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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반가사유상]

문수봉(李楨汕) 2009. 2. 4. 17:33


보살상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생구제 생각하며 명상 잠겨 ‘싯다르타 태자 형상화’說도
한국은 반가상, 중국은 교각상이 주류 국보78호는 미륵보살 예술의 최고걸작

미륵은 범어(梵語) 마이트레야(Maitreya)를 음역한 것으로, 마이트레야는 친구를 뜻하는 ‘미트라(mitra)’에서 나온 말이다. 미륵이 친구처럼 친밀하고 자비롭다고 하여 그렇게 말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중국과 한국에서는 그 뜻을 새겨 자씨(滋氏)보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미륵보살상 가운데는 보통의 보살상과 달리 의자에 앉은 자세로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뺨에 댄 채 깊은 사색에 잠긴 듯 한 모습을 한 보살상이 있다.

사진설명: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78호) 눈을 내리 깔고 고개와 등을 약간 앞으로 숙인 자세가 깊은 사유의 세계에 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륵보살상 중에서도 최고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와 같은 보살상을 미륵보살 반가상(半跏像), 또는 미륵보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라고 하는데, 미륵보살상이 이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미륵보살 자체의 성격과 관련된 설명이요, 또 하나는 싯다르타 태자와 관련된 해석이다.

우리나라 미륵보살반가상은 서산마애삼존불상의 좌협시보살과 같은 마애 조각, 미륵보살반가석상(보물 제36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같은 비상(碑像), 금동제 등 다양한 재질로 제작됐다. 금동제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 방형대좌금동미륵보살반가상(보물 제331호)과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금동미륵반가상(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물 제643호) 등이 있는데, 특히 국보 제78호는 석굴암 조각상들 못지않은 영성(靈性)과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최우수작으로 꼽힌다.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 반가사유상의 외형적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눈을 살며시 감고 고개와 등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어 깊은 사유의 세계에 들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네모꼴에 가까운 얼굴은 풍만한 느낌을 주며, 광대뼈를 나오게 하고 입가를 들어가게 하여 미소 띤 얼굴을 만들었다. 상체는 당당하면서도 곧고 늘씬한 모습이며, 허리부분에서는 우아한 곡선미를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율동적이어서 보살의 우아한 모습이 한층 더 돋보인다. 균형 잡힌 자세, 아름다운 옷 주름, 철리적인 지혜가 담긴 듯한 미소, 맑고 깨끗한 풍모를 지니고 있어 미륵보살 미술의 최고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미륵보살상을 좀더 살펴보자면, 국보 제83호 미륵보살반가상은 국보 제78호 미륵보살반가상보다 장식적 요소가 적어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장신구는 머리에 쓴 보관과 목의 목걸이가 전부이지만 의자를 타고 흘러내리는 천의 묘사는 앞의 것보다 오히려 더 화려하고 장식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방형대좌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 사각형 대좌 위에 올려놓은 원형의 복련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긴 얼굴은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미소가 없는 정적인 표정으로 깊은 명상에 빠져든 인상을 풍긴다. 머리는 보발(寶髮) 형식으로 평평하게 표현되었고 4각형의 대좌는 보살상보다 크게 만들어져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대좌에는 마름모꼴 문양이 1면에 2개씩 뚫려 있는데 대좌에 보이는 이런 모양은 우리나라 금동불에서는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또한 비상(碑像) 형태로 된 미륵보살반가석상(보물 제368호)은 연기군 비암사에서 발견된 것이다. 다른 미륵보살상과 마찬가지로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반가부좌를 결하고 있다. 이 비상에서 흥미로운 것은 뒷면에 새겨져 있는 탑인데, 이것은 미륵정토에 화생하기 위한 공양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설명: 서산마애삼존불 좌협시 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4호)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이 잘 나타나 있다. 오른손을 턱에 대고 오른다리를 왼다리 무릎위에 걸친 반가보살상은 청순한 웃음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륵보살상은 이처럼 반가부좌 형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인도나 중국의 경우에는 교각좌상(交脚坐像), 의좌상(倚坐像), 반가부좌상(半跏趺坐像), 전(全)가부좌상, 입상, 반가사유상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유상은 2세기경 인도 쿠사나왕조에서 기원하여 3~4 세기경 불교 동전(東傳)의 길을 따라 이와 같은 종류의 도상이 중국에 흘러들었고 이어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밝혀져 있다.

남북조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유상 제작 빈도가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도상적으로도 오늘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사유상 형태로 정형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모습은 싯다르타 태자 또는 미륵보살을 나타낸 것이었다. 5세기경 북조(北朝) 시대의 미륵보살사유상을 보면 어떤 것은 싯다르타 태자를 닮은 것이 있고, 또 어떤 것은 미륵보살로 보이는 것이 있다.

그런데 도상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 없기 때문에 어느 것이 싯다르타 태자상이고 어떤 것이 미륵보살상인가를 확실하게 가려내기가 쉽지 않고, 또한 어떤 상이 먼저 제작되기 시작했는지에 관해서도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불본행경(佛本行經)〉 등 본연부(本緣部, 부처님의 전생담을 기록한 경전) 경의 기록에 의하면, 싯다르타 황태자는 12세 되던 어느 봄날 부왕과 함께 성 밖으로 나와 농경제에 참석했다. 그때 땀 흘리며 힘겨워하는 농부들, 쟁기를 끌면서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는 소, 새들에게 잡혀 먹히는 흙 속 벌레들의 몸부림을 보았다.

그것을 본 싯다르타 태자는 큰 충격을 받아 염부나무 아래서 그 고통의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깊은 명상에 빠져들었는데, 이것을 후세 사람들은 태자의 초선(初禪)의 경지라 했다.

이처럼 본연부 전적에는 싯다르타 태자가 인생무상을 느껴 사유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나, 정작 미륵신앙의 소의경전인 〈미륵상생경〉을 비롯한 〈미륵하생경〉, 〈미륵성불경〉 등에는 미륵의 사유에 대한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사유상이 싯다르타 태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사유상이 미륵보살사유상의 원형일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 해주는 유물이 일본 오사카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수하보살반가사유상(樹下菩薩半跏思惟像)’으로 명명된 작은 부조상에는 의자에 앉아 왼쪽 다리는 세우고 오른 쪽 발을 왼쪽 다리 허벅지 부근에 올려놓은 채 오른 손으로 볼을 가볍게 궤고 있는 보살 모습을 한 인물이 보이고, 싯다르타 태자가 그 아래에서 깊은 명상에 잠겼다는 염부나무로 생각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묘사돼 있다. 이 보살의 자세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자세와 같기 때문에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수하보살반가사유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유상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미륵보살의 성격과 관련된 것이다. 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7000만년이 되는 때, 즉 인간의 수명이 8만 세가 될 때에 미륵보살이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해 3회의 설법으로 272억 인을 교화한다고 했다. 이러한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머물다가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 동안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 곧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진설명: 수하보살반가사유상 싯다르타 태자가 사문유관 후 염부나무 아래서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 모습이 미륵보살사유상의 모습과 같아서 흥미롭다.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
같은 사색의 모습을 두고 명상에 들게 된 동기를 이처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싯다르타 태자 사유상과 미륵보살사유상의 표현 형식상의 유사성이 점쳐진다 하더라도 조상기록이 없고 도상학적인 특징이 모호할 경우에는 태자사유상, 또는 미륵사유상을 명확히 구분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반가사유상이 주로 제작되었던 것과 달리 중국에서는 반가사유상과 함께 교각상도 많이 조성되었다. 미륵굴(窟)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돈황 제275굴의 벽화에서처럼 미륵상생과 하생변상도가 함께 그려진 경우가 많은데, 상생의 경우에는 교각상을, 하생의 경우에는 반가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미륵보살상이 교각상이냐 반가상이냐 하는 문제는 이처럼 미륵신앙 형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도상적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삼국시대에 미륵보살상이 많이 조성되었는데, 대부분 반가사유상의 형태로 되어 있다. 반가(半跏)는 곧 반가부좌로서, 여래의 앉음 자세인 전(全)가부좌가 일부 변형된 것이다. 그래서 반가라 하더라도 그 모태는 어디까지나 여래의 원만안좌(圓滿安坐)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륵보살반가상의 사상적 배경이 미륵하생신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도솔천에 상주하고 있는 미륵보살이 아니라 이미 불자들의 마음속에 현세불로 자리 잡고 있는 미륵불이었던 것이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출처;불교신문

*道窓스님***合掌 道窓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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