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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

문수봉(李楨汕) 2009. 2. 4. 16:52



조선 후기에 중건된 불전의 그림 중에 민화풍의 화조화가 자주 눈에 띈다. 화조화는 표면적으로 장식적 성격이 강할 뿐 아니라 다른 그림에 비해 그리기 쉽다는 점 때문에 불전 건물 내외 장엄용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화조화가 단순히 그리기 쉽고 장식적인 효과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찰 장식화로 널리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송이 꽃과 한 쌍의 새에도 깊은 내용이 있어 보는 사람에게 맑고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과 새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바라 본 한국인의 생활 감정, 조화된 자연을 깊은 관심으로써 사귀어 온 한국인의 미의식이 작용하고 있었기에 자주 그려졌다.

화조화는 꽃이나 나무를 배경으로 새들이 짝지어 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하늘을 나는 새뿐만 아니라 물 위에서 사는 오리와 같은 물새 종류도 소재로 삼았다. 새는 고대 동양인의 관념적 속에서는 서왕모(西王母)의 청조(靑鳥)처럼 곤륜산 선계(仙界)와 지상을 오가며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였고, 신선들이 하늘을 떠다닐 때 타는 것이었으며, 민속에서는 죽은 자의 혼령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기도 했다. 물에 사는 물새는 물에 속박되어 있지 않다. 물을 벗어나면 창공을 날아오르는데, 이때 하늘은 아래의 땅 못지않게 물새에게 편안한 곳이다. 이런 속성 때문에 오리와 같은 물새는 특히 지상이나 천상의 공간에 구애되지 않고 환상과 현실 간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상징물로 애호되었다.

“별이 천상의 아름다운 노래라면 꽃은 지상의 아름다운 노래다.”라는 유명한 경구(驚句)가 있다. 옛 사람들은 만유를 창조한 조물주의 아름다운 마음이 엉기어 난만(爛漫)한 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꽃을 그릴 때 현실의 꽃 그 자체를 묘사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지닌 아름다움을 빌어 자연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로서의 꽃을 그리고 감상했다. 화가들은 특정 꽃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도 그 꽃의 객관적 형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꽃으로서의 모양만 갖추면 그것으로 만족해 했다.

양산 통도사 안양암 북극전에 아름답고 순정어린 조선 후기 화조화 몇 점이 있다. 한 작품은 매화꽃이 피는 봄날, 바람이 불어 꽃잎들이 흰 꽃보라처럼 휘몰아쳐 떨어지는데, 한 쌍의 물새가 꽃잎 흐르는 물위를 헤엄치며 노는 정겨운 모습이, 또 한 작품은 한 쌍의 이름 모를 새가 버드나무와 매화꽃을 배경으로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앞에 소개한 화조화의 물새가 청둥오리처럼 생겼으나, 이 그림을 그린 화공은 청둥오리를 그리겠다고 마음먹고 그린 것이 아닐 터이니, 그냥 그것을 물새로 생각하고 넘어 가는 것이 화가의 뜻을 바로 읽는 태도가 될 것이다. 이 그림에서 매화꽃이 물새 머리만큼 크게 그려진 것이라든지, 매화나무 전체 크기가 물새 몸뚱이만 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은, 옛 사람들이 자연을 보되 객관적으로 살피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관점과 개념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림에 보이는 한 쌍의 새, 한 그루의 매화나무는 단순히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것에 완결된 깊이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을 즐기는 한국 서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실로 복잡성보다 단순성을 즐기는 마음이 화조화를 감상하고, 또 그리는 마음인 것이다. 이런 성격을 가진 화조화를 보면서 원근대소 표현의 잘못을 따지거나 화격(畵格)을 논하는 것은 하릴없는 짓인 것이다. 대자연에 대한 숨김없는 애정이 꽃과 새를 통해 표현되어 있음을 깨닫고, 자유롭고, 호젓한 그리움이 깃든 한국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통도사 명부전 내부 공포벽에 또 하나의 애틋한 민화풍의 화조화가 있다. 봉황을 그린 것과 까투리를 그린 것이 귀면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봉황그림은 오동나무와 암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한 쌍의 봉황을 그렸고, 꿩그림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까투리 한 마리를 그렸다. 봉황은 상상의 새이니 만큼 그 실제의 모습을 본 적이 없을 테지만, 화공은 들어서 알고 남의 그림을 보아서 아는 봉황의 모습을 이렇게 잘 그려 놓았다. 바위틈에 난초가 자라고, 하얗고 둥근 달이 오동잎에 반쯤 가리어 떠 있는 모습이 아득한 전설의 시간을 그린 듯하다. 꿩그림은 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까투리와 울긋불긋한 꽃을 그렸는데, 그 자태에 그리움이 깃든 소박한 아름다움과 애수가 흐른다. 명부전은 염라대왕, 무독귀왕 등 저승 세계와 관련된 신중들이 봉안된 전각인 만큼 분위기가 다소 음산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순정어린 민화풍의 화조화가 장식됨으로 해서 명부전이 한층 밝고 아늑한 공간으로 탈바꿈 했다.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에서도 민화풍의 화조화를 만날 수 있다. 여주 신륵사 구룡루(九龍樓)의 누(樓)는 전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인데, 각 칸의 창방과 도리 양끝을 인휘 문양으로 단청하고 그 사이 여백에 많은 그림을 그려 놓았다. 퇴색이 심한 편이지만 연꽃과 새, 소나무와 새, 매화와 새, 모란, 수선화.소나무와 봉황 등을 그린 화조화를 감상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창방에 그려진 ‘연꽃과 새’ 그림은 씨앗이 드러난 활짝 핀 연꽃, 연봉오리, 넓은 잎으로 가득한 연못에 왜가리로 보이는 두 마리의 흰 새가 얼굴을 마주 대고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불교에서 연꽃이라고 하면 곧 맑고 향기로운 불성(佛性)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 그림의 연꽃은 그런 것과 관련이 없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의 연꽃이다. 자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정경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화조화는 서민 생활 속의 민화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고 소탈한 한국미의 감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통도사 명부전이나 안양암 북극전, 신륵사 구룡루의 민화풍의 화조화는 자연계의 조화된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거기에는 인간의 감정이 개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의 현실적 삶이라든가 감정을 초월해 있는 자연 그 자체의 이치와 원리를 드러내려는 데 뜻을 두고 있는 화조화가 있는데, 그 예를 고창 선운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원래 백이.숙제 등의 고사인물과 더불어 영산전 내벽에 그려져 있었던 것인데, 탈락의 우려가 있어 벽에서 때어내 현재 별도의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 이 화조화는 두 마리 흰 물새와 수변 풍경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는데, 간단한 소재를 다루었으나 세련된 필치와 완벽한 구도를 보이고 있어 상당한 수준에 이른 화공이 그린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미 살펴 본 민화풍의 화조화가 특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본 자연계의 조화된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면 이 화조화는 자연과 예술의 공통된 조화의 이치에 따라 꽃과 새를 그린 사의적(寫意的)인 그림으로 볼 수 있다. 감상자는 이 그림을 보고 한 폭의 화조화가 지니는 예술미를 대자연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완상하며, 거기에서 자연의 도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영산전의 화조화는 자연 풍경의 집중이라 말할 수 있으며, 그림의 새는 단순한 새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의 의미를 지닌 상징물로 파악된 새인 것이다.

화조화를 그리는 마음은 곧 단순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마음이다. 모든 것을 다 제시하지 않고 어느 하나의 존재를 곰곰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이다. 참다운 묘리는 기묘하고 별난 데 있지 않고 평범하고 담담한 데 있다. 참다운 묘(妙)는 높고 먼 곳에 있지 않고 얕고 가까운 곳에 있으며, 거창한 산수풍경에 있지 않고 한 송이 꽃과 한 쌍의 새에 있다. 이 평범하고, 흔히 볼 수 있으며, 한 쌍의 새, 한 송이 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평범하거나 보잘 것 없는 것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그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그것에 그 이상의 무엇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화조화의 꽃과 새는 결코 새와 꽃 그 자체가 아니며, 그 배후에 있는 여러 가지의 상징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화조화가 사찰 장식화로 어울릴 수 있는 이유를 찾는다면 바로 이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불교신문

*道窓스님***合掌 道窓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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