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파룬궁을 알고 수련한지 어언4년...
진리를 찾고 찾고 해메다, 파룬궁의 법전을 보고 기공을 수련하면서
아... 바로 이것이구나 하며, 격동되어 너무나 기쁜나머지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감히 제가 여쭙고자함은, 파룬궁 싸이트에 있는 모든 글을 다 보시고 말씀하시는 지 알고 싶고,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었이 잘 못되었다고 생가하시는지,
허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서, 먼저 글로서 당돌하게 질문 드리게됨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초급 수련자이오니, 명쾌한 답변 부탁 하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언젠가 본 싸이트를 보다가, 허선생님의 비판적인 글을 본 기억이 나서
제차 좀더 확실한 답을 듣고 싶어서 입니다.
* 질문자 : 익명(2012-03-11)
[답변]
2004년도에 법륜공을 강력하게 옹호하시는 분과 대화를 나눈 것이 있습니다.
당시 답을 한 것을 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법륜공의 핍박은 과연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질문]
번호 1865 날짜 2004/06/23 작성자 허해구
지금 님은 법륜공을 진리라 보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님의 시각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님이 판단하고 있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서 진실이 밝혀지고 사회가 밝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법륜공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습니다.
다만 귀하가 법륜공에 대해 물었기에 내가 본 사실을 말하는 것이니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왜 남이 그렇게 보았느냐를 진지하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님은 지금 법륜공을 진리라 보고 법륜공을 행하면 사람들이 모두 착해지고
법륜공의 덕을 입어 무병장수하며 서로 돕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정반대의 결과가 예상됩니다.
만약 법륜공이 널리 전해지면
그 기운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길도 모른채
무조건 법륜공 수행을 하게 될 것이며
수행에 매달리는 현상이 일반화되어 삶을 소홀히 되고 사회는 비생산적이 될 것이며
법륜의 치유능력과 법신의 보호를 믿는 비합리적 사고방식이
건전한 이성을 마비시키고 이홍지님을 숭배하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진리의 빛을 섬기는 것이야 괜찮겠지만 빛이 보이지 않는 분을 섬긴다면
그것은 세상을 어둡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는 법륜수행으로 인한 부작용이 만연하여
그 치료에도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법륜수행이 일시적으로 야기하는 부작용을 청리현상이라고 하지만
좋은 기운은 부작용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생체에 맞지 않는 기운이 들어오니 몸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며
새로운 기운의 작용으로 일시적으로 병이 나아 보이나
그 기운이 앞으로 어떠한 부작용을 일으킬 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수행자들은 모두 이러한 공통된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효과를 보다가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심신장애를 일으키는 현상 말입니다.
님은 예수와 부처님이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은 인간들에게 수행을 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우주의 실상과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갈길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홍지님의 책에는
그러한 깨달음의 이치와 인간에게 가르치는 길이 없었으며
단순히 법륜수행과 그로 인한 공덕이 주였습니다.
귀하는 내가 얼마나 그곳의 책을 읽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나는 님이 권하기에 전법륜과 법륜공을 모두 보았습니다.
책이야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니 줄치고 암기할 수는 없지만
일반 책을 읽듯이 충분히 읽었습니다.
전번에는 님이 올린 글을 보고 그 속에 있는 사실을 말했으며
이번에는 책을 보고 그속에 있는 분명한 증거를 보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님은 이곳의 내용이 법륜공의 가르침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그런 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들도 성자들의 가르침을 전해들은 것이 있고 그것을 인용하고 있으니
비슷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하고 세상을 꿰뚫어 보는 깨달음의 눈이 없으니
그러한 내용들을 자신들의 교리를 옹호하는데 교묘하게 이용하여
결국 말법을 부추기고 사람들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글과 내용이 비슷해 보여도 결론은 항상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알게 될 때 비로소 진실에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귀하는 테레사의 행동이 공덕행의 모범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단순한 동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정의 표출일 뿐
성자의 행동이 아니며 큰 공덕행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볼 줄 모르는 동정심은 오히려 악에게 이용당할 뿐입니다.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조건 참고 베푸는 것이 공덕이 아니라
바른 이치를 찾아 세상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벼리를 밝혀 행하는 것이
올바른 구도자의 공덕행인 것입니다.
올려준 글에서 이혼의 위험을 무릅쓰고
법륜공을 지키고자 하는 한여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녀는 법륜공의 진리성을 믿고 집과 재산과 가정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법륜대법을 진리로 믿었기에 좋은 말로 하자면 하나가 된 것이며
나쁜 말로 하자면 맹목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녀가 법륜공을 그토록 숭배하는 이유에는
법륜공 속에 세상을 밝히는 이치가 있다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륜공의 기운에 의해 몸에 변화가 일어나고
기가 마음에 영향을 주어 그렇게 행동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영적 단체에서 그러한 현상을 보입니다.
종교단체의 신자들은
자신은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건전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알지 못하게 영기가 스며들게 되면
그의 사고방식은 영기의 조종을 받게되며
그 집단에 나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고 해서 그곳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자비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정신으로 다른 공간(차원)의 사악한 요소의 교란을 제거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악한 감정을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이러한 말은 이치가 없는 말이며 비합리적인 정신력에 의지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일은 그러한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이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른 이치에 따라 올바른 원인을 짓지 않고
자신들의 의식을 보낸다고 해서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치에 따른 행동을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착하게 인내하며 제3의 공간의 교란된 요소를 정념으로 제거하면
문제가 풀린다는 식으로 말을 하니
그곳에는 올바른 이치가 없고 이홍지님은 깨달은 이가 아니라 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법륜공을 믿는 사람들이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으로
희생을 당하는 불행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2012-03)
[의견]
위글을 보니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에 대해 결론 내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허해구님은 진리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분으로 아직 관념에 매여서 우주와 사물의 실상을 정확히 볼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올라오는 글들을 절대진리라 믿는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모두 거짓말에 속을 수 있음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다음 글 참고하셔서 다른 사람이 주입하는 지식과 관념이 아닌 자기 본성의 지혜(통찰智)로 진위를 파악하시길 당부드립니다.
======================================
초능력이란 무엇일까? 내가 이해하는 한에서 초능력이란 현재 인류의 과학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이다. 텔레키네시스(물체를 움직이는 능력), 텔레파시(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 천리안, 투시능력, 공중부양, 예지능력 등이 그것이다. 초능력에 대해 허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번쯤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글을 읽게 될 모든 이들을 향해 선의(善意)을 갖고 내 사연을 밝힌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중국에서는 장보우성(張寳勝)이 유명세를 탔다. 장보우성은 선천적인 초능력자였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투시능력과 텔레케네시스 능력을 갖고 있었다. 또 초능력이 강하고 안정적이어서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초능력이 없어져 보통사람과 다름없게 됐다.
베이징의 여류 기공사(氣功士) 장샹위(張香玉)는 말기 암환자 치료로 유명했고 예지능력도 탁월했다. 그러나 장샹위의 초능력은 안정적이지 못했고 몇 년 후에는 능력이 떨어져 사기꾼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장샹위의 초능력은 진짜였다.
세상에는 이들 같은 초능력자들이 매우 많다. 세계 곳곳에 모두 있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보통사람들은 초능력자를 동경하고 환상을 품기도 하지만, 실제로 초능력이 생긴다면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초능력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었다.
나는 1970년에 중국 산시(陝西)성 퉁관(潼關)의 작은 산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초능력이 발현됐는데, 다섯 살쯤에는 육안(肉眼)으로 임산부 뱃속의 태아를 볼 수 있었고, 여덟 살부터는 인체에서 나오는 광채(光彩)를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아우라(Aura)’였는데 정확히 아우라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하여튼 그런 일종의 광채였다.
나는 이 광채를 통해 사람의 인품, 건강, 운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었다. 이 광채는 대개 사람의 정수리 위에 있는데 직경이 30~50cm정도 되는 불꽃처럼 생겼으며 불꽃이 빛을 방사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내뿜는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의 광채는 아주 약하고 어두우며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지는데, 이때 사람도 숨을 거둔다. 광채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병이 나면 광채가 어두운 회색을 띠고, 건강할 경우에는 우윳빛 백색이나 회백색을 띤다. 사람이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광채가 어둡고 희미하고 에너지도 약하며, 좋은 운을 만나면 화려하고 밝으며 붉은 색이다. 재미있는 것은 직책이 높은 고관이나 장성 같은 사람들은 선명한 자주빛인데다 광채도 훨씬 크고 강하다는 점이다.
◆ 태아 성별 잘 맞춘다고 소문나
나에게 초능력이 있음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1980년대 후반이었는데 내가 임신한 둘째, 셋째 이모 뱃속 태아의 성별을 정확히 알아맞췄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투시력이 있어 임산부 뱃속 태아의 성별을 알아맞출 수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다. 그후로 남자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찾아와 태아의 성별을 판별해달라고 했다.
10초반 장난기 많았던 나는 오는 사람마다 남자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여자아이를 낳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나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감사해하며 내 ‘초능력’을 여기저기 소문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거의 매일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왔다. 어떤 사람은 시안(西安), 웨이난(渭南)에서 몇백 리 길을 차를 타고 와서는 자신의 재물운, 승진운, 건강운까지 봐달라고 했다. 그럴 경우 그들의 ‘광채’를 보고 추측하면 대체로 맞았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5~10위안씩을 받기 시작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한 달에 천 위안씩 벌이가 됐는데 1980년대에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돈만 벌게 했다. 계속 그렇게 살았다면 나는 몇 년 뒤에 점쟁이가 됐을지 모른다. 이웃들에게는 대접받고 힘들게 농사 지을 필요도 없이 집에 앉아 입만 놀리고도 편안하고 부유하게 살았을 것이다. 아마 중국의 엄청나게 넓은 농촌 지역에는 이런 사람들이 꽤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다른 사람의 운명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운명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 안 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큰 액운이 닥쳤다.
1984년 여름, 우리 마을에 새로 임명된 당위원회 서기(위원장)가 내가 출산 전 아기의 태아 성별을 판별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임신 4개월인 며느리를 데리고 찾아왔다. 그 서기는 남자아이를 원한다면서 만약 여자아이라면 유산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14살이라 관청 무서운 줄 몰랐고, 늘 하던 대로 “며느리가 임신한 아이가 남자아이”라고 장난을 쳤다. 사실 임산부 뱃속 태아는 여자아이임을 똑똑하게 보았지만, 남자아이라고 말하는 버릇에다 유산시킨다는 말에 여자아이라고 말하기 싫었다.
나는 중국정부 정책에 따라 산아제한을 하는 간부들을 여러 번 유심히 관찰했는데, 그들의 광채는 강대한 검은색을 띠어 보기에 아주 불쾌했기 때문이다. 1985년, 그 서기의 며느리가 여자아이를 낳았다. 서기는 아주 실망했지만 온 가족이 간부였기 때문에 산아정책에 있어 모범을 보여야 할 입장이라 더는 손자를 낳을 수 없었다. 서기의 가족들은 그 이후로 나를 아주 미워하게 됐는데 그렇다고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 해 설날께 나는 같은 마을에 사는 두 살 연상 여자애와 사귀게 됐다. 그 아이는 아주 예뻤고 우리 집안과 그쪽 집안 모두 우리의 교제를 축하해줬다. 나는 그 여자애에게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했는데, 당위원회 서기를 속여 손녀를 낳게 한 일도 말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이 사실이 온 마을에 다 퍼졌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서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됐다. 서기는 즉시 파출소에 명령해 ‘봉건미신을 퍼뜨려 군중을 기만한다’는 죄로 우리 집 가족들을 잡아들였다. 부모님과 형, 누나는 모두 1년 판결을 받았고, 나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6개월 노역형을 받았다. 온 식구 중에서 할머니만 연세가 많아 난을 피할 수 있었다.
◆초능력 때문에 집안 풍비박산
나는 나이가 어린데다 가족들마저 감옥에 있어 도와줄 이가 없었기 때문에 노역소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 음식도 잘 먹을 수 없었고 같은 방에 있는 죄수들에게서는 구박을 받았다. 내 잠자리는 소변기 옆이었는데 밤새 지린내에 시달려야 했다. 교도관들은 제일 힘든 일은 꼭 나에게만 시켰고 자주 벌을 줬다. 어려서부터 대접 받는데 습관이 된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어 매일 죽고 싶은 생각이었다. 초능력이 있어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됐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6개월을 견뎌야 했다.
1985년 7월, 형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또다른 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지 며칠되지도 않아 향 정부에서 일하는 친척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는 나에게 “빨리 먼 곳으로 달아나라”고 했다. 내가 속였던 서기가 아직도 나를 미워하고 있으며 또다른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었고 나는 그들을 찾아가보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감옥 생활에 너무나 힘들었기에 다시는 감옥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1000위안 정도 있던 집안 돈을 몽땅 챙겨서는 그날 밤으로 시안(西安)으로 향했다.
◆ 15살부터 유랑생활
시안에 도착하자 앞길이 막막했다. 시안은 엄청나게 큰 도시였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선 머물 곳이 필요했다. 1985년 당시 나에게는 아직 신분증 같은 것이 없어 여관에 묵으려면 소개장이 있어야 했는데, 소개장을 써줄 곳이 없었다. 어느 여관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노숙했다. 다행히 돈을 가지고 나왔기에 당장 끼니는 해결할 수 있었다.
낮에는 할 일이 없어 거리를 다니며 상점을 구경했고 저녁에는 공원 벤치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시안에 도착한 지 겨우 3일만에 또다시 곤경에 처했다. 시안의 한 공원에서 찬바람이 들지 않는 잠자리를 찾아 다니는데 갑자기 젊은 남자 몇 명이 나를 둘러싸더니 그 중 한 명이 벽돌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잠시 기절했던 내가 깨어난 뒤에 그들은 온데간데 없었고 몸에 지니고 있던 돈도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처지를 한탄할 새도 없이 놀라움이 엄습했다. 인체투시 능력이 발현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깨어난 후 나 자신의 내장과 골격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똑똑하게 보였다.
인체를 투시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다 나체로 보인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여느 사람과 똑같이 보인다. 그렇지만 한 사람을 한참 집중해서 보면 점차 투시상태로 들어갈 수 있고 점차 이 사람의 내장과 골격을 볼 수 있다. 처음엔 똑똑히 보이지 않다가 5~6분 지난 후에야 완전히 똑똑히 보인다. 하지만 자신을 볼 땐 이런 과정없이 즉시 똑똑히 투시할 수 있다.
이런 초능력도 당시 나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초능력이 있어도 밥을 먹어야 할 수 있는데 밥벌이를 못했기 때문이다. 투시력있다고 일자리를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병원에 가서 “투시력이 있으니 X-레이 대신 일할게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믿어주기는커녕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게 분명했다. 여전히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도둑질을 하지 않으려면 구걸해서 먹고 살아야 했다.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이튿날 아침 나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게 됐다. 바로 폐품을 줍는 것이었다. 한 할머니가 아침 일찍 공원에서 병이나 신문 같은 것을 줍는 것을 보고는 그때부터 나도 폐품 수집을 하며 유랑하기 시작했다.
바이옌숭(白岩松)의 말에 의하면 고물 줍는 나날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풍찬노숙하며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얼굴에 땟물이 흐르며 경찰의 꾸지람과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은 모든 고물 줍는 사람들의 공통된 고난이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노숙자를 봐 왔으므로 여러분은 다 알 것이다. 그러면 고물 줍는 생활의 쾌락은 무엇일까? 바로 자유다. ‘3년 거렁뱅이 황제와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자유롭고 구속이 없으며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데 일반인은 이런 쾌락을 체험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초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평생 고물 줍는 사람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시안에서 몇 년 있다가 서서기가 퇴직하거나 다른 지방으로 전근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가 계속 내가 하던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 그 후 시안에는 세계를 진동시키는 큰 일이 발생했는데 내 계획을 망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운명까지 바꾸었다.
나는 고물 줍는 생활에 아주 충실했다. 매일 밥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자 따뜻한 곳에서 추위를 막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렇게 바삐 돌아가는 가운데 시간은 어언 1986년 12월이 됐다. 어느 날 오전 내가 거리를 돌고 있는데 갑자기 천지가 변한 듯 온 도시가 눈부시고 강렬한 빛에 휩싸였다. 나는 무슨 일이 발생 했는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며 이 빛의 출처를 찾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었고 주변 사람들도 나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태양이 다섯 개다!”라고 외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맙소사, 정말 다섯 개의 태양이 나타났다. 나는 여태껏 이런 광경을 본 적 없었다. 하늘 주위가 모두 태양이었는데 동서남북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나를 더욱 흥분하게 한 것이 있었다. 하늘에 은은하고 거대한 영상이 나타났는데 이 영상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석가모니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투시능력이 있지만 이전에 절에 가서 부처에게 절을 해도 귀신은 본 적 없었고 부처의 법신(法身)을 본 적도 없었다. 나는 은연중에 구천(九天) 밖에 반드시 인류가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바로 이날부터 나는 佛法을 배울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생각한 나는 출가하여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몇몇 절을 찾아가 알아보았지만 결국 절에서는 다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나마 좋은 곳은 나에게 돈 몇 푼을 주었고 나쁜 곳에서는 직접 나를 쫓아냈다. 이런 냉대를 받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바로 나의 옷차림이 너무 허름하여 거지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출가하려면 반드시 먼저 돈을 좀 벌어 상황을 바꾸어야 했다. 어떻게 돈을 벌까? 고물을 줍는 것으로는 안 되겠기에 생각 끝에 나의 본업인 점보는 일을 하기로 했다. 1년 동안 모은 백 위안으로 목욕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한 옷으로 바꾸고 시안(西安) 뚱관(東關)의 빠셴안(八仙庵) 부근에 점치는 노점을 차렸다.
◆ 돈 많이 벌자 욕심 생겨 수련은 뒷전
빠셴안은 시안에서 찾는 사람이 가장 많은 절이었는데 타지방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때 빠셴안 주위에는 몇몇 점치는 노점을 벌인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나의 관찰에 따르면 장사가 괜찮아 하루에 20~30위안은 버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동전3개로 고객에게 점을 치게 하고 주역으로 풀이했다. 나도 그런 모습을 흉내 내어 그런 자세를 취했지만 물론 주역은 모르고 초능력으로 보고 손님들에게 말했다. 나는 인체투시를 할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어떤 병이 있는지를 잘 맞추었으며 아주 빨리 이름을 날려 수입도 수직 상승했다. 처음에 나는 1위안을 받았었는데 1987년 4~5월경에는 점 한번 치는데 5위안을 받아 하루에 백십 위안 정도를 벌었다.
돈이 많이 들어오자 생활 조건도 자연히 나아져 나는 잠시 시안 남쪽 교외에 있는 개인주택에 세 들어 살면서 생활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가 고물 줍는 사람이었던 것을 모른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자 점차 내게도 탐욕이 생겨 불법 수련을 하려던 생각은 뒷전에 두고 돈벌이에만 전념했다. 얼마 후 나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해서 아버지 어머니를 시안으로 모셔왔다. 그 후 우리 일가는 시안에서 안정을 찾아 보통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했다.
하루하루 나는 계속 평범한 생활을 했으며 점을 잘 본다는 내 명성은 갈수록 높아갔고 돈도갈수록 많아졌다. 1992년, 나는 시안에 15만 위안을 들여 사합원(四合院: ‘ㅁ’자 형태의 마당을 4개 건물로 둘러싼 화베이, 베이징지역의 전통건축 양식)을 샀고 형님과 누나들도 시안으로 데려왔다. 계속 이렇게 살았더라면 아마 나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을 것이고, 사회에서 성공한 인사가 됐을지도 모르고, 아마도 더 많은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이 나에게 초능력을 하사하신 것은 절대로 나더러 인간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부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게 한 것은 운명이 정해진 것이다.
◆ 佛法 수련 깨닫게 해준 스승 만나
1993년 6월 TV에서 쓰촨(四川) 어메이산(峨嵋山)에 ‘불광(佛光)’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방송됐다. 나는 1986년 당시에 하늘에 나타난 석가모니를 본 기억이 나서 어메이산에 가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7월이 되어 나는 혼자 어메이산에 올랐다. 당시 어메이산에는 아직 케이블카가 없던 때라 나는 관광객 대열에 참가하지 않고 사람들 뒤를 따라 천천히 산에 오르면서 부처님이 다시 나타나시길 내심 기대했다.
내가 산의 절반까지 올랐을 때 맞은 편에서 한 30대 남성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옷차림은 소박하고 정결했으며 얼굴은 인자하고 선했다. 나를 끌어당긴 이 사람은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몸에는 내가 여태껏 보지 못한 광채를 띠고 있었다. 일반인의 광채는 모두 단일한데 많아야 3가지 색이다. 내 경험으로는 출가한 사람만이 2가지 이상 색상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광채는 오색찬란했으며 화려하고 눈부셔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었고 강대한 광채는 불가사의 해 광염이 끝이 없다고 형용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그 분을 주시하면서 이 사람이 도대체 일반인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보려 했다. 뜻밖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다가오더니 나더러 당신에게 전할 佛法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분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그분은 나를 한 여관에 데리고 가 함께 열흘 동안 지내면서 내게 그의 수련 공법 전부와 이론을 전수해 주고 떠나기 전에 나에게 佛法 수련 책 한 권을 주셨다. 이 法을 전수한 분이 바로 나의 사부님이다. 그때부터 나는 정식으로 사부님이 전한 佛法 수련을 했다.
선천적으로 나에게는 초능력이 있어 타고난 수련 기질이 있었다. 불법 수련을 한 후부터 짧은 시간, 아마 2년 전후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또 질적인 비약이 나타났다. 이렇게 말하자.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초능력을 나는 불법수련을 통해 지금 다 갖고 있으며 어떤 제한 없이 수시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시간 당신이 컴퓨터에 앉아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을 때 사실 내가 생각만 하면 순식간에 당신 앞에 나타날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할 수 없다. 그건 당신을 해치는 것이며 이번 생에 마련된 당신 수련의 기연(機緣)을 망치기 때문이다.
초능력은 佛法 수련의 부산물로서 추구할 가치가 없다. 내가 佛法 수련을 통해 진정하게 얻은 것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이치를 알게 되어 많은 마음 속 수수께끼를 푼 것이다. 이 몇 년을 수련해 나는 곧 성공을 하게 된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이전 생에 맺은 많은 인연을 풀기 위함이다.
다음 글은 내가 佛法 수련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2012년의 일부 일들을 일반인이 알 수 있는 것만 골라 쓰겠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많은 의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당신이 말할 필요 없이 내가 하나하나 해답하겠다.
나는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몇 년 동안 거의 떠돌아다니며 보냈다. 천하 명산대천, 세계각지의 기이한 광경을 나는 다 보았다. 모두 걸어 다녔으며 초능력을 사용한 적은 없다. 떠돌아다니면서 나는 중국 각지 명산에 은거한 채 수련하는 많은 이들을 발견했다. 이런 사람들은 최소 몇 백 년을 수련했는데 많은 사람은 수천 년을 수련했다. 이런 곳에 은거한 수련인은 모두 초능력이 아주 강대했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세인들과 접촉하지 않으며 더욱이 속세 일에 간섭하지 않고 더 이상 제자를 받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은 그렇게 강한 초능력이 있으면서 산속에 숨에 세속의 일을 묻지 않고 인간의 고난을 구제하지 않으면 수련을 높게 해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할 것이다. 이 문제를 나는 이렇게 보고 있다. 인류 사회의 고난, 예를 들면 지진, 쓰나미, 돌림병 등 재난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바로 소위 말하는 겁난이다. 수련 중에 있는 사람이 아닌 석가모니 부처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는 수련인이 자비롭지 못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자비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라도 우주 법칙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재난은 정해진 것이며 일반인의 운명도 정해졌다. 예를 들면 수명, 빈부, 귀천, 질병 이 모든 것은 다 개변할 수 없는데 모두 각자의 인연 업보에 따라 배치한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나의 강대한 공력으로 내가 생각만 하면 어떤 질병도 모두 즉시 완쾌시킬 수 있지만 나는 어떤 사람도 치료하지 않는다. 왜인가? 그것은 당사자의 업보이고 전생에 악한 일을 한 것을 금세에 갚는 것으로서 그는 이 병에 걸려야 하며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로병사, 이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규칙이며 누구도 이 규칙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일반인의 운명에 간섭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고 생사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수련이다. 그 외 다른 길은 없다. 사람들은 수련하면서 늘 ‘오성(悟性)’, ‘선근(善根)’, ‘연분(緣分)’, ‘자비(慈悲)’ 이 4가지 단어를 말하지만 나는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누구도 이 4가지 단어에 들어있는 진정한 의미를 똑똑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해하기 쉽게 말하겠는데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소위 말하는 오성은 지능의 높고 낮음, 총명 여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상태를 가리킨다. 심리상태가 평화적이고 정서와 관념, 욕망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적인 사고와 자주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은 바로 오성이 높은 사람이다. 예를 들면 불경에서 말한 내용을 오성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주입한 후천적인 관념으로 가늠한다. 당연히 그는 불경의 크고도 넓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오성이 높은 사람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모든 관념을 버리고 자신이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는 불경의 함의를 이해하는 만큼 높아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근(善根)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처럼 이렇게 선천적으로 초능력이 있는 사람을 바로 선근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틀렸다. 선근과 초능력 사이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쩌면 당신 같은 일반인이 신기한 일을 겪어보지 못했고 초능력을 믿지 않더라도 선근이 깊을 수 있다. 그럼 선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선량하고 순진하며 부처를 향한 확고한 마음을 뜻한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불성(佛性)이 있지만 인간세상의 미혹 속에서 차츰 잃어버린다. 선량한 마음이 들 때면 그때가 바로 불성이 나온 것이며, 이 선량한 마음이 가장 큰 선근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佛性을 지녀
불가에서는 늘 부처의 문은 넓지만 인연 없는 사람을 제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인연’은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 두 가지로 나뉜다. 인연은 모두 당신이 인간세상에 환생하기 전에 다 배치해 놓은 것이다. 계약서를 맺은 것과 흡사하다. 환생하기 전에는 계약서 체결을 잘 하고 환생한 후에는 계약서대로 행해야 하는데 대체로 이런 뜻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금세에 부처와 인연 있는가 묻는데 이 오독악세(五毒惡世)에서 인간의 몸으로 전생했다면 반드시 부처와 인연이 있으며 오로지 당신이 의지가 확고하면 반드시 정각(正覺)을 얻을 것이라 나는 알려준다.
자비는 불가에서 쓰는 단어다. 자비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인간 세상의 ‘사랑’을 말해보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사물에 대해 무조건 받아들이고 보답,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준다면 당신은 이 사람, 혹은 어떤 사물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외에 또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요구를 제한 없이 만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원칙 없이 상대방의 착오를 봐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친 사랑’으로 된다. 사실 이는 상대방을 해치는 것과 같다. 소위 말하는 자비의 표면적인 뜻은 바로 이성(理性), 박대(博大), 깊은 사랑이다.
지금의 세계는 바로 불경에서 말하는 험악하디 험악한 오독악세이자 이른바 末法시기다. 사회에 전해 내려온 각종 종교, 신앙, 수련 법문은 무엇이나 다 있지만 이 중에는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이 섞여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사도(邪道)에 잘못 들어서 결국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그럼 어떻게 선악과 바르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까? 이는 아주 관건적인 문제로서 당신이 이 단락을 자세히 읽길 바란다. 만약 한 번 봐서 잘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 될 때까지 여러 번 보라. 나는 정말로 당신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부디 믿어주길 바란다.
선과 악을 가늠하는 표준은 다르다. 인간세상에서 선악을 가늠하는 표준은 사실 이익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만약 국익을 지켰다면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할 것이다. 또 만약 그가 당신에게 잘 대해 주고 그의 행동이 당신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면 그를 선량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의 언행이 당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을 때 당신은 그 사람을 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 일을 생각해 볼 때 내 말이 맞지 않은가? 하지만 이익이라는 잣대로 불법 수련의 선악을 가늠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절에서 불상에 절을 할 때 구하자고 하는 것은 돈벌이, 승진, 액땜, 혼인 등이다. 이런 요구는 모두 인간세상의 이익이 아닌가? 이런 사람들 마음속엔 그의 이익을 만족해 주는 신은 바로 바른 것이며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익을 만족해 주지 않으면 사악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라. 인간세상의 표준으로 신과 부처의 선악을 가늠해서 되겠는가?
오늘날 종교는 모두 부패해 사교로 변질됐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불교, 도교, 기독교도 포함된다. 소림사 주지 쓰융신, 중국도교협회 리이 부회장, 진화론을 인정한 로마 교황을 보면 당신은 이 점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일부가 아직 부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종교의 정체를 알고 보면 확실히 부패했다. 종교 지도자들부터 재물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신과 부처를 믿지 않는데 어찌 이런 종교가 부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가 어찌 사람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종교와 신앙은 별개라는 점이다. 소위 종교는 사람이 만들어 낸 형식에 불과하지만, 신앙은 법(法)과 도(道)이자 진리에 대한 실천이다. 불교와 불법은 그래서 다른 것이다. 불교는 불법을 대표할 수 없으며 불교가 부패했다고 해서 불법도 부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수련하는 것은 불법이며, 불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같은 이치로 불교와 기독교가 부패했다고 해서 석가모니와 예수가 부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법(邪法)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이익이다. 모든 사악한 신앙과 종교단체가 홍보하는 것은 이익으로 당신을 유혹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교가 당신에게 ‘어서 오세요, 여기에 오시면 집이 생기고, 진급하고, 월급이 오릅니다’라고 말하고 혹은 ‘우리는 폭력을 숭배하고 단결해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부유한 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똑같이 나눕시다’라고 말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들께 묻는다. 탈레반, 나치스, 폭력조직, 기타 단체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이런 수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는가? 사교의 또 하나의 뚜렷한 특징은 바로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폭력으로 당신을 공격하고 심지어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른 법과 바른 신앙은 그렇지 않다. 선을 권하며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며 자비롭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권하며 이치를 깨닫게 하고 이성과 선량함을 일깨워 폭력을 버리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법과 바른 신앙, 바른 수련은 어떤 명목으로도 돈을 걷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어떤 수련이 바른지 사악한지 판단할 때 다른 사람이 내린 결론에 의거하지 말고 반드시 이성과 양심으로 스스로 깊고 자세히 알아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정부가 사교라고 규정할 때, 당신은 정부의 판단을 수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는가? 이것이 이성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으며 자신을 책임지는 태도라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어떤 정부가 강대하다고 할지언정 인간세상의 정부로서 무슨 자격으로 신과 부처가 창설한 수련 법문의 선악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 정부가 그렇게 정확한가? 그러므로 어떤 수련과 법문의 바르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이성과 양심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양심이 정사를 가리는 척도이며, 당신의 오성과 선근의 진실한 체현이다.
◆ 선과 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어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의 이성과 양심으로 필자가 한 말이 일리가 있는지 없는지, 당신을 위함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라. 만약 당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필자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해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한다. 누구든 당신의 자유 의지를 박탈할 수 없으며 사람은 자신의 길과 미래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2012년에 대한 갖가지 설이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2012년에 천지를 뒤흔드는 대재난이 닥쳐 인류가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과연 이러한 일이 있을까? 없을까? 이에 대해 내가 명확하게 당신에게 말한다면 천기를 누설하는 것으로 나와 당신 모두 화를 모면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正法을 수련하고 믿는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든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 세상은 오독악세다. 그럼 독과 악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모두 바른 신앙의 붕괴에서 시작됐다. 특히 중국에서는 신앙이 사라졌으며 중국인들은 오로지 돈을 추구할 뿐이다. 사람이 신을 믿지 않으면 신도 사람을 버린다. 신이 자비롭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독악세는 영원할 수 없다. 이른바 2012년설은 이에 대한 한차례 숙청이다. 이때가 되면 악한 자는 응당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공덕을 쌓은 자는 자연히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늘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응이 있으며, 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2012년은 선이든 악이든 보응의 시기가 왔음을 말한다. 사람이 긴 역사의 시간 동안 한 일들이 모두 이때 심판 받는다.
앞에서 필자가 신앙에 대해 언급하고, 正과 邪를 어떻게 가릴 수 있는지 말했을 때 어떤 사람은 폐부가 찔린 것처럼 안절부절 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독악세다. 왜 중국인은 신앙이 없으며 중국 사회의 신앙은 붕괴됐는가? 그건 당신이 신앙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가 강제로 당신의 신앙과 언론의 자유를 박탈했는지 생각해 봤는가?
인생은 연극 같으며 세상 일은 바둑과 같다. 사람의 운명, 사회의 흥망성쇠는 모두 다 짜여진 대로 움직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에게 아무런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수련과 신앙이다. 어떤 신앙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미래가 결정되며 심지어 미래가 사라질 수도 있다. 사실 한 사람이 正法 수련에 들어서거나 正法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다면 그의 운명에는 변화가 생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필자가 말한 도리를 인정한 것이며, 당신도 선량하고 부처를 향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필자는 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도 미혹 속에 있기에 많은 관념과 학설, 지식이 당신을 교란해 당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게 한다.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 마음속의 어둠을 걷어줄 正法과 신앙을 찾지 못했는데 필자가 한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필자에게는 아직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당신에게 法을 전해줄 수는 없다. 필자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 글을 다 읽은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더 말해도 쓸모없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필자가 당신에게 알려준 正과 邪, 신앙을 선택하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를 포함한 어떤 사람, 어떤 관념이 당신의 판단을 흐려도 자신의 양심으로 스스로 선택하길 바란다.
둘째, 만약 앞으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正法을 전한다면 그것은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이기에 꼭 열심히 법리를 보고, 자세히 정사(正邪)를 가려서 당신이 正法이라 확신한다면 당신이 선택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런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인즉 기연을 잃으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견해에 의한 선택은 바로 자신의 미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기에 당신이 모든 것을 알게 될 때면 후회해도 늦다.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正法을 얻기 힘들고 동방에서 태어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 正法을 얻고 正道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로 가장 행복한 일이다. 이런 기회는 얻기 어려운 것으로 마지막까지 읽은 당신들이 자신의 양심과 선근을 소중히 여겨 다음 기회를 기다리길 바란다. 만약 인연이 된다면 2012년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끝> 출처 - 법륜공
======================================
* 작성자 : 박도영(2012-03-14)
[답글]
천기를 누설하는 것으로 나와 당신 모두 화를 모면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천기는 세상의 이치일 뿐입니다.
천기를 누설한다면
이곳에서 밝힌 모든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화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법칙이 지어진 것은 없습니다.
그런 말은 세상의 실상과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말하기 어려울 때 하는 입니다.
천기는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일 뿐이니
널리 밝혀 그 속에서 인간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오독악세이며 독과 악은 바른 신앙의 붕괴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습니다.
세상의 악은 제대로 믿지 못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바로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운명, 사회의 흥망성쇠는 모두 다 짜여진 대로 움직이지만,
사람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수련과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正法 수련에 들어서거나 正法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다면
그의 운명에는 변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련과 신앙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꿀 수 있다고 오도해서는 안됩니다.
진리는 자연 속에서 명확히 밝혀져 있습니다.
신앙을 믿는다고 가꾸지 않는 농사가 잘되지 않듯이
세상 일은 행함으로 인해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결코 신앙으로서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련으로 사람들을 현혹해서는 안됩니다.
수련은 지엽적인 삶이니 삶을 버리고 수련을 택하면
엄중한 세상이 아무 원인도 짓지 않은 그대에게 비천한 삶을 선물할 것입니다.
마음을 닦는 측면에서도 법륜을 돌리는 수련보다
세상에서 행하는 공덕행이 더욱 효과가 큽니다.
세상과 부딪히면 깨어지면서 세상이 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가만히 앉아서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모르는
눈뜬 장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더 이상 이곳에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012-03-14)
[댓글] ⇒ 허해구(2012-03-15) ;
성자들 곁에서 시봉하면 법을 배워도 세상을 보는 눈을 얻기가 어려운데
세상이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자가
남의 말만 듣고 혼자 앉아 대법이라고 기를 돌린다고 해서
세상을 보고 공덕을 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귀하가 말하는 바른 믿음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테레사수녀의 자선입니까?
세상을 구하는 참된 길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무엇을 믿으라는 말입니까?
그대들이 자랑하는 바른 믿음이 무엇인지 제시하기 바랍니다.
[재의견]
무지가 죄의 시작이 맞습니다.
근데 무지를 타파할려면 바른 믿음과 수행을 통해 진리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바른 믿음이 붕괴되면 당연히 실천도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니 악이 창궐하는 오독악세의 세상이 되는 것이고,
아울러 바른 믿음이 없는데 어찌 바른 행동과 실천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저자는 정법에 대한 바른 실천과 믿음이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는 인과의 이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님은 표면문자에 얽매여서 그 본질을 놓치는 우를 계속 범하고 있으며
본인의 주장만 진리라는 독선적인 말만 되풀이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주의 실상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입장에서 세상을 구한다며 공덕행만이 정법이며,
다른 수행법은 모두 말법이라는 그릇된 관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입하며
사람들이 정법을 수련하는 것을 교란하는 것 또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죄를 짓는 행위일 수 있음을
지금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부디 앞으로 깨달을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석가모니불이 제자들에게 열반할 때 까지 한결같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이 계정혜(계율, 삼매, 지혜)를 함께 닦으란 것입니다.
계정혜란 계율을 지켜서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삼매에 들고, 삼매에 들어 실상을 보는 지혜를 계발하라는 것입니다. 이 계정혜를 세분화 한 것이 바로 팔정도이며, 계정혜가 바로 석가모니불이 전한 정법입니다.
그래서 대반열반경에 어떤 법과 율이든 그 속에 계정혜(팔정도)가 없으면 道가 아니고
그 속엔 사문(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들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공덕행을 통한 업의 소멸만이 정법이며, 다른 수행법은 모두 말법이라는 님의 주장은 허구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공덕행을 하면 업이 소멸되어 마음이 청정해집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불도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업을 짓지 말고 계율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계율만 지킨다고 하여 선정(삼매)도 안하는데, 저절로 우주의 실상을 보는 지혜가 열리진 않습니다.
지혜가 트이지 않는데 무지가 타파될리도 없지요. 무지가 타파되지 않으면 사물의 인연관계를 모르기 떄문에
내가 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공덕이 될지 악행이 될지 그것도 장담할 수 어렵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불은 계율과 선정(삼매)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 했고, 석가모니불 입적 후 500년 동안만 이와같은 정법이 유지된다고 한 것입니다.
다음은 제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통해 석가모니불께서 남긴 가르침도 자연히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저 역시 깨닫지 못한 사람인지라 설명이 미흡하겠지만, 독자 여러분들에게 참고만 하시라고 올려드립니다.
========================================
잡아함경에서 석가모니불은 '오온(色受想行識) 무상(無常)하고, 괴로움이며, 나가 아니며,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둘이 합한 것도 아님을 참답게 알아야 한다' 고 했는데, 그 말에 담긴 함의를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 아래는 개인적으로 깨달은 인식이다.
사람은 육체의 감각기관(色)을 통해 외부의 사물과 접촉한다. 시각으로는 아름답고 추함을 보고, 청각으로는 기분 좋은 소리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듣고, 후각으로는 향기와 악취를 맡고, 미각으로는 다섯가지 맛을 보고, 촉각으로는 쾌감과 고통을 느낀다.
즉, 사람은 감각기관(色)을 통해 쾌감과 고통, 좋고 나쁨 등의 느낌을 감수(受)하고, 두뇌에 그 관념(想)을 저장한다. 이렇게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된 관념(인상, 업식)에 매여 좋은 것은 구하고자 하고, 나쁜 것은 피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위(有爲的行-有爲法)를 촉발시키며, 그 관념에 매여 매사에 이해득실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識)한다. 어떤 관념이 생겨서 습관화되면 그 사람의 성격을 만들고, 그 성격이 자신의 운명(길흉화복)을 만들어간다.
예를 들면 촉각으로 쾌감과 고통을 지각하는데, 쾌감은 좋다고 대뇌가 인식하기에 육체적 쾌락에 집착하게 되고, 반대로 육체적 고통은 나쁘다고 인식하기에 고통을 두려워하며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경계심을 품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릴 적에 개에 물린 적이 있다면, 개에 대한 안좋은 기억(관념)이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강아지만 봐도 지레 겁을 먹고 놀래거나 두려워 하며, 본능적으로 개를 싫어하게 된다. 또, 돈이 없어서 남에게 큰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으면,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까지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어 남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렇듯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오감기관을 통해 형성된 좋고 나쁨에 대한 관념이 자신의 행위를 지배하게 되는데, 자기 관념상 좋은 것엔 탐욕을 부리고 싫은 것엔 분노하며, 자신을 위한 명예, 이익, 애정 등에 집착하여 타인과 서로 쟁투하며 業을 지어 심신의 고통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그로 인해 생긴 집착심은 극히 주관적이며, 이기적이고, 불변하는 참나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변하지 않고 실재하는 참나(의식)인 본성을 망각하고, 육체를 진짜 나로 착각(無知)하고 그로 인해 형성된 좋고 나쁜 관념에 매여서 이기적으로 집착하며, 좋은 것을 얻으면 기뻐하고 좋은 것을 얻지 못하면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원망하는 등 탐욕과 분노와 무지로 인해 죄(업)을 지어 번뇌망상에 시달리며 고통스런 삶을 살기에, 번뇌망상의 고통에서 해탈하려면 깨달음을 통해 그릇된 관념들을 타파하고, 이기적인 집착심을 제거해야한다.
이와 같은 원리 때문에 석가모니불은 제자들에게 오온에 대해 바르게 관찰(正見)하고, 바르게 사유(正思維)하여, 오온(色受想行識이 괴로움의 원인이며, 오온은 항상하지 않는 것(無常)이며, 오온은 나가 아님을 참답게 알아야(眞知) 한다고 가르친 것임을 본인은 깨달았다.
이삼한님은 석가모니불이 고행을 통해 깨달았다고 주장하나, 석가모니불은 보리수나무 밑에서 몸을 극도로 쇠약하게 만든 6년간의 고행을 통해서도 결국 해탈하지 못하고, 몸을 등한시 하지도 않고 몸에 집착하지도 않는 중도(中道)를 통해 깨달은 다음, 제자들에게 고통은 집착때문에 생기며, 집착을 멸하면 道에 이르게 된다는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설하고, 道를 이루는 수행방법으로 8정도를 가르쳤다.
8正道(正見, 正思維,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의 수행법이 바로 戒定慧(계율,선정,지혜)를 함께 닦아 해탈하는 것이다. 불교에선 바른 말(정어), 바른 행위(정업), 바른 생계(정명)는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업을 짓지 않는 계율을 지킴에 속하고, 바른 정진(정정진), 바른 알아차림(정념), 바른 선정(정정)은 정신집중을 통해 무념무상의 삼매에 드는 것을 말하고, 바른 견해(정견)와 바른 사유(정사유)는 선정을 통해 지혜를 계발하는 것으로 분류한다.
이 세가지는 상호 보완적이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므로, 계정혜 중에 어느 한가지가 빠져도 道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불이 남긴 정법은 계정혜를 함께 닦는 것으로, 이를 세분화한 것이 팔정도이다. 그러나 작금의 불교는 이 가르침이 변질되고 다른 수행법과 한데 뒤섞여 난잡해졌으며, 지금 불교승려들 중에는 제자들을 바르게 이끌어줄 깨달은 覺者가 없기에 현대불교를 통해서는 해탈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울러 현대인들은 업이 많아 대부분 몸에 질병이 많기에 불교처럼 몸은 빈껍데기라며 등한시하고, 마음만 닦는 방법으론 그런 사람들을 해탈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근기에 맞게 이홍지 사부님은 몸과 마음을 같이 닦는 성명쌍수의 불법으로 사람들을 제도하고 있는 것이며, 그분의 가르침 전법륜 속엔 유불선의 이치가 다 들어가 있기에, 어떤 종교 어떤 수행을 하던 모두 지도적 작용이 있다.
참고 <본성과 관념>
어떤 관념이 형성되면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데,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의 사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만약 이 관념이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의 사상 중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는데, 정말로 자신의 대뇌 속으로 녹아 들어가, 이 사람의 성격을 형성할 수 있다.
형성된 관념은 당신의 일생을 저애하고 지배할 수 있다. 사람의 관념은 흔히 이기적이고 또 좋지 않기에 사상업력을 생기게 할 수도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또 업력의 통제를 받게 한다. 사람은 主元神(主意識)에 의해 주재(主宰)되어야 하는데, 主元神이 마비되어 관념으로 대체된다면, 그럼 당신은 무조건적으로 투항한 것이 되어, 생명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 좌우지된다.
당신 자신은 선천적인 자기 자신(眞我)으로서 불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물을 인식할 때 흔히 일종 관념이 형성되기 쉬운데, 이런 관념은 자기가 아니다. 그 어떤 관념도 없이 문제를 보면, 모두 자신의 선량한 본성에서 나온 견해가 있고, 진정한 자신의 견해가 있게 되어, 자비롭고 선한(慈善) 마음으로 사물을 보게 된다.
당신 자신이 자신을 더욱 드러내어 노출할 때일수록 당신의 사상은 더욱 높고, 더욱 진(眞)에 가까우며, 당신의 선천적인 선량한 본성의 경지(境界)를 갖게 된다.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은 극미시하에서, 극미시하의 미립자 중에서 사람의 본성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불변하는 것이다. 사상의 틀을 배제하고 보면 사람의 선량한 성격(脾氣), 천성, 특성, 특징을 체험하고 관찰해 내기가 쉬운데 그것이 진정한 자기(眞我)이다.
主元神(主意識)은 사람이 형성한 관념 때문에 개변될 수 없다. 主元神은 사람이 형성한 관념 때문에 主元神의 본질마저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는 사람의 각종 관념, 각종 업력으로 인하여 사람의 본성이 매몰되고 덮이며, 완전히 둘러싸여 본성이 나타나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主元神 자체는 개변할 수 없다. (참고 - 수행계에서는 主意識을 순수의식이라 칭하기도 한다. 主意識인 眞我(본성)는 변하지 않기에 항상 如如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업력은 그렇게 미세한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업력은 속인 중에서 빚어낸 것으로 속인 중의 물질이다. 이것은 그렇게 미시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만들 때의 그것은 극히 미시적인 물질이다. 그러므로 업력은 섞여 들어갈 수가 없고, 단지 사람의 본성이 매몰되었을 뿐이다.
본성은 사물에 대하여 자체의 견해가 있다. 만약 정말로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타파하고 사람의 본성적인 견해를 되돌려 나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온 그곳이다. 초기에 형성된 당신의 관념이 바로 초기에 당신을 만들어낸 곳의 관념이다. 하지만 후천적인 의식관념을 타파하기란 아주 어려운데 이것이 바로 수련이기 때문이다.
법(法)은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부동하게 체현한다. 이 층차에는 이 층차의 체현이 있다. 당신이 이 한 층차에서 산생된 생명이라면 당신은 이 한 층차 법(法)의 관념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당신의 진정한 본성이 되돌아 나온다면, 당신의 인식표준은 곧 거기에 있게 되는데 그 표준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
업력에는 眞·善·忍의 표준이 없는바, 그것은 그것이 이 관념을 형성할 때의 표준으로 사물을 가늠하며, 사람을 속인들이 말하는 아주 교활하거나 혹은 처세에 능한 사람으로 되게 한다. 이는 다시 말해, 사람이 수련할 때 부동(不同)한 사상업력이 작용을 일으키게 하여 수련을 저애한다.
사람이 만약 업력의 저애가 없다면 수련은 아주 쉬운 것이다. 이 업력은 여러 해 전에 어떤 상태 하에서, 어떤 도덕표준 하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업력은 곧 이런 표준으로 사물을 가늠한다. 만약 업력이 많이 형성되었다면 사람의 일생은 모두 그것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형성된 관념이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곧 이것이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며 곧 마땅히 이러이러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자신은 없다. 그 자신은 완전히 그 자신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선량하지 않은 후천적 관념에 포위되고 가려진다. 그는 진정하게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자신의 표준이 없게 된다.
관념은 대뇌의 사상(思想)속에서 형성되는데, 관념이 만든 사상업은 사람의 머리에서 하나의 업력덩어리를 형성한다. 선념(善念)이라고? 불교에서는 생각만 해도 곧 業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른바 善念이란 더욱 높은 표준에 서서 가늠해 보거나 眞·善·忍이란 더욱 높은 표준으로 보면 역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속인이라면 모두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 관념은 사람의 일생만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내려가며 계속 좌지우지한다. 언젠가 변화가 일어나면 그 때서야 제거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줄곧 내려가며 좌지우지한다. 이 관념이 더욱더 강대해지면 정말 그 자신은 없어지게 된다. 지금 業이 구르고 구른다고 말하는데, 모두 이러한 정도에까지 굴러왔다. 당신이 그러한 속인을 보라. 온종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부동(不同)한 사람, 부동한 근기, 부동한 오성(悟性)이라고 함은 바로 이런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깨달을 수 있다면 바로 그의 불성이 다시 나올 수 있는 것으로, 그는 희망이 있다. 누가 깨닫지 못한다면 바로 후천적인 의식관념에 너무나도 깊이 매몰된 것으로 희망이 없다. - 전법륜(2) 에서 -
* 작성자 : 박도영(2012-03-15) ;
[댓글] ⇒ 유인정(2012-03-15) ;
파룬궁 신도들의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파룬궁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분실자살을
시도하는 신도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고
어찌 정상적인 단체라고 볼수가 있을까요?
사람의 의식을 흐르게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요소가 끼어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도영님의 윗글 중............
임산부 뱃속의 태아를 볼 수 있었고,
여덟 살부터는 인체에서 나오는
광채(光彩)를 볼 수 있었다.
..............................................
이러한 평범한 사람이 볼수없는 능력은
신(영)이 낀 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재의견]
무엇을 진리라 믿고 무엇을 수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것도 다 자기 근기에 따른 인연일테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실상을 보는 지혜가 열리지도 않았고 아울러 사실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으며
내 것만 진리고 다른 것은 말법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될 수 있기에 이곳에 여러 글을 올렸습니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기에 깨달은 성자들도 비록 수행의 기본원리는 같지만
근기에 따라 가르친 수행방편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가르쳤기에 대기설법, 방편설법이라 합니다.
허해구님의 개인인격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여부를 밝힌 것이니
자신을 좀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시고 내 견해만이 옳다라는 독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을 가지시고 열심히 정진하시어 깨달음을 성취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 정도면 제 의견은 충분히 전달했으므로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모두들 깨달음을 성취하시길 빕니다. --()--
* 작성자 : 박도영(2012-03-15)
[댓글] ⇒ 유인정(2012-03-15) ;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님의 글은
더더욱 믿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읽은 글은 파룬공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쓴 글이었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비판하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았던 글에는 배 속에 있는
자신의 자식조차 포기하고 파룬공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이해할수 없는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파룬공이 무엇이라고 분신자살과 뱃 속의
아이까지 포기할 정도로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정상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 이 글은 구.홈페이지 '주요문답'에서
<법륜공에 대한 답변>의 제목으로 올려진 이후
수차례의 [댓글]로 이어진 '문답'인데,
워낙 장문이라 '2부'로 나누어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흐름을 벗어난 [댓글] 일부를 제외한
원문 대부분을 살려 옮겼으며,
이를 통해 '진실의 근원'에서 강조하는 가르침과
여타의 주장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시는
기회가 되실 수 있으리라 보입니다.
'법륜공'의 자세한 글로 혼란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글들을 통해
당장은 작아 보여도, '정법'과 '사법'
'완성'과 '추락'의 길을 가르는 엄청난 차이들을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2014.9.12/ '진실의 근원' 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