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는가? 라는 글을 다 읽고 난 뒤 조심스럽게 견해를 적어봅니다. 이글은 필자와 논쟁하려고 쓴 글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그리고 더욱이 필자의 인격을 손상시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새삼 밝혀 둡니다. 우선 이러한 글을 올려주신 필자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필자도 주님을 사랑하고 또 생명 있는 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의도에서 이글을 쓴 것이라 사료 됩니다.
필자가 주장하는 제목 그대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는가?(1장~9장까지) 라는 제목 자체가 나 자신을 돌아보고 필자가 주장한대로의 거듭남에 대하여 자신을 돌아보기에 더더욱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글을 많은 분들이 읽으시리라 사료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으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필자가 글의 전개함에 있어서 애매 무호한 단어의 선택과 필자의 자의적 성경해석과 주관적 자기 틀에 근거하여 글을 전개함이 정말 성경적인가? 라는 전제하에 이글을 전개하니 너그럽고 주의 사랑의 마음으로 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글을 전개함에 있어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억지로나 사사로이 풀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벧후1:20, 벧후3:16)
가령 내가 의도하는 대로 성경구절을 맞게 전개시킨다 할지라도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과 다르다면 그만 두셔야 합니다. 또한 어떤 글을 전개함에 있어서 생소한 단어를 사용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면 그러한 단어는 분명한 뜻을 내포하는 단어로 바꾸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접수되었다는 말이 그러합니다.
필자가 글을 전개함에 있어서 계속 반복되는 말이 십자가에 접수되었다는 말입니다. 위의 말을 전개하면서 필자가 주장하는 대로 십자가에 접수되지 않는 즉 거듭남이 없이 선행과 봉사 주일성수 십일조 하는 것 까지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글을 전개하시는데 정말 생명 없는 자 즉 거듭나지 못한 자 들이 선행과 봉사 주일성수 십일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성경이 말씀하시는 십일조는 생명 얻은 자들이 생명에 대한 감사함으로 사랑의 반응으로 드리는 고백과도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7:22-23절의 말씀의 내용이 주님 안에 생명이 접수되지 못했으니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그 뜻이 그러한지...
위의 말씀은 불법을 행했기 때문에 주님이 모른다고 하셨지 주님께 생명이 접수되지 못해서 그런 말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불법이 무엇인가 바로 알게 되면 위의 말씀의 뜻은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생명 있는 자들의 헌신들까지 십자가에 접수되었느냐 아니냐는 이상한 논리로 전개시키면 정말 위험한 전개입니다.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벧전1:23) 이렇게 거듭난 자는 아들의 생명이 있기에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우고 거듭난 영의 새사람이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가되어(벧후1:4-9) 장성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성장하고 그 성품이 새사람의 성품으로 변화되어 성령의 열매 맺는 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주일성수 십일도 교회봉사...이모든것이 거듭난 자들이 주님 앞에 신앙의 고백으로 되어지는 성도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필자가 주장한대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저주가 진멸되는 장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듭남의 출발점은 요1:12절의 말씀 곧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 했습니다. 또한 예수 외에 천하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행4:12)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거듭남이라니 성경어디에 그렇게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필자가 주장한대로 십자가에서 주님이 이루신 사건이 죄와 저주가 진멸됨이 정녕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증거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증거한다는 말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고 성경은 증거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성령께서 이러한 주님의 증거로 인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 되고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시는 실제가 되었다는 말이지 십자가 그 자체가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갈2:20)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를 보면 그리스도 예수와 상관이 없다? 이무슨 이상한 논리의 전개입니까?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했는데. 믿음으로 산다는 말 자체가 내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는 말이요 내 죄와 저주가 십자가에서 진멸되었다는 말인데...차라리 믿음이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하는 것이 더 성경적입니다.(고후13:5) 거듭났다는 말은 곧 아들의 생명이 있고 그리스도가 안에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경륜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침례요한은 소개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라 했고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마3:11)이라 했으며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남은 마귀의 모든 일을 멸하시는 분이(요일3:8)라 했으며 사도바울을 우리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이루어 지도록 지식에까지 새로워 져야한다고(고후3;16-18)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건이 어느 한곳에만 치중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구속사에만 매달려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서 에덴동산의 아담이 먹은 선악과로 왔다 갔다...그래서 모든 것이 인간중심의 구속사가 되고... 그러나 성경의 증거 함은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경륜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사실입니다.(엡1:3-7)
또한 몸이라 할 때 죄 아래 태어난 죄 성의 옛사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죽을 몸 의 몸 썩을 몸이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몸이 예수를 영접함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힌 바 되어버린 신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영의 새사람이 말씀 안에 있는 생명으로 성장할 때 장성한 후에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는 고백이 나오는 겁니다.
어린아이 때는 오줌 싸고 똥 싸고 어른들의 짐만 됩니다. 그러나 성장한 후에는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 필자가 전개한 음행 더러운 것 호색....등등 은 육체에 속한 죄 성의 옛사람에게 영의 새사람이 말씀 안에 있는 생명으로 장성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성장되지 못한 삶으로 인하여 영의 새사람이 육신에게 져서 육신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지 거듭남의 말씀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드려 그 몸이 접수되었느냐고 계속 반문하시는데 도대체 어떻게 접수되는 것인지 ...접수되지 않으면 주님을 영접한 마음이 아니요 더 나아가 십자가를 받아들인 마음이 아니라는 전개가 영 이해가 안 됩니다.
가령 서울에서 인천으로 간다할 때 지하철이나 혹은 자가용으로 최단의 길을 선택하여 가면 시간도 경비도 절약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부산 거쳐 제주도로 전라도로 서해안 고속도로 타고 인천으로 갈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 줄 아십니까?
인천을 가기는 갔는데 시간 경비 다 허비하고 갔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정해진 시간에 인천어디에 만나자고 했다면 그 모든 약속은 지나간 뒤입니다. 거듭났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글의 전개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고 명확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새 생명을 소유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을 때(고전15:31) 자신이 생명 없는 자라는 말이 아니고 죽을 육체에 그리스도가 나타남의 목적이었기에 옛사람의 부인으로 (고후4:7-11) 그렇게 고백한다는 말씀입니다.
필자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는가? 라는 글을 전개함에 있어서 상대가 믿지 않는 불신자를 향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는지 아니면 거듭나 생명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향하여 하는 말인지 분별이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전개하는 글이라면 도무지 어려워 생명 있는 우리조차도 알아듣기 힘든 글이요
예수 믿는 우리에게 거듭났는가? 라는 제목 하에 우리의 정체를 확인시키는 글이라면 글의 전개가 잘못되었습니다. 필자는 믿음이라는 말과 십자가의 죽음을 이원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 할때 갈2:20절의 말씀대로 믿음자체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다시 오실 예수님을 앙망하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심지어 믿음은 우리의 모든 � 자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롬14:23)
많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십자가의 증거를 마음에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을 보면서도 자신은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고 전개하는데 이 무슨 이상한 논리의 전개인지 이해가 안되구요.
거듭나는 것이 인간의 자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되어지느냐는 말입니다. 필자가 주장하는대로 십자가의 증거를 마음에 이룬다는 말의 뜻은 또 무엇인지... 필자가 말하는 거듭남의 실체는 무엇인지...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이 새 생명을 얻는 거듭남인데 위의 글을 보건대 필자가 주장하는또 다른 거듭남이 있는지...
십자가의 사건을 접수함이 거듭남?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고 했습니다.(골3;3) 또한 우리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바 된 자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엡2:6)
필자는 계속 예수와 함께 죽었느냐? 혹은 증거를 몸에 지녔느냐? 등등...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호소하면서 묻고 있습니다.물론 이말이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질문의 대답에 물음에 합당한 정답이 있고 맞기는 맞는데 정답이 아닌 경우가 허다합니다. 가령 복음성가 중에 나의 등 뒤에서 라는 복음성가는 율법아래에 있는 자에게는 맞는 답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못 박힌 경험이 없으니 항상 예수님과 자신은 분리의 삶이기에 그렇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2;20절의 말씀대로 생명연합이 되어 말씀이 실체가 되어 그리스도가 안에 사는 자에게는 정답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글을 전개함에 있어서 어떤 교리적 논쟁으로 쓴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다만 성경적 사실에 입각하여 거듭나 생명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는가? 라는 질문은 필자가 의도한대로 되었으면 거듭난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거듭남이 없는 즉 생명 없는 자로 가는 위험한 발상이 내포되었기에 글을 적어본 것입니다. 이미 글의 출발점이 다시 생명 없는 율법아래의 옛사람의 위치에 우리를 갖다 놓고 맞느냐? 틀리느냐? 식의 글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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