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방☆/♡옛노래모음♡

[대전부르스-안정애]

문수봉(李楨汕) 2008. 11. 8. 18:28

 

                      
 
 
 대전부르스-안정애
 
1.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 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2.기적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렛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 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 말자 맹서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우는 목포행 완행열차
 
 
               

1959년 어느날 밤 12시40분경.

산책 나온 듯한 한 사내의 시선이 대전역내
플랫폼 가스등 아래 머문다.
청춘남녀가 두손을 꼭잡고 눈물 글썽한 시선으로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북쪽에선 남자를 떠나보낼 목포행 0시50분 증기기관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사내는 곧바로 여관으로 되돌아가 시를 쓴다.

대전부루스 가사였다.

 

사내는 당시 신세기레코드사 사업부 직원이었던 최치수씨로
지방출장을 위해 대전역 인근에서 유숙하고 있었다.
최씨의 가사를 받은 작곡가 김부해씨는 블루스로 리듬을 정한 뒤
3시간여의 작업 끝에 대전부루스를 완성했다.
가수는 블루스를 잘 부르는 안정애로 정해 녹음에 착수했다.

 
출반 3일만에 서울 지방 도매상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했다.
대전블루스는 야간작업까지 강행,

창사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작사. 작곡가, 가수에게 특별보너스와 월급인상 혜택이 돌아갔다.

 
십수년이 흐른 뒤 이노래는 조용필의 리바이벌로

세상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모임이 있을 때 술이 몇순배 돌아가면

누군가 좌중을 헤치고 비척비척

일어나 소주병이나 막걸리병을 입에 대고

목청껏 부르는 노래가 대전부루스다.

 
피서철이면 대전역 광장에 몰려드는 젊은이들이
한잔의 술과 함께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즐겨부르기도 한다.
술이 뒤따라야만 제목청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노래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를 잘담고 있다.

 
아리랑 관동별곡 진달래 처럼 만남과 이별,

귀향과 가출, 생성과 소멸의 상반된

이미지를 내포한 역(驛)을 내세워

60년대 어려웠던 소시민의 애환을 달랬다.
기다렸던 혹은 오지 말아야 할 막차가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역의 실루엣은 작가들의 단골 소재다.

 

 대전부르스(작사: 최치수, 작곡: 김부해, 노래: 안정애)

 

1959년 2월 제33열차로 탄생한 이 기차는 밤 8시 45분에 서울을 출발,
대전에 0시40분 도착, 다시 목포를 향해 0시50분에 출발했다.
지금은 서대전역을 통해 호남선이 다니지만 당시에는 대전역을 거쳐갔다.

 
이 열차를 이용한 사람들은 대전역 인근 시장에서 광주리 물건을 팔던
농사꾼이거나 술에 얼큰히 취해 막차를 기다리던 지방사람들이었다.
방학철에는 캠핑이나 귀향하는 학생들로 새벽열차가 북적대기도 했다.

 
대전발 0시50분 열차는 지금은 없다.

1년만인 1960년 2월 대전발 03시05분발차로
시간이 변경되면서 짧은 수명을 다했다.
레코드사 사장에까지 올랐던 최치수씨와 김부해씨는

이미 운명을 달리했다.


대전역 부근 허름한 선술집에선 지금도
쉰 목소리의 대전부르스가 흘러 나온다

 
 가수의 이름을 새겨 넣으려 붙였던 흰색 글씨 ‘가수 안정애’중 ‘가’자와 ‘애’자는
그동안의 풍상에 떨어져 나갔고‘수 안정’자만 흔적처럼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전부르스’는 가수 조용필이 부른 노래로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1980년대에 가수 조용필이 불러 크게 히트를 시켰던 대전부르스는
이미 안정애라는 여가수가 1959년에 불렀던 노래를 리바이벌,
다시 불러 히트 시킨 것이다.
그러니 80년대 이후에 뒤늦게 대전부르스를 들었던 사람들이 대전부르스를
조용필의 노래로 기억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추진위에서는 응당 대전부르스를 처음으로 부른 안정애의 이름만을
새겨 넣으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에겐 가수로서의 영예며 세세손손에 이어 자신의 이름을 빛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안정애씨의 거부로 지금껏 대전부르스 노래비에는
가수의 이름이 공백상태로 남아있게 되었다고 한다.
 
노래비를 건립하면서 추진위 측에서 안정애씨의 이름만을 새겨 넣는다고 하였을 때
안정애씨는 후배가수 조용필과 함께 새겨 넣을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바이벌과 리메이크가 있을 수 있는 가요계에서 그때마다
가수의 이름을 새겨 넣게 되면 노래비의 의미가 퇴색될 뿐 아니라 원칙 또한
모호해 지니 노래비를 건립하면서 최초의 가수 이름을 넣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후배가수인 조용필과 함께 넣을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도 넣지 말라는 안정애의 단호한 뜻이 있어
지금껏 이름을 새겨 넣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남긴 가수 안정애
 
자신이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러 크게 히트시킨 후배가수 조용필의 공을
고스란히 지켜주고 싶은 숭고한 마음, 남의 공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떳떳한 기개가 돋보인다. 
가수 안정애가 남의 공도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고하는 말법의 시대에 던지는
묵언의 항변이며 무서운 채찍이라 생각된다.
 
이것이야말로 노래비 자체보다 얼마나 인간적이고 가슴 뭉클하게 하는 숨은 이야기인가?
없는 공적도 조작해 만들고, 있는 과오도 변조하거나 왜곡해 없애버리면서까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남기거나 오명을 벗으려 안달하는 사람들을 향한 일침의 호령처럼
들리지 않는가.
 
자신이 불렀을 때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대전불루스를 알게 한 후배가수의 공덕을
외면하지 않으려 자신의 명성조차도 기꺼이 포기한 떳떳한 자기주장이기에
이 얼마나 떳떳한 양심의 외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