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치마’는 여자들이 일할 때 치마(옛적의 새하얀 ‘롱스커트’를 말한다)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그 위에 덧입는 작은 치마를 말한다. 그리고 ‘행주’란 그릇을 훔치거나 씻을 때 쓰는 헝겊을
말하는데, ‘행주치마’는 이러한 용도(用度)를 겸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행주치마’는 ‘앞치마’라고도 하는데, 주로 흰색 무명류를 사용하여 치마의 반폭 정도로 만들어 뒤가 휩싸이지 않게 하였고, 길이는 치마보다 짧게 만들었다. 걸을 때나 일할 때에는 치마가 늘어지는 불편(不便)을 덜기 위해 치마의 위쪽을 걷어 올리고 허리띠로 매어 ‘거들치마’를 했는데, 그 위에 ‘행주치마’를 둘렀다.
옛적 우리들 어머니의 행주치마
´행주치마´의 어원(語源)에 관련된 전설로 행주대첩(幸州大捷)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에 당시 전라감사 ‘권율’이 서울을 수복하려고 병력을 행주산성(幸州山城)에 집결시키고 있을 때, 평양(平壤)에서 후퇴한 왜군(倭軍) 3만 여명이 그해 2월 12일 행주산성을 공격했으나, 권율 장군의 지휘아래 군관민(軍官民)이 결사 항전하여 왜군을 물리친 것이 행주대첩이다.
그리고 이때의 공로로 권율 장군은 도원수(都元帥)가 되었는데, 당시 항전(抗戰) 시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힌 데서 이때의 앞치마를 ´행주치마´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행주산성(幸州山城)의 ‘행주’와 행주치마의 ‘행주’가 음(音)이 같은 데 근거하여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다. ´행주치마´는 행(·)자(·)쵸마´ 또는 행(·)자(·)치마´라 불리어 오던 것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말이고 물건이다.
행주대첩 때 화살이 떨어져 여자들이 치마로 돌을 운반해줬다는 이야기도 근거가 없는 얘기다. 이것 역시 행주산성(幸州山城)과 행주치마가 발음이 비슷한데 착안(着眼)해 후대에 지어낸 말일뿐 기록상으로는 전혀 그런 기록이 없다. 행주산성전투에서 화살이 떨어졌을 때는 충청병사(忠淸兵使) 정걸이 화살을 운반해줬고, 애초에 행주대첩은 권율이 수원독성에서 나와 깊숙이 들어갔다 갑자기 터진 전투라 백성들이 참전(參戰)할 틈도 없었다.
따라서 행주치마가 권율(權慄) 장군의 행주대첩(幸州大捷)에서 나왔다는 설은 행주(幸州)라는 고장 이름에 연관지어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민간어원(民間語源)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행주치마의 유래에 대해서는 불교계의 동승(童僧)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얘기도 있다. 아이들이 불법(佛法)에 귀의하기 위해 절로 출가(出家)를 하면 계(戒)를 받기 전까지는 '행자(行者)'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그리고 수행승인 행자가 주로 하는 일이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짓는 부엌일이었다. 행자가 부엌일을 할 때 작업용(作業用)으로 치마 같은 천을 허리에 두르고 일을 했는데, 그것을 '행자치마'라 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오늘날의 '행주치마'라는 얘기다.
지난 1950년대의 우리나라 여인들의 행주치마에는 민족의 비극 6.25의 전흔(戰痕)이 올올이 배어있기도 했었다. 그래서 지금의 50대 이상의 장년층(壯年層)에서는 당시에 유행하던 ‘향기 품은 군사우편’이라는 대중가요(大衆歌謠)가 무던히도 불리어지곤 했었다. 1952년 6.25가 한창일 때 ‘유춘산’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한 ‘향기품은 군사우편’의 가사를 소개한다.
이 노래는 이후 많은 가수(歌手)들이 다시 불러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가사내용 때문에 50대 이상의 기성세대(旣成世代)에게는 야릇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행주치마로 씻은 손', '그대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軍事郵便)', '편지를 전해주던 우편배달부', '북받치는 기쁨에 울었다'는 내용들이 그렇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좀 든 사람들 가운데는 이 노래를 '애창곡(愛唱曲)'으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향기 품은 군사우편’은 6.25동란(動亂) 속에 맺힌 그 시절 여인들의 가지가지 한(恨) 중에, 사랑하는 낭군을 전선(戰線)으로 보내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사랑하는 낭군이 지금은 어느 전선(戰線 어느 곳에서 생사(生死)의 갈림길을 헤매고 있을까 하는 이별과 통한(痛恨)의 슬픔을 그려 모든 이들의 가슴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