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도
불교의 만다라에 녹아든 무속신앙 하늘의 별 의인화한 天文圖
 <안양 삼막사 마애삼존불(시도유형문화재 제94호).> 칠성도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중심으로 북두칠성과 해와 달, 3태6성(三台六星), 28수(宿) 등 하늘의 별들을 여래, 보살, 도인 등의 모습으로 의인화하여 그린 불화의 일종이다. 칠성도는 산신도, 독성도와 함께 사찰 내의 삼성각에 봉안되거나 별도로 독립된 칠성각에 봉안되기도 한다.
북두칠성을 신체(神體)로 하는 칠성신앙은 도교와 무교에 뿌리를 둔 신앙으로 당초에는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칠성신은 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어느 시기에 사찰 경내로 들어와 다른 불보살과 함께 예배의 대상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대 동양인들은 별자리를 하늘에 건설되어 있는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했다. 그곳에는 세 가지 원(垣)이 있는데, 각 원의 이름은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이다. 자미원의 중심에 자미궁이 있고, 그곳에 옥황상제가 주재하고 있다.
자미궁은 제후격인 28수(동서남북 각 7개)의 호위를 받고 있으며, 28수는 또 그들대로 해와 달, 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의 7개별인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다. 그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이 북두칠성인데,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24시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자미원 밖의 모든 별들을 다스리고 있다.
그리고 자미원 밖의 태미원은 임금과 신하가 함께 모여 국정을 의논하는 조정(朝廷)과 같은 곳이며, 그 옆에 펼쳐져 있는 별자리들이 일반 백성이 사는 천계의 도시, 곧 천시원이다.
하늘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북극성은 천제(天帝)로, 북두칠성은 천제를 대변하는 별로 고대인들의 관념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북두칠성이 순차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지상의 계절이 바뀌면서 만물이 태동.생장.성숙.수장(收藏) 등의 변화를 반복한다고 믿었다.
그런가하면 북두칠성은 비를 내리는 신으로, 또는 인간의 수명과 출산을 관장하는 신으로 신앙되기도 했으며, 재물과 재능을 관장하는 신으로도 믿어져 풍농을 빌거나 입신출세할 수 있기를 비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불설북두칠성연명경〉(국립중앙도서관 장서)> 그런데 북두칠성이라는 별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칠성신의 신격(神格) 그 자체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칠성신을 의인화한 가시적인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신의 실체로 간주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서울 인왕산 국사당에 소장되어 있는 칠성도가 하나의 예인데, 칠성신을 구름 위에 두 손을 옷자락 속에 감추고 정좌를 틀고 앉아있는 7인의 남자 형태로 나타내었다. 사찰 칠성도와 달리 머리 앞쪽에 신체(神體)가 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둥근 광채만 묘사되어 있을 뿐 두광(頭光)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런 무교의 칠성신 모습이 불교와 만나면서 칠여래라는 또 다른 모습의 칠성신으로 화현(化現)하게 된다.
무교의 칠성신이 언제부터 칠여래(七如來)로 승격되어 사찰 불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칠성도가 불화로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만은 대략 조선후기부터가 아닐까 추측되고 있다.
왜냐하면 억불(抑佛)의 시대인 조선시대의 후기에 각 사찰들이 사원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고, 그 일환으로 수명장수나 양재초복을 기원하는 하근기(下根機)의 중생을 사찰 내로 끌어 들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울 국사당 칠성도(중요민속자료 제17호)> 일반적으로 불화 칠성도는 주존인 치성광여래와 좌우 보처인 일광편조보살.월광편조보살, 칠여래와 칠원성군, 그리고 그 주변에 3태6성과 28수로 구성되어 있다. 치성광여래는 기본 도상이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고, 일광.월광보살은 삼존불 형식의 보살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 칠여래는 육계와 광배를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칠원성군에 불교적 도상을 적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칠여래와 함께 도교식 조복(朝服) 차림을 한 칠원성군을 병존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 불교의 너그러운 포용성과 관용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칠성도에 등장하는 각 성상(星像)의 이름이 〈불설북두칠성연명경(佛說北斗七星延命經)〉, 〈북두칠성공양문〉 등 치성여래를 도량에 모시는 청문(請文)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청문의 내용을 보면 치성광여래와 보처인 일광편조보살, 월광편조보살을 비롯하여 북두칠성의 각 별의 이름, 그 별에 해당하는 여래 이름, 여래의 주처(住處) 등이 하나하나 언급되어 있다.
도교.무속에 뿌리 둔 칠성신앙과 불교의 만남
조선후기 크게 유행…기복신앙 포용 결과물
구례 천은사 등 불화 유명.삼막사엔 조각상도
현존 국내 칠성 불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 1749년(영조 25년)에 제작된 구례 천은사 칠성도와 1895년에 제작된 승주 선암사 칠성도가 있다. 천은사 칠성도는 화면을 삼단으로 나누고 중앙에 치성광여래와 일광.월광보살로 구성된 치성광여래삼존을 주형광배 안에 그렸는데, 여래는 정면을 바라보는 입상이고, 연화가지를 든 일광편조보살과 합장한 월광편조보살은 여래를 향해 시립해 있다. 이들 위쪽에 칠성, 그리고 왼쪽 위 아래로 각각 7개의 별로 구성된 북방과 남방, 오른쪽에 아래위로 남방과 북방의 별자리를 배치하는 형식으로 28수가 배치되어 있다.
치성광여래 아래쪽에 태미원 안에 있는 3태6성이 자리 잡고 있고, 화면 맨 아래쪽에 조복 차림의 칠원성군이 도열해 있다. 모든 인물들은 구름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운상세계, 즉 하늘나라에 펼쳐진 별들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한 묘책이다.
 <구례 천은사 칠성도.> 한편, 선암사칠성도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을 상.하 두 단으로 나누어 상단 중앙에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월광보살과 칠여래를, 그 위쪽에는 28수 및 3태6성을 배치하고 하단에 도인 모습의 칠원성군을 배치하는 등 천은사의 것과 다소 다른 배치방법을 사용했다.
이밖에 동래 범어사 칠성도, 양산 통도사 칠성도도 유명한데, 범어사 칠성도의 경우 칠원성군을 크게 전면에 내세워 그리고 치성광여래나 칠여래는 그 위쪽에 오히려 작게 그려 놓은 것이 천은사와 선암사의 칠성도와 비교된다. 칠원성군은 두광이 표현되어 있지만 복장은 관모를 쓴 조복 차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관모에 장식된 물고기, 여의주 등의 상징물이 흥미롭다. 한편, 통도사 칠성도는 확인된 제작연도를 이름 앞에 붙여 동치(同治) 5년명 칠성도로 불리는데, 다른 칠성도와 마찬가지로 치성광여래삼존, 칠원성군 등을 화면 가득 그려 놓았다.
치성광여래삼존도는 화면이 상하 2단 구도로, 상단부는 수묵담채풍의 산수화를 그린 10폭 병풍을 배경으로 치성광여래가 중앙에 있고 그 좌우에 일광.월광보살과 권속들이 시립하고 있다. 하단부에는 조복 차림에 관모를 쓰고 홀을 든 칠원성군이 배치되어 있고, 그 좌우에 권속들이 시립해 있다.
조각상으로는 드물게 마애치성광여래삼존불이 안양 삼막사 바위벽에 남아 있다. 가운데 있는 본존불이 치성광여래이고 그 좌우의 보살은 일광.월광보살로 각각 해와 달이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다. 합장한 모습의 좌우 보살은 본존불과 비슷한데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 마애삼존불은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치성광여래가 바위벽에 새겨진 것으로는 희귀한 예로 꼽히고 있다. 이 마애불 주변에 남근석, 여근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출산과 자손의 수명장수 기원을 위해 이 삼존불을 바위에 새긴 것으로 생각된다.
칠성도는 하늘나라의 별들을 그렸으되 별 그 자체가 아니며, 불.보살을 그렸으되 그것은 대승불교의 여래나 보살이 아니다. 그래서 칠성 불화는 천국(天國)에 대한 인간의 외경심과 그 세계를 향한 종교적 체험과 기원 등이 불교적 만다라 속에 용해되어 있는 일종의 의인화된 천문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 균 /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출처;불교신문
*道窓스님***合掌 道窓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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