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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석탑 Ⅷ [유형문화재 ②]

문수봉(李楨汕) 2018. 1. 17. 15:33

고려 시대 석탑 Ⅷ [유형문화재 ②]



논산탑정리석탑 (論山塔亭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논산시,   소재지 :   충남 논산시 부적면 탑정리 산5번지  




논산탑정리석탑 (論山塔亭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탑정 저수지 북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 283㎝.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후백제시대의 대명(大明)스님의 부도라고 전하나 문헌에 나타난 것은 없고 양식상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전체적인 모습이 석등의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남으로 견훤을 정벌할 때에 이곳에 주둔하여 ‘어린사(魚鱗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절 주변으로 성을 쌓아두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원래 탑은 이 자리에서 50m 떨어진 남쪽에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저수지 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이곳에 후백제 시대의 대명스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전하지만 문헌에 남겨진 기록은 없다. 속전(俗傳)에 고려태조가 남으로 견훤을 정벌할 때 이곳에 사찰을 지었다 하며, 절터 주위에 성(城)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한다.

하대석(下臺石)은 1/3쯤 묻혀 있는데 8엽의 복련(覆蓮)을 양각하고 그 위에 변의 크기가 같지 않은 8각 간석(竿石)을 세웠다. 상대석은 하대석을 거꾸로 세운 모습인데 탑신은 1개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새겼다.

옥개석은 3단의 층급받침에 처마가 약간 쳐들린 모습인데, 2층 이상은 없어져서 원래 몇 층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전체형태는 석등형으로서 석탑으로 보기에는 이례적인 것이다.​



탑은 바닥돌 위에 8각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받침돌을 두어 탑신(塔身)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 아래의 받침부분은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석등 양식으로,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고, 지붕돌은 밑면 안쪽에 얕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현재 1층까지만 남아 있는데 원래 몇 층이었는지 알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만든 시기는 고려시대일 것으로 보인다.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성주초등학교,  소재지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269-10번지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지대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높이 10.4m.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여러 장의 장대석으로 구성된 3단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단층기단과 칠층탑신을 차례로 올려놓았다. 지대석의 2·3단은 3매의 장대석으로 쌓았는데, 상층에는 2단의 받침을 조출하여 기단(基壇)을 받고 있다. 이처럼 지대석을 3층으로 구성한 것은 칠층석탑을 받치기 위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옥개석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탑신부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탑신부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기단 갑석과 1층 탑신 감실이 있다

단층으로 조립된 기단의 각 면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1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정연히 새겨졌는데, 상면에는 갑석(甲石)을 놓았다.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된 갑석의 상면은 평박하게 처리하였는데, 하면에는 기단과 맞닿은 곳에 낮은 각형 1단의 부연(副椽 :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을 조출하였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되었다.

탑신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새겨졌는데, 1·2층에는 각 면 1주씩의 탱주가 새겨져 있고, 초층탑신의 한 면에는 문비형(門扉形)과 함께 감실(龕室)이 마련되어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층마다 3단씩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어 있는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게 조성되어 있다.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전각에 이르러 심하게 반전되어, 경사가 급한 낙수면과 조화를 이루며 옥개석 전체가 들려진 느낌을 주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가 남아 있다.

탑이 위치한 곳에는 본래 동방사(東方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성주(星州)의 지세는 소가 누워 있는 형상으로 동남으로는 성산, 서는 봉두산, 북으로는 다람쥐재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냇물이 성주읍을 돌아 동쪽으로 빠지고 있는데, 바로 냇물이 빠지는 길목에 칠층석탑을 세워 성주의 기운이 밖으로 빠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고 하여 지기탑(地氣塔)으로 전하고 있다.

이 석탑은 지대석이 3단으로 구성된 점과 1층과 2층 탑신부에 탱주가 새겨진 점 등 다른 석탑에 비해 독특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7층석탑이라는 규모와 기단부의 수법, 옥개의 양식 등을 볼 때 고려시대 초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석탑의 성격은 주변의 자연지세 등을 고려해 볼 때 전설과 같이 풍수지리설에 입각해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東方寺址七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동방사지칠층석탑(東方寺址七層石塔)은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동방사터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7층 석탑이다. 1974년 12월 10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었다

 

동방사터에 남아 있는 7층 석탑으로, 원래는 9층이었다고 전한다. 절터는 성주읍내에서 왜관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약 1㎞ 떨어진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절이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는 이 석탑만 남아 있다.

기단(基壇)의 네 면과 탑신(塔身)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특히 1층 몸돌에는 문(門)모양을 깊게 새겼다. 1 ·2 ·3층 지붕돌 네 귀퉁이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고려시대의 자유로운 조각양식이 엿보인다.

탑이 자리하고 있는 성주지역의 지형은 소가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이 때문에 냇물이 성주읍을 돌아 동쪽으로 빠져 나가는 것으로 보아, 성주땅의 기운이 냇물과 함께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성주따의 기운을 보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일명 ‘지기탑(地氣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평 현등사삼층석탑 (懸燈寺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현등사,  관리자 : 현등사,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현등사길 34 (조종면, 현등사) 



현등사삼층석탑 (懸燈寺三層石塔)



현등사삼층석탑 (懸燈寺三層石塔)

 

현등사 내에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의 스님 마라하미가 불교의 교리를 전하러 신라로 건너오자, 왕이 그를 위하여 이곳 운악산에 큰절을 짓도록 하여 세워진 사찰이다. 그 후 황폐해 있던 것을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가 재발견하여 다시 건물을 짓고 ‘현등사’라 이름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조선 순조 30년(1830) 때 암구대사에 의해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현등사삼층석탑 (懸燈寺三層石塔) 상륜부

 


현등사삼층석탑 (懸燈寺三層石塔) 상륜부와 탑신부



현등사삼층석탑 (懸燈寺三層石塔) 탑신부


이 탑은 보조국사의 3층석탑이라고 전하여지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또한 ‘3층석탑’이지만 원래는 5층석탑이었고, 현재는 2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없어진 상태라고도 하여 층수구분이 애매하다. 탑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 역시 2층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위층에 해당하는 부분의 덮개돌이 지붕돌모양을 하고 있어서 이 부분은 기단보다는 탑신부(塔身部)의 1층에 더 적격일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의견이 더욱 타당할 듯 하다.

당시 고려시대의 자유로운 조각기법을 보여주듯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기단은 마치 사리탑에서 보던 모습과 거의 비슷하여 상·중·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뎃돌에는 면마다 둥근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고 이를 사이에 둔 위아랫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겨넣었다. 탑신부의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힘차게 들려 있고, 밑면의 받침은 1·2층은 4단, 3층은 3단을 두어 변화를 주었다. 꼭대기에는 꽃과 구슬이 새겨진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현등사삼층석탑 (懸燈寺三層石塔) 기단부와 초층

 


현등사삼층석탑 (懸燈寺三層石塔) 기단부


안정감이 드는 작품으로, 특이한 모습의 기단부, 지붕돌의 부드러운 처마곡선 등 각 부분의 양식들이 고려시대 후기세 세운 것임을 잘 보여준다.     



화천 위라리칠층석탑 (位羅里七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화천군,   소재지 : 강원 화천군 하남면 춘화로 3370 (위라리)  



화천 위라리칠층석탑 (位羅里七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        



화천 위라리칠층석탑 (位羅里七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위라리 춘천호(春川湖) 상류에 있는 고려시대의 옛 절터에 남아 있는 7층 석탑이다.

높이 3.3m.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 발굴 당시 기단부와 3층까지는 원형을 유지하였으나, 4층부터는 옥신을 잃고 옥개석만 남아 있었다.


화천 위라리칠층석탑 (位羅里七層石塔) 기단부가 이 지대석위에 탑신을 세웠다    

    

기단부재, 탑몸돌, 지붕돌 등이 사방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다시 세운 것으로, 지붕돌과 탑신의 1 ·2 ·3층의 몸돌은 원래의 것이고 4층 이상의 몸돌은 1975년 복원할 때 보충한 것이다. 



화천 위라리칠층석탑 (位羅里七層石塔) 탑신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        


탑의 형태는 커다란 바닥돌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부는 4매 판석으로 조성한 지대석 위에 탑신을 세웠으며, 탑신부는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돌 하나로 되어 있다. 옥신석에는 우주가 있을 뿐 표면장식은 없으며, 초층옥신에 비하여 2층옥신은 1/3로 크게 줄어들었다.


옥개석은 위로 오르면서 점차 줄어들고 옥개받침은 각각 3단이다. 추녀 밑은 수평이며고 전각은 반전되었으며,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전부 잃은 듯하며 탑 위에 둥근 돌 하나를 올려놓았다. 1975년 복원할 때 3층옥개석 위로 결실된 옥신석 4개를 보충하였다


화천 위라리칠층석탑 (位羅里七層石塔) 상륜부와 탑신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




화천 위라리칠층석탑 (位羅里七層石塔) 탑신과 옥개석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   

     

탑신의 몸돌은 각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겨놓았고, 2층에서 1층에 비해 큰 폭으로 높이가 줄어들다가 그 이후부터는 아주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지고 둥근 돌 하나만 남아 있다.

규모만 작을 뿐, 탑신의 몸돌에 기둥을 조각한 것이나 지붕돌받침이 3단인 점 등이 남계원칠층석탑(국보 제100호)과 매우 비슷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어 두 탑의 제작연대가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안동 나소동삼층석탑 (羅所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관리자 :  김지홍,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와룡면 라소리 169-2번지 


 




 

안동 나소동삼층석탑 (羅所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나소리 요촌마을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이다. 높이 2.12m.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본래는 월곡면 나소리나소초등학교 동편에 있었으나 1975년안동댐의 건설과 이로 인한 수몰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안동 나소동삼층석탑 (羅所洞三層石塔)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안동 나소동삼층석탑 (羅所洞三層石塔)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기단(基壇)은 이층으로 구성되었는데, 3매의 장대석으로 구성된 넓은 지대석(地臺石) 상면에 2매의 판석으로 조성된 낮은 하층기단을 놓았다.

기단의 각 면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1개씩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새겨졌는데, 양 우주는 마멸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상층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는데, 남쪽의 면석은 결실되었다. 각 면석(面石)에는 양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새겨져 있다.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된 상층기단 갑석(甲石)은 합각부에서 약간의 경사가 이루어져 있고, 중앙에는 3단의 받침을 조출하여 초층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되었다.

안동 나소동삼층석탑 (羅所洞三層石塔) 탑신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안동 나소동삼층석탑 (羅所洞三層石塔) 탑신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안동 나소동삼층석탑 (羅所洞三層石塔) 1층 탑신 문비가 보인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새겨졌는데, 초층탑신의 남면에는 내면에 자물쇠가 양각된 문비형(門扉形)이 조식되어 있다. 옥개받침은 1, 2층은 5단이나 3층은 4단이 조출되어 규율성을 잃고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처마 역시 전각(轉角)에 이르기까지 수평을 이루고 있어 옥개석 전체가 납작하게 보이고 있다.

안동 나소동삼층석탑 (羅所洞三層石塔) 상륜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정상에는 노반석(露盤石)과 앙련(仰蓮)이 조식된 복발(覆鉢)이 남아 있는데, 이들의 중앙에는 찰주공(刹柱孔)이 관통되어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일정한 체감비(遞減比)를 보이고 있어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는데, 각 부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군산시,  소재지: 전북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66-1번지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탑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높이 5.5m.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1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후 머리장식을 얹은 탑으로, 백제탑 양식을 일부 보이고 있다.

옛 백제 지역에 세운 고려시대의 석탑으로서, 백제탑 양식의 흐름을 따르고 있어 지방적 특색을 보여준다.


절은 오래 전에 없어져 그 이름은 알 수 없다.  기단은 밑바닥돌이 탑의 보수 당시 콘크리트에 묻혀 버렸다. 기단부(基壇部)가 1층으로 되어 있으며, 지대석(地臺石)에 낮은 중대석(中臺石)이 있고 4매로 짠 갑석(甲石)을 얹었다.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탑신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탐신부 옥개석-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탑신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탑신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탑신부는 각 부분을 조립하듯 여러 돌로 짜 맞추었는데, 1층 몸돌은 큰 편이나, 2·3층의 몸돌은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1층 지붕돌은 별도의 돌로 2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갔다


1층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는데, 위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모각(模刻)되어 있고, 2단의 옥개석(屋蓋石) 받침이 별석으로 조립되어 있다. 1층옥개석은 4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2층탑신은 2단의 탑신받침이 있고 탑신은 2개의 넓은 판석과 2개의 좁은 판석을 맞춰 구성하고 있으며, 1단의 옥개석 받침돌을 받친 위에 4매로 짠 2층옥개석이 있다.

3층탑신은 2매의 탑신받침에 4매로 조립된 탑신이 있다. 이 석탑은 옥개석이 넓어 상당히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그 형식은 옥개석의 층급 받침이 별석으로 처리되고 기단의 1층기단으로 된 점 등이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갑석의 낙수면(落水面)이 완만하고 반전이 미미한 점에서 예술미에 있어서 오층석탑보다 뒤지나 그 양식에 있어서는 백제탑의 정형을 계승한 대표적인 석탑으로 생각된다.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상륜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상륜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진안군,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17번지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회사동마을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1.4m. 

 

1976년 4월 2일에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주평리 삼층석탑으로도 불린다. 밑에서부터 1단의 지대석(), 2층의 기단부(), 3층의 탑신부(), 상륜부()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 높이 1.4m의 비교적 작은 탑이다.

일부 훼손된 부재를 새로 보충하기는 했지만 기단부의 축조방법이나 옥개석의 모양 등으로 볼 때 아직 신라시대의 석탑양식이 남아 있던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탑의 전체 기본형식은 신라석탑에서 볼 수 있는 일반형의 방형석탑으로서,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받치고 있다. 방형 지대석 위에 한 변 길이 0.7m의 방형 하층기단을 올렸는데, 이 기단의 중대석은 장대석을 2단으로 결합하였고 그 사이에 장대석을 면석으로 끼웠다. 사각형 대석 위에는 납작한 갑석()을 덮었는데 크기가 중석보다 오히려 작은 것이 특이하다.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상층기단에는 하층기단보다 훨씬 작은 정육면체에 가까운 대석을 놓고 그 위에 하층기단의 갑석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갑석을 올렸는데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아 불안한 인상을 준다. 갑석에는 윗면의 탑신이 놓인 자리에는 2단의 각형 괴임이 양각되어 있다.


하대갑석은 판석으로 좌우측면은 중석의 폭에 맞추었으며, 상층기단은 하대갑석 위에 방형돌을 세웠다. 상층기단부의 탑신이 초층탑신부의 탑신과 폭이 거의 비슷하여 불안정하게 보이며, 상층기단 갑석 역시 방형판석으로 윗면에는 중앙에 굵은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괴임대가 높게 조각되어 있다.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탑신부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진안 회사동석탑 (檜寺洞石塔) 상륜부와 탑신부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탑신부는 상층기단 갑석의 괴임에 맞추어 상층기단의 대석보다 높이만 약간 낮은 대석(탑신석 또는 옥신석)을 놓고 그 위에 하나의 석재로 만들어진 옥개석()과 옥신석을 3층으로 쌓았는데 위로 갈수록 크기가 점점 작아지면서 균형을 잘 이루어 안정감 있고 견실해 보인다.
이중 1·2층의 옥개석은 귀퉁이의 일부가 파손되기는 했으나 팔작지붕의 처마선처럼 위로 살짝 올라간 곡선과 아랫면에 양각된 3단씩의 각형 받침이 함께 어우러져 중후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초층탑신은 갑석괴임에 맞추어 세웠는데 희미하게 기둥 형태를 새겼으며, 탑신에는 3단의 옥개받침이 조각되어 중후한 맛을 느끼게 한다. 초층 탑신은 옥개석과 별도의 부재이지만 2층과 3층은 탑신과 옥개석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탑신부 2층부터는 탑신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나 옥개석의 추녀 너비는 완만한 체감률을 보이고 있다. 3층옥개석 정상부에 굵은 사각의 괴임과 그 위에 복발형(覆鉢形) 돌을 얹어놓았으나 후대에 보수한 것으로 보이며, 옥개석의 낙수면은 평평하다.

3층 옥개석의 낙수면 꼭대기에는 1단의 굵은 각형의 괴임이 돌출되어 있고 그 위에는 타원형 돌 하나가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복발(鉢 : 바리떼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볼품없을 뿐만 아니라 3층 옥개석의 괴임과도 맞지 않는 등 탑 전체와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상륜부는 유실되고 나중에 따로 보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부분적으로 보수되어 세부기법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2중기단 양식이나 옥개석 지붕의 특징 등에서는 신라의 석탑을 반영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공주 가척리석탑 (公州加尺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관리자 : 송종원, 소재지 : 충남 공주시 탄천면 청림1길 136 (가척리)



공주 가척리석탑 (公州加尺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


공주 가척리석탑 (公州加尺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


공주 가척리석탑 (公州加尺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



공주 가척리석탑 (公州加尺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



공주 가척리석탑 (公州加尺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청림사지(靑林寺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196㎝


 

청림사의 절터로 전하는 곳에 이 탑이 서 있다.  부근에는 작은 불당과 부도(浮屠)의 지대석(地臺石), 석종형부도(石鍾形浮屠)의 탑신부와 와편 등이 널려 있다. 석탑은 현재 4층 탑신까지 있으나 원래는 5층석탑으로 추정된다. 1층탑신과 옥개석·단면석 등은 보이지 않는다. 상륜부(相輪部)에 놓여 있는 연봉형(蓮峯形)의 석재는 부근 부도의 파편을 사용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하층기단과 상대갑석은 탑신부에 비하여 매우 크며 상대중석과 탑신은 상대적으로 작아서 균형미를 찾아볼 수 없다. 손상이 심해서 원형을 찾기 어렵다. 기단부 하대석의 4면에는 3조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상·하대 갑석 사이의 기단면석은 원래의 위치가 아닌데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장식되어 있다.
탑신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고, 옥개받침은 3단, 옥신받침은 2단으로 되었으며, 전각(轉角)은 약간 반전되었다. 탑신과 옥개는 별석(別石)이나 3층 옥개와 4층 탑신은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4층 탑신 상면에 방형의 사리공(舍利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석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는데,  규모는 비교적 작은 크기이며, 각 부분이 일부 깨져 있다. 기단은 아래층과 윗층의 맨윗돌이 탑신에 비해 지나치게 커보여 비례가 잘 맞지 않는다.

 탑신의 각 지붕돌은 얇고 작으며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낙수면은 느린 경사를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솟아올라 곡선미를 보여준다.


길고 가는 탑신, 지나치게 넓은 기단 등 균형미는 없지만 이 지방만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정읍 용흥리해정사지석탑  (龍興里海鼎寺址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정읍시, 소재지 : 충남 공주시 탄천면 청림1길 136 (가척리)


정읍 용흥리해정사지석탑  (龍興里海鼎寺址石塔)  전경-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정읍 용흥리해정사지석탑  (龍興里海鼎寺址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정읍 용흥리해정사지석탑  (龍興里海鼎寺址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정읍 용흥리해정사지석탑  (龍興里海鼎寺址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용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3.76m


고부읍성이 있는 성황산 북쪽 기슭 중턱에 서향하여 석불입상 1구와 함께 서 있다. 기단은 하대석이 땅속에 묻혀 있어 단층기단으로 오인되나 묻혔던 기단이 지대석까지 노출되어 2중기단임이 밝혀졌다. 주변에서 ‘해정사’라고 새긴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 절의 옛 터로 전하고 있다. 


탑신도 3층으로 여겨졌으나 3층옥개석 위에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모각(模刻)한 또 하나의 탑신이 얹혀 있고, 상륜부(相輪部)의 돌도 맞지 않으므로 원래는 5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께 0.28m의 4매 판석으로 짠 1변 2.13m의 방형지대석에, 하대석은 1변 1.52m, 높이 0.8m이다.

정읍 용흥리해정사지석탑  (龍興里海鼎寺址石塔) 기단부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그 위에는 높이 0.24m, 1변 1.11m의 하대중석이 놓였으며, 그 위에 1변 1.38m의 하대갑석을 덮었다. 또 그 위에는 높이 0.5m, 1변 0.88m의 상대중석을 쌓았다. 상대갑석은 2장의 판석으로서 높이 0.13m, 1변 1.2m이며, 윗면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한 2단굄이 새겨졌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뒤에 따로 만들어 얹은 것이다. 각 기단의 4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본뜬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두터운 편은 아니지만 경쾌한 느낌은 떨어진다.

정읍 용흥리해정사지석탑  (龍興里海鼎寺址石塔)  상륜부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정읍 용흥리해정사지석탑  (龍興里海鼎寺址石塔)  탑신부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제1탑신은 높고 2층부터는 갑자기 높이가 줄었다. 모두 우주를 새겼는데 제1탑신은 높이 0.6m, 너비 0.56m, 제2탑신은 높이 0.17m, 너비 0.53m이다. 4·5층옥개석과 5층탑신은 없어졌는데 원높이는 4.32m정도로 추정된다.​

간략하게 흐르고 있는 각 부분의 솜씨들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탑신부의 1층 몸돌이 지나치게 커보여 균형이 맞지 않다. 고부읍성 주변의 석탑들이 모두 2층 기단에 5층 이상의 높이를 지니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탑 역시 5층 정도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안동 이천동삼층석탑 (安東泥川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동시,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이천동 산2번지 


 


안동이천동삼층석탑 (安東泥川洞三層石塔)  전경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안동이천동삼층석탑 (安東泥川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안동이천동삼층석탑 (安東泥川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안동이천동삼층석탑 (安東泥川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안동이천동삼층석탑 (安東泥川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높이 3.3m.


연미사 뒷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이 탑이 보인다. 함께 있는 거대한 석불상(보물 제115호) 뒷편에 흩어 있던 것을 복원해 놓은 것으로, 예전에는 이곳이 연미사의 자리였다고 한다.  연미사(燕尾寺) 대웅전 뒤편 야산 중턱에 무너져 있던 탑재(塔材)를 모아 조성하였다. 



안동이천동삼층석탑 (安東泥川洞三層石塔) 기단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1층으로 두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자연암반 위에 2매의 판석을 놓아 지대석(地臺石)으로 삼았는데, 빈 공간에는 작은 석재를 채우고 시멘트를 발라 고정시켰다.

기단(基壇)은 4매의 석재로 조립하였는데,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1주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희미하게 보인다. 기단의 상면에 놓안 갑석(甲石)은 1매의 방형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상·하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다.

안동이천동삼층석탑 (安東泥川洞三層石塔)  탑신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석은 매층 양 우주가 정연히 새겨졌는데, 초층탑신의 높이가 2층에 비해 약 3배 정도 높게 조성되어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매층 각형 4단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어 있고, 상면에는 각형 1단의 탑신받침이 각출되어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짧으며, 전각(轉角)의 반전 역시 둔중하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꾸밈이 없는 단조로운 모습이며,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솟아올라 가벼움을 이끌어내었다.

전각의 네 귀퉁이에는 풍경공(風磬孔)이 있고, 3층 옥개석의 상면에는 지름 5㎝의 찰주공(擦柱孔)이 관통되어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한데,  주위의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탑으로, 각 부의 양식으로 보아  석불상과 같은 시기인고려시대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자: 보문사, 관리자:  보문사, 소재지: 강원 원주시 행구동 산105번지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106번지 소재 보문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높이 1.2m.

 

현재 보문사가 위치한 일대는 오래전부터 보문사 옛터로 전해온 절터이다. 이곳에 1970년에 보문사를 새로 건립하던 중 땅속에서 많은 석탑재가 출토되어 현재의 모습대로 석탑을 복원하게 되었다. 이 석탑은 기단부는 화강암으로 구축하였으나 탑신부는 점판암(粘板岩)으로 형성하였기 때문에 청석탑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한국의 청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건조된 해인사원당암다층석탑(보물 제518호)에서 시원을 볼 수 있으나 본격적인 유행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인데 현재 10여기의 고려 청석탑이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모든 청석탑이 기단부는 화강암이며 탑신부는 점판암을 중적(重積)한 것이다.


현재 복원된 석탑을 보면 1∼5층의 옥개석과 2∼4층의 탑신석, 상층기단 갑석, 하층기단 갑석은 본래의 부재이나 나머지 탑재는 복원할 때에 새로이 조성한 것이다.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탑신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탑신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탑신부와 지대석-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탑신부 옥개석-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1∼5층의 옥개석과 상대·하대 갑석의 두께는 8㎝이며 1층 옥개석의 너비는 47㎝이고 5층 옥개석은 29㎝로서 1층으로부터 5층으로 올라가면서 알맞게 줄어들어 보기 좋은 체감(遞減)임을 느끼게 한다.

상대갑석과 하대갑석의 윗면에는 각 변에 모두 복련(覆蓮)이 조각되었는데 이 연화문의 장식 또한 고려시대 청석탑의 특이한 면을 보이고 있다. 상면에는 낮은 굄 1단을 마련하여 그 위층의 탑신석을 받고 있다. 각 층 옥개석의 받침은 3단씩으로 정연하다. 낙수면이 평박하고 네 귀퉁이 전각의 반전이 뚜렷하여 경쾌한 옥개석임을 느끼게 한다.

원주보문사청석탑 (原州普門寺靑石塔) 상륜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2∼4층의 탑신석은 높이가 6㎝인데 4면에 2자씩 오목새김된 범자(梵字)가 뚜렷하다. 이렇듯 범자가 새겨져 있는 것도 고려시대 청석탑의 특징의 하나인 것이다. 청석탑은 석재가 점판암이고 특히 풍화에 약한 석질이므로 오랫동안 노천에 남아 있기가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비록 각 부재가 완전하지 않으나 희귀한 청석탑이라는 점에서 지방유형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예산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수덕사, 관리자: 수덕사, 소재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수덕사   


예산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예산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예산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예산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예산 수덕사 삼층석탑(禮山 修德寺 三層石塔)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대웅전 앞에 자리한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다. 1983년 9월 29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수덕사 삼층석탑은 조인정사(祖印精舍) 건물 앞쪽에 놓여 있는 화강암으로 만든 일반형 삼층석탑으로 2중 기단을 가지고 있다. 상층 기단은 4매석을 조립하였으며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표현되어 있다. 형태는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탑신부는 2층 탑신과 초층 옥계석이 약간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 각 부분이 균형을 이루어 안정감을 준다. 다른 부재는 완전하다. 옥계와 탑신부는 각각 1석으로 되어있으며 1층은 5단의 옥개받침을 하였으나 2·3층은 3단의 옥개받침만을 가지고 있다.


예산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상륜부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예산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탑신부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예산 수덕사삼층석탑 (修德寺三層石塔) 기단부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는 3층 지붕돌과 한 돌로 만들어진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이 있고 그 위로 보륜(寶輪:수레바퀴 모양의 머리장식)과 보개(寶蓋:덮개 모양의 머리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상면에서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탑신을 받고 옥개석은 반전이 심한 편으로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탑은 3층 옥개석과 노반이 1석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보륜과 보개가 남아 있는데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갖춘 탑이다


통일신라 문무왕 5년(665)에 세웠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통일신라 석탑 전성기에 비해 기단의 가운데기둥 조각의 수가 줄고,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들고 있어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과천 연주암삼층석탑 (戀主菴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자 : 연주암, 관리자 :  연주암,

소재지 :  경기 과천시 자하동길 64 (중앙동)



과천 연주암삼층석탑 (戀主菴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과천 연주암삼층석탑 (戀主菴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관악산 상봉 연주봉에 위치한 연주암 대웅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연주암은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관악사(冠岳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단장을 거치고, 양녕대군과 효녕대군이 머물면서 연주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연판문(蓮瓣文)이 새겨진 지대석 위에 4매의 판석(板石)으로 짜인 기단 갑석(甲石) 아래에는 부연(副椽: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있고, 상면에는 3단의 탑신굄이 있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형태이다. 바닥돌에는 연꽃을 둘러 장식하고, 기단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우주(隅柱: 모서리기둥 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어 규칙성을 잃고 있다. 상륜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 위로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 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구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정연하고 균형 잡힌 안정감을 준다. 조선 태종의 첫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둘째 왕자 효령대군이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계승할 것을 부탁한 후 궁궐을 나와 이곳에 머무르며 수도할 때, 효령대군이 세운 탑이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단이 1층이고, 탑신의 지붕돌이 두툼하고 받침수가 줄어드는 등 조성수법에 있어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동시,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566-1번지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전경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측면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3.8m

 

이 석탑은 도굴로 인해 기단부(基壇部)가 심히 이완되어 전체가 동편으로 15。 정도 기울어져 있던 것을 1979년에 해체 수리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린 평면방형의 일반형석탑이다.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기단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지대석은 모두 11매의 장대석으로 조립하였는데, 상면에는 2매의 석재로 구성된 하층기단을 놓았다. 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2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새겨졌으며,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하층기단 갑석은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는데, 상면은 경사지게 처리하였고, 중앙에는 각형(角形) 1단의 상층기단 받침을 조출하었다.
상층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조립하였고, 각 면에는 양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새겨져 있다.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된 상층기단 갑석의 하면에는 각형 1단의 부연이 있고, 상면에는 복엽(複葉) 16판의 복련대(覆蓮臺)를 형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각호각형(角弧角形) 3단의 받침을 조출하였다. 갑석의 상면에는 2단으로 구성된 별석받침대가 놓여 있다.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탑신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1층 탑신의 문비와  앙련과 복련의 몸돌 받침



안동 임하동동삼층석탑 (安東臨河洞東三層石塔)  1층 탑신의 문비와  앙련과 복련의 몸돌 받침

 
받침대의 하단은 높직한 장방형의 형태로, 각 면에는 3구씩의 안상을 새겼다. 상단은 복엽 16판의 앙련(仰蓮)이 장식되어 화사한 초층탑신 받침부를 형성하고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초층탑신에는 양 우주가 새겨졌으며, 남면에는 3중의 문비형(門扉形)을 구성한 후 내면에 자물쇠와 문고리를 돋을새김하였다. 2층과 3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새겨져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층마다 각형 4단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길이 또한 짧은데, 처마가 전각(轉角)에 이르도록 수평을 유지하고 있어 반전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1층의 옥개석에 비해 2, 3층의 옥개석이 낮게 조성되어 불안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정상에는 반파된 노반석(露盤石)이 있고, 중앙에는 찰주공(擦柱孔)이 관통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옥개석과 탑신석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각 층 옥개석은 탑신에 비하여 처마가 좁고 체감비가 적어 이 지방 전탑(塼塔)의 구성비례와 비슷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반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이천시,   소재지 : 경기 이천시 중리동 187번지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상층 기단 갑석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읍 진리라는 마을에 붕괴되어 흩어져 있던 것을, 197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기단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기단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아래층 기단은 4매의 널돌로 짜 놓았고 윗면에 2단의 괴임을 두었다. 위층 기단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 하였고, 윗면에 탑신의 1층 몸돌을 받기 위한 3단의 괴임을 새겨 놓았다.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탑신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탑신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 중리삼층석탑 (利川中里三層石塔) 탑신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기단(基壇)은 상대와 하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단부 중 상대갑석의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탑신부의 각 몸돌 중에서 1층을 제외한 2·3층은 탑을 옮길 때 새로운 석재로 보강한 것으로, 각 몸돌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느린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랐으며, 밑면에 1·2층은 5단, 3층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기단이 2층이고 3층의 탑신부를 구성하고 있어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단과 탑신의 괴임 표현, 지붕돌의 조각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경북 유형문화재 제106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동시,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794번지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전경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측면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臨河面  임하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2.7m.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지면에는 잡석으로 방형의 석단(石壇)을 구성하고 있는데, 주변에는 석등의 간주석(竿柱石)으로 추정되는 팔각형의 돌기둥과 복발형(覆鉢形) 탑재 1기가 흩어져 있다. 지대석은 여러 매의 석재를 조립하여 구성하였다.

 

하층기단은 12매의 석재를 조립하여 구성하였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2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새겨져 있고, 2개의 탱주로 분할된 각 3면에는 십이지상(十二支像)이 1구씩 새겨져 있다. 하층기단의 갑석은 여러 매의 판석으로 조립하였는데, 상면에는 호각형(弧角形) 2단의 상층기단 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기단부 팔부신중이 부조되어 있다       

상층기단은 8매의 판석으로 조립하였는데, 한쪽 면의 부재는 결실되었다. 기단의 각 면에는 양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새겨져 있으며, 탱주로 분할된 8면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1구씩 새겨져 있다.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상층 기단의 팔부신중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상층 기단의 팔부신중        


상층기단 갑석의 상면은 경사지게 처리하여 네 모퉁이에 낮은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갑석의 하면에는 각형 1단의 부연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초층탑신 받침을 조출하고 있다.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탑신부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탑신부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현재는 2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때 본래는 3층석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새겨졌는데, 1층이 2층탑신에 비해 약 3배 높게 조성되어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층마다 각형 4단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받침이 각출되어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轉角)에 이르러 경쾌한 반전(反轉)을 보이고 있다.

 

이 석탑에서는 1965년의 해체수리 때 1층탑신 상면에 마련된 둥근 사리공(舍利孔)에서 유리제사리병과 유리구슬을 비롯한 사리장치(舍利藏置)가 출토되었다고 하며, 이곳에서 약 100m 떨어진 밭 가운데에서 금동여래입상 1구가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고 한다.

 


안동 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安東臨下洞十二支三層石塔)  하층 기단의 십이지신상 

       

기단에 새겨진 탱주의 수와 십이지와 팔부신중의 조식, 옥개석의 수법 등 전체적인 양식을 고려할 때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하마을에 남아 있는 탑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원래는 3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탑의 무게를 받치는 2층 기단(基壇) 위로 2층의 탑신(塔身)만 놓여 있다.

특히 기단에 새긴 조각들이 눈에 띈다. 아래층 기단에는 띠를 나타내는 열두동물인 12지상(十二支像)을 조각하여 석탑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고, 위층 기단에는 8부신상(八部神像:불교의 법을 지키는 여덟무리의 신)을 배치하면서 특히 인왕상(仁王像)을 주되게 표현하였다.

이렇듯 각 기단에 두 종류의 무리를 함께 장식하는 예는 특이한 모습이어서 석탑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만든 시기는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동시,  

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산읍 하리1리 207-1번지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전경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하리마을 한 민가의 돌담 안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으로, 이 지방에서는 보기드문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모전석탑이란 흙벽돌로 쌓아올린 전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처럼 깍아 쌓아 올리는 것인데, 이 탑은 비록 벽돌로 쌓지는 않았으나 일부에서 전탑의 양식이 나타나고 있어 이렇게 불리우고 있다.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하면에 큼직한 자연석을 놓아 지반을 구축하고 있는데, 시멘트로 다져 원형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석축의 상면에는 네 모서리가 둥근 자연석 1매를 놓았는데, 이 석재가 기단(基壇)으로 생각된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탑신석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다.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탑신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탑신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안동 하리동모전삼층석탑 탑신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탑은 자연 암반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올린 모습으로 특히 지붕돌에서 전탑의 양식이 보인다. 즉 일반적인 석탑에서는 지붕돌 밑면에만 몇단의 받침을 두는 것에 비해 이 탑은 지붕돌 윗면에도 층을 둔 것이다. 이는 벽돌의 특성상 층을 이루게 되는 전탑의 지붕돌 양식에서 그 모습만을 빌려와 본뜬 것이다.

초층탑신은 이층탑신에 비해 약 1.5배 정도 높게 조성되었으며, 2층과 3층 탑신석은 비슷한 높이를 보이고 있다. 옥개석의 하단에는 1층 4단, 2층 3단, 3층 2단의 옥개받침, 상면에는 경사가 있는 낙수면에 대신하여 1층 5단, 2층, 4단, 3층 3단의 각형 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옥개석의 양식으로 인해 이 석탑을 모전석탑이라 부르고 있다. 정상에는 연화문이 조식된 부재가 놓여 있다. 이 석탑은 탑재의 체감비(遞減比)가 일정한 비례를 보이고 있어 안정된 형상을 보이고 있는데,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반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된다. 이 마을에 이 탑 외에도 또다른 3층 석탑이 남아 있어 이곳이 불교 유적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동시,

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산읍 하리1리 56 번지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높이 3.6m.



땅 속에 묻힌 기단부(基壇部)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탑이다.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2 ·3층 몸돌 위에 지붕돌을 받치는 1단의 괴임을 만들어 겉에서 보면 지붕돌받침이 4단처럼 보이게 하고 있어 독특한 표현이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에 비해 지붕돌이 두꺼워지고 받침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탑의 구조가 이 지방 특유의 석탑양식을 갖추고 있어 석탑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1층 탑신과  기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지대석과 기단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석탑의 주변에는 많은 기와편이 흩어져 있어 사지(寺址)였음을 알 수 있는데, 망천사지(望天寺址)라 전하고 있다. 지표에는 기단 갑석(甲石)으로 추정되는 1장의 판석이 노출되어 있는데, 상면에는 각형(角形) 2단의 초층탑신 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별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초층탑신과 2층탑신은 각각 2매의 석재로, 3층탑신은 1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탑신부의 옥개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탑신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탑신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안동 하리동삼층석탑 (安東下里洞三層石塔) 1층 탑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각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새겨져 있고, 초층탑신의 남면에는 2중의 문비형(門扉形)이 조식되어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매층 각형 4단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어 있고, 상면에는 각형 1단의 탑신받침대가 각출되어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轉角)에 이르러 살짝 반전되고 있다. 1층에 비해 2, 3층의 옥개석에 낮게 조성되어 전체적인 조화를 흐트러뜨리고 있다. 석탑 주변과 부근의 민가에는 이 탑의 부재로 추정되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 및 수연(水煙 : 불꽃모양의 장식) 등의 상륜부재가 있는데, 모두 찰주공(擦柱孔)이 관통되어 있다.

이 석탑은 기단이 매몰되어 전체적인 형상은 알 수 없지만, 탑신부를 2매의 석재로 구성한 점과 옥개석의 수법 등을 볼 때 고려시대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동시,  

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 1139번지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전경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높이 3.1m.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하층기단은 5매의 판석으로 조립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1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새겨져 있다.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기단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기단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탱주로 분할된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1구씩 조식되어 있다. 기단 갑석(甲石)은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는데, 상면은 평박하게 처리하였다. 상층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조립하였는데, 엔타시스(entasis : 배흘림)의 형식을 보이는 양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새겨졌다.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된 상층기단 갑석은 상면을 경사지게 처리하여, 네 모퉁이의 합각선이 뚜렷하다. 갑석의 하면에는 각형 1단의 부연(副椽)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초층탑신 받침을 조출하고 있다.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탑신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안동 죽전동삼층석탑 (安東竹田洞三層石塔)  1층 탑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되었다. 탑신석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정연히 새겨졌는데, 초층탑신의 남면에는 문비형(門扉形)이 표시되어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옥개받침을 조출하고 있는데, 1층 5단, 2층 4단, 3층 3단으로 상층으로 갈수록 1단씩 감소되고 있어 이 탑만의 독특한 특징이 되고 있다.


위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문(門)모양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5단, 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받침이 줄어들고  


상면에는 호형(弧形) 1단의 탑신받침을 조출하고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轉角)에 이르러 둔중한 반전을 보이고 있는데, 전각의 측면에는 풍경공(風磬孔)이 개설되어 있다.

석탑이 있는 곳은 학심사(鶴心寺) 또는 악심사(岳沈寺)의 사지였다고 전한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비교적 크기가 작은 탑이지만 각 부분이 균형있게 잘 조화되어 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에 변화가 있는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동시,   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산106번지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전경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높이 1.7m


청성산 성산사에 서 있었던 3층 석탑으로 추정된다. 안동시내와 풍산읍의 경계인 석문정(石門亭) 뒤편 해발 약 200m의 야산의 커다란 자연암반 위에 3매의 장대석을 지대석(地臺石)으로 삼아 건립하였는데, 일부에 큼직한 석재를 놓아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기단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자연암반 위에 2층의 기단(基壇)과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현재 기단 일부가 훼손되고, 3층 지붕돌 이상이 없어졌다. 기단(基壇)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는데, 내부에는 작은 석재로 충적되어 있다. 각 면석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1주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새겨졌는데, 상면에는 1매의 판석으로 조성된 상층기단 갑석(甲石)을 놓았다.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탑신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탑신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갑석의 하면에는 각형 1단의 부연(副椽)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초층탑신 받침을 조출하고 있다. 탐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하였는데, 3층옥개석이 없어진 상태이며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정연히 새겨져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매층 각형 4단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었고, 상면에는 각형 1단의 탑신받침이 각출되어 있다.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轉角)에 이르러 둔중한 반전을 보이고 있는데, 낙수면과 전각의 변화가 균형과 조화를 보이고 있다.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安東幕谷洞三層石塔) 상륜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이 석탑은 산 정상의 암반에 건립되어 넓은 시계가 확보된 점으로 보아 산천 비보사상(裨補思想 :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이 흥한다는 불교사상)에 의해 건립된 일례임을 알 수 있다.  작은 크기의 탑이지만 각 부분이 균형있게 조화되어 안정감을 준다. 지붕돌이 두껍고 받침이 일정한 체감비를 보이줄어드는 점과 각 부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양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삼막사,    관리자 : 삼막사,   소재지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 478 (석수동) 


(출처_경기문화재대관) 



안양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안양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삼막사 선실 뒤편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삼막사라는 절이름에는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 원효·의상·윤필 3대사가 관악산에 들어와 장막을 치고 수도하다가 그 뒤 그곳에 절을 지어 이름을 이와같이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안양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기단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기단부(基壇部)는 장대석(長臺石) 4매(四枚)로 하층기단(下層基壇) 하대(下臺)를 만들고, 하층기단 면석(面石)도 역시 장대석 4매로 되었으며, 갑석(甲石)은 2매석으로 구성되었다.

상층기단(上層基壇) 면석은 4매석으로 짜여 있고, 갑석은 한 귀퉁이가 깨져 없어졌다. 탑신부(塔身部)는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을 각기 1석씩으로 조성하였는데 각층의 옥개받침은 3단씩이다.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다. 꼭대기에는 1979년에 보수한 머리장식이 놓여있다.

탑신의 몸돌에만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전체적으로 둔중하여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높이는 2.55미터이다   



안양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상륜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안양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탑신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에 맞선 삼막사 승도(僧徒)인 김윤후(金允候)가 몽골군의 원수(元帥)인 살리타를 살해한 뒤 승적을 기념한 탑이라 전한다.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관리자 :  강릉시,   소재지 :  강원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774번지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전경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전경-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높이 3.3 m


옛 절터에 건립되어 있는데 절 이름을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동리 이름을 붙여 관음리오층석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몇 가지 기록에 ‘안국사(安國寺)’라는 절 이름이 보이므로 이곳을 안국사지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安國寺(안국사)’라는 명문 기와가 있어 안국사 옛터임을 입증해 준다. 이곳에는 건물지의 축대와 주초석이 노출되어 있고 장대석들도 많이 남아 있어 옛 절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석불대좌-​주변에 절터로 보이는 건물터와 석불의 대좌로 보이는 석물 등이 남아있다.


2층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5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4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 위에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3구씩의 둥글넓적한 안상(眼象)을 얕게 새기고, 위층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하층기단 갑석 상면에는 낮은 2단의 굄을 마련하여 상층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기단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기단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상층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와 중앙의 1 탱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상층기단 갑석은 널찍한 1매석으로 조성하였는데 밑면의 부연은 완곡한 반전형으로 고려시대 특유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윗면에 3단의 낮은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탑신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렸는데, 1층 몸돌은 큰 편이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각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1층의 탑신석이 유난히 높으며 2층 이상의 탑신석은 체감이 거의 없고 5층탑신석은 결실되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고 상면에 그 위층의 탑신석을 받는 굄단은 마련되지 않았다.  낙수면이 급경사이고 옥개받침부가 얕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4면의 합각머리가 뚜렷하고 네 귀퉁이의 전각에 반전은 있으나 낙수면부가 두터워 역시 둔중한 느낌을 면할 수 없다. 네 귀퉁이는 높이 치켜 올라갔는데, 각층이 비슷한 크기로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강릉 관음리오층석탑 (江陵觀音里五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상륜부재는 노반석과 앙화석이 놓여 있고 그 이상의 부재는 결실되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 위로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부의 중후한 느낌과 기단부의 특징 그리고 지붕돌의 받침수가 3단으로 줄고,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큰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