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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석탑 Ⅶ [시도유형문화재①]

문수봉(李楨汕) 2018. 1. 17. 15:53

고려시대 석탑  [시도유형문화재①]




 원주 일산동오층석탑(一山洞五層石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원주시,

소재지 : 강원 원주시 봉산동 836-1 원주시립박물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호 일산동오층석탑(一山洞五層石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호 일산동오층석탑(一山洞五層石塔)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54-2번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3.7m.

 

이 석탑의 원래 위치는 중앙동, 즉 하동리라 부르던 곳의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을 1962년 5월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옛날 사진첩이나 ≪조선고적도보≫에는 하동리 절터에 이 석탑 하나가 우뚝 서 있는 것이 수록되어 있다.


석탑의 구성은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큼직한 2매의 판석으로 지대를 구축하고 상면에 2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기단을 받고 있다. 기단면석은 4매의 판석을 조립하였는데 각 면에 양우주와 중앙 1탱주가 모각되었다.


기단갑석은 널찍한 1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밑면에는 부연 등의 시설이 없고 윗면에 2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갑석의 밑면에 부연이 없고 윗면이 약간 경사져서 네 귀퉁이에 합각선이 보이는 것은 고려시대 특유의 갑석 형태이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기 1석씩으로 조성하여 중적(重積)하였는데 각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옥개석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인데 1층 옥개석 받침의 상단이 유난히 높고 각층의 옥개받침 높이도 일정하지 않아 무질서한 작품임을 느끼게 한다.


낙수면은 평박한 편이고, 네 귀퉁이 전각에 반전이 뚜렷하여 둔중한 느낌은 면하고 있다. 옥개석 상면에 1단씩의 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층의 탑신석을 받고 있다.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는 부재가 없다.


이 석탑은 여러 차례 옮기는 과정에서 옥개석에 파손이 많이 가고 다른 부재에도 마손(磨損)이 있으나 원형은 잘 보이고 있다. 단층기단의 양식과 특히 기단갑석의 형식, 각층 옥개석의 조성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엽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光陽 城隍里 三層石塔) - 유형문화재 제5호


시대 : 고려시대 , 소유 : 국유, 관리자, 광양시,  소재지 : 전라남도 광양시 성황동 749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光陽 城隍里 三層石塔)

전라남도 광양시 성황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다.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탑은 2층 기단(基壇)을 쌓아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 ·위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씩의 돌로 쌓아 올렸으며,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른다. 3층 지붕돌 위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차례로 얹혀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 후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 (全義 碑岩寺 三層石塔) -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3호


시대 : 고려시대 , 소유 : 비암사,  관리자 : 비암사,  소재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4 



전의 비암사 삼층석탑 (全義 碑岩寺 三層石塔)


비암사 극락보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1982년 복원 공사를 하면서 없어진 기단부를 보완하고 뒤집혀 있던 석재들을 바로 잡았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날카롭게 하늘로 향해 있고,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의 몸돌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둔해 보이고, 밑면의 받침이 4단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낙성대 삼층석탑 (落星垈 三層石塔)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시대 : 고려시대 , 소유 :   관리자 :   소재지 :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산48번지  



낙성대 삼층석탑


낙성대 삼층석탑

 

고려 명장 인헌공 강감찬(984∼1031)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우고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장군은 그 당시 백성들에게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백성들은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집터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장군이 태어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 뒤 낙성대를 보호하고 기념하기 위해 나라에서는 1973년부터 2년간에 걸쳐 안국사라는 사당을 짓고 장군의 영정을 모셨다. 집터에 있던 삼층석탑은 이곳으로 옮겼고 석탑이 있던 자리에는 비석을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하였다.  현재 안국사는 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청곡사삼층석탑 (靑谷寺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 : 청곡사  관리자 : 청곡사  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시 월아산로1440번길 138 (금산면, 청곡사)   



청곡사삼층석탑 (靑谷寺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청곡사 대웅전 왼편에 서 있는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리고 정상에 머리장식을 얹은 형태이며, 석재가 많이 닳아 있다.

기단은 윗돌 일부가 파손되었고,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이 새겨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3층 지붕돌 위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 등의 머리장식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양식을 잘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에 나타나는 양식상의 변화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정된다.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忠州 創洞里 五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 : 국유  관리자 : 충주시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청금로 112-6 (중앙탑면)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忠州 創洞里 五層石塔) ​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忠州 創洞里 五層石塔)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忠州 創洞里 五層石塔)

중원탑평리칠층석탑(국보 제6호)에서 남쪽으로 2㎞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5층 석탑으로, 원래는 민가의 뒷뜰에 있던 것을 100여m 남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며, 현재 맨 위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채 그 받침돌만 남아 있다. 위로 오를수록 조금씩 규모가 줄어드는 탑신의 각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기 다른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5층에서만은 한 돌로 되어 있어 흥미롭다.

지붕은 네 귀퉁이가 부드럽게 치켜올라갔고, 위로 올라갈수록 밑면의 받침수가 줄어드는 특징을 보인다.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단 위에 두툼한 괴임돌을 끼워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각 층 지붕돌 위에도 비슷한 괴임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장식이 거의 없는 탑신에 작은 변화를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섬세한 조각은 볼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이 간략화되고 대범하여 고려인의 기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부산 대곡사 오층석탑 (五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 : 부산대학교  관리자 : 부산대학교  소재지 : 부산 금정구 장전동 산30번지


 

부산 대곡사 오층석탑 (五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대곡사터에 있던 탑으로, 1966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세웠다.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올렸는데 기단과 머리장식은 탑을 옮길 때 새로 만든 것이다.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네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 면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였는데, 정교하지는 않으나 각 천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사천왕은 불교에 귀의한 중생을 수호하는 4신으로, 사찰의 천왕문 안에 좌우로 나뉘어 안치되기도 하고 불교 조형물의 표면에 조각되기도 한다. 4층 몸돌에 네모난 사리구멍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곳에 사리장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 있다.

지붕돌 윗면의 괴임이 1단으로 표현되고 밑면의 받침을 3단으로 두고 있어, 약화되고 형식화된 고려시대 석탑양식이 엿보인다.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체감률이 적어 길쭉한 느낌이 들지만 깔끔한 구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음성 읍내리 오층모전석탑 (陰城 邑內里 五層模塼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 : 국유,   관리자 : 음성군,  소재지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817-12 


 

음성 읍내리 오층모전석탑 (陰城 邑內里 五層模塼石塔)  전경-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



음성 읍내리 오층모전석탑 (陰城 邑內里 五層模塼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


모전석탑은 전탑(塼塔: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의 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돌로 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탑이다. 이 탑은 원래 교동사터에 남아 있던 것으로, 1946년 수봉초등학교로 옮겨 놓았다가 1995년 이곳 음성 향토자료박물관으로 다시 옮겨 세웠다.

1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인데, 현재 탑신의 2층과 5층의 몸돌이 없다. 1층 탑신의 몸돌 네 면에는 중앙에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새겼다. 지붕돌은 아래 ·윗면 모두 전탑에서와 같이 층단을 이루고, 네 귀퉁이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 이후 안동, 의성 등지를 중심으로 전탑과 모전석탑을 세우던 시기에, 그 지역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삼층석탑 (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시대 : 고려 후기~조선전기 추정, 소유 :  동아대학교,   관리자 :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재지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 (부민동2가, 동아대학교부민캠퍼스)



삼층석탑 (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경남 합천의 상천리 마을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60년 부산의 동아대학교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기단의 아래받침돌은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든 것으로, 그 위에 1층 기단(基壇)과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과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각 층의 비례가 안정되어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고려 후기∼조선 전기 사이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운산리삼층석탑 (雲山里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진안군,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1423번지



운산리삼층석탑 (雲山里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호


내후사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옛 절터에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동그란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가 왜소해 보이고, 탑신의 2층 몸돌이 1층 몸돌에 비해 급격히 줄어 들어 균형미를 잃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에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진도상만리오층석탑 (珍島上萬里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


시대 : 고려시대 추정, 소유 :  국유,   관리자 : 진도군,  

소재지 :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길 58 (상만리) 



진도상만리오층석탑 (珍島上萬里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


상만사터라고 전해지는 곳에 서 있는 탑으로, 현재는 이 곳에 구암사라는 새 절이 생겨 탑을 보호, 관리하고 있다.

형태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희미하게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특히 몸돌 부분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부터 4층까지는 3단씩이고, 5층은 2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위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조각기법이 거의 형식적으로 변하고, 지붕돌 받침의 수가 일정하지 않아 고려 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원효암동편삼층석탑 (元曉庵東便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  


시대 : 통일신라후기~고려전기 추정, 소유 : 범어사,   관리자 : 범어사,  

소재지 : 부산 금정구 범어사로 250 (청룡동) 



원효암동편삼층석탑 (元曉庵東便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  


원효암 입구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이 암자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머물면서 왜병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삼층석탑(부산시유형문화재 제12호)이 하나 더 서 있다.

원래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바닥돌 위에 3층의 탑신만을 올리고 있다.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는데, 2층과 3층 몸돌은 돌의 재질이나 비례로 보아 후에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두툼한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어 곡선미가 느껴지고,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인 탑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원래의 터에 다시 세워 놓은 것으로, 원효암의 금당자리와 창건시기를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용담사칠층석탑 (龍潭寺七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시대 : 고려 시대 추정, 소유 : 용담사,   관리자 : 용담사,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주천면 원천로 165-12 (용담리)  



용담사칠층석탑 (龍潭寺七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용담사는 백제 성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볼 때에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사찰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절이 세워지기 전에 근방에 있는 용담천에서 이무기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도선국사가 이 절을 세운 뒤 부터는 행패를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전기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절은 사라지고, 현재는 이 탑과 함께 석불입상(보물 제42호)과 석등이 남아 있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얹었는데, 너무 길쭉하고 홀쭉한데다가 지붕돌이 몸돌보다 두터워서 불안정한 모습이다. 기단은 하나의 돌로 간단하게 되어 있다. 탑신의 몸돌은 2층에서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6단, 4층은 5단, 5층은 4단, 6∼7층은 3단으로, 위로 오를수록 받침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네 귀퉁이도 희미하게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측된다. 탑신의 5층 몸돌은 편편한 돌 2개를 양쪽으로 세워 위를 받치고 있는데, 이 불안정한 부분 때문에 탑이 기울어져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창녕 관룡사약사전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시대 : 고려 시대 추정, 소유 : 관룡사,   관리자 : 관룡사,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 (옥천리)   


 


창녕 관룡사약사전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창녕 관룡사약사전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창녕 관룡사약사전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창녕 관룡사약사전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관룡사 약사전 앞에 있는 3층 석탑이다. 관룡사는 구룡산 중턱에 자리한 절로, 많은 문화재를 전하고 있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절의 역사에 관한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다.

석탑은 바위를 바닥돌 삼아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했고, 가운데기둥 양 옆으로 얇고 넓직하게 안상(眼象)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는 1층 지붕돌이 파손이 심한 편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씩의 돌로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간략화되었다.

규모도 작아졌고, 각 부분의 양식이 간략해진 모습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원효암서편삼층석탑 (元曉庵西便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

시대 : 통일신라~고려 전기 추정, 소유 : 범어사,  관리자 : 범어사,  

소재지 : 부산 금정구 범어사로 250 (청룡동) 



원효암서편삼층석탑 (元曉庵西便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

 

원효암에서 서북쪽으로 30m 떨어진 공터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세웠다.

원래의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세우고 머리장식을 얹었을 터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과 머리장식의 일부가 없는 상태이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는데, 2층과 3층의 몸돌은 후대에 만들어 끼운 것이다. 각 층 지붕돌에는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즈음일 것으로 짐작된다.     



신룡동오층석탑 (新龍洞五層石塔) -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        

시대 : 고려 전기 추정, 소유 : ,  관리자 : 기원길,  소재지 : 광주 광산구 신룡동 57-1번지



신룡동오층석탑 (新龍洞五層石塔) -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

 

외딴 민가 옆에 우뚝 솟아있는 석탑으로, 현재는 절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나, 그 옆에 석불입상이 1구 있어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탑은 2층 기단(基壇)위로 5층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2층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져 5층까지 알맞게 줄어들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4단씩이다가, 4∼5층은 3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돌의 재질이 다른 장식들이 놓여 있는데, 나중에 보충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어서,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층 기단이 손상되고, 일부가 없어져 심하게 갈라진 위층 기단은 거의 무너질 정도였으나, 1981년 해체, 복원하였다. 탑 해체시 발견되었던 유물들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구례 사도리삼층석탑 (求禮沙圖里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 :  국유,  관리자 : 구례군,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531번지     



구례사도리삼층석탑 (求禮沙圖里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석탑이다.

밑돌 ·가운데돌 ·맨윗돌을 쌓아 3단으로 마련한 기단은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았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씩의 돌로 쌓아 올렸으며, 역시 별다른 장식은 없다. 두터워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이 두꺼운 원형을 이루어 받침을 대신하고 있고, 네 귀퉁이는 위로 들려있다. 3층 지붕돌 위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으로 보이는 네모난 돌이 놓여있다.

꾸밈이 없어 전체적으로 간결해 보이며, 지붕돌이 두텁고, 네 귀퉁이가 날카롭게 들려있어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영양 현이동모전오층석탑 (縣二洞模塼五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호 

시대 : 고려 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영양군,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영양읍 현2리 462-1번지

    


영양 현이동모전오층석탑 (縣二洞模塼五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호        


영양읍 현2리에 서 있는 5층 석탑으로,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렸다. 전탑(塼塔: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분류되며, 나즈막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탑신의 1층 몸돌 동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설치하였고, 그 입구 양 기둥에는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탑신의 2층까지만 남아 있던 것을 새로이 복원해 놓은 것으로,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차례로 얹혀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흑회색의 점판암 재질과 둔탁한 겉모습이 어우러져 육중한 느낌을 자아낸다.     



정읍 장문리오층석탑 (長文里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 :  국유,  관리자 : 정읍시,  소재지 : 전북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 산12-1번지 



정읍 장문리오층석탑 (長文里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호


1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은은한 곡선을 이루던 처마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고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이 헌칠하게 높고 2층 이상은 급격히 낮아졌으나, 지붕돌의 크기가 거의 일정하여 밋밋한 감을 준다. 옛 백제 지역에 세워 놓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1층 기단과 지붕돌의 곡선미 등이 백제 석탑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지방색이 강했던 당시 시대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대구 동화사염불암청석탑 (桐華寺念佛庵靑石塔)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 : 동화사,  관리자 : 동화사,  소재지 : 대구 동구 도학동 산124-1번지 



대구 동화사염불암청석탑 (桐華寺念佛庵靑石塔)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동화사에 딸린 암자인 염불암 안마당에 서 있는 탑으로, 원래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점판암을 이용해 만든 탑인데, 이 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닥돌 이외에는 모두 이 재질의 돌이 쓰였다.

탑은 3단의 바닥돌 위에 쌓아 놓았는데, 세울 당시에는 기단(基壇)과 탑신부(塔身部)의 몸돌들이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10개의 지붕돌만이 포개진 상태이다. 지붕돌은 파손이 심하여 곳곳에 작은 돌을 괴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다. 지붕돌은 밑면에 2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 느린 경사가 흐른다. 또한 두께가 얇고, 네 귀퉁이에서 곡선을 그리듯 한껏 들려 있어 경쾌한 멋을 이끌어낸다.

지붕돌의 비례는 그리 아름답지 않으나, 넓다란 바닥돌 위에 세워 놓은 작은 규모의 탑으로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청석탑이 널리 유행하던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상동리삼층석탑 (上洞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시대 : 고려시대추정,소유자:국유,  관리자: 횡성군, 소재지 : 강원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 495-1번지



상동리삼층석탑 (上洞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성덕사의 옛터에 석불좌상과 함께 남아있는 3층 석탑이다. 기단(基壇部)은 아랫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았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는데, 3층 몸돌은 잃어버려 없어진 것을 탑을 복원하면서 새로이 끼워 넣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1층과 2층은 4단씩, 3층은 3단으로 새겼으며, 낙수면에는 느린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는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나, 지붕돌의 너비가 좁고 두꺼워지는 등 양식상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보인다.     



부여 세탑리오층석탑 (扶餘細塔里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시대 : 고려 시대 추정, 소유 : 국유,  관리자 : 부여군,  소재지 : 충남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 311번지


 


부여세탑리오층석탑 (扶餘細塔里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호


 


부여세탑리오층석탑 (扶餘細塔里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호


탑이 서 있는 터 주변에는 청량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곳곳에 절을 이루는 건물에 쓰였던 돌과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탑의 둘레에 높이 1m 가량의 석축을 쌓아 기단부(基壇部)는 거의 보이지 않아 맨윗돌만 드러나 있고, 그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이 올려져 있다. 탑신의 각 층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2층 이상은 1층에 비해 급격히 낮아졌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데, 후대에 만들어 보충한 것이다.


위로 오를수록 탑신의 몸돌 높이를 낮게 하고 지붕돌의 너비는 조금씩 줄어 들어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장수양악탑 (長水陽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시대 : 고려 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장수군,  

소재지 : 전북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64-7 (양악리)



장수양악탑 (長水陽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수방사터로 전하는 양악리 산기슭 밭 가운데에 서 있는 작은 탑이다. 여러차례의 옮김과 세움을 반복하면서 탑의 일부부재가 없어지고 손상도 심한 상태이다.

탑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탑신부(塔身部)를 쌓았다. 1층 몸돌은 2층 이상의 몸돌에 비해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고, 2층 몸돌에만 기둥모양의 조각이 있다. 2층 이상의 지붕돌은 모두 위층의 몸돌과 한 돌로 되어있다. 1층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 지붕돌에는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5층 지붕돌이 없어진 채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지붕돌과 그 위층의 몸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아올렸는데 보기 드문 모습이며, 탑신 몸돌의 윗부분 너비를 좁혀 만든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인 석탑 양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범방동삼층석탑 (凡方洞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시대 : 고려 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부산 강서구,  

소재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1520-325 



부산 범방동삼층석탑 (凡方洞三層石塔)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옛 절터에 서 있는 탑으로, 절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탑은 2층 기단(基壇)을 쌓고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가지런히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1층에 비해 2층이 급격히 줄었고, 3층은 2층과 비슷하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이며,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시대에 절을 지으면서 이 탑도 같이 세운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각 부분에 새긴 조각수법이나 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보인다.     



횡성 읍하리삼층석탑 (邑下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3호


시대 : 고려 시대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횡성군,  

소재지 : 강원 횡성군 횡성읍 태기로 15 (읍하리)



횡성 읍하리삼층석탑 (邑下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3호


일제시대 당시 횡성군내의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을 옮겨 온 것으로, 바닥돌과 기단(基壇)을 잃어버려 3층의 탑신(塔身)만 남아있다.

남아 있는 탑신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 올린 것이다. 몸돌의 높이는 1층보다 2층이 많이 줄어들었고, 3층은 2층보다 조금 작다. 위로 올라갈수록 적당하게 작아져 안정감을 주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윗면의 경사가 급하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다. 3층 지붕돌 윗면에는 6㎝정도의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머리장식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없어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지만 탑신은 아담하고 안정감이 있다. 지붕돌의 양식이나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김해 안곡리 3층석탑 (安谷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시대 : 고려 시대 추정, 자: 국유,  관리자 : 김해시,  

소재지 : 경상남도 김해시 안곡로492번길 85 (한림면, 辛釋宮)



안곡리 3층석탑 (安谷里三層石塔)  전경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안곡리 3층석탑 (安谷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안곡리 폐사지에 있는 석탑으로서 원형을 잃고 있다. 탑의 기단부는 매몰되었고, 옥개석 3매와 탑신 1매만으로 세웠는데, 3층탑으로 추정되며,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것이다. 잔존한 탑신에는 문비가 4면에 새겨져있다.     



청주 탑동 오층석탑 (淸州 塔洞 五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시대 : 통일신라후기 ~고려 전기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김해시,  

소재지 : 충북 청주시 상당구 탑동로 35 (탑동) 



청주 탑동 오층석탑 (淸州 塔洞 五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청주 탑동에 서 있는 탑으로, 지금 자리에서 서쪽으로 40m 지점에 무너져 있던 것을 옮겨 세운 것이다. 이 탑으로 인하여 ‘탑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형태로 보아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을 듯 하나, 지금은 기단부가 거의 없어지고 탑신부는 1층의 몸돌과 1, 2, 3, 5층의 지붕돌만이 남아 있다. 5층 몸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탑을 복원할 때에 보충한 것이다.

일부만 남은 기단은 윗면에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기 위한 두꺼운 괴임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고, 4면에 불상을 새겼는데 동쪽은 약사여래상, 서쪽은 비로자나불상, 남쪽은 석가여래상, 북쪽은 아미타여래좌상인 듯하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치켜올라갔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는 듯하나, 잃어버린 석재들로 인해 웅장했었을 탑의 옛모습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사이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성주사삼층석탑 (聖住寺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시대 : 통일신라후기 ~고려 전기 추정, 소유자 : 성주사,  관리자 : 성주사,  

소재지 : 경남 창원시 성산구 곰절길 191 (천선동)



성주사삼층석탑 (聖住寺三層石塔) 전경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성주사삼층석탑 (聖住寺三層石塔) 탑신부와 기단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창원시 불모산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성주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10년(835)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내에 있는 많은 문화재 가운데 하나인 이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현재 아래층 기단은 일부만 남아 있고, 위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간단한 문짝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이고 처마선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네 귀퉁이는 치켜올림이 심한 편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모양의 석재가 놓여 있지만 원래의 것은 아니다.

간략해진 수법과 양식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순창 순화리삼층석탑 (淳化里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순창여중,  

소재지 :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295-11 (순화리)



순창 순화리삼층석탑 (淳化里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순창여자중학교 교정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탑이 서 있던 터에서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당시의 옛 절터로 추측된다. 원래 탑을 세울 당시에는 기단(基壇)이 2층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이 땅속에 묻혀 위층 기단만 땅위로 드러나 있고, 그 위로 3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이 쌓여 있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기고,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에만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얇고 넓다란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느린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각 지붕돌 윗면 꼭대기에는 윗돌을 괴기 위한 높은 단을 두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이 보이고 있다.

옛 백제지역에 서 있는 고려 전기의 탑으로서, 백제 양식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가 느껴진다.     



창원 지귀동봉림사지삼층석탑 (知歸洞鳳林寺址三層石塔) -경남 유형문화재  제26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 상북초등학교,  

소재지 : 경남 창원시 의창구 지귀로60번길 13-13 (봉곡동) 



창원 지귀동봉림사지삼층석탑 (知歸洞鳳林寺址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창원 지귀동봉림사지삼층석탑 (知歸洞鳳林寺址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봉림사터에 남아 있던 탑으로, 일제시대에 반출되었다가 되찾은 것이다. 관리 소홀로 많이 부서진 것을, 1960년 창원교육청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탑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은 2층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여러 차례 옮겨 다니면서 많이 깨져나가 위층 기단의 일부만 남아있다. 3층을 이루고 있는 탑신부(塔身部)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옛 모습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1층 몸돌은 두 조각으로 깨져 있던 것을 붙여 놓았는데 네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는 꾸밈이 없다. 특이한 것은 2층 몸돌에 문짝모양의 조각을 둔 것으로, 보통 1층 몸돌에 새겨놓던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몸돌을 덮고 있는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게 내려온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양식이나 조각수법이 자유로와 고려시대 전기에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도림사지삼층석탑 (道林寺址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청양군,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장평면 적곡리 산8-1번지



도림사지삼층석탑 (道林寺址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


도림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주변에서 ‘도림사(道林寺) ’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 터가 도림사의 옛 터임을 알게 되었다. 도림사는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계속되었던 사찰로 추측되고 있는데, 화재로 모두 불에 타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조각했는데 제법 뚜렷한 형상이다.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이 적당히 줄어들고 있어 깔끔한 균형을 이룬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3단씩 두었으며,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경사면은 네 귀퉁이에서 힘차게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고 있으며,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1973년경 탑을 보수할 때 네모난 사리장치를 발견하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태안 흥주사삼층석탑 (興住寺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흥주사   관리자 : 흥주사,  

소재지 : 충남 태안군 태안읍 속말1길 61-24 (상옥리)



태안 흥주사삼층석탑 (興住寺三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


흥주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일부분이 없어지거나 매몰되는 등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2층을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 기단의 일부가 땅에 묻혀 온전한 형태를 알 수 없다. 각 기단의 맨 윗돌은 아래위 모서리를 깎아내어 무딘 감을 주고 있으며, 위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부분에는 기둥모양을 본떠 조각해 놓았다.

 탑신부(塔身部)는 2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비례로 보아 3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층 몸돌에는 각 면에 네모난 윤곽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무늬를 두었을 것으로 보이나 뚜렷하지는 않다. 심하게 닳아 있는 지붕돌은 1, 2층 모두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들려있다. 3층에는 후대에 올려진 듯한 독특한 모습의 몸돌과 지붕돌이 보충되어 있다.

탑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시기와 비슷한 고려시대로 보인다. 일부 파손된 부분을 복원해 놓았으나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어색한 모습이다.     



평창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평창군,  소재지 : 강원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 204번지 



평창 탑동삼층석탑 (塔洞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9호


탑동마을의 옛 절터에 남아 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은 2층을 두었는데, 다른 탑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높아 안정감이 적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얕게 새긴 안상(眼象)이 있는데, 무늬의 바닥선이 꽃모양처럼 솟아올라 있어 당시의 유행양식을 잘 보여준다. 위층 기단은 맨 윗면에 두툼한 연꽃조각을 둘러 놓았다.

 3층을 이루고 있는 탑신부(塔身部)는 몸돌크기가 2층부터 갑자기 줄어들어 균형을 잃고 있으며, 각 층의 몸돌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두껍고 폭이 좁아 급한 경사가 흐르며, 밑면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큼지막한 머리장식이 얹혀 있어 무거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길어 보이는 기단부,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槐山 鳳鶴寺址 五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괴산군,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산1번지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槐山 鳳鶴寺址 五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이 석탑은 기단(基壇)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평평한 돌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이 올려져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2개의 돌로 이루어졌고, 나머지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1층 몸돌은 큰편이고, 2층 몸돌에서 급격히 낮아지다가 5층까지는 비슷한 크기를 유지한다. 각 층 지붕돌은 두꺼운 편이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지 않고, 지붕돌이 두꺼워진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일제시대에 쓰러졌던 것을 1967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워놓은 것이다.     



부여홍량리오층석탑 (扶餘鴻良里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부여군,  소재지 : 충남 부여군 홍산면 홍양리 190-1번지



부여홍량리오층석탑 (扶餘鴻良里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안량사(安良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남아 있는 5층 석탑이다. 현재는 절이 있었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다만 탑 주변으로 기와·자기조각, 토기 등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탑의 실제기단의 하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지대석이 마련되어 있고 상하단의 기단석이 마련되었다. 하단은 여러매의 돌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일부 유실이 된 상태이고 상단은 두장의 넓은 돌로 되어 있다. 그러나 중심축 침하로 인해 상단의 기단은 그나마 기울어진 형상이다.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부의 1층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2층 몸돌부터는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새겨진 3단의 받침이 또렷하고, 경사면이 완만하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 남아 있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는 나중에 보수하여 얹은 것이다.

기단부가 약간 허술하긴 하나 단아한 느낌이 드는 고려시대 탑으로, 탑신의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이 갑자기 낮아진 것이나 지붕돌에서 보여주는 비례 등에서 백제 석탑의 전통이 느껴진다.     



고창 선운사육층석탑 (禪雲寺六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선운사   관리자 : 선운사,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삼인리)



고창 선운사육층석탑 (禪雲寺六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고창 선운사육층석탑 (禪雲寺六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고창 선운사육층석탑 (禪雲寺六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고창 선운사육층석탑 (禪雲寺六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고창 선운사육층석탑 (禪雲寺六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선운사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기단(基壇)을 1층으로 마련하여 전체의 무게를 버티게 하고 그 위로 6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았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얇아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양끝에서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한 멋이 흐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대체로 잘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2층 몸돌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3층 지붕돌 역시 2층에 비해 폭이 좁아져 비례감이 조금 떨어진다. 옛 백제지역의 탑으로서, 지붕돌 등에서 백제탑 양식이 보이고 있어 지방적인 특색이 잘 담겨진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신원사오층석탑 (新元寺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신원사   관리자 : 신원사,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동길 1 (양화리)



신원사오층석탑 (新元寺五層石塔)  전경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


신원사오층석탑 (新元寺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


신원사오층석탑 (新元寺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



신원사오층석탑 (新元寺五層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1호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인 중악단(中嶽壇) 남쪽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현재는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이것은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것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거의 수평이다. 석탑의 서쪽에는 배례석(拜禮石:탑 앞에 두어 예를 갖출 때 쓰는 돌)이 마련되어 있다.

중후한 느낌을 주는 석탑으로,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75년 12월 탑의 해체·복원 공사 당시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 함원통보, 황송통보, 주둥이와 손잡이가 깨어진 자기주전자,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었다.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 (忠州 彌勒大院址 三層石塔)-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충주시  소재지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63번지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 (忠州 彌勒大院址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 (忠州 彌勒大院址 三層石塔) 기단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 (忠州 彌勒大院址 三層石塔) 탑신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


석굴이 있는 미륵사터 경내에서 동쪽으로 200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고려시대 3층 석탑이다. 이곳이 원래의 터로 추정되는데 절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 왜 탑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하여 2층 몸돌의 높이가 많이 줄어들었고,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시대가 고려로 내려옴으로 인해 지붕돌 밑면받침 수가 4단으로 줄어드는 등 후대의 양식이 나타난다. 대체로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을 갖추었다.     



강릉 방내리삼층석탑 (坊內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6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관리자 : ,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향교말길 22 (연곡면)  



강릉 방내리삼층석탑 (坊內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6호



강릉 방내리삼층석탑 (坊內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6호


신라의 옛 절터로 전하는 곳에 남아 있는 3층 석탑이다. 탑 주변으로 민가가 들어서 있어 탑 이외에 사찰이 있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기단부(基壇部)는 훼손이 심하여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고, 현재 작은 암반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이 쌓여 있다.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기고, 특히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여래좌상을 조각해 두었다. 지붕돌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두터운 낙수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른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과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급격히 줄어 전체의 비례가 조화롭지 못하지만, 1층 몸돌에 불상조각을 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등명사지오층석탑 (燈明寺址五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시대 : 고려 시대, 소유자 : 낙가사,  관리자 : 낙가사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괘방산길 16 (강동면, 낙가사) 



등명사지오층석탑 (燈明寺址五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등명사지오층석탑 (燈明寺址五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락가사(洛伽寺) 경내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푸른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 절은 원래 등명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맨 윗돌에는 연꽃무늬와 함께 석재의 일부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하여 부드러움을 주고 있다. 기단 위에는 오밀조밀한 5층의 탑신이 쌓여 있는데, 지붕돌의 밑면의 받침과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정적인 탑신에 운동감을 불어 넣어준다.

1층 몸돌에 도드라지게 새긴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조각은 목탑에서 이곳에 직접 불상을 안치하던 수법이 퇴화된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에는 연꽃이 새겨진 머리장식이 남아있다.

기단부의 구성 및 조각수법, 지붕받침 수, 퇴화된 감실의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아담하여 동시대의 다른 조형물과는 구별되는, 색다른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서울 약사사 삼층석탑 (藥師寺 三層石塔)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9호  


시대 : 고려말~조선초,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강서구,  소재지 : 서울 강서구 개화동 322-1번지  



약사사 삼층석탑 (藥師寺 三層石塔)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9호  


이 탑은 원래 약사사 석불 입상이 모셔져 있던 금당 바로 앞에 서 있던 삼층석탑으로 약사사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개화산 중턱에 있는 이 탑은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서 있는데, 그 모습이 투박한듯하면서도 날렵하다.

이 석탑은 일층 기단과 삼층 탑신으로 구성된 독특한 형식이다. 석탑의 받침부(基壇部)에는 사각형 지대석 위에 큼직한 사각형 기단과 판석으로 된 갑석이 놓여 있다.

다소 육중한 기단 위에는 갓기둥(隅柱)이 있는 1층 탑신과 큼직하고 가파른 지붕돌(屋蓋石)이 놓여 있고, 다시 2•3층 탑신과 지붕돌이 올려 있다. 탑의 몸체부(塔身部)는 투박한 받침부에 비해서 날렵한 모양이다.

이 석탑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의 희귀한 석탑의 예로 그 가치가 크다.       



원주 용운사지삼층석탑 (龍雲寺址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원주시,  소재지 : 강원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402-1번지  


원주 용운사지삼층석탑 (龍雲寺址三層石塔)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원주 용운사지삼층석탑 (龍雲寺址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원주 용운사지삼층석탑 (龍雲寺址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용운사터에 석불과 나란히 서있는 고려시대 3층 석탑이다. 탑 주변에서 ‘용운사’라 새긴 기와가 발견되어 절 이름을 알게 되었다. 

원주 용운사지삼층석탑 (龍雲寺址三層石塔) 탑신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3호  


탑은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 맨 윗돌 위에는 연꽃을 두른 두툼한 괴임돌을 두어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독특한 장식 수법이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느리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기단부 맨윗돌이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기단 윗부분에 아름다운 연꽃을 장식한 굄돌을 두고, 지붕돌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공주동원리석탑 (公州東院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공주시,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380번지  



공주동원리석탑 (公州東院里石塔) 전경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공주동원리석탑 (公州東院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동원리라는 마을 위쪽의 밭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탑 주변은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은 없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는데, 현재 세번째 탑신은 없어졌다. 1 ·2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 갔고,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기단과 탑신 몸돌에 새긴 기둥조각 등은 정교하나,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급격히 줄어들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또한 3층 몸돌을 잃어버려 아쉬운 감이 있다. 1962년 해체 ·복원시 곱돌로 만든 소탑(小塔)과 동물모양의 돌 등이 발견되어 국립공주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중기 신풍현 현감이 풍수지리상 이 마을의 뒤쪽이 트여서 현의 수명이 짧고 동리에 질병이 잦은 것이라 하여 모든 액운을 제거하고자 현감과 주민들이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정산남천리석탑 (定山南泉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청양군,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정산남천리석탑 (定山南泉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



정산남천리석탑 (定山南泉里石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


‘탑골동’또는 ‘절골동’이라 불리우는 남천리 산골짜기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그만 절터가 하나 있다. 절터에서 조금 떨어진 산 기슭에 이르면 아담한 모습의 이 탑이 보이는데, 2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네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고, 위층기단은 모서리에만 조각을 해 두었다. 탑신부의 각층 몸돌을 덮고있는 지붕돌은 곡선을 이루는 낙수면과 수평을 유지하는 처마의 조화가 아름답다. 네 귀퉁이에서의 들어올림도 가벼우며, 밑면의 받침은 1층에서부터 5단·4단·3단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 위로 세 조각으로 깨어진 머리장식이 위태롭게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한 균형미가 잘 나타난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횡성신대리삼층석탑 (橫城新垈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0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봉복사,  관리자 : 봉복사,  

소재지 : 강원 횡성군 청일면 청일로 909-19 (신대리) 



횡성신대리삼층석탑 (橫城新垈里三層石塔)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0호


봉복사 절입구의 산기슭 밭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탑이다. 이웃 주민들에 의하면 원래 이 터가 봉복사의 자리였다고 전해들었다 하는데, 이로 보아 이 밭 일대가 고려시대의 옛 절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구조이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기고, 위층 기단은 모서리에만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았는데, 탑신부의 각층 몸돌 역시 그러하다. 지붕돌은 모두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경사가 완만한 낙수면은 얇고 평평하며,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거의 없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큼직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기단부분과 지붕돌의 모습들로 보아 이 탑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김제 귀신사석탑 (歸信寺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귀산사,  관리자 : 귀산사,  

소재지 :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 (청도리)  



김제 귀신사석탑 (歸信寺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2호


귀신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안에 이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여러 장의 돌을 짜맞추어 기단(基壇)을 만들고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가 거의 평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의 곡선미와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조성된 수법 등으로 보아 백제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장춘사오층석탑 (長春寺五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8호


시대 : 고려 후기 추정, 소유자 : 장춘사,  관리자 : 장춘사,  

소재지 : 경남 함안군 칠북면 영동리 산14번지  



장춘사오층석탑 (長春寺五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8호



장춘사오층석탑 (長春寺五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8호


장춘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원래는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었으나 현재는 4층까지만 남아 있다. 탑신의 몸돌은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으로, 평면이 모두 사다리꼴이 되도록 윗면의 폭을 좁혔다. 이는 층수가 올라감에 따른 시각적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1·2층은 3단, 그 이상은 모두 2단을 두었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보다는 높고 날렵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忠州 丹湖寺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시대 : 고려 후기 추정,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충주시,  

소재지 :  충북 충주시 충원대로 201 (단월동)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忠州 丹湖寺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忠州 丹湖寺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


단호사 대웅전 앞뜰에 자리한 석탑으로, 현재의 자리가 원래의 터로 보이며, 1층 기단(基壇) 위에 탑신부(塔身部)가 놓여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일부가 약가 부서져 있다. 탑신부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1층 몸돌은 제법 높직하며, 4층 몸돌의 일부로 보이는 석재가 놓여 있어 5층탑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각 지붕돌은 두껍고 투박한 모습으로 경사면이 급하게 처리되었고,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충주 지방의 탑들이 대개 산 위에 놓여 있는 것에 비해, 이 탑은 평지에 서 있어 눈길을 끈다. 규모는 작으나 격식을 충실히 갖춘 안정감이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창녕 영산법화암다층석탑 (靈山法華庵多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시대 : 고려 후기 추정, 소유자 :  법화암,  관리자 : 법화암,  

소재지 :  경남 창녕군 영산면 구계리 산37-1번지



창녕 영산법화암다층석탑 (靈山法華庵多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창녕 영산법화암다층석탑 (靈山法華庵多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


법화암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 다층석탑으로,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유행한 청석탑(靑石塔) 또는 와탑(瓦塔)의 형태를 띠고 있다. 본래 영취산 위 보림사 소속 암자에 있던 것을 현재의 법화암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 전한다.

탑은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과 같은 독특한 모습으로, 기단부(基壇部)는 화강암이고 탑신부(塔身部)는 점판암(벼루를 만들 때 사용되는 돌)으로 되어 있다. 연꽃을 새긴 기단은 불단과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현재 탑신은 몸돌 1개와 지붕돌 7개만 남아있다.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상징하는 선이 그어져 있고, 얇게 만든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 있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을 대신한 다른 종류의 자연석이 놓여 있다.

석재를 많이 잃어버렸지만 원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점판암이라는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신안읍리삼층석탑 (新安邑里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신안군,  

소재지 :  전라남도 신안군 팔금면 읍리 350-1 



신안읍리삼층석탑 (新安邑里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신안읍리삼층석탑 (新安邑里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


들판 한 가운데 서 있는 탑으로, 탑이 속했던 절의 구체적인 역사는 전하고 있지 않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탑신부(塔身部)를 세우고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마다 기둥조각을 가지런히 새겨 넣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 한돌로 이루어졌으며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알맞게 줄고 있어 안정감을 준다. 두꺼워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약간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이는 파손된 석재가 놓여있다.

기단이 1층인 점과 가운데기둥조각이 생략된 점, 두꺼운 지붕돌, 4단의 지붕돌받침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진안 강정리오층석탑 (江亭里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관리자 : 전기섭,  소재지 :  전라남도 신안군 팔금면 읍리 350-1     



진안 강정리오층석탑 (江亭里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진안 강정리오층석탑 (江亭里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기단과 탑신의 1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이 높고, 2층 몸돌부터는 줄어드는 정도가 작다.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이 두꺼우며 지붕돌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든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 다정리삼층석탑 (多丁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남해군,  소재지 :  경남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 587-1번지



남해 다정리삼층석탑 (多丁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다천사에 세웠던 석탑이라 한다. 절의 내력과 역사는 알 수 없고, 다만 다천사가 용문사에 편입될 당시 탑만이 원래의 절터에 남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탑신부(塔身部)의 몸돌 2개와 지붕돌 2개만 남아 2층탑의 모습이지만, 원래는 3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이고, 지붕돌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3개의 보주(寶珠 : 작은 공모양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지붕돌이 두툼해지고 밑면의 받침이 3단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남해 보리암전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보리암   관리자 :보리암, 

 소재지 :  경남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65 (상주리)



남해 보리암전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



남해 보리암전삼층석탑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

보리암이라는 암자와 가까운 남해금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 ‘보리암전삼층석탑’이라 불리고 있는 3층 석탑으로, 주변의 경치가 너무나 빼어나 더욱 유명해졌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塔身)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을 얕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에 비해 폭이 크게 줄었다. 탑신의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직선을 유지하다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꼭대기에는 보주(寶珠:구슬모양의 장식)만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허태후(김수로의 왕비)가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원효대사가 이곳에 모셔 두었다 하나, 두꺼운 지붕돌 과 3단의 지붕돌받침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거창 갈계리삼층석탑 (葛溪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거창군,  소재지 : 경남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728-1번지 



거창 갈계리삼층석탑 (葛溪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



거창 갈계리삼층석탑 (葛溪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이 석탑은 탑불이라 불리는 마을로부터 약 200m쯤 떨어진 옛 절터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절터가 대부분 경작지로 변해 절의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절의 내력을 전해주는 자료도 없어 이 탑이 어느 절의 것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 석탑은 사각형으로 된 이중의 받침대를 두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일반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간략화 된 조성 기법이 고려시대 이후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받침대 부분은 위 아래 받침 모두 모서리 기둥과 함께 중앙에 받침기둥을 새겼다.

몸체와 받침을 이어주는 위 갑석은 경사가 별로 없는 한 장의 돌로 조성하였다. 각 몸체에도 모서리기둥을 조각했을 뿐, 그밖에 별다른 조각은 없다. 지붕돌의 받침은 각각 4단이며, 추녀의 물받이면은 낮게 조성하여 경사가 심하지 않다.

그러나 모서리 부분은 너무 치켜오려 과장이 심한 편이다. 꼭대기부분이 없어져 버려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다. 받침부분이 큰 데 비해 몸체와 대기부분이 없어져 버려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다. 받침부분이 큰 데 비해 몸체와 대기부분이 없어져 버려 원래의 모습은 알 수없다.

받침부분이 큰 데 비해 몸체와 지붕이 왜소해 보여 전체적인 조형미를 갖추지 못하였으며, 지붕돌 역시 너무나 두꺼워 투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조형 양식을 볼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성죽산리삼층석탑 (安城竹山里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8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성시,  소재지 :  경기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240-2번지



안성죽산리삼층석탑 (安城竹山里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8호


봉업사터 뒷편 비봉산 아래에 자리한 3층 석탑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혜소국사가 세운 탑으로 전하는데 지금은 이곳 동네 사람들의 소원을 비는 대상이 되고 있다. 



안성죽산리삼층석탑 (安城竹山里三層石塔)  기단 갑석 무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8호



안성죽산리삼층석탑 (安城竹山里三層石塔) 경기 유형문화재  제78호 - 3층탑신 신재로 보수( 2006)



안성죽산리삼층석탑 (安城竹山里三層石塔)- 3층 탑신(사리공의 유물 도난 흔적)-유형문화재  제78호



탑은 기단부(基壇部)의 일부가 땅에 묻혀 탑의 완전한 모습은 알 수 없으나 땅위로 드러난 모습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고, 윗돌을 괴는 곳에 연꽃무늬를 두어 장식하였다. 탑신의 각 몸돌에도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는 듯 하면서도 탑신의 1층 몸돌이 너무 높아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 또한 기단 맨윗돌의 연꽃장식과 두꺼운 지붕돌, 4단의 지붕돌받침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나주송제리오층석탑 (羅州松堤里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8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나주시,  소재지 :  전남 나주시 세지면 화탑길 32 (송제리)



나주송제리오층석탑 (羅州松堤里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8호


2층 기단(基壇)을 쌓고 그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기단은 아무런 조각 장식이 없는 단조로운 모습이다. 홀쭉하고 높아 안정감이 없어 보이는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돌로 쌓아 올렸다. 1층 몸돌은 지나치게 크고, 2층은 급격히 낮아졌다. 지붕돌은 밑면에 1층에서 4층까지는 3단, 5층은 2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며, 네 귀퉁이는 높이 치켜 올라갔다.

간결하면서 단정한 이 탑은 지붕돌받침이 4∼2단으로 일정하지 않고, 처마의 네 귀퉁이가 많이 올라간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순창 강천사오층석탑 (剛泉寺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강천사   관리자 : 강천사,  

소재지 :  전북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270 (청계리)



순창 강천사오층석탑 (剛泉寺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순창 강천사오층석탑 (剛泉寺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


강천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1층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는데, 1층은 확실히 보이고 있으나 그 위층부터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양끝에서 서서히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조그만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고려 충숙왕 3년(1316) 절을 크게 확장할 때 이 탑을 세웠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기단과 지붕돌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1959년에 약간의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남복리오층석탑 (南福里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5호

시대: 미상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정읍시,  

소재지 : 전북 정읍시 고부면 남복리 산6-3번지            



남복리오층석탑 (南福里五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5호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편편한 4매의 돌로 짜맞추고, 위층 기단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기단 맨윗돌 위에는 높은 괴임을 두었는데, 이곳에 난간모양을 새겨놓아 독특한 특징이 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4면에는 중앙을 직사각형모양으로 얕게 파내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