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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Life of Christ)]

문수봉(李楨汕) 2008. 10. 22. 18:59

예수의 생애(Life of Christ)

글/강종수 목사

신학(神學)의 근거는 성경(聖經)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기독교의 발원이 성경에 있으며, 특히 예수의 육성(肉聲)과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전기적(傳記的) 연구는 성경 내용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이성(理性)으로 판단하고 주장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사고(思考)는 한계가 있으며 항상 그 가치관이 시류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성경 중심적 사고가 예수님에 대한 바른 판단을 이끌 것입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운운 할 수 없습니다. 오해만 생길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요 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성경은 구약(舊約)성경을 말합니다. 왜냐면 예수님 당시는 아직 신약(新約)이란 책이 만들어지기 전이므로 그들은 구약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성경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을 때,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님이 과연 메시아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구약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므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기독교 신앙은 성경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 17:11-12)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구약)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예수님은 우리들의 오해에 대해, 마 22:29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견해 이전에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성경으로 예수에 대한 지식을 터득하라는 뜻입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기적같은 것으로 신을 이해하려합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의 힘을 기적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론적으로 당신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고 예수를 오해하는 것은 정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며 적어도 인물사를 연구하는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딤후 3: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 출생 과정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 )는 이름, 그리스도(크리스토스, )는 직분(職分)입니다(ex, 홍길동 장로, 홍길동은 성명, 장로는 직분).

▣ 예수

'여호수아'란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발음상 비슷할 뿐입니다. 예수란 이름은 그리스도 예수 뿐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평범하게 사용하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조상 중에도 동명(同名)이 있으며 한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 중에 예수란 이름을 가진 자도 나옵니다.

▲구약의 예,
(눅 3:29)그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신약의 예,
(골 4:11)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예수의 이름이 작명된 동기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예수라고 지을 것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덧붙여 예수께서 구원자가 되실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예수의 이름의 뜻에는 '구원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 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기서 '이는' 은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어떠하다 함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눅 2:21)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 그리스도

히브리어 메시아( )와 동의어(同義語)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요 4:25-26)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구약 시대에 왕, 제사장, 선지자의 위임식 때 머리 위에 기름(감람유)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기름처럼 깨끗한 사람으로 구별된 직분을 거룩하게 수행 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삼상 10:1)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왕상 19:16)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자 왕적 권위와 우리 죄를 위하여 제물(祭物)이 되셔서 대속(代贖)의 죽으심으로 제사장적 직분을 수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가르치시고 선포하신 선지자적 역할을 수행하시므로 선지자와 제사장 그리고 왕에게 부었던 기름처럼 영적으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기름은 신약에서 성령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거룩한 영(성령, 聖靈)은 물과 분리되는 기름같이 세속과 분리된 정신을 주십니다.

구약 시대는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림으로써 속죄를 얻었으나 신약에는 예수께서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위한 제사를 드리시되 영원한 효과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히 10:10-14)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면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제사장의 역할)

▣ 할례식과 작명(作名)

이스라엘 남아(男兒)는 출생 후 8일 째 할례 받을 때 작명(作名)하며 여아(女兒)는 출생 즉시하고 로마인 남아는 출생 후 9일째, 여아는 8일째, 헬라인은 10일만에 작명했다고 합니다(Plum- mer,.I.C.C, st.Lukep.62).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처음 할례를 명하실 때 후처(後妻)의 아들 이스마엘의 나이가 13세였기 때문에 이스마엘의 후손들인 아랍은 지금도 13세가 되는 해에 할례를 행합니다.

2. 출신 계통

예수는 환상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이티(E.T) 혹은 도깨비나 신령(神靈)으로 생각하지 않게 성경은 예수의 족보를 기록함으로써 역사상 실존적 인물이었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십니다.
(마 1:1-2)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생성,창조;족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

▣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구약 시대에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신앙인의 표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러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고 족보에 아브라함을 명기 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을 간주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롬 4:11)저가(아브라함)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약 2:23)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하나님의 벗이라 칭할 만큼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며 친구이면 너무나도 사정을 서로 잘 안다는 정도에서 참으로 아브라함은 신앙의 사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 다윗

이스라엘 둘째 왕으로서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왕입니다. 다윗의 계통이라는 것을 기록한 것은 만 왕의 왕되신 예수님을 의도합니다.
세상 끝 날이 오면 예수께서 세상을 지배하시게 될 것이며 영원한 왕이 되실 것입니다. 지금은 정신적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세계 성도들의 가슴에 왕이 되십니다. 사회적으로도 정신 문화와 종교 사회에 왕이 되십니다.

(롬 1:3)이 아들(예수)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딤후 2:8)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계 22:16)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예수)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계 5:5)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예수)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3. 처녀 잉태

▣ 동정녀(童貞女) 마리아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요셉과 동거하기 전에 약혼녀(처녀)로써 아들을 잉태했습니다. 동정녀로서 메시아를 잉태할 것도 예언적이었습니다. 마리아 본인에게는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신실한 유대 신자이므로 그럴 리가 없겠지만 인류의 구세주를 잉태한 이 특별한 사실은 은폐할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요셉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관계가 있었다면 그 사실을 명기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대사를 빼놓지 않는 성경의 기록 성격을 보아서 마리아는 순전히 처녀로서 아기 예수를 잉태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 1: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정혼은 아직 동거하기 전의 약혼 상태입니다. 동거 전에 처녀가 아기를 잉태한 것은 경건한 유대인의 집안에 그리고 본인에게 참으로 크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 1:22-23)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사 7:1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구약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처녀가 잉태하여 그리스도가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이렇게 그 족속과 태어날 곳과 일생의 모든 것이 예언되어지고 그대로 이루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예언대로 오시고 행하셨으며 또한 예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눅 1:34-35)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
여기 '알지 못하니'란 말의 원문은 우 기노스코( ; not know)인데, 안다는 말의 기노스코( )는 체험적 지식을 뜻하며, 여기 본문은 내용상 사내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직접적인 사실을 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친족인 엘리사벳(남편은 제사장)이 나이 늙도록 무자했는데 하나님의 은총으로 잉태할 수 있었으니 천사 가브리엘이 일러준 대로 세례요한을 잉태한 것입니다.
물론 엘리사벳의 경우는 처녀 잉태가 아니었습니다. 6개월 뒤 곧 하늘의 소식을 담당한 천사 가브리엘이 이번에는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엘리사벳의 태중 아이가 복중에서 뛰놀았습니다. 이미 잉태된 마리아의 복중에 계신 아이를 영적으로 느끼며 엘리사벳이 찬양했습니다. 마리아를 찬양한 것은 아니고 복중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찬양한 것입니다.

▣ 성령(聖靈)으로 잉태

동정 생식입니다. 무성생식(無性生殖, asexual reproduction)과 같은 것입니다. 게 종류 중에 햇볕을 받음으로 알을 생성하는 것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배속에 성령의 임재가 있어서 아이 예수님이 잉태된 것입니다.

(눅 1:35)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성령님은 성부, 성자와 함께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창1:2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더라'고 한 것(신)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처녀 마리아는 아이를 잉태함으로써 먼저 본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남편되는 요셉도 결혼을 포기할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교 신앙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으므로 이 불의하게 여겨지는 일을 조용하게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각각 나타나셔서 성령의 역사로 잉태된 사실을 알게 하시며 부부로 살 것을 명하셨습니다.

(마 1:19-20)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조용하게 처리하고자 함)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리아는 처녀로써 예수님만 잉태하였을 뿐 예수님의 동생들은 그 후 보통 사람들처럼 요셉과 결혼 후 동거하며 출산한 자들입니다. 마리아가 만약 계속적인 성령의 잉태로 아이들을 낳았다면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므로 성경은 명기하였을 것입니다.

100세에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나 세례요한의 출생도 부모가 무자한 상태에 나이 늙어 출산하게 된 일들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녀 출생이나 여인 스스로 잉태하여 낳은 것은 아닙니다. 오직 아기 예수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입니다.
(마 13:55)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카토릭에서는 마리아는 예수만 처녀로 잉태하고 그 뒤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하며 종신 처녀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형제들이 나오며, 카토릭에서는 또한 여기 형제들을 4촌들이라 하나 4촌으로 해석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카토릭은 마리아를 우상화하며 모든 은총을 마리아에게로 돌립니다. 계란 껍질보다 그 속에 든 알 자체가 중요함을 잊었나 봅니다. 동양 윤리로 해석된 것처럼 마리아가 예수보다 우월하게 주목받고 기도를 받으며 찬양까지 받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4. 출생 연도

약 2000년 전입니다. 우리가 가진 서기(西紀)는 예수의 탄생한 연도를 기점으로 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한 이 연식(年式)을 사용하면서도 예수를 불신하거나 핍박합니다.

그런데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역사의 분수령을 가져왔으며 모든 역사 표식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지상 초림은 곧 역사의 중심이자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역사의 영어 히스토리(History)는 그분의(His) 이야기(story)로도 해석합니다.


B.C; Before Christ(主前) (主後) A.D;Anno Do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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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탄생

▣ 예수님 출생 직후 헤롯왕 사망

헤롯은 로마 기원 717에서 34년간 통치했습니다. 그는 로마 기원 750년경 유월절 직전에 여리고에서 사망했습니다. 이 해의 유월절은 4월 11일이었다고 합니다. 헤롯의 죽음을 로마 기원 750년(B.C 4년) 3월 17일-4월 4일 어간으로 추정합니다(요세푸스).
그러므로 2003년 기준으로 하면 2003 + 4년=2007년 전에 탄생하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 목자(牧者)들의 아기 예수 첫 목격

목자들이 야간에 들에서 양들을 지키는 것을 보아 탄생일이 한 겨울은 아닌 듯 하며 헤롯 사망의 시기와 연결해 볼 때 유월절기(유대월력 1월)인 태양력 3-4월경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셨고 예수님 자신은 그 복음(福音)을 심으신 분이므로 탄생도 성경의 영적 의미를 배경으로 볼 때 봄 이라고 보암직합니다.

(눅 2:8-11)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성탄절

12월 25일이 2세기부터 지켜져 왔으며 12우러 25일은 동방의 태양신 미트라스의 축제일이었습니다. 378년 이후부터는 그리스도의 성탄일로 정착되었습니다. 로마의 신학자 디오니시우스가 6세기에 고정화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일년 중 해가 가장 짧은 12월 25일(동지)에 태양제라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동지절 후 낮 시간이 길어지면서 태양빛으로 상징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의도하여 정해진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예수께서는 당신의 탄생일을 기념하라는 교훈은 전혀 없었으며 또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처음 교회를 창설하고 가르칠 때도 주의 탄생일에 대한 언급이나 절기로 지키는 일이 없었습니다.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에 강조하지 않은 바 탄생일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겨울이면 가난한 자들을 돌볼 수 있는 적기이므로 성탄절기에 그 의미를 두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주의 탄생일을 추운 겨울로 보기에는 성경의 근거가 희박하며 오히려 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날짜가 중요하지는 않으나 기왕이면 봄날이 만물의 시작이요 생명의 시작으로 복음적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성경은 부활절이나 주의 죽으신 날을 기념하는 것은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에 대한 교훈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전통이 되어진 성탄절이므로 주의 탄생의 의미가 잘 전달되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탄일에 일어나는 갖가지 죄악은 만만치 않습니다.
망년회와 겹쳐 술과 향락이 성탄에 대한 참다운 뜻을 희석시킬 뿐 아니라 주의 성탄을 맘껏 축하하며 즐길 수 있는 날씨가 아니므로 교회 행사를 하기에도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5. 동방 박사(博士)들

구약은 유대 베들레헴에 유대인의 왕이 나타날 것이며 이는 곧 메시아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언제나 오시려나 늘 기다리고 또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탄생 당시 유대 율법사들과 장로들 그리고 지도자들은 외식주의로 빠져 성경을 가지고도 메시아를 영접하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메시아 탄생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곳에 사는 동방 박사들에게 왕을 상징하는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당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타락하거나 영적으로 어두울 때 불신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전달하여 성도들이 각성하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여기 동방 박사들은 무신론자는 아닌 듯 하고 적어도 유신론자들로서 경건한 사람들로 보아집니다.
(마 2:1-2)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 동방 박사(博士, 마고이, )

영어 메직(magic,마술)은 헬라어 음역입니다. 여기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예수께 예물을 드린 내용으로 보아(황금, 유향, 몰약) 점장이 수준이 아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자들로 부유층에 속한 것같습니다. 헤롯왕을 접견한 것으로도 보아 평민은 아닌 듯합니다.

황금은 값비싼 것이며 변치 않은 믿음을 상징하며 왕적 권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아주 값비싼 향내나는 유향은 예수의 신성함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시체 부패를 막는 것으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은 값비싼 것들로 예수께 감사의 표를 한 것은 그들의 충성어린 감사와 어린왕 예수께 대한 예의였습니다.
(마 2: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은 바벨론 지역 같으며 거기 살던 유대인 박사들로 보입니다.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한 사람들은 아니었고 다만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 학자들로 추정되며 왕으로 상징되는 움직이는 별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왔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와서 아마 백성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 경배하러 왔다고 한 말이 헤롯 악정(惡政) 아래 살고 있던 백성들에게 희망과 충격적 소식이 되었고 예루살렘 전체가 소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헤롯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회집시켜 유대의 왕에 대한 예언을 듣기로 했습니다.

(마 2:2-5)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헤롯왕은 동방 박사들이 묻는 그 유대인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동방 박사들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므로 별(왕으로 상징하는)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은 후 베들레헴으로 가라고 명하되 찾거든 자신에게도 고하여 주면 그 예언적 유대 왕께 경배할 것이라 일러 주었으나 사실 헤롯은 자기의 권좌를 유지 위하여 예수를 찾아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마 2:7-8)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마 2:13)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 동방 박사들의 신앙

헤롯왕이 일러 준대로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며 감사하였습니다. 그들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목격한 것처럼 구유에 뉘인 예수가 아닌 어느 집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꿈에 지시함을 받아 헤롯에게 가지 않고 딴 길로 고국을 가고 곧장 예수의 가족도 애굽으로 피난 갔습니다. 예수는 최소한 유대법대로 남아(男兒)로 태어난 지 40일 후의 결례(정결식)를 행하신 후 베들레헴을 떠나신 것으로 보아 박사들이 예수께 왔을 무렵은 탄생 후 두어달 지난 뒤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 2: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의 신앙은 감사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최고의 귀하고 가치 있는 물질로 감사하였습니다.
(마 2:12)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헤롯의 지시보다 꿈에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더욱 두려워하여 다른 길로해서 고국을 갔습니다. 사람(세속의 헤롯왕)을 두려워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순종한 그들의 행보(行步)는 순교적이었습니다.

가다가 잡혔다면 무슨 말로 변명을 했을까... 아마, 하나님의 지시였오... 그렇게 단순한 답변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임을 당하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께서 계신 곳을 절대로 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사각오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 예수 왕께 대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신앙심이었고 박사들의 사명감이었습니다.
(행 4: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제자들도 그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말보다 그리고 그 권세를 두려워 하지 않고 핍박하는 백성이나 왕 앞에서도 감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용기있게 하였습니다.

▣ 헤롯의 살상

(마 2: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그들이 떠난 후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베들레헴 지경 안에 2살 아래 남아(男兒)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죄 없는 많은 아이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구약의 예언적 사건이었습니다.
(렘 31:15)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마 2: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죽은 아이들은 구원을 받았거나 순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 유아들은 신앙고백 때문에 순교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헤롯의 살상극이었기 때문에 확실시 하기에는 근거가 희박합니다.

예수는 단지 유대인을 영적으로 회복시키실 메시아로 오신 영적 왕이신데 영안(靈眼)이 어두운 헤롯은 권좌에 불안을 느끼고 이렇게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수많은 어린 아기를 살상한 것입니다.

헤롯이 두 살 아래 남아들을 살상한 것으로 보아 동방박사들이 왕을 상징하는 별을 발견한 때를 기점으로 한 것같으며 그들이 고국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까지 당도한 세월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6. 베들레헴 구유에 탄생

▣ 베들레헴

예루살렘에서 남방 8km 지점에 위치한 곳입니다.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는 인류의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탄생 장소 역시 구약 성경에 예언된 곳입니다.
성경은 지명(地名)과 인명(人名)등에도 복음적인 뜻이 숨어 있습니다. 단순한 유대 지명이 아닌 하나님의 숨은 뜻을 전달하는 이름들입니다.

그러므로 작명(作名)도 가능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뜻으로 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부르기와 듣기가 은혜로운 것이 이름을 불리는 본인에게도 좋고 부르는 이름을 듣는 다른 이들에게도 덕(德)이 될 것입니다.

(미 5:2)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언이며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또한 이방인들의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을 뜻하는 구절입니다.

▣ 구유에 탄생

가축의 꼴을 먹이는 통에서 나셨습니다. 당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 유대인들의 호구 조사를 했습니다. 한꺼번에 고향으로 몰려든 인파들로 인해 빈 여관이 없었다고 보여지며 특히나 해산을 앞둔 마리아가 유숙할 집은 없었던 것같습니다. 급한대로 마굿간으로 들어가 말구유에다 아이를 출산하게 된 것입니다.

구유는 짐승이 음식 먹는 통입니다. 이는 생명의 떡을 주실 예수와 또한 고난과 가난을 체험하시는 예수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육에 풍요를 위해 탄생시부터 고난과 가난을 감수하셨습니다.
(눅 2:1-2)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
(눅 2:6-7)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고후 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7. 애굽 피신과 나사렛의 거주

헤롯왕이 예수를 죽이려 하므로 동방 박사들이 떠난 후 주의 사자(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명합니다. 나중에 헤롯이 죽은 후 애굽에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다시 나타나 이스라엘 땅으로 갈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죽었으나 그 아들 아켈라오가 헤롯을 이어 임금 됨을 듣고 무서워 할 때 꿈에 지시함을 받아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마 2:13)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마 2:21-22)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출신 가문을 대단히 중시하던 당시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예수님이 성장하시게 된 곳은 나사렛 동네였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출신을 자랑하지 말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는 교만한 그들로부터 나사렛 촌사람으로 저속하고 비하된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세상으로 가난과 빈곤의 처지를 체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부요와 풍성한 문화를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2. 예수 유아 시절

1. 할례 받으심(탄생 후 8일째)

▣ 하나님 백성의 표징으로서 할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남자아이가 나면 8일째 할례를 행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종족 표식을 이어왔습니다.
남아 생식기 표피를 자르는 것은 건강상 유익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할례를 받지 않는 백성은 이방인으로 무시되며 할례가 그들의 민족적 자존심이 되었습니다.

(창 17:12)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눅 2:21)할례 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자(親子)이시나 율법을 이루시기 위해 할례 의식을 치르셨습니다. 물론 경건한 부모님들이(요셉) 아기 예수께 할례를 직접 행하셨을 것입니다.

▣ 결례(潔禮)때 예수 목격자

유대법에 남자아이를 낳으면 40일 여아는 80일의 부정한 기간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40일이 지나자 예수의 부모들도 제사장을 찾아가 그 결례(潔禮)대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출산에 대한 감사이며 속죄제는 출산 후 부정(不淨)함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드렸습니다. 번제에는 양을, 속죄제에는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가난하면 번제양 대신 비둘기 둘로 대치했습니다(레12:1-8).
이 일을 행하기 위해 예수의 부모가 성전으로 갔다가 성령의 감동 가운데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 중에 시므온과 안나가 아기 예수를 목격하게 됩니다.

(눅 2:34-39)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 하니라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2. 자라심

예수께서는 건강하게 자라시고 지혜롭게 자라시며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아이로 성장하셨다고 했습니다. 유아기의 성장 과정은 상세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셨기에 여러 가지로 지혜로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생명의 주님으로 오셨기에 건강하게 성장하셨을 것입니다.

(눅 2:40)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눅 2:52)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3. 12세 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표현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소아 때부터 스스로 감지 하셨겠지만 성경에 나타나기는 12세 때 자증(自證)하신 것이 나타납니다. 12살 때 부모와 함께 유월절기에 예루살렘에 가셨다가 부모는 아이를 놓쳤던 것입니다.
12세 정도면 어린 유아가 아니므로 손을 놓고 자유스럽게 다닐 정도였기에 아마 부모들은 예사롭게 아이의 발길을 내버려 둔 것같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후 3일 만에 아이를 찾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아 대화하시며 여러 가지 답변을 하실 때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근심하며 찾았노라고 했더니 아이 예수는 완전히 다른 말씀으로 답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부모들은 예수님의 깊은 속사정을 아직 이해 할 수 없는 수준이며 아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내지는 메시아로 확신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러 주긴 했으나 아이를 키우면서 그들도 일반 부모처럼 예수를 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말씀을 모두 다 확신하고 알아들을 만한 영적 성숙은 없었던 부모였습니다. 아직 그렇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눅 2:42-49)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내 아버지 집'은 성전을 가리키며 가시적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친아들로서 아버지 집에 계신다 함은 당위하였으나 부모들은 그 말을 맘에 둘 뿐 영적으로 확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4. 효행(孝行)하신 예수

▣ 부모를 받드심

받드심은 복종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부모님을 복종하며 자라셨습니다. 동양 윤리로 기독교 윤리를 비판하는 경향이 있으나 성경은 동양 윤리보다 훨씬 더 부모 공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보아도 10가지 계명 중에 1-4계명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이며 나머지는 세상을 위한 계명 중에 가장 으뜸이자 처음 시작하는 계명인 제 5계명이 부모 공경입니다. 모든 윤리가 가정에서 시작됨과 세상 중에 가장 중요한 분이 부모라는 사실입니다.
(눅 2:51)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 아버지 요셉은 일찍 별세 한 듯

성경상 요셉의 이름이 일찍 사라지고 예수님 공생애(共生涯)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로 보아 일찍 별세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고 따라서 청년 예수님은 모친과 동생들을 위하여 가업을 이어 노동을 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3. 전도를 위한 준비

1.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심

▣ 세례 요한

구약시대의 예언자로서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특히 메시아를 직접 앞서서 예언하고 메시아를 영접하기 위한 세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가 중점으로 한 일은 이스라엘이 죄를 회개하라는 강한 메시지와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외치는 일이었습니다.

(마 11:13)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0)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천사가 아닌 세례 요한입니다)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세례 요한)에 대한 말씀이니라
(요 1:19-23)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사 40:3)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며 물세례를 받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유대인들의 고관들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요한의 정체를 묻게 했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외치는 자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살폈으면 세례 요한의 말이 무슨 뜻이며 뒤에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물세례(洗禮)

메시아를 영접하게 하는 회개 촉구 의식이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을 머리 위에 찍어 적시며 물세례식을 거행하는데, 이는 죄 씻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에 적시어 죄 씻음을 뜻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성례(聖禮)에 참여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침례교에서는 헬라어 '밥티죠'( )란 말이 물에 잠근다(침례)는 뜻으로만 풀이하나 싯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막7:4, 눅11:38).

꼭 물에 잠겨야 진정한 세례라는 주장을 하지만 세례는 곧 속죄의 표일 뿐입니다. 밥티죠란 언어는 침례(담그다) 뿐아니라 적시다, 씻다, 세례주다 등으로 번역됩니다.
성경적(聖經的)이란 말이 성경 구절 대로라는 말은 아닙니다. 일일이 성경적인 것이 성구적(聖句的)이라고 한다면 세례식에도 예수님 당시에 사용된 요단강 물을 퍼다가 와서 세례(침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성찬식에 사용되는 떡도 그들처럼 구워서 만든 것이어야 하고, 예수께서 행하신 마지막 만찬 때는 지금 우리가 먹는 아주 작은 빵이 아닌 입에 넣고 씹을 만큼의 떡으로 식사용입니다.

예배 중에 그렇게 먹으면서 거룩한 예식이라고 하기에는 떡 먹는 소리도 은혜가 안되고 하므로 그 의식이 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작은 빵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에 제일로 중요한 머리 위에 물을 적시는 세례식 정도라도 은혜를 받는 성례 의식으로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돌아가실 때 한 쪽 강도는 세례식이 없어도 구원이 선포되었고, 물에 잠그기 어려운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자들도 문제가 되고 침례받을 시간이 임종시라면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꼭 침례를 주장할 바는 아니라 봅니다. 침례(浸禮)도 은혜가 되고 세례(洗禮)도 은혜 입기는 마찬가지라 봅니다.
(벧전 3: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믿음의)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행 19:3-7)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 바울이 전도하면서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은 곧 세례 요한의 바램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그들은 다시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특수한 예로 방언과 예언을 할 수 있었지만 이런 은사가 언제나 나타나야 할 조건은 아닙니다.

▣ 의(義)를 이루시기 위함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시니 세례 받으실 이유는 없으나 당시 많은 이가 회개하는 맘으로 요한에게 와서 물세례를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옳은 일에 동참하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야 하나 경우에 따라 받지 못하고 믿음의 고백으로 만 족히 구원 얻게 되는 예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에 함께 십자가로 죽게 되던 우편 강도가 그러했고 교회 역사 속에 여러 사람이 죽음 직전에 예수를 영접하므로 세례식을 얻지 못하고도 구원을 얻게 된 예가 많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 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롬 10: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마 3:13-17)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눅 3:21-22)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율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성도는 예수의 공로를 의지하여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된 것입니다.

(눅 23:41-42)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적에 그 날 두 강도도 함께 처형되었는데 예수를 중심으로 두 강도 중 한편 강도는 겸손히 주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습니다. 그 구원의 요청을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의 의로운 점을 어디서 들었는지 죽으심의 부당성을 말하고 구주로 인식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구원을 요청하게 되었고 마지막 죽음의 형틀에서 죄수 그는 주님의 구원이 선포되는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2. 40일 금식 기도

▣ 금식 기도

특별한 준비의 기도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도 40일 금식을 할 수 있습니다. 단식하기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영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계시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금식하시므로 아무 것도 드시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금식은 일반 성도들도 3일에서 7일간은 많이들 합니다. 가장 어려우면서 선택하기 쉬운 것은 3일 간의 금식인데 참으로 은혜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3일간을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 따르며 주님의 목마르심과 고난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금식후는 겸손해지며 감사하는 맘이 충만해집니다. 건강상 유익하게 되는데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 때 몸에서 노폐물이 많이 빠져 나와서 정신도 맑을 뿐 아니라 위장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금식을 마친 후에는 밥이나 그 이상의 단단한 식물보다 미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께서 금식하시게 된 것은 우리 죄인 같이 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도의 대 성업(聖業)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본받을 것을 보이셨습니다. 무슨 일에든 기도할 것이나 대사(大事)를 위해서는 금식 기도가 따를 필요가 있다 봅니다.
(사 58:6)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욜 2:12)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하셨나니

▣ 광야에서 40일

예수께서 금식하신 곳은 물도 없는 메마른 광야이며 들짐승들이 다니는 지역입니다(막1:13).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며 춥기도 하고 낮에는 태양 볕이 쪼이는 광야였습니다.

왜 광야를 선택하셨는지 몰라도 본래 기도는 한적한 곳이 좋다고 가르치셨고 골방에서 문을 닫듯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할 것을 교훈하신 주께서는 광야 가운데서도 은밀한 장소를 선택하셨으리라 봅니다.
산수 좋은 곳이 아닌 광야는 마치 이 세상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이 광야같은 세상을 위해 그 곳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심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마 4:1-2)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막 1:13)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3. 금식 후 3가지 시험

예수께서는 인성(人性)을 지니신 분으로 사람처럼 시험을 받으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시험을 받는 것이 죄가 아니라 시험을 이기지 못했을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히 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예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시험받으신 내용

(마 4:3-11)시험하는 자가(사단,마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물질적 시험 - 첫 번째는 배고프신 중에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물질적 시험이었습니다. 사단(하나님 대적자)은 성도들을 시험할 때 항상 적당한 기회를 이용하며 가장 약한(유혹 받을) 부분을 시험합니다.
신앙 생활은 사회 생활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 생활에 물질이 필요하며 일하는 자가 되어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동시에 돈을 사랑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 현실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주일에 일할 수 없는 것이나 십일조 및 감사 헌금 등에 서 시험을 받습니다.
경제의 어려움을 받을 때 신앙보다 경제 원리를 따라야 살 수 있다는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럴 때 주께서 마귀를 이기신 것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지녀야겠습니다.

(살후 3:8)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 3:10)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기독교인은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선진국 국민성이 모두가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딤전 6:7-10)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은 필요하나 돈 자체를 우상시 하며 오직 돈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가치를 판단하거나 삶의 의의를 두려 할 때 그것은 하나님 앞에 형벌 받을 생각입니다.

경제는 먼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취급돼야 하며 성실한 일꾼으로 활동하되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이 즐겁게 자원하는 심령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직업이 또한 건전해야 합니다.

영적 시험 -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시험삼는 어리석음을 거부하셨습니다.
영적 은혜를 입었다고 무용한 기적을 바라는 시험된 기도나 사고(思考)를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열차가 지나갈 때 기도해서 열차를 세워보겠다든가, 바닷가에 사람들이 많을 때 바다 위를 걸어 보겠다든가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마술같이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계신 일이면 홍해의 기적이 지금도 나타날 것입니다. 마술은 재미난 문화인지는 몰라도 결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 할 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그 길로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그 때 애굽 사람들도 뒤따라 바다를 건너려다 수장(水葬)되어 모두 죽게 됩니다.
성경에 애굽 사람들은 아무런 믿음이 없이 시험삼아 건넜다고 했습니다. 물론 애굽인들은 하나님을 믿거나 은혜를 입을 대상들도 아니었습니다.
(히 11:29)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세속의 영광 시험 - 사단이 이제 영적으로 천하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를 경배하고 섬기라 하였으나 예수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함을 명하시고 단호하게 거부하시며 사단을 대적하셨습니다. 그랬을 때 사단은 떠났습니다. 진리를 따를 때에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3번이나 반복된 괴롭힘과 세속의 영광까지 주겠다면 유혹하는 사단을 단호히 꾸짖으시며 사단아 물러가라! 하시고 그의 시험을 거절하셨습니다. 처음 두 번은 성경으로 대처하셨으나 이번의 시험은 단순한 거절이 아닌 분노와 함께 그 시험 내용과 그 시험하는 사단 자체를 꾸짖으셨습니다.

(마 6: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에도 간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권세 영광 자체가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삼상 7:3)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예수를 심문했던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 죄를 찾지 못한다 하였으며 그의 양심은 그의 아내가 애써 만류한 것처럼 예수를 놓아주고 싶었으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도록 예수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의 권좌 존립에 대한 욕망과 세속 영광주의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빌라도는 개인의 영광 보전을 위해 인류의 메시아를 죽이는 데 내어 주었던 무서운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요 19:6)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마 27:19)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요 19:12)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마 20:21)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 영광과 권세를 위해 정의를 버립니까? 이 모든 것은 자기 영광주의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자기 위신이나 영광을 위하려 하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의 이종 사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그런 식의 간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들을 하늘 보좌에 하나는 좌편 하나는 우편에 세워달라는 영광을 구하다가 다른 제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얻지 못하였고 예수님의 간접적 책망을 받았습니다.

▣ 인류의 첫 아담과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의 비교

첫 아담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고 둘째 아담은 예수를 뜻합니다. 첫 아담에게는 과일이 풍성한 에덴 동산에서 중앙에 있는 실과만 먹지 말라는 행위 언약이었고, 예수는 40일 금식 기도 후 주리신 상태에서 받은 떡의 시험으로 크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롬 5:12-14)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원죄)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모든 인류)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첫 아담은 우리 모든 인류의 대표로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시험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자손 대대로 모두가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변명할 아무런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 상황에 우리는 참여하지도 않았고 순전히 아담 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담을 선정해 준 적은 없고 아담 홀로 선택된 인류의 대표였습니다. 그런데 첫 아담은 이름 뜻이 사람이니 아마 우리 개인이 그 시험을 받았을 때도 원죄를 짓고 말았을 것이라 봅니다.

(고전 15:45)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예수님)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지으심을 받고 하나님이 그 코에 입김(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으시니 살아 움직이는 영(움직이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며, 둘째 아담이신 예수는 원죄로 인해 죽은 우리들의 영혼을 다시 살리시는 분(영)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4. 공생애(公生涯)의 시작

1. 사명을 아시는 예수(존재의 이유)

(요 6:38-40)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존재의 의의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중에서 무엇을 행하다 갈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산다고 할 때에는 어리석고 삶이 권태로울 뿐입니다. 왜 사는가를 묻는다면 답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 30세에 전도 시작

율법에 회막의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30세 이상이었습니다. 요셉은 30세에 총리가 되었고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랐으며 유대인의 원로들인 산헤드린 회원이 30세에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유대 율법에 회막에 일할 수 있는 나이가 찼을 때 메시아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그 연세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능력있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실 수 있었겠지만 율법대로 나이가 차서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중심적 일들은 모든 것에 성경과 교회법에 적절히 대처해야 은혜롭습니다.

(눅 3:23)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심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창 41:46)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 그가 바로 앞 을 떠나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삼하 5:4)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 전도의 주 임무

예수님의 공생애는 전도(傳道)가 중심이셨습니다. 사회 정화와 개혁 그리고 정치에 목적을 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천국 복음 전파가 목표였습니다. 해방신학(解放神學)에서 말하는 정치적 예수는 아닙니다. 오직 예수의 교회 중심은 천국 복음 전도입니다.

복음이 비록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에 정의와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게 한다 하여도 천국 복음의 중심은 근본적으로 죄인의 영혼이 구원을 얻어 영생을 입지 않으면 교회의 존재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이란 이름으로 사회 정의 구현을 먼저 의도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참된 복음의 시작이 아닌 것입니다.
해방신학의 약점은 구원의 정의가 빈부의 격차와 냉전의 사회가 완화와 빈곤자의 물질적 대체로 인한 문화적 해방 그리고 정치적 압박에서의 해방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며, 그 구축 방법도 인위적 방법을 동원하여 공산주의 철학으로 그 결과를 위한 과정의 당위성을 열변하면서 정의를 위한 혈투를 인정하는 방법론으로 복음의 향기를 잃어버립니다.

(막 1:38)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傳道)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요 18:37)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전도가 메시아적 사명이라 하셨으니 그의 몸된 교회는 두말할 여지없이 복음 전파가 궁극적인 목표이어야 할 것입니다.

2. 제자 선택

예수께서는 전도하시면서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언젠가 승천하셔야 할 것이며 제자들을 통해 전도 사업이 연속돼야 하기 때문에 소위 조직을 만드셨습니다. 지도자 양성은 무슨 그룹에서든지 필요합니다.

(요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막 3:13-15)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 12 제자(사도)

제자의 수가 12명인 것은 구약의 12지파의 수와 관련하여 하나님 백성들 조직의 상징적인 수입니다. 모두 또한 남성들입니다. 결혼 한 사람도 있고 총각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시 여자들에 대한 관례가 지도자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러한 배경이라는 것이지 예수님이 여성을 인격적으로 무시하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하여 성경은 여성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가르칩니다.

현대에 와서 여권 신장이 되면서 여성 목사 안수 문제로 논란이 있습니다. 여성을 목사로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들의 생각에서 좌우될 것이 아니고 성경에 이른 바 근거를 찾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시대적 산물이 아니므로 모든 이론의 시작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여 선지자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나 교회 창설 시에 교회 집사를 선정하는 데에도 여자 집사는 없었습니다. 참고하여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마 10:2-4)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 제자들의 인적 사항

⑴ 베드로(반석, 페트로스, )
그의 본명은 시몬(듣는다)이며 베드로는 수리아어(게바-베다라=베드로)로 주께서 새로 개명해 불러 주신 이름입니다. 요1:42에 "요한의 아들"이라 했으며 그 형은 안드레입니다. 결혼했던 자이며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서 주님을 가정에 모시고 간 일이 있습니다. 직업은 어부였습니다(마4:18).

그는 주님을 제대로 그리스도임을 고백하였으나 3번 주님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눅22:55-62).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약속의 성령 충만을 입고 다시 큰 사도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전설에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합니다(요20:19).

⑵ 안드레(남자다운, 안드레아스, )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의 형제이며 형과 함께 어부였습니다. 처음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를 믿고 형 베드로에게 전도한 자입니다(요1:40;42). 수리아에 전도했다고 하며 헬라의 아가야 성에서 X자로 순교하였다고 전하여집니다.

⑶ 야고보(잡았다는 뜻, 야코보스, )
부친은 세베대요 모친은 살로메입니다. 아우는 요한이며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 형제와 같이 부름을 받았습니다(마4:20-22). 성격이 급한 제자였습니다. 어느 날 주님과 함께 사마리아를 지나다가 거기 유숙하고자 하나 허락지 않아서 천벌이 내려(하늘에서 불이 내려) 저들을 멸하자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저주의 말을 하다가 주께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눅9:54).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이 있습니다(막3:17).
스페인 등에서 전도했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칼로 목베임을 당하여 사도 중 제 1차 순교자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⑷ 요한(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요아네니스, )
요한복음, 요한 1,2,3서, 요한 계시록 이렇게 5권의 신약을 기록한 제자입니다. 야고보의 형제요 예수의 이종형제(요19:25)로서 직업은 어부였습니다(눅5:10).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에 주의 모친을 부탁 받은 자이며(요19:26,27) 전설에 12년 간 봉사했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 하다가 도미시안 황제의 핍박으로 밧모섬에 정배 보내어졌다가 말세의 계시를 받았습니다(계1:9-11). 에베소에 교회에 다시 와서 98세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내용의 말씀을 많이 외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의 제자는 순교자 폴리갚이 있습니다.

⑸ 빌립(말(馬)을 사랑하는 자, 전쟁을 좋아함, 필립포이, )
어부 시몬과 동업자였으며(막3:17) 나다나엘을 주께 인도할 때 "와 보라 !"고 전도하던 자입니다(요1:45,46). 리디아, 소아시아에 전도했다고 하며 그는 최후 기둥에 달려 순교하였다고 전하여집니다.

⑹ 바돌로매(돌로매의 아들, 바돌로마이오스, )
별명이 나다나엘(하나님의선물)(요1:46)이며 귀족 출신으로 보입니다. 처음 6제자를 부르실 때 나다나엘 대신 바돌로매로 공관복음서에 기록되었으므로 동일인으로 보입니다. 친구 빌립의 소개로 예수를 믿게 되었던 자입니다(요1:45). 품행이 온전하고 간사치 않았던 자로 설명되고 있습니다(요1:47). 아라비아, 인도 등에 전도했다고 하며 산채로 몸 가죽이 벗겨져 순교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⑺ 도마(쌍둥이의 뜻, 도마스, )
디두모라고도 별명하는 자(디두모, 헬라어로 쌍둥이)로 부활을 의심한 자였습니다(요20:24-). 나중에 다행히 지상에 계시는 부활의 주를 다시 만나 확실한 믿음을 고백한 자 입니다.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⑻ 마태(하나님의 선물이란 뜻, 마타이오스, )
마태는 세관에서 근무한 자입니다. 히브리어로 그의 이름을 레위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을 저술했습니다(히브리어로 마태복음을 작성했으나 후일에 헬라어로 사본이 되었음). 아시아, 마게도냐 등에서 전도했다고 하며 에디오피아 전도 중 목베임으로 순교했다고 합니다.

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발꿈치를 잡았다, 야코보스, )
알패오의 아들 소 야고보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죽으실 때 멀리서 보던 자입니다(마27:56,막15:40). 페르시아에서 전도했으며 성전에서 떨어뜨려 던져져 순교했다고 합니다.

⑽ 다대오(칭찬함, 다다이오스, )
유다(찬미)라고도 부르는 자입니다(요14:22). 신약의 유다서를 기록한 사도입니다. 페르시아 전도 중 활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⑾ 시몬(듣는다, 시몬, )
베드로의 이름도 본래는 이 사도의 이름과 같았습니다. 이 제자는 베드로가 아닌 다른 시몬입니다(신약에 시몬이라는 이름이 10명 나옴). 셀롯이라고도 별명하는 자인데 당시 유대의 한 당파에 속하였던 자로 보입니다. 셀롯은 유대교의 한 종파로서 열심당원이란 이름입니다(BC.37-AD.70년까지). 애굽에 전도했으며 칼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⑿ 가룟.유다(유다는 찬미함을 뜻, 유다스, )
유대 출신의 사람으로 헌금을 맡은 자입니다. 그런데 가끔 헌금을 도적한 자였습니다. 스승 예수를 은 30량에 판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판 후 후회하며 자살했습니다(마 26:25, 마27:3-5).

5. 복음 사역 내용

1. 회개 촉구와 하나님의 나라 선포

예수의 복음 중심은 죄인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가 요청됩니다. 세례 요한 역시 회개를 외쳤습니다. 예수께서는 삶의 질을 바꾸자는 철학 선생이 아니라 심판자로서 죄를 회개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보면 세속주의자들에게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마 4: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이 가깝다는 것은 바로 가까이 천국의 주인되신 주께서 오셨음을 뜻합니다.
(마 3: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 3:7-8)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종교적 배경

정치적으로 유대인들은 헤롯의 압제 중에 있었으며 그들은 지상 유토피아를 완성시킬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유대교는 몇 개의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고 정통파라 주장들을 했으나 모두가 외식으로 빠져 있었습니다.

바리새파(Parisees, 분리된 자) - 엄한 율법주의자들이었으나 외식으로 빠졌습니다.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가말리엘, 사도 사울 등이 바리새파였습니다. 그들은 엄한 율법주의를 외쳤으나 세속적이었으며 돈을 좋아한 자들이었습니다.
(눅 16:14)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행 26:5)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행 23:8)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사두개파(Sadducees, 의로운 자) - 귀족들과 대제사장으로 구성하였고 부활을 불신했습니다.
(마 22:23)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막 12:18, 눅 20:27)

엣세네파(Essenes, 금욕주의) - 독신(獨身)과 금욕주의자들로 수도원 생활을 했습니다.

헤롯당 - 비유대계인들로 헤롯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마 22:16)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막 3:6)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막 12:13)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열심당원(셀롯당, Zealots) - 애국자들로 로마 정치에 항거한 자들입니다.
(눅 6:15)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행 1:13)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요한,야고보, 안드레와 빌립,도마와 바돌로매,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셀롯인 시몬,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서기관, 랍비(스승) 무리들 - 대부분의 서기관들은 바리새파에 속함, 제사장들은 사두개파에 속했습니다.
(막 2:16)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 천국(天國 ; 하늘 나라)과 신국(神國 ; 하나님의 나라)

같은 말인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호 쓰기가 부담스러워 마태복음서(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대신 하늘 나라로 대신 사용했습니다.

다만 이 말을 직역하여 풀이하면 천국은 장소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신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領域, 靈域)을 말합니다. 천국은 우리가 가서 영원히 거할 장소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에 임하였습니다.
(막 15:43)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눅 17:20-21)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마음에 오셔서 영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뜻합니다. 그래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딤후 4:18)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요 14: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여기서 말씀하시는 아버지 집이란 곧 천국(天國)으로 장소성을 가진 곳입니다. 위의 영적 하나님의 나라라는 의미와 다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요 천상에서는 천국인 것입니다.

처소를 예비한다는 말씀의 뜻을 십자가로 죽으셔서 우리들의 구원의 길을 완성하신다는 뜻으로도 풀이합니다. 어떻게 해도 상관은 없다고 봅니다.

2. 병 고치심과 기적들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치유와 기적을 베푸시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이런 복음 사역의 기능을 제자들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입기 전부터 예수께서 능력을 주시므로 간헐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마 10:1)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9:35)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초자연적인 이적들

표적이라는 말 쎄메이온( )은 신적 징표라는 뜻입니다. 예고하여 표징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 물이 포두주로

(요 2: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잔치집에 초청되어 가셨다가 포도주가 떨어지므로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인데, 양적 변화가 아닌 질적 변화였습니다.
천국을 잔치집에 비유하셨는데 지상의 사람 중에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으로 초청 받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은 우리 인생들의 새로운 존재 변화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 5병 2어의 기적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장정만 5천명을 먹이신 이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인명 계수에 아이들과 여자들은 헤아리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기록된 것인데 전체를 다 추론하면 약 2만명 이상이 먹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 14:19-21)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 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지 의문시 되겠지만 무(無)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닐 것입니다. 신천신지의 하늘 나라에서는 이렇게 무엇이든 풍성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는 경제적 은총을 얻게 된다는 것도 포함하는데 기독교 역사에 크리스챤으로서 물질적인 복을 많이 받아 사회에 많은 구제와 협력을 해왔습니다.

▣ 광풍 진압

예수께서는 세상을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을 지배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파도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마 8:25-27)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예수께서는 파도 위를 걸어가시기도 하셨습니다.
(마 14:25-26)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 물고기 입에서 나온 동전

반세겔의 성전세를 받는 이가 제자들에게 와서 너희 스승은 왜 성전세를 내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 아들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세를 낼 이유는 없지만 주님은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성전세를 내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하여 처음 오르는 고기 입에 동전이 있을 것인데 그것으로 성전세를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언제 동전을 그 고기가 물고 있을 것이며 베드로가 낚는 순간을 어떻게 정확히 연결시키셨는지 우리는 당신의 만물 통치와 섭리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자의 관리에 속한다고 보며 우리에게는 기적인 것입니다.

(마 17:26-27)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마름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니 곧 말라버렸습니다. 이 무화과에서 주는 교훈은 외식적인 형식적 유대교를 상징하며 유대인들은 무화과가 저주받았듯이 멸망했습니다.

아무리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라지만 저주하여 말라버리게 하실 다른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 21:19)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 산 위에서 영광의 몸으로 변화하심

예수께서 부활도 아직 하시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변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초자연적 표적으로서 영광의 주님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마 17:1-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치유

기적으로 여러 가지 불치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분이요 생명의 주로서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 말씀으로 백부장의 종이 나음

군인 백 명을 거느리는 중대장 정도 되는 백부장의 종이 아픈 관계로 그가 직접 예수께 와서 청하였던 것을 보면 사랑과 정이 많은 백부장이었던 것같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께서 자기 집으로 가서 직접 고쳐 주시고자 할 때 그는 주께서 자기 집까지 걸음 하심이 황송할 뿐 아니라 군인들 세계에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 복종이라는 것을 비유로 주께서 말씀만 하시면 나은 줄 알고 돌아가겠다는 놀라운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탄복하신 예수께서 그를 이스라엘 중 가장 큰 믿음의 소유자라 칭찬하셨습니다.
(마 8:10)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8:13)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 소경이 눈을 뜨다

예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이 사건은 영안이 어두워진 유대인들을 향하신 간접적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소경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 9:28-30)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 10인의 문둥병자가 나음

문둥병은 유대인에게 있어 저주가 되었습니다. 그런 자들을 주께서 고치셨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그 환자같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을 느끼게 됩니다.

(눅 17:12-14)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궁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 잘려진 귀를 다시 붙이심

예수를 잡으러 왔던 병사를 본 베드로는 흥분을 못 이겨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칼로서 병사 말고의 귀를 짤라버렸습니다. 그 때 주께서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교훈하시고 그 짤려진 귀를 도로 붙이셨습니다.
(눅 22:50-51)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 귀신 들린 자를 치유

귀신이 든 사람에게 그 귀신을 쫓아내시고 사람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 귀신의 요구대로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시니 돼지에게 들어갔던 귀신들은 돼지를 바다에 빠져 몰사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알 것은 사람의 영혼이 많은 돼지 보다 귀하다함과 귀신의 목표는 사망이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인간 영혼이 과연 귀신들려 자아를 가누지 못함같이 정서가 망가지고 많은 고충을 겪고 있음을 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마 8:32)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 간질환자 나음

간질병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갑자기 발작하면서 어디든 넘어져 거품을 내면서 몸이 뒤틀리는 현상을 보입니다. 바다에나 불에 넘어져 사망할 우려가 많습니다. 세상일이 이처럼 간헐적인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부자연스러운 사건들은 간질병 같이 사회에 엄청난 손해를 가져다 줍니다.

(마 17: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마 17: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 38년된 병자 고치심

예루살렘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는데 그 곳의 물을 천사가 가 끔씩 동하게 할 때 가장 먼저 뛰어든 자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전설같은 못이었습니다. 수많은 갖가지 환자들이 늘 그 못에 대기하였습니다.

여기 38년 간이나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누워 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를 주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 구원 얻을 수 없는 우리들을 주께서 고치사 구원을 입혀 주신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요 5:8-9)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죽은 자의 재생(再生)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을 표시한 것입니다. 누가 인명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어느 종교의 교주가 죽은 자를 살리겠습니까?

▣ 야이로의 딸

회당장의 딸이 죽었습니다. 슬피 울고 있는 초상집을 들어 가셔서 주님은 회당장의 딸이 잔다고 하시고 살리셨습니다. 주께서 보실 때는 사람이 죽은 것은 잠을 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결국 부활로 깨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9:24-25)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 나이성 과부의 아들

나인성에 한 과부는 독자 하나 보고 살다가 결국 아들이 죽게되었습니다. 그 성에서 아마 존경받은 과부였던지 성에 많은 사람들이 상여를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목격하시고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소망을 주시고 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눅 7:13-15)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 베다니의 나사로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는 향유를 주의 발에 붓던 충성스런 여인이었으며 그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집을 방문하셨을 때는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매 무덤에서 썩어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불러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이처럼 썩어서 냄새만 나는 죽음의 세상입니다. 이 슬픔에서 주님을 모실 때 소생의 은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 11:11)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 11:43-44)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3. 교훈과 메시지

예수께서 설교하시며 명하신 신약적 메시지는 4복음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4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한 내용도 가르친 바가 있습니다.

▣ 산상보훈(山上寶訓)(마태복음 5장)

먼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긴 교훈의 메시지 가운데 첫째 8가지로 복된 사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이를 팔복의 말씀이라고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지녀야 할 중심에 대한 교훈입니다.

성도의 도덕률이며 진정한 영적 축복의 사람에 대한 인격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윤리가 아닌 구원 얻은 자들이 지킬 윤리입니다(마5:3-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가난함은 욕심을 버리고 빈 마음이 된 상태이며 겸손이 충만한 심령을 말합니다. 이런 자에게 천국이 건설된다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비애심리가 아니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를 반드시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부드럽고 동정심이 많은 은혜로운 심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심은 영원한 천국의 소유 뿐아니라 지상의 삶에 그가 사는 영역을 더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업장이 넓혀지고 영예로운 영역을 차지하려면 온유한 자가 되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의 의로운 삶을 위하여 세속의 이기적이며 불법적인 것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정신적으로 목마른 자에게 배부르게 축복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긍휼함이 없이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을 본다고 하는 것은 형태를 목격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느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심판자로 깨끗하시기에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회개하여 깨끗해질 때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어디서나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되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디서나 화목 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다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義)를 위해 순교적 신앙으로 핍박을 감수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에게 상을 주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 탕자의 비유(누가복음 15장)

예수께서는 복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비유를 적절히 사용하셨습니다. 그 중에 탕자에 대한 비유는 가장 늘리 알려진 사랑과 구원의 아버지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두 아들 중 작은 아들이 부친이 살아 계신데도 자기의 분깃을 달라하여 그것을 가지고 멀리 도망을 가서 허랑 방탕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거지가 되어 어느 집돼지 치는 자로서 돼지가 먹는 열매를 먹고살다가 어느 날 고향의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가 돌아오는 날도 역시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마중 나오시고 그를 안고 반겼습니다. 그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시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며 발에 신을 신기웠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돌아온 아들을 기뻐하는 잔치로 살찐 송아지를 잡고 풍악을 울렸습니다.

그 날도 큰아들은 여느 때처럼 들에서 일하다 오니 집에 풍류가 나서 집의 종을 불러 상황을 듣고 격분하였습니다. 탕자 동생이 왔으므로 잔치를 베푸신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었다 살아난 아들로 여기시며 기뻐하면서 큰아들을 또한 달래셨습니다.
(눅 15: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 내용에서 큰아들은 유대인을 그리고 탕자는 이방인인 우리들을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탕자같은 삶을 살아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둘째 아들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하나님을 뜻하며 잔치에 희생된 송아지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의중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윤리는 겨우 큰아들의 불만처럼 윤리로 정죄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잊어주시고 회개하여 돌아 온 아들을 기뻐하시는 그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 씨 뿌리는 비유(마태복음 13장)

유대인들의 경작은 쟁기질을 하면서 대충 씨를 뿌립니다. 그러므로 돌짝 밭에도 떨어지고 고운 흙에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말씀에 씨를 받는 마음 밭을 몇 가지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밭은 말씀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과 현실입니다.

길가에 뿌리운 자는 말씀을 받되 깨닫지 못하므로 사단에게 빼앗기는 것이며 길가에 뿌리운 심정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예사롭게 취급한 것입니다.
돌밭에 뿌리운 것은 인내가 부족하여 뿌리내리지 못해 말씀의 씨가 죽어 버린 것이며 가시떨기에 뿌리운 것은 세상의 염려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함을 그리고 좋은 땅에 뿌리운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로서 많은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 우리의 심정이 옥토가 되야 합니다. 순전하고 부드러운 마음씨로 받아야 합니다. 흙이 부드럽고 땅이 좋은 곳에는 무슨 씨든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처럼 마음 밭이 불신적이며 딱딱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능합니다. 마음을 부드러운 옥토가 되게 해야 합니다.
(마 13:23)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 부자와 나사로(누가복음 16장)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부자의 최후를 비유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실재 인물인 듯 합니다. 이름이 명기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살 때 나사로는 헌데까지 앓는 거지였습니다. 부잣집에 대문에 누워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려 할 때 개들이 와서 나사로의 헌데를 핥더라고 했습니다. 어쩜 부자는 그 개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는 것같습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인생은 부자라도 죽습니다. 저승 가 있는 부자는 지옥 불 못에 있고 나사로는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복음의 진수라는 것은 아니고 불쌍히 여기지 않는 부자의 죄를 지적한 것입니다.
빈부 격차가 심한 현대를 살아갑니다. 오늘날도 많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를 없인여기며 무시합니다. 그들의 최후 역시 여기 비유하신 그 부자의 세계로 갈 것입니다.

▣ 한 과부의 원한을 푼 이야기(누가복음 18장)

낙심하지 않고 응답 받기를 기도할 것을 비유로, 어느 도시의 한 과부가 원한을 풀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었으나 끝까지 찾아가 청원하여 결국 재판관의 판결을 받아 내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처럼 주야로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 주실 것이라 교훈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기도의 교훈으로 주신 바는 원한같은 심정적 욕망이 불타야 한다는 것이며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그의 위치를 믿고 찾아갔던 과부처럼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응답하실 때까지 그녀처럼 주야로 날마다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눅 18:7-8)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일만 달란트 빚진 자(마태복음 18장)

베드로가 자기에게 형제가 죄를 범하면 7번 용서해야 합니까? 하고 주께 물었을 때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시며 이어 비유하신 내용입니다.

어떤 임금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갚을 길이 없어서 탕감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자가 돌아가서 자신에게 백데나리온 빚진자의 목을 잡고 빚 갚으라고 하니 참아주시면 갚겠다 하였으나 당장 못 갚는다고 옥에 넣어버렸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임금은 다시 그를 불러 옥게 넣고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졸들에게 붙였습니다(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갚을 길 없는 죄악을 주님의 보혈로 용서받아 구원을 얻어놓고서 우리에게 이 세상의 작은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못난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용서한다면서 이해를 해준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해하라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갈 죄를 탕감받은 자로서는 형제의 죄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함을 교훈 하신 것입니다.
(마 18: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웃 사랑(누가복음 10장)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지나면서도 피하여 가고 레위인도 피해 지나갔습니다. 유대인들이 경시하는 사마리아 사람 하나는 그를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막집으로 들어가 간호했습니다.

그리고 데나리온 둘을 주인에게 주며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사람에게 간호비가 더 들면 그때 줄 것이라 약속하고 떠났습니다. 이 강도 만난 사람에게 진정한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시고 제자들은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함을 가진 자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레위인입니다. 이러한 이름과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진정한 이웃은 당시 정통만 주장하던 유대인들이 아니라 비록 잡혼으로 혈통이 건전치 못해 비난과 경시를 받던 사마리아인이지만 강도를 만난 자를 보살펴주는 이는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함에 차별과 명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눅 10:37)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장)

어떤 부자 주인이 타국에 갈 때 종들에게 그의 소유를 맡겼습니다.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맡긴 후 돌아와 맡긴 달란트를 계산하는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열심히 장사하여 배를 남겨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게을러 그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놓고 주인이 올 때 엉뚱한 변명만 하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보이다 무익한 종이라 하여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김을 당했다는 비유입니다.

분명히 주인이 각 재능대로 주었기 때문에 많든 적든 감당 할 수 있을 만큼 맡겼던 것입니다. 달란트는 재능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잘 사용하여 발전에 기여하지 않고 주인되신 하나님께 드림이 없으면 무익한 종처럼 되어 어두운 곳 지옥의 심판을 겪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6. 하나님의 아들되신 자격

종교적 상식 선에서 신의 아들이라는 차원을 가상적으로 정하고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만큼의 증거들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전능성 및 세상과 인간을 통치하시는 정도를 갖춰야 할 것이라는 신성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눅 9:35)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하나님)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먼저 성경에 하늘로서 음성이 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되심이 선포되었습니다.

1. 자증(自證)하심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스스로 증언하셨습니다. 많은 이단들도 교회사에 자신이 신이거나 신의 아들이라 거짓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었거나 거짓 선지자로 판명되었습니다.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5:18)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3:36)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일반 선지자나 그 외 교훈자로 간주하는 자들은 모두 이단들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때 구원의 희망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봅니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이적을 통한 증명

여러 가지 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불치의 병을 고치심, 초자연 이적(물이 포도주로 변함, 광풍을 제압, 5병 2어로 5천명을 먹이심), 귀신을 쫓아내심, 죽은 자를 살리심(야이로의 딸,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 베다니의 나사로) 등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종교 역사에 많은 기적에 대한 소개가 있으나 성경의 예수 행적만큼 다양한 이적과 여러 사람과 환경적 요소로 기록된 문헌은 없습니다.

(막 4:39)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 12:22)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요 5: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3. 부활(復活)

일반 인간은 스스로 부활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는 무죄(無罪)하시므로 부활하셨습니다. 일반 종교의 교주와 특별하게 다른 점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범종교의 교주와 별 차이 없이 인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부활도 역시 예언적인 성취였습니다.

(행 2:23-24)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시 16:10)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의 거룩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며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 곧 부활하실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예수에 관한 일생은 모두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서이며 신약은 오신 메시아의 하신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4. 제자들의 증언(證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제자들이 아주 가까이서 생활한 3년 간의 동거를 통하여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으므로 증언할 수 있습니다.

(마 16: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6: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 이다

(빌 2:6-7)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 들과 같이 되었고
제자들은 아주 분명하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고백하였습니다. 가르치심과 이적들을 몸소 체험하면서 확인했던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침식을 3년 간 같이 하므로 예수의 제자들과 같이 하신 행적들의 기록은 꾸며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제자들이 스승에 대한 흠모함으로 조작한 기사가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도들은 현실적으로 여러 환경에서 예수의 행적에 동참한 것을 상세히 기록해 줄 수 있는 증인들이었습니다.

5. 일반인들의 증언

예수를 핍박하거나 무관한 자들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였습니다.

(마 27:54)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 천지가 흔들리고 태양이 어두워지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예수를 못박은 병정들과 구경꾼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인정하였습니다.

이적 앞에 미력한 불신의 정신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들의 고백은 공포와 함께한 확신이었습니다. 불가항적 천지의 흔들림에 그들은 십자가로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게 됩니다.

(요일 4: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 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일 2:22-23)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 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대개 이단(異端)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말하고 오히려 예수를 이단이라 배척합니다. 하나님도 부인하고 결국 자신들이 구세주라는 거짓된 증거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요일 5:20-21)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7.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1. 예수의 인성

예수는 역사상(歷史上)으로 출생하셔서 한 시대(時代)를 살으신 E.T나 가상의 존재가 아닌 역사적 인물이었습니다. 어떤 이가 예수는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고 반박하나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물이라면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 자료와 수많은 예수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 잉태되심 - (마 1: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탄생하심 - (사 7:1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자라나심 - (눅 2:52)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배고프심 - (마 4: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주무심 - (마 8:24)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 땀나심 - (눅 22: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 사망하심 - (마 27: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 무죄(無罪)하신 인성(人性)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셨으나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깨끗한 처녀의 몸을 빌어 오셨습니다. 물론 마리아는 죄인인데 마리아의 난자는 유죄가 아니냐는 반론은 있으나 성령의 역사로 인한 잉태이므로 난자의 유죄성을 운운할 여지가 없습니다.

난자 안에 성령이 개입한 것인지 성령님이 처녀 뱃속에서 아기를 잉태케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연스런 이해로는 난자 안에 성령이 침입한 것으로 생각되나 그렇게 했을지라도 예수는 무죄하신 성령의 역사로 잉태되신 분이십니다.

(고후 5: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3:5)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히 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요 19:4)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하더라 (요 19:6)
심문하던 빌라도 총독이 예수를 보았을 때 그의 눈빛과 모습이나 백성들의 고소 내용으로도 도저히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불신자의 눈으로 보아도 예수는 무죄하였거든 하물며 유대인들의 영적 눈이 얼마나 어두웠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정치인의 눈보다 판단 능력이 없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예수의 신성(神性)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신성(神性)을 갖추신 분이십니다. 신성이란 우리의 종교 심리에 알맞는 전능하신 신, 모든 것을 통괄하실만한 능력과 구원하실 성품적 내용들입니다.

(사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구약 시대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된 이 말씀은 장차 탄생하실 메시아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요 5:18)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10: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빌 2:6-7)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요 12:45)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 14: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여러 차례 예수께서는 본인이 하나님과 동등함을 말씀하시고 이로 인하여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쌓게 되셨습니다. 본래 비진리와 비윤리가 옳은 것을 거부합니다. 연고 없이 미움을 받는다 함이 이러한 경우입니다.

3. 말씀의 본체(本體)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시며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의 인격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성경) 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를 찾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요 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말 자체가 난해한 뜻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의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이 명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 세상에 오셨으니 그가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육신을 입으신 성자 예수님은 곧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것입니다.
(요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46)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성경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메시아를 생각할 수 있었다면 오신 메시아 예수를 바로 인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을 위한 종교 행위에 급급한 관계로 영안(靈眼)이 어두워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이해하려 한다면 예수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을 믿는다면서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오직 오실 메시아에 대한 표상이자 예언자였습니다.

4. 예수의 신인(神人)
양성(兩性)인자들

합리적 사고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공존을 부인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부인하는 이성주의자(理性主義者)들이 예수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인류사에 인간의 성품과 신의 성품을 가진 자가 없었고 그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란 힘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말하고 있으며 그 외에 비합리적인 언어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성으로 해석되지 않으므로 진리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고 인간의 말이 될 것입니다.
▣ 에비온파(Ebiontes) - 예수의 인성(人性)만 인증하고 신성을 부인.
▣ 도케데파(Docetae) - 예수의 역사적 존재 부인, 신성만 간주.

▣ 아리안파(Arians) - 이성을 가지신 예수는 불완전하다 함.

▣ 아폴리나리안파(Apollinarians) - 인성을 부인함.

▣ 네스토리안파(Nestotians) - 신인성이 공존 할 수 없으므로 예수 양성 부인.

▣ 유티키안파(Eutychians) - 신인 공존이 아닌 제 3의 인격체라고 봄.

8. 메시아(그리스도) 자격

1. 속죄양으로서 죽으심

▣ 속죄의 필요성 -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영생(永生)입니다. 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먼저 속죄를 얻어야 합니다. 인간의 자의(自意)로는 속죄가 불가능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구원이며 그것은 영원한 영생입니다. 영생 없이는 종교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목표이면 그것은 윤리와 철학일 것입니다.

세상에 윤리와 철학의 선생은 많았지만 속죄의 선생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스승이시며 구속주가 되십니다.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롬 3:10-12)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23-24)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일반 인간은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혹은 인간의 윤리나 어떠한 선행으로도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고 합니다. 죄와 허물로 인간의 고상한 영은 죽은 상태로 말합니다. 우리가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바의 윤리적 가치로 영생을 취득할 수 있는 것 이 아닙니다.

인간은 윤리와 도덕적 성품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었으므로 동물과 다른 윤리의식은 있으나 우리들의 가치로 평가되는 선행(善行)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이 세상에 선이 하나도 없다 하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타락한 상태로 죽어 있기 때문에 참다운 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생으로 이어질 선은 없는 것입니다.

(엡 2: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성경은 단호히 인간의 영적 상태는 죽었다고 말합니다. 영생을 스스로 획득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 구약의 속죄양 같은 예수

구약 시대 유대인들은 양을 잡아 번제를 드림으로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이처럼 신약의 예수는 세상의 죄를 담당하사 속죄양처럼 죄없이 십자가로 돌아가셨습니다. 비록 짐승과 사람의 대조가 될지라도 속죄를 얻는데는 생명의 피를 흘렸다는 사실이 같은 맥락입니다.

짐승의 피로써 속죄를 얻던 구약 시대는 때마다 짐승을 잡아야 했으나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은 한 번 믿음으로 영생을 약속 받으며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고, 날마다 주께 회개하는 심령으로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항상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요 1:29)이튿날 (세례)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롬 3: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사 53:4-5)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에 대한 구약의 예언입니다. 예수를 직접으로 고소하고 죽이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극악한 죄인으로 알았으며 당시 유월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구경하게 된 사람들은 전후 사건 진상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모두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알았을 것입니다.

(히 9:13-14)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뇨
구약의 속죄 제물인 짐승의 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신 것도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회개하는 양심을 동반했습니다. 짐승을 번제로 드림으로써 속죄를 주시던 하나님은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로 통한 속죄는 더욱 가치가 있어야 함이 당위합니다. 천 마리의 송아지와 하나님의 아들을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2.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 지식과
경험을 갖추심

▣ 하늘에서 오신 분

예수의 선재(先在) 하심을 말합니다. 본래 영원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 함께 하늘의 영광 중에 영적 존재로 계셨으며 2천년 전에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의 영은 이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계셨으며 또한 육신을 입고 지상에 탄생하시기 전부터 존재하신 분이셨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증거입니다. 다음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요 3: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6:38)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8:23)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7:16)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 8:55)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요 8:42)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 7:28-29)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요 5: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 8:58)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명으로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증언하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 하늘에서 오신 주께서는 하나님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아신다 함이 옳은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오셨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신다는 주님의 사명이 옳으신 것입니다.

▣ 인간의 실존을 잘 아시는 분

예수는 하나님의 사정과 인간의 입장을 모두 다 잘 아시는 분으로서 중재 역할을 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마 9: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무리는 이방인인 우리들도 포함됩니다. 인생은 진실로 유리 방황하다 죽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신들과 철학적 주장들에 휩쓸려 어디로 가는지 잘 알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목자 없는 양이란 헤매는 역사의 이데올로기의 변천과 가치관들의 변화 무쌍함들입니다. 주께서는 일찍 부친을 여의신 후 가사를 책임지시고 일하시며 나사렛 빈촌에서 인간사의 여러 가지를 충분히 체험하신 분이십니다. 경험을 통한 지식이 아니라도 주께서는 인간의 심리와 영혼 상태를 완전하게 아시는 전지(全知)하신 분이십니다.

(마 15:18-19)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것들은 인간의 중심에서 나오는 것들인데 참으로 적절히 표현하신 것입니다. 악한 생각들은 짚어주셨습니다. 인간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3. 죄 사함을 선언하신 분

죄를 사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직접으로 사죄를 선언하심은 하나님과의 능력과 권위에 있어서 동등하심을 뜻합니다. 죄를 사하실 수 있다면 심판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죄사함을 주시기도 하시고 장차 심판하실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마 9:2)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6)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4. 죽으심과 부활로
내세 증언이 확실시 됨

예수의 사활(死活)은 인생의 생(生)과 사(死) 그리고 내세의 심판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석가의 극락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는 죽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다시 부활하사 생과 사를 분명하게 입증하실 수 있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5. 신인(神人) 양성(兩性)으로
중재자의 자격


(고전 2: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을 가져야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어 신앙을 가집니다.
성령이 없는 자들은 가룟.유다가 예수를 일반 스승으로 알고 고하였듯이 예수를 4대 성인(聖人) 중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 8:55)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9. 십자가 처형 원인

당시 로마법의 최고형인 십자가 처형으로 유대법 중에는 이러한 시행법은 없었으나 유대인들이 고소하므로 로마 군대는 집행할 뿐이었습니다. 메시아를 죽이되 그들의 손으로 죽이지도 않고 압제 당하고 있던 로마법에 적용시킨 참으로 커다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메시아를 죽인 죄로 후손들이 그들의 예언적 발언처럼 엄청난 수난을 겪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6백만명이 독일에서 살해되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과연 이유 없이 내리시는 것일까요? 조상들의 죄에 대한 보응이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축복을 얻는 후손들이 부럽습니다. 그러나 그 조상들이 얼마나 믿음이 신실했으며 고난을 겪었는가를 알게 된다면 결코 부러워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현재는 과거의 열매이며 미래는 오늘의 삶에서 뿌린 씨앗의 결과가 될 것입니다.

(마 27:25)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아주 자신이 있다는 그들의 오판으로 내뱉은 말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말이 적용이 되어 그 후손들이 형벌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성전이 불타게 되고 110만 명이 불에 타 죽게되었으며 9만 7천명이 포로되고 나머지는 세계 각 국으로 흩어져 약 2천년간 국호 없는 백성으로 살아오다가 1948년 5월 14일에 국호를 되찾을 때가지 많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이제 겨우 이스라엘의 영광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 유대계 사람들이 부(富)와 지식에 많은 인물들이 산출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다시 회복되는 때가 오면 말세가 된다는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마 24:32-33)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한국의 국화가 무궁화이고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예수님 당시 그들의 신앙은 외식하여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같음을 비유하셨습니다.

한 번은 잎만 무성한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여러 징조와 무화과나무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이 한 번 저주를 받고 다시 회복되는 날이 오면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소로 예수께서 죽으셨습니다. 성경은 몇 가지로 사회적인 이유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교와 정치적 연유로 주께서 고소되고 처형을 받게 되셨습니다.

1. 속죄양으로 예정(豫定)된 죽음

예수는 구약의 속죄 제물처럼 신약의 백성을 위한 속죄의 죽임이 예고되신 분이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제물이 되셨습니다.

(요 3: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은 광야의 불뱀을 끌어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물어 죽게 저주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가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이 높은 장대에 구리뱀을 메달아 그것을 쳐다 본 자는 낫는다고 선포하라 하셨습니다. 쳐다 본 자들은 나음을 입었던 것입니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하심은 모세 시대의 놋뱀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려 죽으실 것인데 마음으로 믿으면 속죄를 얻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 10:15-17)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마 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전 5:7)...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2.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증언

▣ 유대인들은 나사렛의 선지자를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사렛 촌동네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때문에 예수를 선지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요 1:46)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요 7:41)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당시는 서로 정통을 주장하며 출신 가문을 중요시 여기던 때이므로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성장하셨기에 당연히 촌동네 출신자로 무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시골 출신 중에 위대한 인물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수께서는 탄생시부터 줄곧 가난한 환경으로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이 많던 유대인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처지를 가지셨습니다. 우리는 주의 그 중심을 본 받아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생각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 제일주의는 금물이지만 지도자 및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서는 물질적 환경에서도 교만하지 않고 겸허한 중심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므로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으심

하나님의 친아들이라 하셨을 때 예수를 깨닫지 못한 유일신 사상자들인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요 19:7)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 자칭 하나님이라 하심에 더욱 분노한 유대인들.

(요 10:33)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 5:18)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마 26:63-64)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기독교 역사이래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같이 자신이 하나님이라든가 재림 예수라 자처하며 거짓 교훈을 가르치다가 망한 자도 있으며 지금도 거짓을 퍼뜨리고 계속 유혹하는 이단들의 영이 활동합니다.

사람은 환경적 변화에 적응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이런 약점을 가진 자들로서 차라리 이방인이 되어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실 이유들을 자세히 검토하고 영적으로 깨달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유일신(唯一神) 사상은 우리와 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그들은 외식한 신앙심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쉽고도 확실하게 그리스도 예수를 깨달을 수 있었던 자들이 그리스도를 도리어 못박게 했던 엄청난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3. 세상을 악하다 증거하시므로

▣ 정치계 비판

헤롯을 여우에 비유하셨습니다. 여우는 교활한 짐승입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원수같이 지냈으나 예수를 모함하는 일에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정치가 얼마나 사욕적인가를 비춰줍니다. 물론 예수께서 정치적인 것에 적극적으로 비판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세상의 죄악상을 두루 꾸짖으셨습니다.

(눅 13:32)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헤롯)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눅 23:12)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요 7:7)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요 15:20)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요 15:25)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기독교가 핍박을 받을 때 확실한 이유가 성립되어서 받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선교해 왔습니다.
(요일 5: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여기 악한 자란 이 세상 임금인 사단(마귀)을 뜻합니다.
(엡 2: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 세상의 이해는 본래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의 영감(靈感)이요 지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물론 성직자는 공적으로 기도와 신령한 일에 몰두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일반 평신도들은 정치인으로 일 할 수 있으며 기꺼이 정의롭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잘못을 지적만 하는 것이 정치의 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주된 업무가 아니요 그것을 은혜롭게 고쳐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엄중히 잘못을 지적하는 선지자적 발언과 행위가 필요합니다. 그 방법에 있어 일반 정치인과 다른 지혜와 은혜가 깃들일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합니다. 육적 투쟁이나 하는 것은 성도들의 방법이 아닙니다. 해방신학에서 취급하는 사회 정의 구현의 방법론은 혈투를 당위하게 여깁니다. 결과를 위한 과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공산주의 이론입니다.

예수께서는 메시아로서 천지를 주관하실 분이시며 모든 왕들의 왕으로서 군림하실 분이시기에 확실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일일이 찾아서 정치에 관여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정치와 사회의 문제점들을 일일이 찾아서 비판하는 것이 임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가치에 핍박과 장애를 초래 할 때 교회는 침묵 할 수는 없습니다. 건의하고 시정 요구를 할 수 있으나 무력으로 대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유대)종교계 비판

외식주의로 전락한 유대교 신앙에 대한 비판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른 지적을 받고는 회개보다 예수를 모함하여 죽이기로 했습니다. 악의 반감은 언제나 그러합니다.

(마 7: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23:13)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거짓된 교훈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 그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단(異端)들의 잘못이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잘못된 교훈은 그들의 잘못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는 자들로 하여금 바른 진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주게 되며 혼란스럽게 합니다.

또는 진리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도 합니다. 구원 얻지 못하는 지도자는 자신과 함께 그를 따르는 자도 구원 얻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마 21: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당시 로마와 헬라의 화폐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은 성전세를 바치기 위해서는 성전에 바칠 특정한 은전을 바꾸어야만 했으며 장사꾼들은 이를 위한 환전세를 받았던 것입니다. 성전세는 반세겔이었습니다(한 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4일 품삯입니다. 반세겔은 2일 품삯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제물(祭物)을 팔고 사는 시장이 되어버린 성전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일찍 내 아버지 집이라 하신 성전을 숙청 하셨습니다. 성전의 불결한 이유로 화를 내신 예수님이 여기에 나타납니다.
(출 30:13)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4. 성에서 가까운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

예루살렘 성 까까운 골고다 언덕에서 오전 9시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마 27: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마 27:45)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유대인의 시간 계수에 더하기 3을 하여야 현재 사용하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유대월력도 마찬가지로 유월절이 1월이었으니 지금의 3월말이나 4월초입니다. 제 육시라 하면 지금의 오전 9시를 일컫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아 속죄를 하듯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속죄양이 되셔서 이 날에 죽으신 것입니다.

▣ 십자가상(十字架上)의 7언(七言)

예수는 십자가에서 6시간을 견디시다 운명하셨는데 7마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눅 23:3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은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핍박을 받을 때 그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교훈하시던 주님이십니다.
(행 7: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살인자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은 예수의 교훈을 실천한 것입니다.

(눅 23: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말씀하신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두 번째 말씀은 한 쪽 강도에 대한 구원의 선포였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두 강도와 함께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요 19: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께서 효자였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손과 발에 피를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 계신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막 15:34)제 구시(낮 12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엘리란 말은 히브리어로 나의 하나님이란 뜻이며 라마 사박다니는 헬라어로 어찌하여 버리셨나이까 인데, 히브리어는 유대인이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글자이고 헬라어는 이방인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단어는 유대인과 이방인 즉 모든 세상을 위해 버려지는 속죄의 죽으심을 상징한다 봅니다. 또한 주께서 십자가의 고통이 심하셔서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섞여 절규되었다고도 풀이합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여! 라고 늘 기도하시던 주께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시는 이 순간에는 나의 하나님!으로 그 칭호가 바뀌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의 완전한 버림이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아들로서의 버림을 당하신 순간입니다.
(요 19:28)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피가 흐르면 현기증이 납니다. 주께서 십자가상에서 목마르심은 우리 인생들에게 영원히 갈하지 않는 영적 생명수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 19: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다 이루심은 메시아의 임무 완수입니다. 우리들의 구원의 길이 다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사형수들이 십자가상에서 고통과 함께 목이 타므로 신포도주를 갈대에 꿰어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마 불쌍히 보는 어머니들이었을 것입니다.

(눅 23: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죽음에 용기가 필요한가? 결코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혼을 또한 부탁하는 기도를 최후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버림의 고통이 너무나 크고 외로우시므로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방금 전에는 강도의 부탁을 받으시던 주님이 이제 영혼이 떠나는 고통과 적막함에 이르시자 본인도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10. 예수의 부활

부활은 기독교의 근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인간 최대의 소망이 됩니다. 부활이 증거되지 않으면 그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교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의 종교일 뿐입니다.

(고전 15: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부활은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 근본 원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진수는 예수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와 다른 이 희망적 메시지는 커다란 힘이 됩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의 소리는 예수의 부활이며 그 부활이 곧 우리들의 영생을 상징하고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부활 될 것이라는 선전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고전 15: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11: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님은 3년 간 공생애 중 3명을 본보기로 재생(再生)시키셨습니다. 운명하시던 날 천지가 흔들릴 때 무덤 속에 성도들이 많이 일어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예수는 부활을 주실 생명의 주인되신 증거들입니다. 예수 자신이 곧 부활이며 생명이라 증언하셨습니다. 생명을 알고자 한다면 예수께 가야 이해하고 얻게 될 것입니다.

1. 예수의 부활은 예언적

예수의 일생(탄생에서 재림까지) 모두가 예언적입니다. 부활 역시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구약 성경과 예수님 자신의 예언이었습니다.
(마 16: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 도 예수의 부활이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눅 24:44-45)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시 16:10)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의 거룩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썩지 않게 하실 것이란 곧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뜻합니다.


2. 부활후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고
증거하심

예수의 부활은 단순한 소문이 아닌 증인들의 증거에 의하여 소개 되었고 전달되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파숫군들과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및 많은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파숫군들은 장로들에게 돈을 받고 밤중에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가지고 갔다는 도난설을 퍼뜨렸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人本主義) 신학자 중에는 예수의 육적 부활이 있을 수 없다 하며 예수의 부활은 일반 역사가 아닌 초역사, 즉 한 의미로만 보아야 하거나 숨겨진 종교적 소망이라는 철학적 해석 또는 환상주의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과 부활 그리고 다가올 재림까지 초월적 역사가 아닌 실제적 역사상의 일입니다.

▣ 불신자가 목격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면 죽이라는 명을 받은 파숫군들이 이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했으나 그들이 대제사장에게 부활을 알리자 장로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시체를 도난 당했다고 하라 하며 그 파숫군들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마 28:2-4)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 28:11-15)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 제자들도 처음에 의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믿게 하기 위해 부활하신 몸으로 식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는 영적 부활이 아닌 몸의 부활입니다. 영광의 몸이시지만 식사를 하실 수 있는 몸이십니다. 배고프지 않는 부활의 새 몸이시지만 제자들이 부활의 주를 영(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증거를 위해 식사를 하신 것입니다.

(눅 24:38-43)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 부활의 몸은 공간을 초월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었으나 그냥 들어오셨습니다. 장차 우리 성도들도 그러한 몸이 될 터인데 결코 감각이 없는 도깨비같은 몸이 아닙니다. 공간의 제한이 없는 완전한 새 몸이 될 것입니다.

(요 20:26-29)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4)

▣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시나 부활하신 후 그 영광이 다르실 뿐 외모적으로 예수를 인지할 수 없는 존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영광을 입으면 전과 달리 보여 인지하는데 순간적으로 늦어질 수 있듯이 예수의 영광스런 부활의 몸은 제자들로 하여금 당혹하게 했던 것입니다.
(막 16:13)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나라
(막 16:14)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 많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여러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체험을 공유하게 하셨습니다.
(고전 15:7-8)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바울) 보이셨느니라
(행 1:1-3)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께서는 부활 후 40일간 지상 생활을 하시며 증거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기록되어 있고 40일간의 상세한 증언의 행적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증언하시며 지내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년간의 공생애도 모두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기록되지 않았던 행적이 일상적이고 성경에 문헌화 할 가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기록한 것만으로 예수 행적의 드라마는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요 21:25)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11. 승천(昇天)

예수는 단순한 지상의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보여주신 것으로 그치신 것이 아니라 승천하셔야만 했던 이유가 계셨고 또한 지상에서 여러 사람들이 승천을 목격했습니다. 승천도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행 1:9-11)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요 14:2-3)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시 68:18)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구약 시대에 죽음을 보지않고 산채로 하늘로 올라간 간 사람이 두명인데 에녹과 엘리야 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한 것도 말세론에서 일컫는 바 부활한 몸의 휴거도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 산채로 지금 하늘 위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그들도 역시 새로운 몸이 되어 다시 천국을 입성할 것입니다.
(창 5: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2:11)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1. 보혜사, 성령을 주시기 위해 승천

예수님은 부활의 몸이라도 국한적으로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승천하신 후 성령이 임하사 전 세계인의 맘에 동시에 주의 영이 함께 하시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승천은 성령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주의 예언이 옳으신 것입니다.

(요 16:7)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13)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행 1:4-5)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14)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2:1-4)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과연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와 함께 용기를 가지고 개종을 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던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을 통하여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야말로 주께서 승천하신 것이 유익하게 된 것입니다.

2. 성도들이 그처럼 승천하여
천국 갈 것을 예표

예수는 단순한 이론가처럼 철학을 남기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시고 영생을 위해 필수적인 것임을 교시하셨습니다(요3:3-8).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요한의 물세례도 받으셨습니다. 승천하심도 당신의 약속을 믿는 성도들이 정말 그렇게 승천하여 하늘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확인으로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요 14:2-3)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전 15: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인생은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끝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 하는 것이 최종적인 평가를 내리게 합니다. 석가는 죽어 무덤에 있으나 예수는 부활하사 승천하시는 장면을 갈릴리 사람들이 쳐다보게 했습니다. 예수는 하늘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마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땅에 아니 땅속에 갇힌 자에게 무엇을 배우는 것은 그 마지막이 저와 함께 땅속일 뿐이라면 영원한 희망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생각할 때 왜 하늘을 올려다봅니까? 그것은 소망의 하나님이 계신 보좌가 하늘나라요 또한 주께서 승천하사 재림하실 때까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3. 메시아 임무를 완수하시므로
귀국(歸國)하심

예수의 본국(本國)은 하늘나라입니다. 메시아의 임무차 지상에 오셨다가 다 이루시고 다시 귀국하신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요 18:3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3: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본래 삶의 현장은 죄많은 이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메시아의 임무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지상에 오신 것입니다. 지상에 오셔서 죄인처럼 되셔서 십자가로 죽으시니 보는 이들이 성인이나 된 것처럼 취급하거나 혹은 유대인들처럼 죄인으로 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향은 천국이었으며 하실 일을 다 이루신 후에는 귀국(歸國)하심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2. 재림(再臨)

초림(初臨)은 메시아 임무를 위해 오셨고 귀국하신 후 다시 이 세상으로 재림하실 때는 우리 성도들을 데리고 가시려고 오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여 공의롭게 정리하실 것입니다.

1. 언제 오시나?

세상 끝에 오십니다. 맨 나중에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신 예수 이후에 재림하실 예수의 몸을 본 것은 사도 요한일 뿐입니다(계1:). 그 후 재림하실 예수를 보았다든가 또는 본인이 재림 예수라는 것 등은 모두 사이비요 이단들의 말입니다. 왜냐면 예수는 세상 끝에 오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 24:29-30)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아래 4번에서 설명되겠지만 예수께서는 계시록 6장에서 18장에 예언된 말세의 여러 징조들이 다 이루어 진 후에 마지막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대환난이 끝난 후에 오실 것입니다. 그 전에 혹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소문들은 모두 거짓 증거들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했으며 아직도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2. 재림의 목적

▣ 성도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려고

우리는 어떻게 천국을 가는지 모릅니다. 도마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길을 묻기도 했습니다.
(요 14:4-6)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원문에는 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고 하며 정관사 (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길이 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요 14: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6: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마 24:31)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예수께서 다시오실 때 성도들이 먼저 죽은 자 중에서 일어나고 산 성도는 홀연히 변화된 몸으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예비하시고 성도들을 데리고 가셔서 거기서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천사들이 마지막으로 전도하며 온 세상의 성도들을 일시에 재림 예수를 맞이하게 모을 것입니다. 천사의 마지막 끝날 전도에 대한 환상이 계시록에도 나타납니다.
(계 14:6-7)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 세상을 공의(말씀)로 심판

종말론적으로 보면 복음이란 것은 곧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선언하는 것입니다. 재림은 어느 해 어느 때인지는 알 수 없다 하셨고 분명한 것은 역사의 끝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마 24:36)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나 본인이 그 날짜는 알 수 없다고 하시며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소관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모르신다는 재림의 날짜를 많은 이단들이 예언했습니다. 어떤 이가 예언한 것은 그 날짜가 지나가 버렸고 또 어떤 이는 자신들의 예언 날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예언 날짜에 주의 재림이 있다해도 그 예언자는 구원 얻지 못하고 저주받을 것입니다.

(요 5: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마 28: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요 5:30)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고후 5:8-10)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 12:48)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9:39)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 12:31)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초림의 예수는 고요하게 오셨으나 재림의 날에는 하늘이 떠날듯한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스런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그 장관 앞에 죄인들은 무릎을 꿇게 될 것이며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 20: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전 11:9)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심판은 비관적 사유의 개념이 아닙니다. 어지럽게 역사된 세상의 정돈이며 의와 불의의 판단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할지라도 인간의 성품에는 평가보다 더 무겁고 진지한 심판의 결론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3. 재림 양식

공개적으로 오실 것입니다.

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는 1843, 1944년에 예수 재림이 있다고 두 번씩이나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1914년에 재림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날짜 예언은 처음부터 할 수 없는 예언입니다. 비공개적으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재림 예수라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행 1:11)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계 1:7)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마 24:26-27)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가 보는 데서 오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영광의 몸으로 오실 것입니다

(눅 24:42-44)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제자들이 부활의 주를 목격하고도 영(靈)으로 생각하므로 주께서 그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며 부활하신 몸 자체를 실증해주셨습니다. 그 부활의 몸은 영광스러워졌을 뿐 인식 가능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부활의 영광스런 몸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의 정신적 가르침을 통하여 성도들의 영을 감동하는 것이 재림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오실 부활의 몸을 우리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일 3: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계 1:13-16)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기록한 내용입니다. 감히 죄인들이 맘놓고 쳐다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영적으로 신령함과 순교적 신앙자인 사도 요한도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직면하고 그 발 앞에서 죽은 자같이 되어 쓰러졌던 것입니다.

성도라도 부활을 입기 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주의 재림 시에 땅에서 부활을 먼저 입고 영육간에 주를 뵙는데 지장이 없을 때 가능합니다.

돌연한 강림

▣ 도적같이 오심 - 도적이 오듯 알 수 없는 시간에 오신다는 뜻입니다.

(마 24:43-44)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노아의 물심판 때에도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노아의 메시지에 무관했습니다. 그러다 모두 죽게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잠을 자는 때에 도적이 밤에 몰래 오듯 예수께서 오시게 되니 각성하는 정신으로 살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마 24:37-39)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 빛 가운데 오심 - 성도들은 말씀과 성령의 조명 안에서 맞이할 것입니다.

(살전 5:1-6)...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성도들은 주의 계시의 말씀을 읽고 듣고 해석을 받으면서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정신으로 살기 때문에 도적이 오듯 당황스럽게 주를 맞이할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말씀의 빛 가운데 영이 깨어 있으므로 주께서 예언하신 징조를 보면서 재림을 대비하는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영으로 잠자는 세상과 같지 않으며 오직 내세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잠을 자거나 죽게 되어도 영혼은 늘 살아서 그리스도께서 부르시는 날에 모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성도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시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도적같이 오실 주님은 일반적으로 심판하러 오실 주님을 맞이할 세상의 당혹함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단번에 오심

여러 차례, 공중 재림이나 지상 재림 등이 아닌 단회적 강림입니다. 휴거론자들이나 이단들이 예수의 재림을 여러 차례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이미 공중에 재림하신 상태라는 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죄를 조사중에 계신다고 가르칩니다.

혹은 마지막 때 대환난이 아주 극심하므로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중 재림하셔서 이끌어 올려 공중에서 대 환난을 피하게 하셨다가 환난이 끝난 후 다시 지상에 강림하실 것이라 예언하는 휴거론은 참으로 예수의 권능을 제한하고 있으며 예수의 증인으로서 나약함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단번에 오실 것을 명하셨습니다.

(고전 15: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마 24:26-27)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4. 재림의 징조(마24: 계6:-1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는 알 수 없고 징조로써 마지막 세상 끝을 알 것입니다. 세상 종말은 갑자기 도래하는 환경이라기 보다 시사성이 있을 것이며 합리적으로도 이해가 될 전망입니다.

(마 24:3)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 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 24:36)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행 1:7)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적그리스도가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

(마 24:4-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살후 2:1-8)...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말세라 운운하는 이 때 날짜를 예언하는 자들이 많은데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성전에 앉아 자신을 숭배할 신이라 천명하는 날이 되야 비로소 말세가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단 9:27)그가(적그리스도) 장차 많은 사람으로(이스라엘) 더불어 한 이레(7년)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단 12:7)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때 두 때 반 때(3년 반)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면 이스라엘과 7년 간의 평화조약을 맺게 될 것이며 적그리스도는 그 절반은 고요하다가 그 후반에 들어서면서 약속을 파기하며 자신이 성전(예루살렘)에 앉아 신이라 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숭배할 것을 강요할 것입니다. 그 때 많은 성도들의 순교가 예상됩니다.

(계 13:5-7)또 짐승이(적그리스도)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3년 반)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성도의 순교)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전쟁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면 세계는 전쟁의 도가니로 들어 갈 것입니다. 그의 정치적 문제와 세계의 빈곤과 자원 고갈에 따른 전쟁이 여기 저기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반감이 기초하는 전쟁이 크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마 24:7)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기근, 지진

전쟁으로 기근이 심하게 될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되 지역을 초월하여 어디든 나타날 것입니다.
(마 24:7)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성도의 환란과 순교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 반대자란 뜻대로 성도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며 많은 순교가 예상됩니다. 기독교 역사에 많은 순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세는 더 강렬하고 무서운 환난 가운데 순교될 것입니다. 또한 그만큼 신앙심이 강해지는 때입니다. 순교에 대비할 신앙을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마 24:9)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천지 변동

천체에 변화가 있을 것인데 이는 원죄(原罪)를 짓고 난 후에도 하나님은 땅에 엉겅퀴가 나게 하시는 저주를 내리심같이 말세의 죄악을 보시고 천지 변동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마 24:29)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대환난이 지난 후 예수께서 비로소 재림하실 것으로 예언되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환난을 피하고자 하는 도피심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큰 환난이 오기 전에 공중으로 피신을 하게 될 것이라 자의로 주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며 환난 후에 영광이 따릅니다. 이 복음적 해석이야말로 가장 성경적이며 정통적입니다.
(마 24:30)그 때에(대환난이 끝날 무렵)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구원의 완성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구원의 작업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천사들이 마지막으로 공중을 다니며 세계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선교의 끝을 맺을 것입니다.
(마 24:31)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5. 천년기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 전후로 천년 왕국이 있을 것이라는 신학적 견해가 각양입니다.

▣ 성경의 근거

성경 자체를 자세히 정독하시면 예수 재림 후(계시록 19장) 이 세상을 새롭게 하사 성도들의 세상으로 천년간을 살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계 20:4-10)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부활의 순서

첫째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둘째는 예수 재림 때 일어날 모든 성도들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이 세상을 버리시고 성도들과 천국 입성하실 때 죽어 있거나 살아 있는 모든 불신자들을 부활시켜 지옥으로 보내는 때입니다.

(고전 15:20-26)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여기 부활의 순서가 나타납니다. 먼저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셨고,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활 사건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부름받은 천하 성도들을 천국에 입성시키시는 날 그때까지 부활하지 못한 불신자들이 죽은 자가 다시 살고 살아 있던 불신자들도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되 고통의 지옥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 번째의 부활입니다. 지상의 인간으로서 부활은 성도가 첫째 부활이고 불신자가 둘째 부활인데 이 둘째 부활은 나중에 있을 일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후천년설

지상의 세계가 마지막 때 1000년간 영광스런 기독교 세계로 지낼 수 있게 되고 그 후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세계 복음화의 기대심리 때문에 이런 희망적인 학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대환난이 있을 것으로 예언되어져 있으며 갈수록 세상은 악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마24:12). 죄악이 하늘에까지 사무쳐(계18:5) 심판이 따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 24: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계 18:5)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이 후천년설을 주장하는 학자는 뵈트너, 하찌, 스트롱 등입니다.

무천년설

숫자적인 1000년을 무한한 시간적 의미로 보는 견해입니다. 예수는 어느 날 갑자기 재림하셔서 그때부터 우리가 영원히 천국 생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1000년,벧후3:8).
그러나 예수의 재림 전에 있을 대환난의 징조는 예수께서 어느 시(時)에나 무턱대고 재림하신다는 것과는 다르게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벧후 3: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그러나 계시록의 본문은 1000년의 기간이 구분되어 나타나 보이며(계20:5,6), 그 후 지상 생활 1000년은 완전히 없어지고 또 지구를 멸하여 버리시며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1000년간의 왕국 생활은 이 지상의 생활로 보입니다(계20:11,12:1).
어거스틴, 칼빈, 워필드, 벌코프, 렌스키등 보수주의자들에 속하는 신학자들이 지지합니다.


시대론적 전천년설

세상 끝날에 7년간의 대환난이 시작되기 직전에 교회(성도)는 공중으로 휴거되어(살전4:17) 그곳에서 대환난을 피하며 오히려 공중에서 혼인 잔치가 열리고 환난이 지난 후 다시 지상에 강림하여 1000년간 지상 왕국을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거를 찾기가 불가능하며 구원론과 성령론에도 상당한 혼란을 가져다줍니다.
스코필드, 뿔링거, 끄레이, 이상근, 조용기 등이 지지합니다.

전천년설
7년 대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이 재림하신 예수와 함께 부활을 받은 그 몸으로 새롭게 하신 이 지구에서(계11:15) 1000년간 왕노릇 하다가(계 20:6) 이 지상은 없어지고(계20:11)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계21:1) 영원히 사는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학설입니다(계20:3-7). 이 학설이 가장 적합하다고 봅니다.

(계 11:15)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 20: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아브라함 카이프, 이레니우스, 저스틴, 터툴리안, 파피아스, 디오니시우스,박형룡, 박윤선 등이 지지합니다.

▣ 전천년설이 합당한 이유

본문에 나타난 (계20:4-7) 1000년은 어느 기간을 말하고 있다는 것과 그 후에 지상을 없애 버리시는 구분된 역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계20:11). 그러므로 여기 1000년은 문자적으로 보아야 옳은 줄 압니다.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며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져 있습니다(계11:15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 ").

이 외의 천년기설은 상술한 바대로 따를 만한 이론이 성립되지 않거나 풍요한 자료가 없다는 것입니다.

▣ 전천년설에 대한 의문과 해답

1000이란 숫자가 벧후 3:8에서 보는 대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시간이 아니냐? (무천년주의자들의 의문)
(벧후 3: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란 표현을 베드로가 사용했습니다. 1000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 많은 것 , 영원한 것 '으로 영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해하는 것도 언제나 일방적일 수는 없습니다. 예컨대 뱀은 대체로 사단, 귀신을 상징합니다(창3:1,계20:1). 그러나 마10:16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뱀같이 지혜로워라 하셨으니 여기서는 뱀이 지혜의 상징으로 비유되었습니다.

포도나무의 경우도 포도 열매는 성도의 행실인데(요한복음15장 5절-) 이 포도가 계시록14장 18,19절에서는 불신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숫자에도 어떤 때에는 상징으로(마18:22,계7:4,14:3) 어떤 때는 문자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1000이란 낱말을 사용한 경우는 예수 재림을 불신하는 그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며 신앙을 각성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천년을 하루로 본다면 하루 동안의 왕국이라는 말도 합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1000년 왕국 동안 살 수 있는 자는 이미 부활을 입은 성도와 아직 죽지 않은 불신자들이 포함되는데(계20:7-9) 그것은 부조화한 일로 보이지 않는가?

(계 20:7-9)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 몸으로 40일간이나 지상에서 사셨으며(행1:3) 그때에 제자들 앞에서 그들이 구운 생선을 잡수시면서 영이 아니라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증거를 보이셨으니 이것은 지상에서 부활 입지 않은 자들과 함께 하신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을 새롭게 하사 무공해의 천지를 만드시고 살아 있는 불신자들과 부활된 우리들이 함께 지상에서 1000년간 공존할 수 있을 것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의 부활은 1000년이 지난 후 그때까지 살고 있던 사람들과 그 죽은 불신자들과 함께 부활을 받아 멸망의 곳(지옥)으로 들어 갈 것입니다.

성도들은 괴로웠던 지상에서 1000년간 주님의 통치로 천년 왕국의 생활도 맛보고 또한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될 것이나 악인들에게는 지상에서 불완전한 만족의 생활(이기주의, 향락, 낭만...)로 그 즐거움을 다하고 오로지 지옥의 영원한 고통의 나라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갑절의 고통을 더하실 것입니다(계18:6,요5:29).
(요 5: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부활을 하는 날부터 영원한 천국생활이지 또 이 세상의 1000년간 생활의 필요성이 있는가?

죄로 인해 더러워진 이 세상이며 마귀가 지배하던 세계요(엡2:2) 성도가 편히 살지 못한 이 세상을 주께서 새롭게 하신다고 함에는 의미가 큽니다.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과 다른 세상 천국을 가져오는 것과는 의미상 다르니 새롭게 함은 있는 자체를 새롭게 함이요 곧 우리 성도가 새로워졌다고 할 때 영적으로 그 실존이 달라졌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지상을 새롭게 하사 저 유대인의 꿈인 지상 신정정치(神政政治)를 보여주실 수 있는 점과 우리 모든 성도들의 통쾌한 승리적 삶과 은혜로운 지상 생활의 만끽을 주시고자 함에 주님의 뜻이 있는 듯 하고, 그렇게 살고 난 뒤 때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으로 들어가는 은혜 위에 은혜의 축복으로 이어지는 멋있고 자연스런 과정으로 보입니다.
몸의 부활을 입기 전에는 성도들이 세상에서나마 영적 기쁨을 맛보았으니 부활의 날에는 얼마나 그 기쁨이 더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