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서 여름방학을 나던 어느 날, 뒷산에 ‘꼴’ 먹이러 데려간 소가 도망을 간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작 소를 몰고 산으로 모인 아이들이 소를 풀어 놓고도 최소한의 긴장을 하였던 것은 소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집안이 망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소를 잃어버리고 할 수없이 어른들이 나서서야 찾아오는 풍경 또한 더러 있었다. 그 집 아이는 저녁 내내 혼이 나고도 다음날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를 몰고 산으로 왔다.
비가 오면 소의 배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면서 소 냄새를 맡았다. 간혹 되새김질 하는 소리가 배에서 들렸다. 그럼에도 때로는 비 젖은 내 몸이 그 배에 닿아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소에 대해 저장된 가장 오랜 기억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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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낭소리 스틸 컷 I |
이충열 감독이 만든 영화 ‘워낭소리’ 속의 최 노인에게 있어 오직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같이 늙어가는 소와 함께 들로 나가 일을 하는 것이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며 힘든 노동이다. 그러나 늙은 소와 최 노인의 동류의식은 우리의 뇌리 저변에 각인되고 또 세뇌시킨다. 어쩌면 아들보다 낫고 어떤 동료보다 서로 신의를 가지고 있는 ‘늙은 친구(Old Partner)’다.
오직 소에게 배합사료나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꼴’을 먹이기 위해 논, 밭에 농약을 뿌리지 않는 우직함은 고집스러움을 넘어선다. 사람 먹는 밥그릇에 밥을 퍼서 나눠주고 막걸리를 부어 마시게 하는 것은 소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는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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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낭소리 스틸 컷 II |
세월의 무게를 못이기는 듯 허리가 직각으로 굽어도, 또 그 세월만큼 뼈마디가 굵어지고 살갗이 메말라 거칠었어도, 올올이 하얗게 연륜을 이고 앉은 숨죽은 머리칼과, 바람, 비, 뙤약볕 그대로 맞으며 골 깊어진 주름들처럼 언뜻 어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최노인의 피곤해 보이는 일상은 소의 일상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죽음을 앞둔 늙은 소의 등짐을 덜어 지고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같이 길을 걷는 화면 속의 풍경은 이 영화의 주제를 직선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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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낭소리 스틸 컷 III |
농사를 짓지 말라는 자식들의 성화와 이미 소의 수명을 다해가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우시장에 팔러 나간 소를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흥정을 붙이고 화를 내는 할아버지의 외마디 “안팔어!”라는 말은 애초부터 소를 팔 생각이 없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는 최 노인이 소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최 노인의 의식 속에는 이미 소와 자신을 동일시(同一視, Identifiaction)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봄 꽃, 여름 비, 가을바람, 겨울 눈 속에서 계절이 가고 또 와도 무심한 일상과 죽음에 대해 의식하지 않아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나이의 소와 최 노인에게 있어 떠오르는 색은 황토색 땅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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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낭소리 스틸 컷 IV |
소가 없으면 사는 것이 아닌 모든 인생의 의미인 최 노인과 그를 타박하며 고생스러움을 토로하는 늙은 아내가 정작 마흔 다 된 소를 장에 내다 팔기로 결정한 날, 소는 먹지도 않고 눈물을 흘린다. 최 노인과 그의 아내 또한 같이 눈시울을 적시기는 마찬가지였다.
눈물 흘리는 소를 본 적이 있다. 어린 날, 내 살던 도시 변두리엔 작은 개울이 있고 다리가 있었다. 장날이 되면 몇몇 소와 다른 가축들이 그 다리를 건넜다. 우리 동네를 지나 멀리 숲으로 가면 도살장이 있었고 그곳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리 위에서부터 아직 보이지도 않는 도살장 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발에 힘을 주고 비명을 지르는 소를 더러 보았던 기억이 있다.
소 때문에 고생만 한다고 넋두리를 하던 아내도 긴 세월 소가 가져다 준 노동의 대가에 대해 늘 위로하고 아파하는 마음이 진하게 배어 있다. 이는 오랫동안 바라본 소와 늙은 남편의 관계를 볼 때, 소가 죽으면 살아남은 최 노인도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고 노부부와 소의 이야기를 너무 아름답게도 담지 않은 이 영화 속의 담담한 기법들과 영상은 때로 너무 직설적이어서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 그것 또한 감독의 노림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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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낭소리 스틸 컷 V |
인간의 소에 대한 이런 연민은 의외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가축이자 식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가축이 아니라 노동을 대신하고 그 생산물을 제공하는 수단이었으며 새끼를 낳아 목돈을 만질 수 있게 하고 젖을 나누어 주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황순원의 소설 <일월>은 일제시대 3.1운동 후 형평사(衡平社) 운동 이후의 백정들의 이야기로 자기의 뿌리를 속이고 사회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한 백정 집안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백정들은 소를 도살할 때 모든 예를 갖추어 소의 영혼을 위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가장 친근한 동물이 마지막으로 몸뚱이를 내어주고는 아무것도 없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당시 우리 또래의 시골 아이가 쓴 시 하나가 머리를 맴돌고 있었다. 늘 제 손으로 ‘꼴’을 먹이러 다니던 소가 과중한 노동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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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낭소리 스틸 컷 VI |
아버지가 밭갈이를 하신다 아버지 목소리는 쇠간이 떨린다 소는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버지는 고삐로 이라 탁 때린다 소는 놀라서 뛰어간다 소가 튀는 바람에 아버지 머리에 신경이 확 올랐다 아버지는 소를 몰고 나와 막 때린다 소는 들로 뛰어다닌다 아버지는 소 뒤를 따라가다가 소 고삐를 밟는다 소는 확 돌아서 눈물을 흘린다.
-1972년 4월, 김천 김룡국민학교 5학년 송원호, ‘소’ 전문 (이오덕, 일하는 아이들, 1978년 2월 25일 재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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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사 공우탑 ⓒ 들찔레 |
이런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자. 계룡산 갑사에는 ‘공우탑(功牛塔)’이라는 이름의 탑이 있는데, 내력은 갑사 중건 시 공사가 잘 안되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스님의 꿈에 소가 나타나 절을 지어주겠다고 하여 깨어 보니 소가 있었다고 한다.
이 소는 무척 영리하여 절에서 짐을 져주면 혼자서 암자까지 날랐다고 하는데 그 소가 죽으니 스님들이 중건에 공이 큰 은공을 기려 이 탑을 세웠다 한다.
3층으로 되어 있는 탑에 새겨진 명문에는 ‘쓰러진 탑을 세우니 인도에 우연히 합치되었네. 세 번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그 공이 으뜸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외 대승사 우부도나 덕주사 우공탑도 같은 맥락의 유물들이다.
영화 첫 장면에는 늙어 죽은 소의 임종을 맞고 매장을 한 노부부가 절을 찾아 소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서원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최 노인이 한손에는 소가 남긴 워낭을 들고 불편한 왼쪽 다리를 끌며 그 높은 절에 올라 천도의 기도를 올리는 장면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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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사, 겨울 풍경소리 들리고 ⓒ 들찔레 |
겨울 청량사로 오르는 공기의 질감과 바람을 기억한다. 앞산에는 겨우내 눈이 잘 녹지 않는 응달이지만 하루 중 반짝거리며 흐르는 잠깐의 햇살이 들어 산을 밝히는 풍경은 늘 새롭다.
이는 마치 우리네 인생이 겨울처럼 차고 힘든 날들의 연속인 것 같아도 때때로 볕들 날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최 노인과 같이 늙어가다 먼저 세상을 뜬 마흔 다 된 영화 속의 소는 죽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땅에 몸을 누인다. 이 소의 영혼을 위로하는 최 노인과 할머니의 천도제가 연화수류형의 땅 청량사 유리보전 앞에서 소박한 의식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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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노인과 할머니가 소에게 치성을 드리는 장소, 청량사 유리보전 앞 ⓒ 들찔레 |
노인의 손에 쥐어진 워낭의 딸랑이는 소리는 소는 이미 죽었어도 영혼의 소리로 되살아난다. 워낭소리는 청량사 범종각의 풍경소리와 혼재하여 소의 영혼을 아주 편안한 극락세계로 인도하였을 것이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이만큼 높은 절집에 올라 치성을 드리는 이유는 최 노인의 자기위안일 수도 있다. 적어도 노인과 늙어 죽은 소는 이음동의어로 합해지는 같은 존재의 다른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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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낭소리 스틸 컷 VII |
나이 마흔에 날 낳으신 부모님은 예순이 넘던 날부터 요즘 같은 겨울밤이면 때때로 서로 먼저 죽을 거라고, 먼저 죽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라는 작은 입씨름을 하셨다.
결국 어머니 먼저 여의고 10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아버지도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위해 그의 젊음과 인생을 다 바치신 것을 안다.
대개 우리네 부모들이 우직한 소처럼 자식의 교육과 가족의 부양을 위해 살아오셨던 기억 속에는 팍팍한 흙내음이 난다. 그 길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의연했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느린 졸음이 오는 듯 눈을 감는 영화 속의 소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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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 보석사 앞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오래된 가게 ⓒ 들찔레 |
그제 오후, 바람 자고 볕살 좋은 금산 보석사 아래 어느 구멍가게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대신했다.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의 주인은 그 동네에서 나서 지금까지 83년을 살아온 황태고(黃泰高) 할아버지셨다. 자식 다섯을 구멍가게 하나로 벌어 다 공부를 시켜 대처로 내보내고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 할아버지는 산을 닮아 인자했고 지은 지 80년이 되었고 가게 문을 연지 50년이 되었다는 그 집이 어쩌면 영화 속의 소를 연상케 하였다. 가게 안에는 59년 전부터 사용하던 집게나 기물들이 그대로 있었는데 마치 소의 목에 걸렸던 워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대처 한 번 나가보지 못하고 부모, 자식 수발에 평생을 바치고 퇴락한 촌로의 모습으로 남은 그였지만 무언가를 말하려는 그 눈빛은 새 이빨 돋는 아이들의 눈과 닮아 있었고 소의 눈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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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를 지키는 할아버지 ⓒ 들찔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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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된 가게는 할아버지에 있어 ´소´이다 ⓒ 들찔레 |
정물처럼 수 십 년 전의 모습을 조금씩 남겨두고 있는 그 가게의 평상에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나는 나대로 해바라기를 하며 오래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고 최 노인과 소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황토빛 삶의 무심함,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일순간이나마 막연한 경계심을 풀 수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