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적인 고별 쑈 (1984.12.30) / 都はるみ[미야코 하루미]
고별 쇼 1부 (1984년)
고별 쇼 2부 (1984년)
NHK 홍백가합전
NHK에 출연한 근황
미야꼬 하루미 (都はるみ)
한국계 엔카 가수인 미소라 히바리와 함께...한국계 일본 최고 엔카 가수 미야코 하루미
그녀의 매력은 고음과 저음을 마음대로 드나드는...특히 사근 사근 연사배 깍는듯한 저음에서 순식간에
제트기류로 치솟아 이 세상의 모든 비극적인 사랑에 핏빛 장미를 던지는 듯한 고음의 절규는 가히
팬들을 사로잡는 환상적이다.
미야꼬 하루미는 1948년생으로 16 세인 1964년 데뷰이래 현역으로 활동하는 일본 제일의 엔카 가수다.
이러한 명예와 부를 누린 그녀에게도 피를 토할 절규를 해야 할 비극이 있었다.
16 세에 데뷰한 미야코하루미는 독특한 꺽기 창법으로 신인 돌풍을 일으키며 세간의 주목 아래 모든
일본의 가수상을 휩쓸고 명실공히 여왕으로 등극하던 날........!
닌자 같은 일본의 메스콤은 그녀가 한국인의 딸이란 것을 밝히고 방송에서 추방시켜야 한다며 떠들어댄다
그녀로서는 28 세에 처음으로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노래도 사랑도 인생도 이때 부터 비틀거린다. 여인은 해협으로 달려가지 않을수 없는 비극으로 치달은
것이다.
그녀의 부친 이종택은 1940년 조국 경상도 김해땅을 떠나 잠사가 유명한 서부 일본의 어느 마을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세명의 일본인 잠사공과 같이 일을 하게 되는데, 그러던 중 한여인과 열애에 빠지게 된다.
바로 미야꼬 하루미의 어머니인 것이다. 이종택의 나이 42세, 처녀의 나이 27 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그녀는 태어난다.
천부적인 목소리를 타고난 것 또한 그의 부모로부터 이어져 온 한스러움의 대 내림이었을까?
열여섯의 처녀 몸으로 방송계에 진출하여 드디어 대망의 가수왕에 등극한다.
그러나, 한국계 2세라는 거대한 시샘과 차별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결국 1984년 12월 30일 (38세)
歸去來(귀거래)란 타이틀로 20주년 기념공연 및 은퇴공연을 마치고 현역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그녀는 수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우리 교포들과 일본 펜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펜들의 열열한 성원으로 다시 가요계에 화려하게 복귀하게 된다.
그녀는 더욱 원숙한 모습으로 우리앞에 당당히 섰다. 지금도 그녀는 일본 최고의 엔카가수로 우뚝 서 있다.
일본이 싫다. 일본 사람은 더욱 싫다.
그러나 미야꼬 하루미는 한국계 가수였기에 많은 아픔과 설음을 당하였다.
우리 대한의 뿌리라는 이유로...
그러기에 그녀의 노래가 더욱 아프게 들려오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의 한과 그의 절규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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