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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사진(천혜의 비경)]

문수봉(李楨汕) 2008. 8. 12. 14:47

이번 여행처럼 괴로운 적은 없습니다.

'입 속의 검은 잎' 처럼

한탄강에는 비 나리고 안개가 자욱하였습니다.

 

여주 고달사터,

노란 산수유꽃이 폐사지를 감싸는 곳 , 늦가을이면 붉은 산수유 열매가 옛 절터를 붉게 물들이는 곳,

봄볕의 나른함에 여행자도 세월을 잃어 버리는 곳 ,

일장춘몽이 어디메 쯤인가 허무한 듯 무상한듯

잊고 싶어도 차마 잊을 수 없는 옛 절터,

그래서인지 도道를 통달할 수 밖에 없는

예가 고달사로다.

 

고달사터 부도 (국보 제4호)의 비천상 긴 천의자락을 나빌레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우아한 비천의 모습들에 여행자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한탄강은 본디 '큰 여울, 한 여울'로 불리웠다.

"'한'은 은하수를 뜻하는 말로 크다, 맑다를 뜻하고 '탄'은 여울, 개, 강을 의미한다.

한탄강에 얽힌 설화로는 철원에 태봉국의 도읍을 정한 궁예가 후백제와의 싸움을 마치고 이 강가에 와서

검은 바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을 보고 "아, 나의 운명이 다했구나" 탄식을 해서 한탄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혹은 한국전쟁 당시 다리가 끊겨져 미처 피난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탄하며 죽었다'고 하여 불려진 것이라고도 한다.

 

고석정 신라의 진평왕과 고려의 충숙왕이 노닐던 곳으로 철원의 대표적인 경승지이다.

조선시대의 임꺽정이 이 곳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은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는 고석정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임꺽정은 토포사 남치근에게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지만

 이 고장에서는 임꺽정이 물고기인 꺽지로 변하여 깊은 강물에 몸을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꺽지는 1급수인 맑은 물에만 살며 몸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추가령구조곡,

화산폭발로 함경도 원산에서  서울까지 길고 긴 띠 모양의 깊은 골짜기가 만들어졌다.

이 푹 꺼진 깊은 골짜기 아래로 한탄강은 유유히 흘러 간다. 골짜기 아래로 들어서면 누구나 착각을 한다.

이 골짜기 위는 산이 아니라 드넓은 철원평야임을, 골짜기를 벗어나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다..

 

한탄강 미인폭포, 재인폭포,순담계곡, 고석정,직탕폭포 등 명승지가 널려 있다.

 

휴전선,

서해 백령도에서 동해 고성까지 248km에 달하는 이 무시무시한 철의 장막에 숨이 막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지라 희귀 동식물의 낙원이라는 것이다.

민통선 안에는 궁예궁터와 백마고지전적지, 노동당사, 월정역, 땅굴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민통선 안을 둘러 볼려면 철의삼각전적관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 민통선 안 견학신청서를 접수하면 출입증을 발급해준다.

 

이 육중한 콘크리트로 된 대전차 방어벽에서 여행자는 용기조차 잃어 버렸다.

남북의 분단 무게만큼 여행자를 누르는 그 무엇,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셔터만을 누를 뿐이었다.

 

 

 

민통선을 지나면 제일 먼저 길 오른편에 앙상한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를 맞닥드리게 된다.

그 쓸쓸하고 황량한 모습에 비까지 내려 우중충한 분단의 그늘을 그대로 드리우고 있었다.

조선노동당은 이 건물을 짓기 위해 1개 리里당 쌀 200가마를 성금으로 거두었다고 한다.

내부 작업을 할 때에는 기밀 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당사 해방 후 북한 노동당의 철원군 당사로 사용했다. 소련식 공법으로 지어진 무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아무리 외쳐도 수십 년된 녹슨 철마는 늘 제자리에 멈추어 있을 뿐이다.

원래 경원선은 1914년 8월에 강원도 내에서 제일 먼저 부설되었다.

경술국치 이후 일인들의 강제동원과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강제 추방된 러시아인을 고용하였다고 한다.

서울 원산간을 연결하는 간선철도로 철원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을 주로 수송했다.

 1950년 6월 금강산을 향해 달리던 철마는 결국 이 역에서 멈추고 말았다.

지금은 비바람에 뼈만 앙상이 남은 채 분단의 기억 저편에 남아 있다.

 

월정리역 '달우물' 이름이 무척 아름답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있다.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마가 잠시 쉬어가던 간이역이었다.

 

전망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동전 몇 닢을 넣고 철책 너머 비무장지대와 북쪽의 산하를  보는 것이다.

 

농산물검사소 원명은 곡물검사소 철원출장소이다.

 일제 시대인 1936년에 철원지방의 농산물을 검사하던 공공기관이었다.

 구철원 시가지 유적중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건물이다.

 

이 무시무시한 푯말 앞에서 여행자를 넋을 잃었다.

비무장지대,

가는 길목마다 소리없이 그렇게 , 아니 두려운 눈길과 놀란 가슴은 '지뢰'라는 두 단어에 숨 죽일 수 밖에 없었다.

"MINE"

 

 

세상을 살다보면 무엇이 이기는 걸까?

인간이 만든 정치체제일까? 아니면 약육강식의 생존논리일까?

무엇이 이기고 무엇이 정녕 지는 것이란 말인가?

이 어이없는 역사의 다리 앞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싶은 이들에게 여행자는 묻고 싶다.

" 그대들은 정녕 무엇을 얻고 싶은가?"

 

승일교 김일성이 짓기 시작해 이승만이 완성하여 다리 이름이 승일교라고 한다.

해방 이후에 ?원이 북한 땅이었다가 전쟁 후 남한 땅이 되면서 이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

혹은 다리 이름을 한국전쟁 당시 31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한 박승일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비무장지대의 숨막히는 괴로움 속에 삼부연을 향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여행자는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린다.

무거운 마음을 씻어 내리듯 장쾌한 폭포소리가 비에 섞여 들려 온다.

겸재 정선이 금강산을 가다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진경산수화를 그린 폭포이다.

 

삼부연폭포 폭포수가 세번 꺽이어 세 군데의 소로 떨어진다 하여 삼부연으로 불리운다.

3개의 웅덩이는 가장 큰 가마탕, 중간치의 솥탕, 제일 작은 노귀탕이 있다.

여기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할 무렵 이 계곡에는 수백 년 묵은 네 마리의 이무기가 있었다.

그 중 세 마리가 도를 통해 용이 되어 승천을 하였는데, 그 용들이 기암절벽을 치고 오르면서 바위구멍 세 개가 생겼다고 한다.

그 세 구멍에 물이 고여 연못이 된 이후에 삼부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속세를 넘어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는 도피안사(到彼岸寺),

가슴을 짓누르는 쇳덩어리들이 이 곳에 도달해서야 모두 사라지는 듯 하다.

 

도피안사 신라 경문왕 5년인 865년에 도선국사가 신도 1,500여 명을 동원하여 창건하였다고 한다.

 

지형적 특성상 협곡이여서 대개의 폭포가 올라가야 하는 반면 이 폭포는 평지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흔히들 386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든 '모래시계'의 태수(최민수)와 혜린(고현정)의 애틋한 사랑이 남은 곳이다.

풀꽃처럼 살고 싶고 들불처럼 불사르고 싶은 소박한 이들의 마음, 한 없는 바람의 흔적에 남을 뿐이다.

폭포의 포말에 그 흔적을 남길 뿐 누구에게도, 그 어떤 무엇에도 원망을 남기지 않는다.

'모래시계'의 태수가 그러했듯이......

세상의 그 미혹에 '나 떨지 않을려고......'

 

직탕폭포 여느 폭포와 달리 80m의 강폭 자체가 폭포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라고 한다지만 사실 높이 3~4m 정도의 앙증맞은 조금은 싱거운 폭포이다.

 

오래된 사진 파일을 꺼내었습니다.

이제는 한낱 추억이 되어버린 비무장지대의 사진 편린들,

디카 처음 시절이라 조악스러운 사진에 한 번 망설이고,

다시 망설임 끝에 결국 올리기로 했습니다.

갈라진 한반도의 역사가 저의 오래된 사진 파일처럼

언젠가 기억 저편의 추억들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찢겨진 한반도의 역사를

한 때의 아픈 사랑의 추억 정도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