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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문수봉(李楨汕) 2009. 2. 4. 17:29

계단(戒壇)

계를 주거나 설할때 사용 '부처님 머무는곳' 상징

부처님 당시 세운 계단이 기원 2층 석단 위에 진신사리 모셔
통도사 금강계단은 출가자만 금산사 방등계단은 재가자도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
사진설명: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계단은 일반 불상보다 높은 위치의 귀의처(歸依處)가 되기 때문에 계단 앞쪽에 건립된 불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국보 제290호)
계단은 원래 계를 주거나 계를 설할 때 사용하는 단(壇)으로, 탑처럼 절마다 다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양산 통도사, 김제 금산사, 그리고 달성 용연사에서 계단 유적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형태는 모두 네모난 이층 석단(石壇)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바탕이 되는 비교적 넓은 단 위에 상대적으로 좁은 또 하나의 단을 조성하고, 그 중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석종형(石鍾形) 부도를 안치해 놓은 구조로 되어 있다. 계단의 형태는 절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계단은 석가모니부처님 재세 시에 인도의 누지(樓至)보살이 기원정사 동남쪽에 계를 주는 단을 세운 것이 시초라고 하며, 그 이후에 각 사찰에 계단을 설치하는 관습이 생겨났다. 중국에서는 위나라 때 처음 계단이 설치되었고, 일정한 제도를 갖추게 된 것은 667년 당나라 도선율사가 정업사에 계단을 설치한 때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에서 불경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양산 통도사에 계단을 만든 것이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계단은 크게 금강계단과 일반계단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통도사의 계단은 특별히 금강계단이라 불리고 있는데, 금강계단이란 금강보계(金剛寶階)에서 유래된 말로 한 번 계를 얻으면 영원히 잃지 않는 것이 마치 금강을 깨뜨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통도사 금강계단에 관한 기록이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舍利)조에 보인다.

“선덕왕 때인 정관(貞觀)17년 계미에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지고 온 부처님의 두골과 어금니와 불사리 100개와 부처님이 입으시던 금점이 있는 붉은 가사 한 벌이 있었는데, 그 사리를 삼분하여 일부분은 황룡사탑에 넣어두고 일부분은 대화사탑에, 또 일부분은 가사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두었으며, 기타는 소재가 분명치 않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계단의 구조에 대해서는 “계단(통도사)에는 이층이 있는데, 상층 가운데에는 솥을 엎어 놓은 것과 같은 석개(石蓋 : 돌 뚜껑)를 안치하였다” 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석개라고 한 것은 석종형 부도를 말하는 것으로, 사리를 넣은 사리공(舍利孔)을 덮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제 금산사 방등계단 >
사진설명: 이 계단을 방등계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출가수행자만을 위한 계단이 아니라 사부대중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보물 제26호)
통도사 금강계단은 신라 선덕왕 15년 초창 이후 고려 때 한번, 조선시대에 다섯 번, 1911년에 한번 모두 일곱 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현재의 상태를 살펴보면, 상하 이중의 넓은 기단 중심부에 직경 150㎝정도의 복련과 앙련의 받침 대석을 놓고 그 위에 석종형 부도를 안치해 놓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석종형 부도의 표면에는 동서에 아름다운 비천을 양각하였고, 다시 남북에는 사리함의 형태를 조각하였다. 기단 상단 4면에는 돌아가면서 비천을 조각하여 불사리에 대한 공양의 의미를 나타내었고, 하층 기단 4면에는 여래상과 보살상의 조각을 가득 채웠으며,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 입상을 조각하여 계단 수호의 뜻을 새기고 있다. 계단 주변에 석조 담장이 둘러져 있는데, 이것은 근세에 중수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신사리를 모신 계단 앞쪽에 불전을 건립하지만 건물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진신사리를 모신 계단을 일반 불상보다 높은 위치의 귀의처(歸依處)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 계단 앞에 있는 불전을 보면 외부 사면(四面)에 편액이 걸려 있다. 북쪽에 적멸보궁이라고 쓴 것을 비롯하여 동쪽에 대웅전, 남쪽에 금강계단, 서쪽에 대방광전(大方廣殿)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적멸보궁이라 했고, 사리탑은 금강불괴(金剛不壞)의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기 때문에 금강계단이라고 했으며, 이곳은 진리의 몸인 법신불(法身佛)이 상주하는 대화엄(大華嚴)의 근본도량이 되므로 대방광전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대웅전은 석가모니 세존을 모신 불전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금산사 방등계단 석종형 부도의 구룡(九龍) >
사진설명: 석가모니부처님 탄생설화와 관련된 장식조각으로 생각된다.
한편, 김제 금산사 경내 북쪽에 송대(松臺)라는 높은 대가 있는데, 대 위에 석종형 부도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앞쪽에 오층석탑이 서있다. 이 계단을 방등계단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통도사의 계단을 금강계단이라고 하는 것과 의미상으로 다소의 차이가 있다. 방등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 계단이 출가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부대중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계단의 기단은 상하 이층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대석(臺石).면석.갑석(甲石)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하층 기단 사면에 돌기둥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난간을 돌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돌기둥에 얼굴 모습이 특이한 천인상(天人像)이 새겨져 있고, 사방 모서리에는 사천왕이 세워 져 있는데, 이 조각상들이 계단의 장엄을 더하고 있다. 이런 공간 구성과 장식은 이 계단이 단순히 수계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미륵상생 신앙에 의하여 사후에 왕생할 도솔천궁(兜率天宮)을 상징하여 건립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륵상생경〉에 의하면 도솔천에는 내외의 이원(二院)이 있으며, 외원은 수많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내원궁(內院宮)이라고 부른다. 미래불인 미륵보살은 현재 이 내원궁에서 설법하면서 하생하여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고 한다. 이곳에는 칠보로 된 궁전이 있고, 한량없는 천인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키는 2리, 수명은 4000세, 인간의 400세가 이 하늘의 일주야(一晝夜)라고 한다. 사바세계에 나는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이 하늘에 계시다가 성불한다고 불자들은 믿고 있다.

계단의 상하 2단의 기단은 도솔천궁의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을 상징한 것이며, 기단 면석에 새겨진 여러 상은 사천왕이나 팔부중과 같은 외호신장상이 아니라 도솔천궁의 외원에 살고 있는 천인상(天人像)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 바깥 아래의 난간은 도솔천궁과 그 아래의 천계(天界)를 구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계단 정면에는 석등을 설치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에는 석등 대신에 석탑이 하나 서있다. 그 위치에 석탑을 조성해 놓은 의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나, 아마 도솔천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탑을 깨끗이 하는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믿음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달성 용연사 계단>
사진설명: 계단 앞쪽에 ‘적멸보궁’ 편액이 붙은 법당이 있는데, 이것은 통도사의 경우와 같고, 금산사의 경우와는 다르다.(보물 제539호)
석종형 부도 꼭대기에 용두(龍頭) 아홉 개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할 때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목욕을 시켰다는 구룡(九龍) 출현의 상서(祥瑞)를 표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구룡에 대한 내용이 〈통도사 사적기〉에 보이는데, 사리의 신비로움을 말하는 대목에서, “금강단 석종 부도 위 여의주석(如意珠石) 구룡반석(九龍盤石) 아래 움푹 파인 곳에 항상 물이 가득 차 있고, 그 가운데 한 쌍의 푸른 달팽이가 매양 붙어 있는데, 석종을 들 때 사람이 보면 사방으로 흩어져 간 곳을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방등계단의 것을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부도 정상에 조각된 아홉 개의 용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끝으로 대구광역시 달성의 용연사 석조계단을 살펴보자. 용연사 내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이 계단은 다른 계단과 마찬가지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임진왜란(1592)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의 부처님 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스님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의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앞쪽으로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이 붙은 법당이 건립되어 있는데, 이것은 통도사의 경우와 같고, 금산사의 경우와는 다르다. 절 안에 세워져 있는 〈석가여래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이 계단을 쌓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을 통해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계단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출처;불교신문

*道窓스님***合掌 道窓스님

    www.dochang.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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