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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양현모의 작품을 통해 본 한국 석탑(石塔)의 미(美)

문수봉(李楨汕) 2017. 12. 11. 21:25

사진작가 양현모의 작품을 통해 본 한국 석탑(石塔)의 미(美)

 

탑 - 양현모展 - 류화랑


​1963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대학원을 졸업앴으며 이탈리아 instituto Italiano di Folografia를 수석 졸업했다. 1998년 이탈리아 밀라오 San Fedeld 갤러리 초대전<또다른 세상>을 비롯하여 현재까지 다수의 개인전 및 초대전을 가졌다. 중앙대대학원,상명대 대학원,카톨릭대 생명대학원에 출강했다. Il Studio를 운영하고 있다. Vogue, Bazaar Gq등 유명 패션 잡지 광고 기업인과 국내외 유명인들의 포트레이트를 작업하고 있다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영역은 완전히 분리되어있다. 이 두 분야는 각각 광고와 예술에 속한다. TV나 잡지에서 보는 광고를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큼 광고사진과 예술사진은 서로 다른 영역인 것이다. 광고사진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꾸려온 사진가가 예술사진을 찍기 어려운 이유는 이 두 영역이 추구하는 바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광고는 선주문 후제작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광고주와 대행사를 통해서 주문이 들어오면 그들과 목표를 공유하면서 시각적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예술사진은 누구의 요청이나 보상을 전재로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작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둘 중 어느 편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다른 형태의 작업이라는 뜻이다​.


양현모 작가는 지금도 소위 잘 나가는 상업사진 작가로서 유명한 잡지와 광고지면을 통해서 최고의 스타들을 모델로 하는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그가 지난 2-3년 간 틈만 나면 차에 장비를 가득 싣고 지방으로 촬영을 다녔다. 누


구도 의뢰하지 않은 작업이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그 여정을 통해서 그는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유산인 ‘탑’을 만나게 되었고, 그만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양현모의 탑은 변화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여준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탑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사계절을 모두 사진에 담고자 하였다. 봄기운이 가득한 햇빛을 받거나 흰 눈이 수북이 쌓인 탑은 같은 모습으로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변화하는 계절 속에서 탑을 관찰하면서 탑신이 주변의 번잡한 배경으로부터 분리되어서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는 것 같은 강렬한 체험을 했다고 한다. 그러한 체험은 탑을 주변으로부터 분리시켜서 바라보게 하였고, 자연스럽게 탑신 뒤로 배경 천을 설치하는 방법을 고안하게 하였다.

그는 모델의 모습을 가장 돋보이게 하려면 단순한 배경을 사용하는 것처럼 탑의 정교하고 대담한 형태미와 시간이 만들어 표면의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검은 배경을 선택하였다. 완성된 작품 속의 탑들은 하나같이 당당하게 빛을 발한다. 양현모의 탑은 정지된 시간의 단면이며 그만의 눈으로 찾아낸 아름다움의 정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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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사진 찍던 작가, 우리 塔에 빠지다 


2017년 12월 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월터 위키저 갤러리'. 아무런 배경 없이 오로지 검은 바탕 앞에서 촬영된 한국 석탑 사진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탑을 찍는 사진작가' 양현모(54·사진)씨가 뉴욕에서 첫 해외 전시회에 나섰다. 


패션·인물 사진 전문으로 특히 광고업계에서 스타 사진작가로 통했던 그는 7년 전부터 사람 대신 석탑을 찍는 사진작가로 '전향'했다. 한국 석탑이 가진 조형미에 매료됐고, 마감 시간에 쫓겨 허덕이며 작품을 찍어내야 하는 패션·광고 사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첫 해외 전시에 나선 건 이제 그가 재조명한 한국 탑의 조형미를 세계무대에서 확인받을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석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상징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1000여 년 전 만들어진 우리 탑의 완벽한 비례미, 섬세함, 단아함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탑을 찍는 그의 방법은 독특하다. 반드시 탑 뒤에 검은 장막을 쳐 다른 배경이 함께 찍히는 것을 차단하고, 탑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촬영한다. 아직도 디지털이 아닌 8~10인치짜리 대형 필름을 사용하고, 다른 조명 없이 오로지 자연광에만 의존한다.

이런 작업을 위해 500㎏에 이르는 무거운 장비를 산중까지 져 날라야 하고, 원하는 빛이 비치는 시간을 놓치게 되면 며칠 동안 기다려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는 "우리 석탑은 벽돌을 쌓아 올리는 중국의 전탑, 일본의 목탑과 확연히 구분되는 세밀한 아름다움이 있다"며 "탑과 눈높이를 맞춰 바라보면 올려다볼 땐 느낄 수 없던 세밀한 조형미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뉴욕 전시회는 오는 27일까지 계속된다.
[출처] : 김의한 조선일보 뉴욕특파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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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주 감은사지 삼층석압[국보 제112호] -신라시대



사진작가 양현모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한국의 석탑’을 주 1회 연재합니다. 작가는 석탑 뒤에 검은 장막을 내려 탑이라는 피사체만 조명하는 독특한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만나는 석탑들은 단아함과 군더더기 없는 깨끗하고 완벽한 비례를 보여줘 한국 문화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2.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 87호] -고려시대


 

잘생긴 탑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석조상(석조보살좌상·보물 84호)이 이색적인 탑이다. 탑 앞에 공양을 드리고 있는 석조상 보살이 걸치고 있는 옷 모양까지 섬세하게 남아있고 무엇보다 살짝 미소 짓는 온화한 얼굴이 아직까지 잘 남아있다. [ 사진·글=양현모]




3. 하남 춘궁리 오층석탑 - 고려시대



경기 하남시 춘궁동에 있는 높이 7.5m의 5층 석탑이다.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몸체)이 서 있다. 가장 꼭대기인 ‘상륜부’는 날아가고, 장식 부분인 ‘노반’만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남쪽 면이 많이 부서져 내부가 보인다. 탑신 1층을 2단으로 구성하는 방식은 고려 때 시작됐다. 짜임새보다는 웅장한 느낌이 강하다.

[사진·글=양현모 ] 

 


4.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 고려현종



경북 예천읍에 가면 절터도 거의 남지 않은 곳에 덜렁 탑 한 기가 서 있다. 고려 현종 때 건립된 개심사라는 절터다. 개심사지 5층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몸체 구조로 이뤄져 있다. 하층 기단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사람의 몸에 각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새김이 굉장히 세밀하다.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는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사진·글=양현모 ]



5. 속초 낙산사 칠층석탑[ 보물 제 499호]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 안에 있었으나 몇 해 전 화재로 손상됐다. 길쭉한 비례감과 기단부에 새겨진 스물네 잎의 연꽃무늬가 포인트다. [사진·글=양현모 ]

6. 여주 신륵사다층석탑[보물 제 225호] - 조선시대


경기 여주시 신륵사 다층석탑은 특이하게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기단부에는 연꽃무늬와 함께 상층 벽면에는 운룡문이, 하층 벽면에는 파도문이 새겨져 있다. 문양들이 정교하고 몸체에 대리석 특유의 마블이 드러나 탑의 수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상단부는 날아가고 7층까지만 남아 있다.[사진·글=양현모 ]



7. 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 제 122호]


진전사지 3층 석탑의 높이는 5m에 달한다. 현재 절터에 이 거대한 탑만 남아 있다. 진전사는 8세기 후반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와 1층 탑신에 새겨져 있는 부조가 눈에 띈다. 유려하게 천의자락을 날리는 ‘비천’과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부조물의 대비가 돋보인다. [사진·글=양현모]



8.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보물 제 1433호] - 고려초기추정




전남 영암 월출산 도갑사에 있는 석탑이다. 탑의 전체 모습이 하늘을 향해 날개를 휘저으며 맹렬히 솟구쳐 오르는 한 마리의 매와 같아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눈이 오는 날 달려가 눈을 맞고 서 있는 석탑을 다시 찍고 싶다. [사진·글=양현모 ]



9. 여주 신륵사 삼층석탑-고려시대



선비를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부끄러움에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 같다. 2004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말의 고승 나옹 혜근을 다비(茶毘)한 후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사진·글=양현모 ]



10.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국보 제 10호] -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받침부가 매우 낮은 반면 1층 몸체는 폭에 비해 높다. 층마다 보살, 천왕, 선녀 등 다양한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가까이에서 층마다 새겨진 조각들을 천천히 뜯어보아야 하는 탑이다. 화가가 몰래 숨겨둔 화첩을 넘겨보는 것처럼 인물 선이 아름답고 부드럽다. [사진·글=양현모 ]



11. 영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국보 제 48호]- 고려시대



강원 평창군 월정사에 있는 고려 초기 대표적인 석탑 중 하나다. 몇 차례 화재에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왜 저 탑이 하늘을 향해 놓인 계단으로 보이는 걸까. 세월호 영령들이 저 계단을 밟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며 천천히 셔터를 눌렀다. [사진·글=양현모 ]



12.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국보 제 35호] - 통일신라시대


 



전남 구례군 화엄사 각황전 뒤편, 동백나무 숲을 끼고 있는 돌계단 위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탑이다. 삼층 기단 부분에 사자 네 마리가 기둥처럼 서서 탑을 받들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 합장을 한 승상 조각물이 서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사진·글=양현모 ]

13. 당진 안국사지 석탑[보물 제 101호] - 고려 중기 추청


세월 속에서 주름이 잡히고 숭숭 이빨이 빠진 시골길 할아버지의 모습. 충남 당진 안국사지석탑이 그런 이미지다. 세월의 억센 손에 무너져 탑신은 1층만 남았고 마치 길거리에 박혀 있는 큰 바윗돌 두 개를 대충 다듬어 놓은 듯한 장대석을 받침돌로 삼았다. 한때 결이 곱고 우람한 체격의 젊음을 뽐내고 서 있었을 것이다.

[사진·글=양현모 ]

 


14. 구례 화엄사 서오층석탑[보물 제 133호] - 신라시대



4사자삼층석탑과 함께 구례 화엄사를 대표하는 석탑이다. 이중 기단에 5층의 탑신을 지니고 있다. 십이지상(十二支像)을 비롯해 사천왕상, 인왕상,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다. 탑의 아름다움에 젖어들면 세상의 시름이 잠시나마 잊힐까. [사진·글=양현모]



15. 익산 왕궁리 오층척탑[국보 제 289호] - 고려시대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고려의 백제계 오층석탑이다. 가벼운 새의 날개처럼 쫙 펼쳐진 지붕틀은 평평하고, 탑신부 1층의 지붕틀이 기단보다 넓은 점으로 보아 백제석탑의 양식을 보여준다. 이 석탑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사진·글=양현모]



16.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제 호] - 백제시대



충남 부여에 남아 있는 정림사지는 백제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낮은 기단에 5층의 탑신이 얹혀 있는 석탑은 균형 있는 비례감이 특징이다. 각 위치의 돌들은 서로 짜임새 있게 잘 맞추어져 있다. 1층의 탑신에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백제 멸망 당시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의 업적을 새긴 것이다. 백제의 깔끔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이자 외부의 침략으로 상처 입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역사적 산물인 셈이다.

[사진·글=양현모 ]


17. 향성사지 삼층석탑[보불 제 443호] - 신라시대




신라 진덕여왕 7년, 지장율사가 창건한 향성사에 서 있는 삼층석탑이다. 향성사는 그 이름만 전해질 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탑의 모습은 고아가 길가에서 오들오들 떨며 눈을 맞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그 아이가 수백 년 기다리다 탑이 되어버린 걸까. 설악산이 펼쳐진 속초시 설악동 동해안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신라시대 석탑이다.[사진·글=양현모 ]



18. 실상사 서삼층석탑 [ 보물 제 37호] - 통일신라시대



탑은 기단과 탑신, 상륜으로 나뉜다. 오랜 세월을 견뎌 왔지만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보기 드문 탑이다. 탑신의 형태가 통일신라시대의 정형이다. 동서 양쪽에 탑이 세워졌는데, 그중 서탑이다. 청명한 가을, 가끔 낙엽이 떨어지는 날 하루를 잡아 동탑을 마저 찍을 것이다.  [사진·글 양현모]



19. 남양주 묘적사 팔각칠층석압[경기도 향토유적 제 1호]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묘적사에 있다.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8각9층 석탑과 묘적사와 인접한 수종사의 8각5층 석탑과 함께 모양이 비슷해 한 어머니 배에서 나온 3형제를 보는 것 같다. 기단석 아래위로는 연꽃무늬가 배치되어 있고 8각의 탑신 면마다엔 기둥이 새겨져 있다. 3층과 4층 사이가 부자연스러워 본래 탑 높이는 9층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글=양현모 ]



20.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제 169호] - 통일신라시대로 추정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탑은 아니다. 탑이 있는 봉암사가 1년에 사월 초파일 딱 하루만 개방되기 때문이다. 득도한 수도승인 양 힘차게 서 있는 탑의 특징은 기단이 단층이고 긴 세월 동안 탑의 머리 장식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각층의 비례가 매우 조화롭고, 단조로우면서도 세련미가 넘쳐 은은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글 양현모]



21. 제천 사자빈신사처 사사자 구층석탑[보물 제 94호] - 고려시대



때로 조용히 탑을 바라본다. 소란하고 바쁜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지은 죄는 아마도 탑 몇 기는 족히 세웠을 것이다…. 이 탑의 특징은 기단부에 있는 네 마리 사자상이다. 원형은 9층 석탑이지만 4층만 남았고 왕과 나라와 불법의 융성을 기리는 뜻에서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진·글=양현모 ]



22. 충주 미륵리 삼층석탑[ 충북 유형문화재 제 33호] - 고려시대



인간의 마음은 조변석개이지만 탑은 수천 년 수백 년 세월을 이기고 견고하게 서 있다. 이 석탑도 마찬가지다. 언뜻 별 특색 없이 밋밋하게 서 있는 것 같지만 묵묵히 우리 생을 품어주는 미륵불 같다.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다. 왜 미륵사 터 경내로부터 500m나 떨어진 곳에 서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었다. [사진·글=양현모 ]



23. 충주 미르리 오층석탑[보묵제 95호] - 고려시대 추정



눈이 오고 찬바람 불어도 꼼짝 않고 임을 기다리다 탑이 되어버린 여인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탑 꼭대기 부분은 곱게 단장한 쪽머리 같다. 2층 기단과 5층 탑신으로 이뤄졌고 높이는 6m다. 위로 갈수록 지붕돌은 급경사이고 추녀는 아주 짧다. 최정상엔 탑의 머리장식을 단단히 잡아주기 위해 긴 깃대 같은 쇠를 꽂아두었다.[사진·글=양현모 ]



24.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보물 제 1296호] - 고려 조기



균형감과 조형미를 두루 갖춘 아주 아름다운 탑이다. 특히 최상층 머리 장식의 화려함은 한 마리 공작새를 보는 듯하다. 충북 제천 신륵사에 세워진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에 의거한 고려시대 초기의 탑으로, 제천을 대표하는 보물이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았다.[사진·글=양현모 ]



25.거동사지 삼층석탑 [보물제 750호]​- 신라시대



강원 원주에 있는 신라 9세기의 석탑이다. 통일신라의 3층 정형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높이는 5.3m. 거돈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 절터로서는 보기 드물게 절에 탑이 하나인 ‘일탑’식 가람이다.[사진·글=양현모]



26.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보물 제 65호]- 통잀신라시대



아버지는 무뚝뚝했다. 하지만 내가 필요할 때 늘 울타리가 되어 주셨다. 든든했다. 이 탑을 바라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세찬 빗줄기 앞에서 꿋꿋하게 서 있는 아버지 말이다. 이 탑은 돌을 벽돌 형태로 만들어 쌓은 모전탑이다. 위로 갈수록 몸돌의 크기가 작아 어색해 마치 몸에 안 맞는 양복을 입으신 나의 아버지 같다.[사진·글=양현모 ]



27. 경주 기림사삼층석탑 경북유형문화재 제 205호



이끼가 탑을 끌어안고 있는 걸까. 탑이 이끼를 끌어안고 있는 걸까. 서로 배려하고 밀어주고 어려울 땐 손잡아주며 더불어 살아가라고 탑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비교적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탑으로 정상부의 화려한 머리 장식이 눈에 확 들어온다. 지붕 돌 받침이 4단인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글=양현모 ]




28.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국보 제 38호] - 통일신라시대



원효 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 터에 있었으나 댐 건설로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전한 탑이다. 그래서인지 실향민을 보듯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지붕돌을 보면 달라진다. 윗면의 경사가 넉넉한 품으로 흐르고 네 귀퉁이 끝은 하늘을 향해 치켜뜬 눈빛처럼 빛난다. 모든 탑은 오래볼수록 천 개 얼굴을 갖고 다양하게 다가온다. [사진·글=양현모]



29.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 국보 제 37호] -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 효소왕이 아버지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탑이라 전해진다. 두 손을 포개고 기도하는 효소왕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탑 속에는 효소왕을 이은 아들 성덕왕이 선대 두 왕의 명복을 빌고자 금동 사리와 금동 불상을 넣었다고 한다. 효심을 상징하는 탑이다. 우리도 마음속으로 어머니나 아버지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탑을 세우는 건 어떨까. [사진·글=양현모 ]



30.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 국보 제 30호] - 신라 시대
 



외아들로 자란 나는 가끔 듬직한 형이 있었으면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이 텅 비어 있을 땐 그런 마음이 더 들었다. 만약 형이 있다면 바로 저 석탑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바위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3층만 남아있다. 자연석으로 된 기단 위에 네 마리의 석사자상이 앉아있는 것이 특징이다[사진 글 : 양현모]


 

31. 경주 효현동 삼층석탑




​걱정의 대부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우리 마음 한가운데로 탑 한 기를 옮겨와 보자. 그 탑은 우리를 꼭 잡아줄 것이다. 2단에 3층의 탑신으로 이뤄진 통일신라의 석탑이다. 기단이 탑신보다 커 묵직해 보인다. 특히 지붕돌은 심술이 난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삐쳐 있는 것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사진·글=양현모]




32. 경주 마동 삼층석탑 [ 보물 제 912호] - 통일신라시대로 추정
 



유명한 불국사를 지척에 두고 있는 탑이다. 지붕돌에는 5단 받침이 있고 네 귀퉁이와 아래 면에는 방울을 매단 구멍이 뚫려 있다. 특징이라면 그 어떤 장식도 무늬도 조각도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꾸밈이 없는 탑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에 매료된 후 이 소박한 탑을 바라보면 또 다른 미적 체험을 하게 된다. [사진·글=양현모]




33. 봉화 각화사 삼층석탑- 고려시대로 추정

금은보화와 명성, 권력을 내려놓고 초야에 묻혀 살며 무명의 촌로가 되어 버린 고관대작을 보는 것 같다. 천년고찰인 봉화 각화사에 있다. 비지정문화재이지만 지대석 위에 하층, 상층 기단이 있고 기단 사이에 판석 1장이 끼워져 있는, 보기 드문 양식이다. 높이 2.9m의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된다  [사진.글 :양현모]


34.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 국보 제 16호] - ​


 



 높이 16.8m의 국내 최대 전탑이다. 일제강점기엔 탑 옆으로 철도(중앙선)가 놓였고, 개수·보수 과정에서 기단부의 모양이 왜곡되는, 수난의 역사를 이어온 탑이다. 원래 기와지붕을 얹고 화려한 금동상륜을 투구처럼 쓰고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글 : 양현모]

 


35. 선산 죽장도 오층석탑[국보 제 130호] -



최초 탑을 낳은 건 사람이지만 탑을 가꾸고 기른 건 공기이고 바람이고 비이고 햇볕이다. 탑이 위대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10m가 넘는 장대한 오층석탑으로 사용된 석재만 수백 개다. 통일신라시대 최대의 석탑. 기단 바로 위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딸려 있는 게 큰 특징이다. [사진·글=양현모]

36. 춘천 칠층석탑 [ 보물 제 77호] - ​


 



 신라 진덕여왕 7년, 지장율사가 창건한 향성사에 서 있는 삼층석탑이다. 향성사는 그 이름만 전해질 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탑의 모습은 고아가 길가에서 오들오들 떨며 눈을 맞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그 아이가 수백 년 기다리다 탑이 되어버린 걸까. 설악산이 펼쳐진 속초시 설악동 동해안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신라시대 석탑이다.[사진·글=양현모]

 

 

37.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 21호] -


빛으로 조성된 탑인 듯 눈이 부시다. 마치 수평선을 종잇장처럼 찢고 떠오르는 동해안의 일출을 보는 것 같다. 새해, 저 탑을 향해 소원을 빌어 보자. 탑신의 1층 몸돌을 다른 층에 비해 월등히 높게 만들어 놓은 게 특징인 고려시대의 석탑이다.[사진·글=양현모]



38. 홍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 보물 제 540호] -



유년 시절 어머니는 새참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밭길을 걸어오시곤 했다. 밭일을 하는 아버지와 나의 공복을 달래주기 위해서다. 탑신을 받치고 서 있는 저 네 마리 사자의 모습이 꼭 그 옛날 어머니의 모습 같다. 고려시대 석탑이다.[사진·글=양현모] 



39. 경주 다보탑 [ 국보 제 20호] - 통일신라시대


 


감히 ‘탑들의 어머니’라 할 수 있겠다. 균형미와 세련미, 거기다 조형미까지 두루 갖춘, 한국을 대표하는 이 다보탑을 찍으려고 전국을 떠돌았는지도 모르겠다. 직선과 곡선을 마치 진흙 주무르듯 창출한 이 탑은 신라 8세기 중엽에 세워졌다. 목조 건축 기법을 도입한 아주 독창적인 석탑이다. [사진·글=양현모]



40. 김천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 [ 보물 제 297호] -


 



마음을 담지 않고 찍은 탑은 한낱 돌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어느 스님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장인의 신심과 성심으로 차곡차곡 쌓여진 이 탑을 보며 흐트러진 초심을 다져본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1층 몸통 각 면에 조각된 여래좌상이 압권이다[ 사진·글=양현모 ]


41 청량사 삼층석탑



봉화의 청량사가 아니라 경남 합천군 청량사 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고생 한 번 안 해 본 부티 나는 귀공자 같다고나 할까. 몸돌, 지붕돌 등 뭐 하나 흠이 없는 잘 균형 잡힌 몸매를 갖고 있다. 오래전 탑 맨 위층의 지붕돌에서 사리가 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사진·글=양현모]


42. 춘천 서상리 삼층 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6호]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포개져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철학자의 모습을 한 석탑이다.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신라시대의 절 양화사의 옛 터라고 전하는 밭 가운데에 서 있다. 특별한 조각 무늬가 없는, 아담하면서도 짜임새가 있는 석탑이다. [사진·글=양현모] 



43. 월광가지 삼층석탑(서탑) [ 보물 제 129호] -




 

​동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쌍탑으로, 이 중 서탑을 카메라에 담았다. 서탑은 기단의 중간 부분에 기둥 모양이 동탑보다 1개가 더 많은 2개이다. 2층 기단에 3층 탑신으로 구성된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무엇보다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게 큰 특징이다. 천하대장군처럼 매서운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을 것 같다. [사진·글=양현모] 

국의 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