의한 게 결과적으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변곡점이 됐는데, 특히 보수적 정치 엘리트도 동의한 일종의 암묵적 협약이었고 평화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 기반이었던 1987년 체제를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봐서다.

그는 "정치적으로 지난날의 보수세력을 부정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를 만들어 왔던 과거를 대체로 부정하는 현상을 만들어냈다”"보수·진보 간 갈등의 강도를 높이고, 양극화하면서 갈등을 사회전체로 확산·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7일 제주에서 4시간 가까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말했다. 100분간은 제주연구원 제24주년 특강이었고 130분간은 원희룡 제주지사와의 대담이었다. "한국 민주주의 앞날은 비관적이란 생각이 든다”라고까지 한 그의 진단과 우려, 조언을 정리했다.

 

보수·진보 갈등 높이고 양극화 확산

 

87 체제에 보수도 기여했다고 평했다.

"진보 세력이 극대화된 최신 버전이 문재인 정부라고 보는데, 역사와 민주화를 절반밖에,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87년 민주화는 구체제의 군부 권위주의 세력들이 민주주의에 동의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경험했던 방식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버마(미얀마) 사태를 보라. 말하자면 6월 항쟁은 전두환 정권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은 결과, 그래도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민주화·보수 세력 등 여러 정파에서 나온 8인의 대표들의 합의를 통해 민주헌법 (87년 10월)을 만들게 된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운동이 주도했지만, 내용적으로 구체제의 집권세력과 민주파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통한 ‘협약에 의한 민주화’라고 말할 수 있다.”

 

촛불시위 이후 민주주의관도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적폐·역사청산을 개혁정책을 위한 슬로건으로 밀고 나가는 정서적 급진주의가 정치를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기득세력을 척결코자 하고 제도권 정치에 대한 혐오가 확산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조성됐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과 아를 구분하며 여론을 창출하는 일이 실제 정치를 지배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새 정부의 엘리트들은 은연중에 자유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민중주의적(populist)이고 대중참여적인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고 그간 노력해 왔던 민주주의는 제도의 틀 안에서 선출된 대표를 통해서 이뤄질 때 비로소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할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이제는 광장으로 간다.

거리에서 소리치고 스포츠 중계하듯이 몇 프로 몇 프로 하며 여론 중심의 정치를 한다. 이건 자유주의적 대의제적 정치적 민주주의에서의 일탈 내지 왜곡이라고 본다.”

 

최 교수는 이날 문 대통령이 2017년 6월 민주 항쟁 기념사를 통해 "정치와 일상이, 직장과 가정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연설한 걸 인용하며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운동하는 방식으로 온 사회를 정치화하고 시민운동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시민을 보통의 시민과 ‘깨어있는 시민’ ‘촛불시민’으로 구분하면서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부여하는 건 위험하고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흔히들 경제민주주의, 경제민주화란 말을 쓰지 않나.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로 한정되는 게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관이랄까,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의 관점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차별이 많고 소외세력이 많은데 이걸 해결 못 하면 무슨 민주주의냐, 말하자면 경제적 민주주의를 배제한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 그것을 무슨 민주주의냐라고 반론을 제기하고는 한다.

우리가 이렇게 ‘최대정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해한다면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발전하기보다 실패를 불러올 가능성이 더 크다. 물론 한국 헌법에도 경제조항이 있다. 그런 표현은 쓸 순 있다. 그러나 경제적 민주주의로 확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어도, 헌법 전문에 들어가서 규정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검찰 제도 자체 악마화 문제 많아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걸 강하게 우려한다.

"우리의 자유주의적 헌법이 시행 가능하기 위해선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어떻게 실현돼 대통령 권력을 견제해 법의 지배하에 놓이게 할 수 있느냐 문제가 핵심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법을 초월하거나 우회하기도 한다.

제도로서의 검찰 자체를 악마화하듯이 개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은 진정 문제가 많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이든, 국가의 어떤 기관이든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원리가 핵심이다. 스스로 법을 만들고 자신을 위해 법을 지키라는 건 민주주의라고, 법의 지배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개헌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5년 단임제는 민주화 이후 정권교체가 안정적으로 제도화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통령 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5년 이상 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나면서 부정적 요소는 분명해졌다.

현 제도하에서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일각에선 4년 중임제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현재의 단임제보다 더 나쁘다고 본다.

이상적인 대안은 의회중심제이나 그로의 개헌이 어렵다면 우리 헌법 86조(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를 더 강화해 총리를 대통령이 아닌 의회가 선출하도록 하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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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청와대가 전리품 배분 카운터 돼, 당·정은 장식물 전락”

원희룡

원희룡(사진) 제주지사는 야권의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정치인이다. 대학 시절 야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검사 생활을 하다 2000년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며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했고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7일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1990년에 운동권 조직을 걸어 나가 방황하며 내 이념의 집, 집단주의란 집을 허물어야겠다, 다시는 특정 이념·집단을 절대화하는 건 하지 않아야겠다고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86에겐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보는가’란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소위 전대협이란 자신들의 끈끈한 투쟁조직의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90년대 전후) 동구가 무너지고 북한의 주체사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보면서도 그걸 마주하고 부정하며, 그 부정을 자기 입으로 표현해 보고 내부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금까지 어물쩍 왔다. 이념이나 투쟁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어떻게 주식투자 이런 게 가능하겠나. 지금은 모호하게 섞여 있다고 본다.”

 

그는 통합과 협력의 정치를 목표한다.

“내가 권력자란 전제가 아니라, 내가 권력을 쥘 수도 있고 아닐 수 있는 그 상태를 놓고 최적화한 거로 하는 메커니즘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대통령 권력을 덜어 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청와대 참모들의 권력이 비대해져 행정부 조직이 그냥 관료주의와 청와대 출장소 같은 형태가 된다”라거나

“공천이나 공직 임명권, 공기업에 대한 각종 이권과 지위 등에 대한 배분권을 청와대가 독점하고 있다 보니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모두 청와대만 바라보게 된다. 청와대가 거대한 전리품 배분 카운터 같은 게 되면서 행정부와 집권여당을 완전히 장식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안으로 대통령을 직선하되, 법률거부권 등 견제 기능을 갖는 의전적·상징적 역할을 하게 하고 총리가 내각을 구성하는 내각책임제가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대선 전 개헌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국민의힘을 향해선 “말로만 민주주의자란 단어를 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적용되고 부닥치는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자란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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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

3. “이재명 따라하는 포퓰리즘 확산… 정치 무기력하니 기업이 나서야”

- J노믹스 설계자 김광두 원장의 한국경제 진단[인터뷰]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자신이 석좌교수로 있는 서강대의 남덕우경제관 건물에서 인터뷰를 갖자고 했다. 수출 주도형 모델로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끈 남덕우 전 총리를 기념하는 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진영 논리에 집착하다 성장 정책에 실패하고 국민을 잃었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경제 멘토 역할을 하며 J노믹스를 설계했다. J노믹스는 인력 양성, 특히 여성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사람 중심 성장경제’를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당시 문 후보는 유세에서 J노믹스를 외쳤다.

그런데 집권 후 상황이 달라졌다. J노믹스 대신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주 52시간 등을 앞세운 친노동·반기업 편향의 소득 주도 성장이 문 정부의 국정 중추가 됐다. 하지만 문 정부 1년 만에 마치 역병이 대유행하듯 곳곳에서 경제가 무너져 갔다. 일자리가 대거 증발하고 저소득층 소득이 감소하고 수십만 자영업자가 줄도산했다.

당시 대통령 직속 국가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었던 김 원장은 “이건 아니다”라며 소주성을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2018년 말 부의장직을 사퇴했다. 그가 평생 교편을 잡았던 서강대 남덕우경제관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김 원장은 “정치권은 지금의 난국을 헤쳐갈 능력을 상실했고 지식인도 힘이 없다”며 “나라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유력한 주체는 기업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행복지수는 문 정부에서 가장 낮아

―벌써 4년이 흘렀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나라 안팎에서 거센 변화가 일고 있지만 우리의 적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먼저 인구 감소가 매우 심각한데도 대응하지 못한다. 시장경제의 최대 약점인 소득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청년 4명 중 1명이 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식 축적은 멈춰 있다. 정치 포퓰리즘은 이제 일반화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다 따라가는 양상이다.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문 정부에 가장 아쉬운 부분은?

“국가는 유기체다. 구성 인자의 상호작용으로 발전한다. 어느 한쪽만 살아있으면 유기체가 아니다. 예컨대 부동산 시장에는 전·월세 시장이 있고 매매 시장이 있다. 두 가지는 연결돼 있다. 그런데 세입자만 보고 정책을 편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 정부 하는 일이 모두 그렇다.”

―왜 그런 실패가 반복되는가. 문 정부에 전문가가 없는 건가?

“정권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앞서 정권을 먼저 생각하고, 국민에 앞서 진영 먼저 생각한다. 그러면 분열한다. 모든 것이 ‘내 세력’ 기준이다. 경직된 진영 논리에 집착하다 보니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다.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정책이 진영 논리에서 수립됐다.”

―소득 주도 성장은 생명을 다했다고 보나.

“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문제는 속도다. 우선 기업이 살아야 최저임금을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소주성 때문에) 기업이 버티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니까 고용을 줄이고 그 결과로 근로소득이 줄었다. 처음부터 원하던 상황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은 기업인들과 만나 소통하는 모습도 보이고 규제 혁파와 혁신 성장도 강조했는데.

“행사 장소에 장관들까지 앉아 있는데 기업인들이 무슨 말을 하겠나. 기업인은 사무관도 무서워한다. 그런 행사는 의미도 없고 효과도 없다. 문 정부는 오히려 반(反)기업법들은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기업을 밟고 있다.”

―어느 정부나 공과(功過)가 있다. 문 정부를 평가하면?

“갑질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걸 빼면 잘한 것을 찾기 어렵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조사한 국민행복지수를 보면 문 정부가 가장 낮다. 문 정부에서 국민이 더 불행해졌다. 국가 부채가 심각하다. 공기업 부채까지 합하면 국가 부채 비율이 올해 60%가 넘어갈 것 같다.

이것을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도 엄청나게 늘었다. 증가 속도만 보면 한국이 세계 1위다. 부채공화국을 만들어놨다. 부채에 발목 잡힌 상태에서 경제 위기를 맞는 끔찍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산업구조가 과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민간의 경쟁력은 버티고 있지 않나.

“민간 부문도 약해졌다. 산업구조의 노쇠화가 심각하다. 반도체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산업구조 자체가 과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산업정책 능력도 형편없다. 박수받은 정책이 있나. 한국이 왜 이렇게 됐나. 선거만 생각하는 진영 논리가 모든 걸 지배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나.

“정치권은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잃은 상태다. 양극화가 더 심해진 상황에선 포퓰리즘으로 갈 수밖에 없다. 소외된 약자들의 정치적 요구가 더 강해질 것이다. 그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면 정권을 잡을 수 없다. 지식인도 힘이 없다. 나는 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어떻게 해결사가 되나. 기업엔 또 다른 부담 아닌가?

“삼성을 비롯한 5대 그룹이 행동에 나서면 된다. 고용, 통상외교, 정책 창출 등 다방면에서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 대기업들이 미래 산업을 위해 기존 직원들을 교육 훈련에 투입하면 그만큼 신규 채용 여력이 생긴다.

보육 문제도 기업들이 공동 출자해 아이들 밀집 지역에 보육 시설을 짓는 방법이 있다. 미국에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외교협회가 정부의 통상외교를 적극 지원한다.

싱가포르처럼 모든 부처의 관련 공무원들이 수시로 온라인에 접속해 정책 흐름과 상황을 파악하고 논의하는 ‘플랫폼 정부’도 서둘러야 한다. 실시간 논의하면서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김 원장은 “5대 그룹이 앞장서면 다른 기업, 다른 부문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국민 사이에서 기업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민심이 기업 편에 서면 결국 정치도 강성 노조도 바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다음 정부에서 시도해볼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출처] : 윤영신 조선일보 논설위원 :<윤영신논설위원 인터뷰> - J노믹스 설계자 김광두 원장의 한국경제 진단 - “이재명 따라하는 포퓰리즘 확산… 정치 무기력하니 기업이 나서야” / 조선일보, 2021. 5. 7.

▣ 강준만

4. '독재'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정당한 경쟁자로 野 인정 않고 - '민주주의'와 '정의'의 이름으로

비난하고 모욕하는 독선·오만 - 인사서 입법까지도 일방 독주

文 정치행태 '헌법적 강경태도' - 민주주의 규범 관용·자제 없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다."

미국 경영학자 프리츠 로슬리스버거의 말이다. 이는 기업경영에서뿐만 아니라 보통사람의 인간관계, 더 나아가 정치적 갈등에도 타당하다. 특히 오해에 의한 싸움만큼 비극적인 것도 없으니 말이다.

언제부턴가 야당은 문재인 정권을 향해 '독재'라는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반(反)독재 투쟁을 한 민주화 투사들이 실세인 정권을 향해 그런 말을 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독재'의 개념을 재정의하면서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사이에 빚어진 상호오해는 풀리지 않은 채로 정치적 공방 속에 묻히고 말았는데, 지난달 9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유 이사장은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 미국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소개하면서 "야당이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독재라고 하는데, 어떤 기준과 판단으로 현 한국 정부를 민주주의 위기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고) 약간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 책이 한국 정부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걸 읽다 보면 어떤 맥락에서 (야당이) 그러는지, 국민의힘을 이해하는데 아주 이해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유 이사장은 야당 비판을 위한 서론 격으로 이 말을 한 것이지만, '독재' 개념을 둘러싼 오해를 풀 수 있는 물꼬를 터주었다는 점에서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민생을 돌보는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협치를 지향하는 정치를 위해서 말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의 관련 내용을 좀 살펴보기로 하자.

저자들은 노골적인 형태의 독재는 전 세계적으로 점차 종적을 감추고 있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중에 벌어진 정치적 아수라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왜 독재의 개념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를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이 책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핵심 규범으로 성문화된 규칙보다 '상호 관용''제도적 자제'를 꼽으면서 탄탄한 역사적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간 우리가 이해해 온 독재는 성문화된 규칙 중심이었던 바, 문 정권을 독재로 보는 건 저질의 정치공세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상호관용''제도적 자제'를 독재 판별의 근거로 삼는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저자들은 "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개념"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물론 경쟁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주장을 혐오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을 정당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경쟁자가 올바르고, 국가를 사랑하고, 법을 존중하는 시민임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걱정하고 헌법을 존중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의 생각이 어리석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저자들은 '제도적 자제''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 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로 정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또한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자제 규범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비록 그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기존 체제를 위태롭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 어떤가? 꼭 문 정권을 염두에 두고 한 말 같지 않은가? 제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은 41.08%에 불과했지만, 이에 어울릴 법한 관용과 자제는 없었다.

제21대 총선은 의석 수 기준으론 더불어민주당이 거의 더블스코어 압승을 거두었지만,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49.9%, 미래통합당 41.5%로 두 정당의 격차는 8.4%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작은 차이에 어울릴 법한 관용과 자제 역시 없었다.

오히려 문 정권은 야당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준엄한 촛불 민심'이라며 인사에서부터 입법에 이르기까지 일방적인 독주를 감행했다. 야당 지지자들도 적잖이 포함돼 있는 '촛불 민심'을 그렇게 자의적으로 독식하면서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건 파렴치한 행위라는 문제의식조차 없었다.

착하고 선하고 인자하다는 문 대통령의 얼굴이 관용과 자제의 이미지는 풍겼는지 몰라도 문 정권의 정치 행태는 이른바 '헌법적 강경 태도' 일변도였다.

저자들의 해설에 따르자면,

"이 말은 규칙에 따라 경기에 임하지만,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밀어붙이고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경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 경쟁자를 없애버리기 위한 전투 자세다."

문 정권의 강성 지지자들, 그리고 이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여권 정치인들의 언행은 야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수시로 비난하고 모욕하는 독선과 오만 그 자체였다. '민주주의'와 '정의'의 이름으로 말이다.

나는 문 정권을 독재로 부르고 싶진 않지만, 그렇게 무시와 모욕을 당한 야권이 문 정권을 독재(연성 독재)라고 부르는 것엔 나름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문 정권 사람들이 야당의 분노를 '정권 발목잡기'를 위한 악의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면, 부디 이 책을 읽으면서 관용과 자제의 필요성을 느껴보면 좋겠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의 패배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야당도 마냥 큰소리를 칠 입장은 아니다. 야당 역시 집권 시절에 저질렀던 '헌법적 강경 태도'에 대해 성찰하면서 관용과 자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양쪽 모두 행여 이미 늦었다고 할 게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은 이 경우에도 유효하다. 과거에 대한 복수의 악순환은 이제 끝장내야 한다. 여야 정당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다.

[출처]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강준만의 易地思之>-'독재'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영남일보, 2021. 5. 4.

▣허희영

5. ”신공항 검증 보고서, 이런 수준이면 대학원도 졸업 못해”

- 허희영 항공대 항공우주 정책연구소장 인터뷰

허희영(63) 항공대 항공우주정책연구소장을 만났을 때 그는 “내가 같은 교수라는 게 부끄럽다”며 입을 열었다.

“검증위원회에 참여한 교수들에게 말하고 싶다. 대학원생도 이런 수준의 논문을 내면 졸업 못 한다. 정치 상황이 바뀌면 이번 검증위원회를 다시 검증해야 한다.”

허희영 교수는 "영남권 단체장끼리 맺은 '신사협정'을 처음 깬 장본인이 오거돈 전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항공 산업 분야를 전공한 경영학과 교수다. 항공 수요 예측, 경제성 평가, 해외 동향 등이 전문 분야다. 그가 집필한 ‘항공경영학’ ‘항공운송산업론’은 교재로 쓰이고 있다.

“어떤 분들이 참여했기에 4년 전 세계적인 공항 설계 회사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의 용역 결과를 뒤집을까. 그만큼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분들인지 나름대로 알아봤다. 공항 개발이나 항공 산업 관련 교수들끼리는 웬만큼 아는데, 이번에 참여한 21명은 대부분 잘 모르는 분들이었다.”

왜 과학을 안 믿나

-검증 과정에서 내부 이견이 심해, 검증위원장과 각 분과장 등 5명이 모여 ‘김해 신공항 근본적 재검토’로 결론냈는데?

“검증위원회는 김해 신공항의 안전성 검증이 첫째 목적이었다. 하지만 320쪽이 넘는 검증 보고서를 다 읽어봐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체 11개월 동안 뭐했기에 이런 보고서를 내놓나.”

-얼마 전 검증위원장은 본지 기자에게 “김해 신공항의 백지화나 폐기를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관문 공항으로 오히려 타당하다고 결론을 낸 것”이라고 했다. 발표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말을 했는데?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놓고 잘못 말했다는 건가. 당시 발표를 ‘김해 신공항 백지화’로 받아들인 국민의 해독력이 문제라는 건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2002년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근처 돗대산과 충돌해 129명이 숨진 사고가 난 뒤로, 부산 사람들은 ‘김해 신공항은 안전하지 않다’고 믿고 있는데?

“중국 민항기 추락은 중국 조종사의 오류에 의한 사고였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이 공항을 개발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안전성’이다. 당시 김해 신공항은 후보지 중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왜 과학을 안 믿나.”

-김해공항 주변의 산들은 이착륙에 장애가 되는 게 사실 아닌가?

“김포공항에는 고층 아파트와 송전탑 등 인공 장애물이 3000개가 넘는다. 제주공항에는 200여 개가 있다. 이착륙 시 어떻게 접근하라는 비행 정보를 전(全) 항공사에 알려주고 비행기마다 입력해놓는다. 다 피할 수 있는 장애물들이다. 이번 검증위의 안전 분과위원 다섯 명 중 한 명만 빼고 나머지는 이런 개념조차 잘 모를 거다.”

-제한높이 이상의 장애물은 제거하는 게 원칙이라는데?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충돌실험 모델을 적용해 장애물을 제거할지 놔둘지 평가한다. 어떤 장애물은 그냥 둬도 피해갈 수 있다. 4년 전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이 V자 형태의 활주로를 제시해 김해 신공항의 장애물 문제가 해결됐다.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각도를 조정하는 비행 절차로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김해 신공항 건설에는 비행 안전을 위해 산을 안 깎아도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국토부에서 산 절개를 안 하고 비행 절차만 바꿔 이착륙 안전 시험을 해봤다. 그런 시뮬레이션 자료를 갖고 있다.”

-검증위는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았다. 장애물을 그대로 두려면 해당 지자체장과 협의해야 하는데, 그 절차 없이 공항기본계획안을 수립했으니 법 취지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는데?

“공항설치기본계획이 고시(告示)도 안 된 상태다. 고시된 뒤 협의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궁색했으면 이런 걸 내세워 ‘김해 신공항 건설은 문제 있다’고 주장하나.”

-검증 보고서 결론 부분에 ‘김해 신공항은 확장성 등 미래 변화에 대한 대응이 어렵다’는 대목이 나온다.

“안전성 검증에서 할 말이 없으니 갑자기 ‘확장성’을 들고 나왔다.”

-부산 사람들도 ‘확장성’을 위해 가덕도에 신공항이 건설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항공 수요가 더 늘어나면, 가덕도라야 바다를 더 매립해 활주로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인데?

“2016년 프랑스 용역 기관에 의하면 활주로 두 개를 기준으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 비용은 김해 신공항의 두 배가 넘는 10조2000억 원이었다. 그때는 가덕도 수심을 재볼 시간이 없어 최소 매립 비용을 잡았다. 실제로는 이보다 두 배가 될 수 있다.”

-인천공항도 영종도 갯벌을 매립했지 않나?

“영종도 수심은 5m로 갯벌이었다. 일본 간사이 공항은 수심 20m로 내해(內海)에 있다. 하지만 가덕도는 수심 80m로 앞에 막아주는 섬이 없다. 태풍과 해일이 닥치면 그대로 타격을 받는다. 공항 입지로는 최악이다.”

-건설 비용을 제쳐두고, 경제성 면에서 김해 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 어느 쪽이 유리한가?

“배후 도시나 인구, 접근성에서 김해 신공항이 훨씬 더 낫다. 부산 사람들이 왜 가덕도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가덕도는 부산의 서쪽 끝에 있다. 부산 동쪽에 사는 주민에게도 접근성이 떨어진다. 울산시에서는 완전히 남의 공항이다. ‘국책 사업’으로 동남권 신공항을 짓는 것인데, 가덕도에 지으면 말 그대로 부산만의 공항이 된다.”

-공항철도와 도로망을 건설하면 접근성이 개선되지 않겠나?

“강원도 국제공항으로 양양공항을 짓자 기존의 속초와 강릉 공항은 문을 닫았다. 30분~1시간 떨어진 두 도시의 항공 수요가 양양공항으로 흡수될 줄 알았다. 결과는 달랐다. 속초·강릉 사람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광주에서 1시간쯤 떨어진 전남 무안에 통합 공항이 준공됐지만, 광주 사람들은 광주공항을 그대로 쓰겠다고 했다. 접근성이란 이렇게 중요하다.”

수도권 논리인가

-검증위의 주장대로 2056년 이후 항공 수요를 대비해야 한다면 가덕도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통상 항공 수요 예측은 30년 이후를 넘지 않는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ICAO의 항공시장 예측 수요는 2035년까지만 나와 있다.”

-프랑스 용역 기관에 의하면 김해 신공항은 3800만명을 소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작년 김해공항의 이용객 수는 1300만명이었다. 인구는 줄고, 항공과 경쟁하는 지상 교통수단이 늘고, 인공지능 활용과 비대면 근무 환경이 확산하는 추세다. 검증위가 어떤 근거 자료로 2056년 이후 계속 항공 수요가 더 늘어날 걸로 예측했는지 모르겠다.”

-대형 공항이 들어서면 새로운 항공 수요가 창출되지 않을까?

“항공 수요는 ‘파생 수요’다. 여행이나 업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어떤 공항이 잘 지어졌다고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몰려오지 않는다.”

-가덕도에 공항을 만들면 인접한 부산신항(新港)과 연계돼 항공 화물 운송이 늘어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지 않나?

“화물 전용기들이 많이 들어올 거라는 기대인데, 항공 화물의 40%는 여객기로 운송된다. 기내 아래 공간의 ‘벨리 카고(belly cargo)’에 실린다. 항공 화물은 주로 반도체 등 고가 제품이다. 부산에서 갑자기 그런 항공 화물이 늘어날까.”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신공항이면 달라지지 않겠나?

“24시간 돌아간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인천공항도 사실상 24시간 운영을 안 한다. 밤 11시부터 새벽 너댓시 사이에는 화물기 이착륙도 거의 없다. 인센티브를 줘도 그렇다. 여객기는 그 시간에 도착해도 공항버스가 연결되지 않는다. 인천공항이 이러면 가덕도는 말해 뭐하겠나.”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독자적인 광역 경제권을 꿈꾸고 있는데?

“올림픽을 유치하면 선수단·기자단·손님이 들어온다. 하지만 공항은 올림픽을 유치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잘 지어놔도 항공사가 취항하지 않으면 빈집이 된다. 항공 노선은 여객과 화물 수요가 있어야 들어온다. 채산이 안 맞으면 노선을 안 깐다. 인천공항이 150개 이상 도시와 연결되는 것은 서울·수도권이어서 가능한 것이다.”

-부산에서는 이를 ‘수도권 논리’라고 반발하는데?

“현실이 그렇다. 공항의 성공은 배후에 얼마나 많은 도시 인구와 비즈니스, 관광거리가 있느냐에 달렸다. 인천공항의 작년 이용객은 7100만명이지만, 부산을 배후 도시로 두는 김해공항은 1300만명이었다. 공항 이용객에서 제주공항에도 못 미친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의 숙원 사업처럼 돼있다. 이런 인터뷰가 어떤 의도를 갖고 훼방 놓는 걸로 받아들여질까 걱정스럽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는 천문적인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부산에서 자기 돈 들여 짓는 지역 사업이 아니다. 공항은 현실이고 경제 문제다. 부산 정치인이나 지역 언론에서는 이를 직시하지 않고 자꾸 환상을 부추기는 것 같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 상당수는 ‘가덕도 미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4년 전 지금 같은 사태가 터졌을 때 부산의 한 구청장이 내게 ‘가덕도에 짓겠다는 것은 미친 짓인데 공개적으로 말할 입장이 못 된다 했다.”

정치적 노림수

-김해 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됐을 때, 친여 성향 신문 매체도 이를 ‘정치적 노림수’라고 썼다. 부산 출신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표를 위해 찬성하지만, 지역 언론인들이라도 좀 더 차분하게 이 사안에 접근했으면 한다.

“영남권 광역단체장끼리 맺은 ‘신사협정’(김해 신공항)을 처음으로 깬 장본인이 오거돈 전 시장이다. 후보 시절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그 뒤 문재인 대통령이 가덕도를 방문해 힘을 실었다.”

-여당에서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급행 추진하는 특별법을 만들겠다는데?

“검증위 보고서에는 가덕도 신공항 언급은 전혀 없다. 꼴찌 점수를 받은 가덕도로 직행할 수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후보지를 선정해야 한다. 세계 최고 기관의 용역 결과를 뒤집었는데, 그럴 경우 과연 누가 연구를 수행하고 또 그 결과에 승복하겠나.”

동남권 신공항은 장기간 표류할 공산이 크다. 지역 주민들이 피해자다. 당장 재미를 많이 보는 쪽은 현 정권뿐이다.

[출처] :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최보식이 만난사람] - 허희영 항공대 항공우주 정책연구소장 인터뷰-”신공항 검증 보고서, 이런 수준이면 대학원도 졸업 못해”/ 조선일보, 2020.11.23.

▣김현철

6.“국민 피눈물 나게 하면 대가 치러… 文, 가장 불행한 대통령 될 것”

- 김영삼도서관, 김현철 인터뷰 [최보식이 만난 사람]

김영삼 5주기 맞아 ‘김영삼도서관’ 개관… YS의 차남 김현철씨

아버님이 투쟁하고 이룬 민주주의, 현 정권에서 후퇴 아닌 아예 실종- 민주화세력이라면서 이렇게 뻔뻔…

현대사 전환점은 이승만의 건국·박정희의 산업화·YS의 민주화 - 우파 정권에서 다 이뤄냈지만…

‘YS의 차남’ 김현철(61)씨를 만난 날은 김영삼 전 대통령 5주기를 맞아 ‘김영삼도서관’이 개관된 직후였다. 서울 상도동 김영삼 사저(私邸) 부근에 지상 8층 지하 4층 건물이다. 세간에서 관심 있는 뉴스는 아니었다.

“도서관 건축 내막을 알면 기가 막힙니다. 아버님(YS)이 이걸 지어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전 재산을 모두 내놓았으니까요. 2010년 말 상도동 사저와 상속받은 거제도 땅과 멸치 어장 등을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에 기부한 뒤 기념 도서관을 짓게 했어요.”

-전직 대통령이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사례는 없었는데, 가족과 상의는 있었겠지요?

“저와는 상의했지만, 이미 결심했는데 말려서 될 일도 아니고.... 저희 자식 5형제는 상속을 한 푼도 못 받게 됐지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이런 개념이 아버님께는 없었어요. 저는 솔직히 처가의 경제적 지원이 없었으면 살아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DJ는 믿을 수 없는 사람’

-’YS의 지갑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었지요. 주위에 챙겨야 할 사람들이 있으면 지갑에서 돈이 잡히는 대로 건네주는 걸로 유명했는데?

“아버님은 정치를 위해 태어났지, 가족에게는 0점이었습니다.”

-그런데 60억원으로 이런 도서관을 지을 수 있나요?

“아버지는 2, 3층의 아담한 도서관을 염두에 뒀어요. 도서관 짓고 남는 돈으로 민주센터 운영 기금으로 쓰려고 했지요. 2012년 기공하고 난 이듬해 아버님이 쓰러져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자, 상도동계 사람들이 ‘민주화 대통령에 걸맞은 최고의 도서관을 짓자’며 욕심을 냈어요.

박사급 연구원들을 여러 명 뽑는 등 방만하게 일을 벌였습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 법에 따라 정부 보조금과 민간 모금도 받았습니다. 아버님 사후(死後)인 2015년 도서관 외양이 준공됐을 때 40억~50억원 빚이 쌓였어요. 채권자들이 정부 예산이 들어간 도서관 차압을 못 하자, 상도동 집(100평)을 경매에 붙이려고 했습니다.”

김현철씨는 “아버님은 정치를 위해 태어났지 가족에게는 0점이었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어머니(손명순 여사)가 상도동 사저에 살고 있지 않나요?

“어머니가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 된 거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도서관 문제를 떠맡았습니다. 사업하는 형수가 상도동 집을 매입해 남의 손에 넘어가는 걸 막았어요. 현재 상도동 집은 조카 명의로 돼있습니다.”

-그 뒤 막대한 빚을 어떻게 해결해서 도서관을 개관할 수 있었나요?

“당시 김부겸 행안부장관에게 ‘더 이상 감당 못하겠다. 도서관을 포기하고, 건물을 매각해 정부 빚도 갚겠다’고 했어요. 김 장관의 도움으로 동작구에 기부체납하는 방안을 찾았어요. 구청이 공사를 마무리 짓고 개관할 수 있었지요.”

-김영삼도서관에 이런 사연이 있을 줄 세상 사람들이 알겠습니까?

“이런 얘기도 얘기지만, 아버님 5주기를 맞아 만나자고 한 것은 YS가 확립한 민주주의가 문재인 정권에서 후퇴·실종되는 것에 참을 수 없어서입니다. ‘의회 민주주의자’ 김영삼의 정신은 다 잊혔어요. 여야(與野) 어느 쪽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자식 된 입장이라 섭섭한 기분이 들지 모르나, YS에 대해 호감 갖는 국민이 많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다. YS는 우파·좌파 양쪽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됐습니다. 어느 쪽에서도 대접받지 못해요. 좌파 정당은 그렇다치고, 우파 정당에서도 YS 사진만 걸어놓았을 뿐입니다. 현대사의 전환점은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의 산업화, 그리고 YS의 민주화였습니다. 우파 정권이 다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우파는 이승만·박정희만 말하고, YS의 민주화는 활용할 줄 모릅니다.”

-’민주화의 상징' 타이틀은 DJ가 갖고 갔는데?

“아버님이 민주화 타이틀을 뺏긴 게 아니라 우파가 뺏긴 겁니다. 아버님은 DJ와 함께 민주화 투쟁을 했지만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단일화 실패로 갈라졌어요.

민주화 염원보다 정권욕에 사로잡힌 DJ가 단일화를 파기했던 거죠. 그때부터 아버님은 ‘DJ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1970년 신민당 경선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패배를 해도 아버님은 DJ를 위해 전국 유세를 다녔는데....”

-지나간 옛날 얘기인데, 1987년 양김(兩金) 분열의 책임이 전적으로 DJ에게 있다는 건가요?

“아버지는 동계동계에서 원하는 경선 조건 등을 모두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DJ는 평민당을 만들어 출마했어요.”

-당시 아버지 곁에 있었습니까?

“저는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증권회사에 입사했다가 1987년 대선을 돕기 위해 석 달 만에 나왔어요. 단일화를 못하면 노태우 후보에게 이길 수 없는 선거였어요. 저는 ‘아버님이 양보하시라’고 했어요. 상도동계 사람들은 감히 할 수 없는 말을 한 거죠. 그러자 아버님은 ‘나도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DJ 손을 들어주면 군부에서 가만히 안 있을 거다’라고 했어요.”

-당시 ‘DJ 비토론’이 확산돼 있었지요.

“동교동계는 ‘4자 필승론(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모두 출마하면 이김)’을 말했지요. 단일화 파기 책임에 몰린 DJ는 ‘내가 YS보다 한 표라도 적게 나오면 정계 은퇴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대선 결과 DJ는 3위 였어요. 하지만 이듬해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총선에서 평민당이 2등 하자, 정계 은퇴 약속은 번복됐어요. 반면 아버님은 처음으로 제3당 신세가 돼 크게 좌절했어요.”

문재인과 첫 만남

-그 뒤로 당신은 선거여론조사기관을 만들어 소위 ‘사조직’ 활동을 시작했는데?

“대선 패배 뒤 제가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 하겠다고 하자, 아버님이 ‘내 옆에 누가 있나. 자식으로서 부모를 끝까지 도와줘야 하지 않나’며 우셨어요.”

-아버지가 의지를 많이 한 것 같군요.

“아들이면서 정치적 동지로 봤어요, 그래서 여의도에 ‘중앙조사연구소’를 차렸어요. 그때까지 대규모 인파 동원을 과시해 주먹구구식으로 선거를 치렀는데, 처음으로 선거에 여론조사기법을 도입한 겁니다.”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3당 합당’을 만들었지요. 당시 아버지께 이를 권했나요?

“민정당은 DJ와도 접촉하며 여러 노림수를 썼습니다. 그즈음 아버님이 3당 합당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을 때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몇 가지 문제점을 얘기했습니다. 아버님은 ‘어느 당끼리 합쳐야 될지 여론조사를 해보라’고 했어요. 예상대로 ‘민정당+공화당’ ‘평민당+민주당’으로 합쳐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높았어요. 둘째로 ‘민정+민주+공화당’으로 나왔습니다.”

도서관에 걸린 YS 사진.

-둘째 안을 택한 이유는요?

“아버님이 DJ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일화 실패 등을 겪으면서 인간적으로 싫어했어요. 그 뒤 3당 합당 논의는 보안을 위해 제 신혼 아파트에서 이뤄졌습니다.”

-1992년 당신이 이끈 사조직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가 대선 승리에 기여를 했지요. 한창 젊은 나이이고 정치에 깊이 관여해온 당신에게 아무 일 하지 말라는 것도 맞지 않지만, ‘대통령 아들’은 국정 운영과 인사에 참여할 수 있는 공식 직함은 아니지요?

“아버님이 당선된 직후 ‘미국에 가서 박사 과정을 밟겠다’고 말씀드리자, 아버님은 ‘끝까지 도와줘야지’라며 반대했습니다. 합법적으로 도와주려면 공식 직함이 있어야 했습니다. 아버님께 ‘국회의장실에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하니 ‘괜찮은 생각’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내부에서 견제해 불발됐습니다.”

-당신은 사조직을 계속 운영했고 ‘소통령’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상도동계 사람들이나 선거에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대통령 된 아버님을 만날 수 없으니 저를 찾아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꼴 청와대에 들어가 바깥 민심을 전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그런 소문이 났어요.”

-결국 ‘한보 사태’로 구속됐고, 임기 말에 큰 정치적 부담이 됐는데?

“세간에는 제가 한보의 ‘몸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당의 정치적 공세였지요. 한보와 관련 조사에서 나오는 게 없자, 검찰이 별건(別件)으로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혐의를 씌워 구속했어요. 검찰 공소장과 재판부 판결문 어디에도 ‘한보’라는 글자는 안 나옵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했지요.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2013년 아버님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재인이 문병을 왔어요. 좋은 인상을 받았고 그 뒤 가끔 연락했습니다. 2015년 말 문재인은 경남 김해 출마를 권했습니다. 김해는 노무현 고향이고 그전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겼던 지역입니다. 하지만 저는 ‘노무현 후예’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지역에 출마할 명분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님 상중(喪中)이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민주당 입당도 했지 않습니까?

“문재인을 공개 지지하게 된 것은, 그가 3당 합당 얘기를 꺼내며 ‘보수 정당은 YS 정신을 못 살렸다. 민주화 세력이 재결합하자. YS는 민주화 투쟁의 선두 주자였지 않나. 우리 당이 그 정신을 되살리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의 유훈(遺訓)은 통합과 화합이었다. 이를 반드시 실천해달라. 정권을 잡아 그렇게만 하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 ’고 말하자, 그는 ‘취임사에 그걸 넣겠다’고 했습니다.”

-문재인은 그런 취임사를 했으니 약속은 지켰군요.

“취임사에서 지켜진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밖에 없습니다. 아버님이 이룩한 민주주의는 후퇴가 아니라 아예 실종됐습니다.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면서, 이렇게 뻔뻔하고 이중적인 정권을 본 적 있나요.

추미애가 윤석열을 직무정지하는 짓 보세요. 아무 생각 없이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꼴입니다. 박정희 정권에 맞선 아버님에게 의원직을 제명하던 장면을 다시 보는 같아요. 그게 ‘부마(釜馬) 항쟁’을 야기해 철권 통치가 종식되는 자충수가 됐습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직 견고한 편인데?

“많은 국민을 피눈물 나게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릅니다.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정말 바랐지만, 그는 가장 불행한 대통령으로 끝날 겁니다.”

[출처] :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 [최보식이 만남 사람] -김현철 인터뷰 -“국민 피눈물 나게 하면 대가 치러… 文, 가장 불행한 대통령 될 것” / 조선일보 . 2020. 11. 30.

[출처]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 Ⅵ - ▣서 민▣최창집▣김광두▣강준만▣허희영▣김현철|작성자 ohyh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