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라면 卍(역)은 불교의 상징이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사찰 현판에 그려진 것이고, 그 밖에 불전의 서까래, 기와, 탑비의 귀부, 불화 등 여러 방면에 나타나고 있다. 卍(역)은 범어(梵語)로 스바스티카(Svastika)라 하며, 원래는 글자가 아니고 상(相)이요 상징형이다. 이 상징형은 중국에서 卍이라는 글자로 개창(改創)되기 이전부터 고대 인도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그리스 등의 국가의 장식 미술에 모두 나타나고 있었으며, 바라문교, 자이나교 등에서도 이 문양을 사용해 왔다. 힌두교에서는 비슈누 신의 가슴에 있는 선모(旋毛)에서 발하는 서광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슴과 발 등에 나타난 것을 ‘상서로운 상(相)’으로 여겨 길상의 상징으로 삼음과 동시에 불심인(佛心印)으로 사용하였다.
卍(역)은 십자형을 기본으로 하는 동서남북의 상징에 우회전하는 운동적 요소가 가미된 형태이다. 십자형의 네 가지(枝)가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구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옮겨가는 태양의 궤적에 따라 공간이 분할된다는 사실이다.
고대인들은 도시나 궁성을 세울 때 남북 축선 상에 건물을 배치하고 남북과 동서에 각각 성문을 열어 사대문을 갖추어 십자의 형태를 취했다. 그것은 우주의 원리에 따라 인간의 자리를 하나의 소우주로 창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사문유관(四門遊觀) 한 행위는 곧 지구상에 창조된 소우주를 편람 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卍(역)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가로 한 번 그은 선은 삼세(三世)이고 세로 그은 것은 시방(十方)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는 무형적인 시간이고, 동.서.남.북의 사방은 방위적인 공간이다. 공간은 평등이고 시간은 차별이다. 그래서 은 일심의 덕이 삼세시방을 관통해서 종횡무진한 것을 나타낸다. 또 석가모니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행한 설법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문양을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무불상시대 예배 대상의 하나였던 바퀴모양의 법륜을 도식화 한 것이라고도 한다. 바퀴살의 모양을 형상화한 데서 생겨났다는 이야기이지만, 이 견해는 불교 성립 이전 그리스나 페르시아 등지에서 이미 이와 같은 문양을 사용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신빙성이 약하다 할 것이다.
卍(역)이 오른쪽으로 도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우주 및 태양계의 회전 운동에 동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도는 우선(右旋)은 우주 자연의 정상적인 운동 원리로 여겼으며, 그 반대 방향 즉 좌선(左旋)을 우주의 질서를 역행하는 것으로 여겨 이를 배척한다. 탑돌이를 할 때 우요삼잡(右繞三)이라 하여 탑을 중심에 두고 시계 방향인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데, 이는 우주의 운행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예이다.
한편 부처님이 전생에 선업을 쌓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특수한 32상(相) 80종호(種好)를 갖추었다고 하는데, 그 32상 가운데 백호상(白毫相)이 있다. 백호상의 요체는 부처님의 눈썹 사이에 흰털이 하나 나서 오른쪽으로 말려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 80종호에서도 신체의 털이 모두 오른쪽으로 말려 올라간다고 했다. 이것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주의 순행원리에 부합하여 길상적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엄경음의〉에서도 오른쪽으로 도는 형상을 설명할 때 오른쪽으로 도는 모양으로 표시하였다.
당나라 측천무후 장수 2년(693)에 불교의 길상상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卍자의 형태를 가진 글자를 만들어 정식 문자로 채택하였으며, 만덕이 모였다는 뜻을 새겨 ‘萬’자로 읽었다. 〈화엄경음의〉에서는 길상상의 상징 의미를 卍으로써 설명했는데, 卍은 그 발음이 만(萬)이며, 길상만덕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했다. 결국 은 만상(萬相)이 원만(圓滿) 유전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길상의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경〉 48권에, “여래의 가슴에 상(相)이 있다. 이 형상은 卍자와 같다. 이를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 한다” 했다. 또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에, “卍자의 상은 금강견고(金剛堅固)의 갈무리처로 마음을 장엄했다. 일체의 모든 마구니가 온다할지라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중국 후진(後秦) 때의 인도승려 구마라습(鳩滅什, 344~413)과 당나라 승려 현장(玄裝, 602~664)) 스님은 을 ‘德’자로 해석했으며, 길상해운, 유락(有樂), 경복(慶福), 행운의 의미로 번역하기도 했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자인 십지보살(十地菩薩)의 가슴 위에 생기는 길상상이라 했으며, 소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슴에만 생기는 한정된 것이 아니라 부처의 경지, 즉 불심인 그 자체라고 했다.
한편, 중국 민간에서는 卍자가 만능의 신력(神力)을 갖고 있으며, 우주 천지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글자로 간주했다. 중국 먀오족(猫族)의 풍습에서는 卍자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수차(水車)의 모양을 닮은 卍자를 풍농(農)을 가져다주는 주술의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 생활 장식 문양으로 널리 사용했다. 특히 주택의 창살 문양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길상만덕이 실내에 충만하기를 바라는 세인들의 세속적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불교 미술에 등장하는 문양의 역사는 매우 길다. 가장 오래된 예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하기 직전에 남겼다는 고대 중인도 마가다국에 있는 족적(足跡)이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紀)〉에 의하면 탑 부근의 정사(精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큰 돌에 부처님의 족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삼장법사 현장이 친히 이 족적에 예배하고 스스로 본을 떠서 중국에 가져왔으며, 지금은 산시성 방주(坊州)에 있는 옥화산(玉華山)의 돌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부처님 족적의 왼발 발가락에는 卍자 형태가, 오른쪽 발가락에는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 후에도 문양은 불교 미술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났는데, 대표적으로 인도 쿠샨왕조 때의 아마라바치 조각과 마투라 조각의 불공양제물 등에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굽타왕조 때 만들어진 아잔타석굴의 불족도(佛足圖)와 벽체나 기둥에 새겨진 부조, 불화의 배경 장식 문양에도 문양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 불화에서 문양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의 〈아미타삼존도〉에는 부처님 가슴 부분에 문양이 나타나고, 삼성출판박물관 소장의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2의 표지에도 같은 문양이 보이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 있는 고려 시대의 불화 가운데, 교토 치온인(知恩院) 소장의 〈미륵하생경변상도〉와 도카이안(東海庵)에 있는 〈아미타여래도〉, 그리고 도쿄의 일본은행, 네즈(根津)미술관 소장의 〈아미타여래도〉 등에서도 우선(右旋)하는 형태의 문양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고려 시대 불화에서는 우선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에서도 원주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비의 귀부와 봉화 각화사의 고려 시대 귀부에서처럼 좌선하는 형태의 卍문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원공국사승묘탑에는 두 가지 형식의 문양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다.
조선시대의 것을 예로 들자면, 예천 용문사 대장전에 걸려 있는 목각 탱화(1684년 작)의 액자 상단 부분에 우선하는 형태의 문양이 하나 새겨져 있다. 또한, 영주 부석사 소장의 괘불(1745년 작)에는 卍 문양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슴에 나타나 있으며, 구례 천은사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 돌절구에 새겨진 문양도 같은 형태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고려 시대 불화에는 우선하는 형태의 문양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간혹 귀부 등 석조물에서 좌선하는 형태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좌선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우선하는 형태가 혼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혼재 현상은 고성 건봉사에 있는 두 개의 돌기둥에서 뚜렷이 나타나 있다. 회전 방향이 각기 다른 문양이 한 곳에 병존하는 특이한 사례로, 왼쪽 기둥에는 좌선하는 형태가, 오른쪽 기둥에는 우선하는 형태의 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근년에 지은 사찰에서는 우선하는 문양이 시문된 경우는 한 두 개의 사찰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며, 좌선하는 卍문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축한 사찰 건물의 지붕 합각 부분이나 서까래 마구리에 그려진 것은 물론이고, 종단에서 불교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표지 역시 卍문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원래 길상 상징로서 문양이 동일한 뜻을 부여한 한자의 卍자와 함께 혼용되어 오다가 현대에 이르러서 卍자로 일반화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출처;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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