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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김정일, MB 정부의 딜레마]

문수봉(李楨汕) 2009. 1. 19. 21:11

[정세분석] 북한과 김정일, MB 정부의 딜레마

[정세분석] 북한과 김정일, MB 정부의 딜레마

 

 

김일성은 김정일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하고 이른바 제왕학을 가르치면서 정치경험을 쌓게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이 병들고 노쇠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후계자를 공식지명하지 않았고, 후계자 수업을 시키지도 않았다. 

 

북한처럼 폐쇄된 왕조사회에서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김정일의 사후를 위태롭게 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는 최근까지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를 거론하는 것조차 꺼렸다. 

 최근들어 김정일은 김정남에게 '새별장군' 정도의 칭호를 붙여주었지만,

김정남에게 군권을 비롯한 어떠한 실권도 넘벼주지 않았다. 아직도 북한에는 공식 후계자가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김정일이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설이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김정일의 "김일성 암살설" 또는 "사망 방치설"이다. 

자신이 아버지인 김일성을 암살했으므로, 자신도 역시 후계자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무서운 위기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94년 7월 3일.
김일성이 묘향산초대소에 도착했다. 이 묘향산초대소에서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있을 예정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행장을 풀기가 바쁘게 김영삼 대통령의 숙소로 정해진 초대소를 찾았다. 김일성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이 머물 숙소를 들러 냉장고의 크기며 방의 조명문제, 가구색깔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둘러 보았다.

 

그는 들떠 있었다. 마음이 흡족해진 그는 자신의 서재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지런히 글을 썼다. 훗날 서울을 답방할 때 직접 낭독하게 될 원고였다. 원고는 30분짜리로 북한을 소개하고, '남한은 돈이 많지만 북한은 주먹이 세다'는 등 비유법까지 사용하면서, 남과 북이 합쳐지면 세계 선진국이 되어 큰소리 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는 컸다.

 

김일성은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김정일에게 일러주고 싶었다. 전화를 받은 김정일은 "수령님, 서울에 가시면 그냥 '김일성이 왔습니다.' 그러지만 말고, '백두산의 호랑이 김일성이 왔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치라고 부추겼다. 김일성 주석은 김정일의 그러한 대답에 어린애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전화를 끊자마자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그날 밤, 대동강 초대소에서 비밀모임이 열렸다. 연형묵, 리용철, 김용순 등 최측근들이 즉시 호출에 불려왔다.


"통일이 중요한가. 사회주의가 중요한가. 누가 한번 대답해 봐."

그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의 북한방문까지 예정되는 등, 통일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눈치를 굴린 누군가 재빨리 대답했다.
"장군님, 우리는 수령님 대에 통일을 이룩할 것입니다."
그러자 김정일은 와인잔을 던지면서 소리쳤다.
"저 새끼, 내다 쏴 죽이라!"


상황을 감지한 노련한 연형묵이 대뜸 한발 나섰다.
"통일보단 사회주의가 더 중요합네다."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김정일은 분풀이하듯 자신의 속마음을 쏟아냈다.


"우린 사회주의를 지켜야 돼. 통일을 하자는 놈들은 사회주의를 포기하자는 놈들이야. 동독이 흡수된 것을 보면서 '통일, 통일' 하는 놈들은 모두 다 노망한 놈들이야. 사회주의가 무너지면 우린 모두 다 흡수되고 말아.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이 자리에서 살아 있을 것 같아?"

 

노망? '노망'이란 늙은이가 제정신이 아니란 뜻이다. 누굴 빗대서 한 말일까.

통일보다 사회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토론하기 위해서 측근들을 모은 것일까.

 

그때부터 한동안 '통일'이라는 단어는 북녘에서 사라졌다.

김일성 사후에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에 '통일'에 관한 창작을 금지하는 문건이 하달되기도 했다고 한다.

 

1994년 7월 7일.
김일성은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부관에게 담배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부관이 '오늘 너무 많이 피우시었다.'고 걱정스럽게 고언하자 김일성 주석은 버럭 신경질을 냈다.

 

김일성주석이 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은 새벽 1시였다.

밤 늦도록 서재에 불이 켜진 것을 이상히 여긴 부관이 문을 열어 최초로 발견했다.

그는 새파래진 얼굴로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수행원 전원에게 비상이 걸렸다. 이 사실은 즉시 김정일에게 알려졌다.

김정일은 헬기를 보내겠다고 했으나 한 시간이 넘도록 헬기는 도착하지 않았다.

 

1994년 7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묘향산 초대소의 서재에서 숨을 거두었다.
병명은 심근경색이었다. "심근경색"은 발작시 응급조치만 제대로 해도 사는 병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고작 심근경색 따위로 사망하다니.... 각 국의 정보국은 이런 사실에 의문을 표했다. 김일성 주석이 묘향산 초대로로 출발할 때, 호위 총책임자는 김정일이었다.

 수 많은 정보가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그 날 동행성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체크한 것도 김정일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날', 공교롭게도 김일성 주석 주치의가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의 주치의는 그 날, 김정일로부터 특별휴가를 받은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맥박, 혈압, 체온 등 신체상황을 수시로 검진하고,

웬만한 응급 수술도 할 수 있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인 '독일산 최첨단 의료장비'도

어떻게 된 셈인지 수행에서 제외되어 있었다고 한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죽음이 확인된 순간, 김정일은 자신을 보위하는 2호 호위총국에 긴급히 비밀지시를 내렸다.
김일성을 보위하는 1호 호위총국을 철저히 감시하고 전투태세를 갖추라는 지시였다.

곧 이어 김정일은 '1호 호위총국'을 해산하고 호위사령부 선전부장, 정치부부장, 조직부장등 모든 간부들을 숙청했다.

 

아버지 김일성을 따르던 1호 호위총국은 전멸하고, 김정일을 따르던 2호 호위총국이 세력을 잡은 것이다.베일에 가려진 북한, 철통 보안 속에서 벌어진 암살극....

그러나 보안은 완벽하게 유지되지 않았다.

 

........................

 

위 글은 필자가 2005년, 소설 [북벌-만주정벌]을 기획하면서 일부 인용, 재구성한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면서 쓴 하나의 "가상假想" 다큐멘터리라는 것이다.

 위의 글을 자세히 읽어 보신 분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김정일이 미리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는지....

 

이런 사정을 감안해 보면 (필자의 짐작이지만) 아마 김정일은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거나 지명하더라도 아무런 실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 김정일이 죽으면 북한의 권력은 공백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기다리는 기회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다.

 

 

중국

2009년 현재.

중국은 김정일이 죽고 북한체제가 흔들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식량난으로 극심한 위기를 겪을 때, 싸늘하게 북한을 외면했었고,

올해도 100만톤이나 되는 식량이 부족하여 모조리 굶어 죽을 판이지만 중국은 북한을 돕지 않는다.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이 흔들릴 것이니까 돕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돕고 싶은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이다.

 

중국은 조.중 국경지대에 4만대의 트럭과 십수만명의 군대를 배치하고 국경 도로는 완벽하게 정비해 놓았다. 동북공정의 완결편이 이렇게 준비된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김정일의 사후, 대량 탈북 등 북한이 흔들리면 중국은 4만대의 트럭에 식량과 생필품을 가득 싣고 북한에 진입할 것이다. 이 때 명분은 물론 '인도주의적 북한주민 지원'일 것이고, 그대로 북에 눌러앉아 북한을 흡수합병할 것이다.'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절반이 중국으로 넘어 갈 판이다.

 

이렇게 되어야 십수년의 세월과 막대한 자금을 들였던 중국의 동복공정이 완료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국정원도, 국방부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바랄까?

북한의 안정이나 불안, 둘 다 일본에게는 만족사항이 아니다.

일본은 중국이 북한에 진입하고 한국이 안절부절할 때, 독도라도 챙겨두고 싶을 것이다.

 

우리가 6.25 전쟁으로 정신없을 때, 일본은 독도에 공군기와 함정을 파견했던 역사적 사실이 있다.

또한 2차 대전 후, 일본의 경제부흥은 한반도의 전쟁 때문이었다. 

한반도가 불안해지면 제 2의 경제부흥을 꿈 꿀 수 있는 것이 일본이다. ....................

 위 글은 필자가 2008.11.09에 쓴 "[정국분석] 동북아와 김정일"의 일부다.

 

 

일본

2009년 현재.

2009년 1월 12일. 이시하라 일본 도쿄도 지사가 말했다.

"북한이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다."

 

이에 대해 북한이 파르르 떨며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내었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

불안한 북한과 정권유지에 급급한 김정일에게 대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시하라의 망언을 가장 즐길 나라는 어딜까.

중국이 귀 밑까지 찢어지는 입을 다물고 표정관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 하다.

 

 

북한 

2009년 현재.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대한민국을 향하여 선전포고에 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매국역적 리명박 역도는 새해벽두부터 협력으로는 북남관계를 개선할수 없다고 서슴없이 공언하였다. 이것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에 대한 로골적인 부정이며 6.15통일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공공연한 대결선언이다.
정전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결은 곧 긴장격화이며 그것은 막을수도 피할수도 없는 전쟁이다."

 

병든 통치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김정일이 또 다시 전쟁 가능성을

내비치며 벼랑끝 전술을 벌이고 있으며, 그 자신이 진짜 벼랑 끝에 서 있다.

 

북한은 올해 100만톤의 식략이 부족하다고 한다. 또 다시 굶어죽는 형국이 전개될 판이다.

내부가 불안할 때, 김정일이 흔히 쓰는 방법이 국민의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서 내부의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 

 

이 때 북한이 가장 즐겨 써먹는 방식이 전쟁 분위기를 반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남한이 불안해 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북한 내부를 조일 수 있다.

준전시 상황을 핑게로 하여 불만세력을 모두 없애버릴 수도 있다.

 

고구려가 망한 것은 고구려가 약해서도 아니었고, 중국이 강해서도 아니었다.

을지문덕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그 아들인 남생과 남건이 권력투쟁을 벌인 결과, 

권좌에서 밀려 난 남생이 당나라를 끌어 들였고, 당나라는 큰 힘 들이지 않고 고구려를 접수했다.

 

 

대한민국

2009년 1월 현재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방부, 합참, 육,해,공군은 전군에 비상을 걸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돌발행동 가능성에 대한 반사적 대응일 뿐, 청와대의 안보관은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종합 대책은 있는지 없는지 발표되지 않았고

성남 비행장의 할주로를 3도 틀어서라도 제 2의 롯데월드 건축허가의 특혜를 베풀 생각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활주로를 3도 틀어도 전투기와 555 미터짜리 초고층 빌딩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검토가 끝난 사항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는데도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판이니 대통령의 안보관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중국은 북한을 접수할 준비를 끝냈고,

일본은 해저 자원을 개발하겠다고 하면서 독도 근해를 넘보고있고, 중국더러 북한을 삼키라고 종용하고 있는데,MB 정부는 ICBM(대륙간탄도탄)의 핵심기술이 될 수도 있는 인공위성 발사체 제작을 일본 미쓰비시에 넘길 모양이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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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호와 국가 안보는 대통령의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헌법에도 나오듯 우리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다.

 당연히 북한의 영토가 중국에 흡수, 편입되어서도 안 되고,

일본이 중국과 입을 맞추고 전략적으로 북한을 중국에 떠넘기려는 공작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물론 북한이 내부위기 무마용으로 도발할 가능성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우리는 북한의 공갈, 협박에 물렁하게 당해서도 안 되며,

김정일이 죽고 난 후 중국이 북한을 접수할 단 1%의 가능성도 원천봉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안보관이 시험대에 올랐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일이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2009.01.18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