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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내 이야기"]

문수봉(李楨汕) 2008. 6. 13. 21:04

"늙은 아내 이야기"


남편 수발에 지친 지인이 하소연을 털어놨다.
명예퇴직으로 2년째 놀고 있는 남편과의 생활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워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는 이야기다.
결혼생활 30년이 넘도록 일개미처럼 밤낮 안 가리고 가족을 위해 일터를 누빈 남편,
처음엔 이런 남편이 안쓰러워 남편이 쉬는 동안 최선을 다 해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 만들어 밥상을 채우고, 찻상 앞에 마주 앉아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 주고받기도 하며 볕 좋은 날에는 동네 가로공원 가로 질러 산책도 하리라. 마음속에 다잡던 소박한 바람, 그것이 뭐가 어려워 실행을 못 하겠는가.

초반에는 마음먹은 대로 잘 나갔단다.
정신없이 살다가 난생 처음으로 느긋한 휴식기를 맞은 남편도 아내의 마음씀씀이에 고마워하며 ‘정말로 좋다’ 소리를 연발했는데 그것도 한두 달이지 날이면 날마다 비슷한 일상사가 반복되니까 저절로 짜증이 나고 지겨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없을 때는 남편과 함께 가고 싶은 곳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정작 시간이 남아도니까 모든 게 시들하고 재미가 하나도 없어진 것이다.
더구나 24시간 얼굴 맞대는 것도 징그러운데 외부 스케줄까지 함께 한다?
차라리 안 나가고 말지, 그런 심정이었다.

무슨 남자가 약속도 없는지 한 달에 두어 번 외출이 고작이고
나머지는 아줌마처럼 ‘고시랑 고시랑’ 잔소리만 늘었다.
냉장고 속 타박도 서슴지 않은 것은 물론 장성한 자식들 붙잡고 잘 했네 못 했네

말이 많았다.

이러니 어느 식구가 아빠를 달가워하겠는가.
사회적 지위가 있을 때는 옷차림도 미소도 말소리도, 모든 것에 품위가 느껴지던

사람이었는데 실업자가 되고 보니 그런 모습까지 사라졌단다.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이 사람이 우리 남편”이라는 소개하기가 주저될 만큼 작아진

남자. 단순히 자격지심이라고 치부하기엔 객관적 상황이 너무 나빴다.

이제 고작 60살이 넘은 남자,
눈높이를 낮춰 일자리를 찾으면 되지 않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작 당사자에겐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집안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남편 때문에 자잘한 살림살이의 재미도,
친구들과의 수다 시간도 빼앗겨 버린 지인. 그녀의 하소연이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까닭은 누가 먼저냐의 시차만 있지 우리 또래의 주부들 그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관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특히 남자는 사회적 지위가 존재를 좌우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늙은 남편을 사랑하지 못 하는 늙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더 늙은 아내의 헌신적인 남편 사랑 모습이 영화 화면처럼 스친다.

재작년 가을,
가까운 후배를 만났다가 ‘어찌저찌’하여 그 후배 친정까지 가게 되었다.
아주 오래 된 단독주택인 후배 친정집엔 후배의 친정 부모님만 생활하고 계셨다.
연로하신 부모님만 계시는 친정집을 후배라고 자주 찾고 싶지 않겠냐만 제 살림 하자면 쉽지 않을 터. 후배의 노모는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 온 딸이 너무 반가워 딸의 선배인 나까지 오랜만에 얼굴 본 자식처럼 반가워하셨다.

그냥 차나 한 잔 하겠다는 딸을 붙잡아 앉혀놓고 기어이 밥상을 들이시던 어머니.
팔순이 되셨다는 후배의 어머니는 허리가 꼬부라진 상노인이셨다.
후배의 친정 부모님 이야기는 뵙기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몇 년째 거동이 부자유스러운 아버님을 어머님 혼자서 수발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래도 어머님이 아주 정정하신 분인가 보다 짐작했었는데 눈앞에 허리가 꼬부라진

어른이 나타나셨을 때는 정말 놀랐다.

당신 혼자 몸 추스르기도 힘겨우실 것 같은 어른이
무슨 힘으로 거동도 못 하는 환자 수발까지 감당하신단 말인가?
방안에서 꼼짝도 못 하신다는 아버님까지 뵙지는 못 했지만
그런 영감님을 수발하는 어머님이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하니
후배의 아픈 가슴이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지금은 거동을 못 하시지만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금씩 문 밖 출입을 하셨단다.
그런데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바람에 집밖을 나가시면 방향감각을 상실하는 게 큰 문제였다. 집을 잃어버려 실종신고를 하고 파출소를 이 잡듯 뒤지기도 여러 차례. 24시간 감시체제를 가동해야 하는 현실에서 직장이 있는 자식들이 아버님을 보살필 수는 없었다.


덕분에 주일 예배 참석하는 것 빼고는 어머님이 꼼짝없이 그 수발을 다 들었다.
친구도, 여행도 하다못해 그 흔한 온천욕 한 번 옳게 못 하시는 어머님이 너무 가엾어
자식들이 아버님을 치매 병원에 모시자고 나섰더니 어머님이 단호히 거절하시더란다.

당신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영감님은 당신 손으로 돌보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아무리 정신이 없는 양반이라도 생전 처음 본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면 얼마나 무섭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너희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다 할만 해서 하는 거니께.”

자식들 힘들지 않게 하려고 애써 씩씩하신 어머님을 보고 후배 가슴이 찢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늙은 노부부의 모습이 그때처럼 아름답게 느껴지기는 또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시던 영감님을 보내고 나니 가신 뒤 며칠만 허전하고
그 다음부터 날아갈 것 같이 마음이 가볍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던 친척 어른.

50~60년 같이 산 부부 사이에 너무 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마음이 생기겠나 이해가 되기도 했었다. 자의든 타의든 사회활동에서 은퇴해 늙은 부부만이 오롯이 남은 모습들.

멀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이다.
아직은 기운 성성한 남편도 집에 들어앉으면 예쁘게 봐주기가 힘든데 하물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야…. 후배 어머님의 극진한 남편 사랑, 그 힘의 근원은 어디일까?

평생을 같이 한 배우자에 대한 예의?
측은지심? 아니면 자식들의 짐을 덜어주고 싶은 모정?
그 어느 것이라도 사랑의 힘은 너무나 위대한 것 같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은 사랑으로’
새하얀 웨딩드레스 속에서 다소곳이 새겨듣던 주례사의 한 구절.
놓쳐서는 안 되는 이 한 마디의 무게가 지금은 너무나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