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상. 사천왕상
악의 무리 교화하여 성불케 하는 ‘불교 방위대’ 힌두교 방위신에서 ‘불법수호신’ 변신 조각수법 예술성 석굴암 사천왕 ‘최고’ 사리함.탑에선 진신.법신사리 수호
불교의 신중상 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사천왕상이다. 사찰 초입의 사천왕문을 비롯해서 불화, 석탑, 부도, 석등, 그리고 전(塼), 사리함, 계단(戒壇) 등 불교미술 전반에 걸쳐 사천왕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은 무장(武將)이 무기, 악기, 보주(寶珠), 금강저 등의 지물(持物)을 들고 발로 악귀를 밟고 있는 형태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힌두교의 방위신에서 부처님과 불법 수호신으로 변신한 사천왕은 모든 중생들의 사악함을 없애주고 신변을 보호해 준다고 여겨져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우주 한가운데 수미산이 높이 솟아 있는데, 높이가 8만 유순이나 된다고 한다. 산 정상에는 제석천이 주재하는 도리천이 있고, 수미산 밑에서 중턱에 이르는 4만 유순 높이까지에 1만 유순 간격으로 네 개의 층이 형성되어 있다. 제1층을 견수천(堅手天)이라 하는데, 이곳은 야차신들이 거주하는 세계이다. 다음 제2층은 지만(持)이라 불리는 곳이며 역시 야차신이 산다. 이 세계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아서 화만(華)이라 칭하기도 한다. 다음 제3층은 항교(恒)라 부르는데, 역시 야차신이 산다. 그 위의 층인 제4층이 바로 사왕천이다.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보물 제1254호)> 사진설명: 현존 조선시대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시대 천왕문 사천왕상을 선도하는 작품이다. 사왕천은 위에서 말한 세 개 층의 천을 부속천으로 하는 천국이다. 사왕천은 욕계 6천중에서 가장 하층에 있는 천국으로 인간계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러므로 사왕천을 욕계 6천중에서 첫 번째의 천국이라는 뜻에서 제일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엄경소〉 〈장아함경(長阿含經)〉 등에 사왕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국천(持國天) : 수미산에서 동쪽으로 약 1천 유순을 가면 지국천왕이 거주하는 성(城)이 있는데, 그 성의 이름이 현상성(賢上城)이다. 성주인 지국천왕은 건달바와 비사도 신장을 영도하며, 동쪽의 인간 세계인 승신주(勝身洲)의 사람들을 보호한다.
증장천(增長天) : 수미산에서 남쪽으로 약 1천 유순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그곳에 증장천왕이 거주하는 성이 있는데, 이름을 선견성(善見城)이라 한다. 증장천왕은 남쪽 섬부주(贍部洲)의 인간계를 보호하고 있다.
광목천(廣目天) : 수미산의 서쪽으로 1천 유순을 가면 광목천이 있다. 여기에는 천왕이 사는 주라선견성(周羅善見城)이 있는데, 이 성의 크기는 6천 유순이나 된다. 이곳의 광목천왕은 모든 용왕과 부단나 귀신을 거느리고 서쪽 하늘 밑에 위치한 우화주(牛貨洲)의 인간계를 보호한다.
다문천(多聞天) : 수미산 북쪽으로 1천 유순을 떨어져 있는데, 이 천을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도 한다. 다문천왕이 거주하는 성은 가외성(可畏城), 천경성(天敬城), 중귀성(衆歸城) 등 세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성에서 다문천은 북의 구로주(瞿盧洲)를 수호한다.
 <석굴암(국보 제24호) 사천왕상> 사진설명: 검을 잡아 가슴에 대고 있는 것이 동방 지국천왕이고, 오른 손으로 보탑을 받치고 있는 것이 북방 다문천왕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천왕상이 처음 만들어진 때를 사천왕신앙이 수용된 서기 600년경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당시의 명장(明匠) 양지(良志)가 영묘사(靈廟寺)에 사천왕상을 조성했고, 이어 사천왕사도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신라 말과 통일신라 초기에 있어서 사천왕 신앙이 조형물과 장식물을 통해 표현된 대표적인 작품의 예로는 사천왕사지출토 채유(彩釉) 사천왕 부조상을 들 수 있는데,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통일 신라 전(全) 시기에 걸쳐 사천왕 신앙은 계속되어 8세기에 조영된 석굴암 사천왕상처럼 건축물 안에 조성되기도 하고, 경주 감은사지 동탑에서 발견된 사리함 같은 공예품 등에도 호법신중의 문양으로 자주 나타났던 것이다.
앞서 말한 사천왕사지출토 채유사천왕상(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은 유약을 발라 마감한 와질(瓦質)의 부조상인데, 현재 허리 윗부분이 잘려나간 채 아래 부분만 남아 있으나 신라인의 예리한 조형 감각과 능숙한 표현 기술을 통해 드러난 사천왕 신앙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석굴암 사천왕상은 주실(主室)로 들어가는 연도 좌우 벽에 각각 2구씩 부조되어 있는데, 본존불을 기준으로 왼쪽 벽에 동과 북의 천왕, 즉 지국천왕과 다문천왕이, 오른 쪽 벽에 남과 서의 천왕, 즉 증장천왕과 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 손에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을 제외한 지국, 증장, 광목천왕은 다 같이 검을 들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석굴암 사천왕상은 조각 수법과 예술성, 종교적 엄숙미에서 최고 수준에 달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주 감은사지 동탑사리장엄구 외함의 사천왕상 > 사진설명: 보물 제1359호. 지국천왕을 나타낸 것으로, 통일신라 당시의 사천왕신앙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훌륭한 유물이다. 한편 감은사 동삼층석탑 발견 사리기 외함의 사천왕상은 지국천왕이 금강저, 광목천왕이 창으로 추측되는 지물, 증장천왕이 칼, 다문천왕이 보탑을 든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신앙심의 깊이도 깊이려니와 공예미도 뛰어나다. 이밖에 청도 운문사 작압전(鵲鴨殿)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 좌우에 배열되어 있는 사천왕석주도 통일신라시대 사천왕상으로 중요한 미술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천왕 신앙이 유행하던 통일신라시대에는 건축물 내부나 공예품뿐만 아니라 석탑의 탑신부에도 사천왕상이 많이 새겨졌는데, 경주 승효곡사지삼층석탑, 황룡사지 서탑 부조 사천왕상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9세기경부터는 고승의 부도에도 사천왕상이 새겨졌는데, 전흥법사 염거화상탑, 쌍봉사 철감선사탑, 봉암사 지증대사탑, 실상사 수철화상탑 등에 새겨진 사천왕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게 석굴, 탑, 부도, 사리함 등의 내외 장식용으로만 새겨지던 사천왕상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찰 입구에 둔 별도의 전각인 천왕문 안에 환조(丸彫) 형태로 봉안된다. 지물을 보면 동방 지국천왕이 비파, 남방 중장천왕이 검, 서방 광목천왕이 여의주와 용, 북방 다문천왕이 보탑을 들고 있는 형식으로 된 것이 많으나, 이례적인 예가 흔하여 어떤 형식이 일반화된 것인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청도 운문사 사천왕 석주(보물 제318호)의 다문천왕상> 사진설명: 현존하고 있는 네 개의 석주 중 하나이다. 분노의 상이 아니라 종교적 법열이 느껴지는 상호가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보물 제1254호)이 있다. 그리고 조성 연대가 확실한 것은 완주 송광사소조사천왕상(보물 제1255호) 등 몇 점이 전한다. 보림사 사천왕상은 ‘보림사중창불사기록’에 의해 중종 10년(1515)에 조성되고 이후 2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음이 확인되었는데, 이로써 이 사천왕상이 현존하는 천왕문 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판명된 것으로 조선시대 천왕문 사천왕상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 조각사적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완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보물 제1255호)은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사천왕상이 지녀야 할 분노상, 용맹상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 현존 조선시대 사천왕상 중에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 볼만한 유례로는 칠장사, 법주사, 수타사, 능가사, 통도사, 불갑사 사천왕문의 사천왕상이 있다.
힌두교의 방위신으로 존재하다가 불교에 귀의한 사천왕은 사리함이나 탑에서는 진신 사리나 법신 사리를 보호하고, 사찰 초입의 사천왕문에서는 사찰 전체를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때 사천왕이 용맹과 분노의 상을 보이는 것은 부처님과 불법을 해치는 무리들을 힘과 위엄으로 조복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악을 응징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악의 무리를 교화하여 성불케 하는 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천왕은 부처님의 또 다른 화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허 균 /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출처;불교신문
*道窓스님***合掌 道窓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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