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聖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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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에 대하여 말할 때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곧 |
성전(Scara Traditio)이다. 성전은 계시를 전달해 주는 주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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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구약 성서를 하느님의 공적인 계시로 받아들인다. 사실 구약성 |
서와 신약성서는 하느님 계시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다음 질 |
문을 던지게 된다. "신구약 성서만이 그리스도교 계시의 전부인가?" 개신 |
교의 성서 유일주의는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 카톨릭 |
신자들은 이 물음에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이유는 신구약 성서가 그 |
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신앙 공동체가 하느님을 체험하고 유일신 |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을 기록한 책인데, 이스라엘 역사라는 커 |
다란 틀 안에서 형성되었다. 신약성서는 나자렛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느님 |
의 아들로 고백하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을 기록한 책인데, 초대교회의 역사 |
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형성되었다. 이러한 신앙 공동체의 '역사라는 커다 |
란 틀' 을 일컬어 성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성전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
안에서 성서가 형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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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구약 성서는 하느님의 계시 전체를 포함할 수 없다. 만일 |
기록된 성서만이 하느님의 계시 전체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면 구원역사 |
에서 하느님의 계시의 공백이 생기는 기간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예를 |
들면 구약성서가 단편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 기원전 10세기부터인 |
데, 그러면 그 이전 성조들의 시대와 판관들의 시대에는 하느님의 계시 |
가 없었다는 말인가? 성조들의 역사와 판관들의 역사는 하느님의 계시와 |
상관없는 역사이고 거룩한 역사가 아니란 말인가? 최초의 신약성서는 기 |
원후 50-51년에 쓰여진 데살로니카 전서이다. 이와 같이 주님의 승천 후 |
약 20년 동안은 신약성서가 없던 시기인데, 이런 공백을 어떻게 설명할 |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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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성전 안에서 기록되고 해석되고 보충되어 형성된 책이다. 그리 |
스도교는 '책의 종교'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전통의 종교' 이다. 구약성서 |
가 있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 역사가 있었듯이, 신약성서가 쓰여지기 이전 |
에 이미 초대교회의 역사와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었다. 성서를 하느님의 |
말씀으로, 거룩한 책으로 규정한 것은 교회의 살아있는 성전이다. 사실 |
신구약 성서 어디에도 어느 책이 성서라고 쓰여 있지 않다. 그것을 규정 |
한 것은 성전이었다. 즉 신앙 공동체의 살아있는 전통이 성서를 형성시 |
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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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하기 위하여 성서와 성전을 물리 |
적으로 병치(竝置)하여 성전의 의미를 축소시키지 말아야 한다. "공의회 |
는 이 진리와 가르침이 기록된 책들과 기록되지 않은 성전들 안에 들어 |
있음을 안다." 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선언을 계시의 두 가지 원 |
천설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성서와 성전을 계시의 두 원천이라고 물 |
량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계시가 명제적 진리들로 환원될 수 |
있다고 보았던 데서 비롯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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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개신교에서도 성서와 성전은 병립되는 두 가지 실체가 아니며, |
전체로서 성전 안에 성서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유산이 다 내포되어 있다 |
고 본다. 196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 교회회의 신학문제 전 |
담기구인 '신앙과 질서 위원회' 제 4차 회의 보고서는 성전에 대하여 다음 |
과 같이 말한다. "(성전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한 세대에서 |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복음 그 자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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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성전이 없다면 성서는 죽은 글자일 뿐이다. 교회의 살아있는 성전 |
덕분에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 되고 신앙 공동체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
" 이 성전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성경전서(聖經典書)를 식별하며, 성경 자체 |
가 성전 안에서 한층 더 깊이 인식되고 끊임없이 생활력을 갖는다… 그러 |
므로 성전과 성경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상호 공통되는 바가 있다. 왜 |
냐하면 이 두 가지는 하느님의 똑같은 샘에서 흘러나오고 어느 정도 하나 |
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
계시헌장, 제 8항. 9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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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중섭 신부 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