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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석탑 Ⅸ [유형문화재 ③]

문수봉(李楨汕) 2018. 1. 17. 15:37

고려 시대 석탑 Ⅸ [유형문화재 ③] 


순천 향림사삼층석탑 (香林寺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6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향림사    관리자 : 향림사,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조비길 36 (석현동) 



순천 향림사삼층석탑 (香林寺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6호


순천 향림사삼층석탑 (香林寺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6호



순천 향림사삼층석탑 (香林寺三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6호, 높이 3.3 m 


향림사 대웅전 앞마당에 동서로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석탑이다. 두 탑 모두 기단(基壇)을 1층으로 두어 전체의 무게를 버티도록 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그 형식이나 수법이 같아 동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이 탑은 단층기단에 탑신부와 상륜부를 갖추어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기단부는 지대석 1기가 매몰되어 하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지상에 나타난 양식을 보면 나직한 1단의 굄대를 돌려 지대석을 짜고 그 위로 4매판석(四枚板石)을 결구하여 기단을 구성하였다. 네 모서리에는 모서리기둥[隅柱]이, 각 면 중앙에는 버팀기둥[撑柱]이 새겨졌다. 기단은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조각을 두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새겼다.

갑석은 1매판석인데 아랫면에 부연이 표출되고 윗면으로는 높직한 각호각형(角弧角形)의 몰딩[moulding : 테두리장식]을 주어 탑신을 받게 했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탑신이 각 1석씩인데, 탑신 각 면에는 양쪽에 모서리기둥을 세웠다. 2∼3층 탑신에서도 역시 같은 수법이다.
옥개석은 1층에서 층급받침이 3단이고 처마는 수평이 아닌 가벼운 곡선을 그리면서 처마의 추녀마루 부분에서는 예리한 반전을 보여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마련하였고, 윗면은 얇고 평평하며, 처마는 네 귀퉁이가 위를 향한 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옥개석 윗면에서는 1단의 각형(角形)받침을 하여 상층탑신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양식은 3층에서까지 같은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갖추고 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단층기단이며 갑석에 부연을 각출하였고, 또한 3단의 옥개석 받침 등은 시대적으로 하대로 내려오는 퇴화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옥개석의 윗면에서 나타나는 높직한 1단의 받침대 등이 더욱 시대상의 하한을 예증해 주고 있다 하겠다.

옆에 있는 다른 1기의 석탑도 역시 위에서 살펴본 양식과 구성이 같은 양식이며 조성 연대도 동시대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석탑의 조성은 고려 하대로 추정된다.

두 탑의 규모나 양식이 거의 같은데, 전체적인 조각수법이나 지붕돌 등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에 동시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절 주위에서는 향기로운 차(茶)가 많이 재배되고 있어 절 안 가득 그 향내가 머무르고 있다 한다.     

 


고령 반룡사다층석탑 (盤龍寺多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 고령군,   소재지 :  경북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 171-1번지 대가야유물전시관 



반룡사다층석탑 (盤龍寺多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반룡사다층석탑 (盤龍寺多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반룡사다층석탑 (盤龍寺多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이 탑은 고려 시대에 유행한 다층석탑으로 3단의 화강암 기단위에 1층의 탑신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점판암으로 만든 옥개석이 다층으로 남아 있으며, 높이는 2.4m이다. 원래 반룡사 경내에 있었으나 현재는 고령읍내 대가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나라 석탑은 대부분이 화강석으로 조성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점판암제(粘板岩制) 소형 석탑이 출현한다. 점판암제의 경우는 육각, 팔각 등 다양한 다층석탑이 나타난다. 반룡사의 석탑도 점판암을 연마하여 조성한 소탑이다. 형태는 2단으로 된 방형의 화강석 기단에 다시 사각형의 점판암으로 된 2층의 연화대(蓮花臺)를 두고, 그 위에 옥신을 잃은 옥개석만을 쌓아 올렸다. 점판암의 2층 기단 둘레에는 단판(單瓣), 중판(重辦)의 양각 연화문(蓮花文)을 조각했다. 옥개석의 추녀 밑은 받침을 양각했고 옥개 윗면의 경사는 완만한 낙수면을 이루는 등 미려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이 탑이 있던 반룡사에는 다층석탑 외에 조선시대의 부도 몇기와 비신(碑身)이 없는 귀부일좌(龜趺一座)가 있다.

반룡사는 쌍림면 용리 미숭산(美崇山) 기슭에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이 절에 내린 방문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일본 원정에 참가하기 위해 경상도에 온 원나라 군인들이 절에 노략질을 하지 말 것’을 밝히고 있다.

해인사(海印寺) 원당암(願堂庵) 다층석탑(多層石塔)과 금산사(金山寺) 육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     



보은 원정리 삼층석탑 (報恩 遠汀里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 보은군,   소재지 :  충북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 산60번지 



보은 원정리 삼층석탑 (報恩 遠汀里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신라의 옛 절터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윗면에 높직한 괴임을 두어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부의 각 몸돌에도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일부 파손된 모습이다. 두꺼워 보이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어 경쾌하며,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과 보륜(寶輪:바퀴모양장식)만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기단이 1층인 점과 높직한 탑신받침, 두꺼운 지붕돌, 3단의 지붕돌받침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 (沃川 斗岩里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0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 옥천군,   소재지 :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이원리 582-3번지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 (沃川 斗岩里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0호



옥천 두암리 삼층석탑 (沃川 斗岩里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0호


두암마을의 민가 옆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주위에서 고려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이 당시의 옛 절터임을 알게 되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본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마다 3개씩의 안상(眼象)을 움푹 들어가게 새겼고, 위층 기단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부의 1층 몸돌에는 한쪽면에 문짝모양을 새겼는데 그 안에 자물쇠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다.

2층 기단에 3층 탑신이라는 통일신라의 기본양식을 따르면서도, 아래층 기단이나 지붕돌 등에서 그 전형을 벗어나 있어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탑으로 보인다.     




하동 진교리삼층석탑 (辰橋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9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 하동군,   소재지 :  경남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  



하동 진교리삼층석탑 (辰橋里三層石塔)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9호


진교면사무소에 자리하고 석탑으로, 원래 이명산(理明山) 내의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0년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으로, 아래층 기단이 상당히 넓어 보인다.

위층기단의 각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느린 곡선을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꽃봉오리모양의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아래층 기단이 넓긴 하나, 탑신의 몸돌이 지붕돌에 비해 높아 안정감보다는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진 3층 석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안성 신창리삼층석탑 (新倉里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 안성시,   소재지 :  경기 안성시 고삼면 신창리 293-5번지  



안성 신창리삼층석탑 (新倉里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안성 신창리삼층석탑 (新倉里三層石塔)  기단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안성 신창리삼층석탑 (新倉里三層石塔) 석탑 부재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신창리 마을에 서 있는 석탑으로, 탑이 있었던 자리는 봉국사의 옛 터로 추측된다. 절터는 현재 밭으로 변하였는데, 이곳에 탑이 무너져 흩어 있던 것을, 최근에 수습하여 세워 놓았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나, 아래층 기단은 그 일부만 남아 있다. 남아있는 위층 기단과 탑신의 세 몸돌에는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탑을 수습할 때 탑신의 1층 몸돌의 윗면에 사리를 두었던 동그란 공간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고, 처마는 양끝에서 느리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 있었을 머리장식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기단의 일부와 머리장식이 사라진 상태이나 거의 본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탑신의 양식이나 조각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 내소사삼층석탑 (來蘇寺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내소사    관리자 : 내소사,   소재지 :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석포리)  



부안 내소사삼층석탑 (來蘇寺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부안 내소사삼층석탑 (來蘇寺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내소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둥근 형태의 크고 작은 석재 2개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 (陰城 邑內里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음성군,   소재지 :  충북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817-2번지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 (陰城 邑內里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 (陰城 邑內里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


음성읍 평곡리 탑정이라는 옛 절터에 있던 탑으로, 1934년 경호정(옛 연풍정) 앞으로 옮겨 세웠다.

형태는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연꽃 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어 놓았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 양식에 비교할 때, 기단이 2층에서 1층으로 줄어들고, 기단의 가운데기둥 조각이 생략되었으며, 지붕돌 받침은 3단의 줄어 들었다. 이처럼 각 부분의 양식이 약식화되고 있어 고려 중기에 이 탑을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장성 내계리오층석탑 (長城內溪里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시대 : 고려말~조선초,  소유자 :     관리자 : 박동희,   소재지 :  전남 장성군 삼계면 내계리 51번지  



장성 내계리오층석탑 (長城內溪里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천방사터에 서 있는 석탑으로, 1층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았다.

기단의 네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본 떠 새겼는데, 그 위의 맨윗돌은 마치 탑신의 지붕돌과 그 모습이 비슷하여 시선을 모은다. 즉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약하게 들려 있으며, 경사가 급한 윗면의 네모서리가 굵게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의 다섯 몸돌에는 기단에서처럼 모서리에 기둥조각을 두었고,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비례를 보이고 있어, 고려말·조선초에 세운 탑으로 보인다.     



봉화 천성사삼층석탑 (千聖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시대 : 고려말~조선초,  소유자 : 천성사    관리자 : 천성사,   소재지 : 경북 봉화군 봉성면 금봉리 263번지  



봉화 천성사삼층석탑 (千聖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봉화 천성사삼층석탑 (千聖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봉화 천성사삼층석탑 (千聖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천성사 입구의 길 왼쪽에 놓여 있던 것을 절 안으로 옮겨 세운 것으로, 원래는 쌍탑이 나란히 서 있었으나, 나머지 하나는 봉성초등학교로 옮겨 놓았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1층으로 쌓고, 그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이 비록 1층이지만, 높게 마련해 두어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가느다란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얇아 보이는 지붕돌은 처마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으며, 밑면의 받침은 1, 2층은 4단으로 각이 지게 마련하고 3층은 둥글게 깎아 놓았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줄어들고 기단부의 퇴화, 지붕돌의 모습 등에서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장흥 천관사오층석탑 (天冠寺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시대 : 고려말~조선초,  소유자 : 천관사    관리자 : 천관사,   소재지 : 전남 장흥군 관산읍 칠관로 1272-473 (농안리)  


 


장흥 천관사오층석탑 (天冠寺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장흥 천관사오층석탑 (天冠寺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천관사에 서 있는 5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은 경사가 급하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통일신라의 전형 양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울진 불영사삼층석탑 (佛影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시대 : 고려말~조선초,  소유자 : 불영사    관리자 :  불영사,   소재지 :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길 48 (금강송면, 불영사)  



울진 불영사삼층석탑 (佛影寺三層石塔)  전경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울진 불영사삼층석탑 (佛影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울진 불영사삼층석탑 (佛影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울진 불영사삼층석탑 (佛影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울진 불영사삼층석탑 (佛影寺三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울진 불영사삼층석탑 (佛影寺三層石塔)  탑신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울진 불영사삼층석탑 (佛影寺三層石塔)  기단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불영사 내에 서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올렸으며, 몸돌의 각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받침)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아담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균형을 이루고 탑으로, 기단의 조각수법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증평 남하리사지 삼층석탑 (曾坪 南下里寺址 三層石塔)-충북 유형문화재  제141호


시대 : 고려말~조선초,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증평군,   소재지 :  충북 증평군 증평읍 남하리 35-2번지   



증평 남하리사지 삼층석탑 (曾坪 南下里寺址 三層石塔)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바위의 윗부분을 평평히 다듬고 네모난 받침돌을 놓아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탑신의 1·3층 몸돌은 각각 한 돌로 되어있고, 2층 몸돌은 1층 지붕돌과 한 돌로 조성되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높게 새긴 점이 특징적인데,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잘 어울려 안정감을 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각부의 양식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보성 옥마리오층석탑 (寶城玉馬里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시대 : 고려 후기,  소유자 : 월림사    관리자 :  월림사,   소재지 :  전남 보성군 노동면 벽옥길 127 (옥마리) 



보성 옥마리오층석탑 (寶城玉馬里五層石塔)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고려 성종 15년(966)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월림사터에 남아있는 탑으로, ‘벽옥탑(碧玉塔)’이라고도 한다.

형태는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느린 경사가 흐르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으며, 밑면에 1·2층은 5단, 3층은 4단, 4·5층은 3단의 받침을 두어 위층으로 갈수록 받침의 수가 줄고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이 좁고 높은데 비해 2층 몸돌부터는 급격히 짧아져 균형과 비례가 잘 맞지 않는다. 조성시기는 고려 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읍 무성리삼층석탑 (武城里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시대 : 고려 후기,  소유자 :     관리자 :  이용로,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칠보면 원촌1길 96 (무성리) 



정읍 무성리삼층석탑 (武城里三層石塔)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무성리 마을의 논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높게 마련된 축대 위에 서 있다.

바닥돌 위로 1층 기단(基壇)과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탑신의 1층 몸돌이 지나치게 크다. 기단과 탑신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느린 경사가 흐르고 있다. 얇아 보이는 지붕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 끝에서 살짝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보주(寶珠:구슬모양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너비에 비하여 길쭉해 보이며, 기단보다 높은 탑신의 1층 몸돌 탓에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들고 있다. 1층으로 줄어든 기단, 3단의 지붕돌 받침, 형식적인 기둥조각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이 곳이 옛 백제지역이었던 만큼, 지붕돌의 곡선에서 백제탑의 양식이 살짝 보이고 있어 지역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안양 중초사지삼층석탑 (安養中初寺址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


시대 : 고려 후기,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안양시,   소재지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 (석수동) 



안양 중초사지삼층석탑 (安養中初寺址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



안양 중초사지삼층석탑 (安養中初寺址三層石塔)  탑신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


중초사터에 남아 있는 탑으로, 원래의 자리는 아니고 1960년 옛 터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1층으로 쌓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부는 2·3층 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3개 포개져 있다. 기단과 1층 몸돌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매우 두꺼워 급한 경사를 이루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양끝에서 희미하게 들려있으며, 밑면의 받침은 1·2층은 4단, 3층은 3단을 두어 간략화 되었다.

전체적으로 기단부가 너무 크고, 탑신의 1층 몸돌이 그에 비해 지나치게 작아 불안정한 모습이다. 1층 기단이라는 특이한 점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후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