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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정변의 주역 펑위샹』 Ⅱ - 풍위샹(馮玉祥)을 높이 평가한 역사가 젠보짠(翦伯贊)과 심복 위신칭(余心淸)·딸 위화신(余華心) [중국근현대]

문수봉(李楨汕) 2021. 4. 4. 22:32

『베이징 정변의 주역 펑위샹』 Ⅱ - 풍위샹(馮玉祥)을 높이 평가한 역사가 젠보짠(翦伯贊)과 심복 위신칭(余心淸)·딸 위화신(余華心) [중국근현대]

 

◆ 『베이징 정변의 주역 펑위샹(馮玉祥)②』 --목차

1. 펑위샹 심복 위신칭 “공산비적과 내통한 원조는 쑨원”

2. 대역사가 젠보짠 “펑위샹 장군은 중국 진보의 상징”

3. 젠보짠 “펑위샹 억울한 죽음에 침묵하는 세태 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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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펑위샹(馮玉祥) 심복 위신칭(余心淸) “공산비적과 내통한 원조는 쑨원”

 

육군검열사 시절의 펑위샹(가운데). [사진 김명호]

1966년 문혁 초기, 신중국 국가의전의 창시자 위신칭(余心淸·여심청)은 홍위병들의 닦달에 치욕을 느꼈다. 집에서 목을 맸다. 4년 전부터 심사와 심문에 시달리던 시중쉰(習仲勛·습중훈)은 옛 동료의 자살 소식에 가슴을 쳤다.

훗날 측근에게 이런 말을 했다. “위신칭은 우리와 길을 함께한 고급지식인이었다. 무슨 일이건 방향이 분명했다. 강직하고, 아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모욕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 정통파 지식인답게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애석할 뿐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위, 펑과 장제스 반대운동에 앞장 - 국민당 특무기관, 통비 혐의 체포

미 유학시절에 만난 부인 류란화 - 미국대사 등에게 남편 구명 운동

위, 홍위병 닦달에 치욕 느껴 자살 - 동병상련 시중쉰, 가슴 치며 애도

위신칭은 “펑위샹(馮玉祥·풍옥상)의 심복”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펑은 달랐다. “훌륭한 동지이며 동료다. 안사람끼리도 절친한 친구다. 내가 먼저 태어나다 보니 막내동생 같은 생각은 들었다. 심복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사돈이란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펑은 아들 훙다(馮洪達·풍홍달)와 위의 외동딸 화신(余華心·여화심)이 결혼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펑의 아들과 위의 딸 결혼

 

펑위샹의 딸 펑리다(왼쪽 첫째)는 공식행사에 꼭 군복을 착용했다. [사진 김명호]

펑위샹과 위신칭은 유사한 점이 많았다. 16년 터울로 10리 남짓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은 둘 다 엉망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독서와 서예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펑은 15세 때 군복을 입었다. 위도 16세 때부터 밥벌이에 나섰다.

편지 대필과 도배로 입에 풀칠했다. 난징(南京)에 학비 안 받는 학교가 있다는 말 듣고 솔깃했다. 가보니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신학원(神學院)이었다. 4년 후 그 유명한 ‘진링(金陵)신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목사 자격도 땄다.

 

교회는 위신칭을 허난(河南)성에 파견했다. 위는 목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설교도 특색이 있었다. 일반 목사들처럼 상제(上帝)나 천국(天國)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구국(救國)과 구민(救民)을 소홀히 하는 군벌 비판과 혁명군 양성을 역설했다.

후난성 독군(督軍) 펑위샹은 위의 설교가 맘에 들었다. 군목으로 초빙했다. 미국 유학도 주선했다. 컬럼비아 대학 교육학과에 적을 둔 위신칭은 중국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춘펑(春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바람이 치맛자락 스치면 여학생들은 “위신칭은 꿈쩍도 안 하는데 얘가 왜 난리냐”며 얼굴을 찌푸렸다. 먼저 와있던 류란화(劉蘭華·유란화)도 마찬가지였다.

 

 

1948년 워싱턴에서 상·하원 의원들과 함께한 펑위샹(왼쪽 넷째)과 리더촨(앉은 오른쪽 둘째)

류란화는 산시(山西)성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당포로 거부를 축적한, 중국 4대 가족의 대표 격인 콩샹시(孔祥熙·공상희)의 집안과 세교(世交)가 있었다. 베이징의 명문 베이만(貝滿)여중을 마치고 콩샹시의 조카와 약혼을 했다. 약혼자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같은 반 친구였던 리더촨(李德全·이덕전)에게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유학길에 올랐다. 베를린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갔다.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중국 유학생 모임에서 위신칭을 만났다. 리더촨과 육군순열사 펑위샹의 결혼소식 듣고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였다. 염치 불구하고 9살 어린 위신칭에게 손을 내밀었다.

 

위신칭은 류란화의 손을 잡고 귀국했다. 펑위샹은 군인과 공무원 자녀 교육을 위한 교회학교를 지었다. 교장 위신칭은 항일교육에 전념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 밖에서 강한 적이 우리를 넘보고, 안에서는 민중의 적이 국민을 압박한다.”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이 동북3성을 점령했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항일을 포기하자 펑은 반장제스 세력 규합에 팔을 걷어붙였다. 위도 학교 교장직을 걷어치웠다. 장제스 반대운동에 합류했다. 장제스가 체포령을 내리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저우언라이, 통전공작 지시

 

위신칭, 류란화 부부와 딸 위신화. [사진 김명호]

국·공합작으로 항일전쟁이 시작되자 위신칭은 귀국했다. 펑위샹이 있는 충칭(重慶)으로 갔다. 충칭의 중공연락책임자는 국민당군 중장계급 단 저우언라이였다. 저우는 위를 신임했다. 펑의묵인하에 전 서북군 지휘관들 통전공작을 지시했다.

전쟁이 끝나고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위는 국민당 특무기관에 끌려갔다. 공산비적과 내통한, 통비(通匪)혐의로 가혹한 심문을 받았다. 위는 굽히지 않았다.

“내가 유죄라면 통비의 원조는 총리 쑨원(孫文·손문)이다. 너희들은 총리의 신도들이다. 장징궈(蔣經國·장경국)는 모스크바에서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과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통비는 무조건 사형이었다. 유언도 남겼다.

“중국은 암흑이다. 암흑은 서광을 이기지 못 한다. 동지들은 슬퍼하지 마라.”

 

류란화는 미국에 있었다. 어린 남편을 감옥에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비탄에 잠긴 펑위샹부터 안심시켰다. 친구 남편인 중국주재 미국대사 스튜어드에게 집행 연기에 나서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귀국도 서둘렀다. 〈계속〉

[출처] : 김명호 성공회대학교 교수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근현대> - 1. 펑위샹 심복 위신칭 “공산비적과 내통한 원조는 쑨원” / 중앙Sunday, 2021. 2. 20. 제724호

2.대역사가 젠보짠 “펑위샹 장군은 중국 진보의 상징”

 

1968년 문혁 발발 2년 후, 비판대에 끌려 나온 젠보짠. [사진 김명호]

펑위샹(馮玉祥·풍옥상)은 사후에 총명한 며느리를 봤다. 1978년 가을, 해양지질연구소는 자료실 요원 위화신(余華心·여화심)을 선진공작자로 선정했다. 후보였던 부시장 딸이 씩씩거렸다.

“대관료이며 대군벌이었던 펑위샹의 며느리는 자격이 없다.” 위화신은 분을 참기 힘들었다.

조직에 건의했다.

“나는 펑위샹의 며느리고 위신칭(余心淸·여심청)의 딸이다. 문혁 시절,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진(自盡)한 생부는 1년 전에 명예를 회복했다. 역사 앞에 당당했던 펑 장군의 가족이 이런 대접 받는 것이 분하다. 장군의 전기 집필을 허락해주기 바란다.” 조직은 선정했다 탈락시킨 위에게 미안했다. 청을 들어줬다.

 

젠, 펑이 준 만년필 평생 놓지 않아 - “펑의 일기는 가장 진실된 현대사”

위화신, 시아버지 펑의 전기 펴내 - 초판 25만 부 출간 이틀 만에 동나

위, 돌쟁이 때 태산서 펑과 첫 만남 - “펑은 민족해방·경제평등 위해 분투”

명문 중학과 대학을 졸업한 위화신은 사료를 다룰 줄 알았다. 1년간 혁명역사박물관과 제2역사당안관, 베이징도서관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펑위샹의 옛 부하들도 찾아다녔다.

“펑 장군의 귀국선은 중앙의 지시로 중공 화동국이 마련했다. 소련 측 조사에 의하면 장군이 탄 선박의 화재는 국민당 특무의 소행이었다. 신중국 선포 후 공안국이 베이징반점에 숨어있던 범인을 체포해 처형했다”

는 등 처음 듣는 얘기도 많았다.

 

위화신은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사무실에 1년간 묵으며 원고를 완성했다. 1980년 봄, 〈馮玉祥將軍魂歸中華〉가 출간되자 반응이 굉장했다. 초판 25만 부가 이틀 만에 동이 났다.

 

펑 귀국선 화재, 국민당 특무 소행

 

1952년 11월, 광시성의학원을 시찰 나온 위생부장 리더촨. [사진 김명호]

펑위샹은 1935년 항일동맹군 해체 후 태산에 은거할 때 훗날의 며느리를 처음 만났다. 동맹군 총무처장 위신칭과 부인 류란화(劉蘭華·유란화)가 데리고 온 돌쟁이 딸 위화신을 귀여워했다. 무릎에 앉혀놓고 알아듣건 말건, 온갖 얘기를 다 해줬다.

8년 후 전시 수도 충칭에서 세배 온 위화신을 보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직접 그린 채소에 글씨를 써서 선물했다.

“홍당무와 가지 요리는 맛있고 향기도 그만이다. 많이 먹고 압록강까지 달려가자.”

왜 압록강이냐고 묻자 설명해줬다.

“동북에 와있는 일본 귀신들을 압록강에 수장시켜야 한다. 너는 기억 못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8년 전 우연히 너를 만났다. 세상사 모든 시작은 우연이다. 사람은 우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1953년, 푸단대학을 졸업한 위화신은 친구 소개로 펑훙다(馮洪達·풍홍달)를 만났다.

펑위샹 장군의 아들이다. 펑 장군 사망 후 레닌그라드대학과 해군대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위화신은 펑 장군의 아들이라는 말에 만감이 교차했다. 어릴 때 펑 장군이 해준 우연이라는 말이 떠오르자 더 이상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2개월 만에 동네 파출소에 가서 결혼신고를 했다.

 

1955년 8월, 대장 계급 수여식을 주관하는 저우언라이. 오른쪽 둘째가 위신칭. [사진 김명호]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위화신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남편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배우자다. 나는 시어머니 리더촨(李德全·이덕전)의 말을 신뢰한다.”

리더촨이 생전에 했다는 말도 소개했다.

“펑장군은 반대만 하다 세상을 떠났다. 봉건제도를 뒤집어엎고

공화제를 옹호하기 위해 청(淸)나라에 반대하고,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에게 반대하고,

장쉰(張勛·장훈)의 복벽에 반대했다.

군벌 타도와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돤치루이(段祺瑞·단기서), 장쭤린(張作霖·장작림), 차오쿤(曹錕·조곤), 우페이푸(吳佩孚·오패부)에 반대했다.

민족해방과 민생의 행복을 위해 일본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하고, 장제스(蔣介石·장개석)에게 반대했다.

장군은 이상주의자였다.

분투 목적이 민족해방과 독립국가 건설, 민주정치 구현, 경제 평등 실현이었다.”

펑위샹 사망 후 베이징으로 돌아온 리더촨은 정협 1차회의에 참석, 신중국 초대 위생부장에 취임했다.

 

문혁 초기, 부인과 함께 자살로 삶을 마감한 대역사가 젠보짠(전백찬·翦伯贊)의 평가가 주목을 끌었다.

“펑 장군의 일생은 농민에서 출발해 장군이 되었다가 다시 농민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장군은 한마디로 진보의 상징이었다. 반청, 반군벌에서 시작해 반장(反蔣), 반미(反美)를 거쳐

중국의 해방전쟁을 옹호하기까지 진보를 거듭한, 역사인격의 완성체였다.”

 

젠·펑 편지 주고받으며 인연 지속

 

 

위화신의 생모 류란화(오른쪽). 중앙은 장제스의 동서인 행정원장 콩샹시(孔祥熙). [사진 김명호]

펑위샹의 역사 선생이었던 젠보짠은 펑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 펑도 마찬가지였다.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1948년 3월 젠이 민주인사들 집결지 홍콩으로 나왔을 때도 제일 먼저 축하편지를 보냈다.

우리 국민들은 운이 좋다. 국가의 큰 행복이다.”

젠은 펑이 일기를 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편지를 통해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장군의 일기는 가장 진실된 현대사다. 미국 생활을 하루도 빠뜨리지 말고 기록해라.”

귀국을 결심한 펑은 만년필과 유화 한 점도 인편에 보냈다. 그림에 시 한 편을 직접 썼다.

“작은 배 타고 높은 산에 올라, 장삼(長衫) 벗어 던지고, 독재와 매국 일삼는 한간(漢奸)을 타도하겠다.”

귀국 도중 인생의 마지막 편지도 젠보짠에게 보냈다.

 

젠보짠은 죽는 날까지 펑위샹이 보낸 만년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림도 벽에 걸어놓고,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문혁 초기, 마오쩌둥은 묘한 최고지시를 했다.

“자산계급 반동학술권위들에겐 출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두 사람 이름까지 거론했다.

“베이징대학 부교장 젠보짠과 철학과 교수 펑유란(馮友蘭·풍우란)은 출로가 필요하다.”

 

마오의 한마디는 신의 목소리였다. 지상명령이었지만, 홍위병들은 젠보짠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계속〉

[출처] : 김명호 성공회대학교 교수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근현대> - 2.대역사가 젠보짠 “펑위샹 장군은 중국 진보의 상징” / 중앙Sunday, 2021. 2. 27. 제725호

3. 젠보짠 “펑위샹 억울한 죽음에 침묵하는 세태 한심”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교수들과 젠보짠(앞줄 왼쪽 넷째). [사진 김명호]

국·공내전 시절, 홍색선전기관 신화사(新華社)는 4월만 되면 분주했다. 5월 1일 국제노동절에 발표할 선언문과 구호, 집회, 시위 준비 등 할 일이 많았다. 승리를 앞둔, 1948년 노동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신화사 사장 랴오청즈(廖承志·요승지)는 부원들과 태항산 깊숙한 곳에 주둔 중이었다.

관례대로 중공 중앙 소재지 시바이포(西柏坡)에 전문을 보냈다.

“노동절이 임박했다. 승리가 임박한 중요시점이다. 발표할 내용 중 중요사항이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마오쩌둥과 중앙서기처 서기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등 지휘부는 랴오의 요청에 신경을 썼다.

“국민당 정권의 붕괴와 신중국 탄생을 앞두고 우리의 주장과 신정권의 청사진을 알릴 때가 됐다”

며 포고문 초안을 작성했다.

 

펑 장례 관련 국민당 처사에 울분 - “장제스는 국가 지도자 자격 상실”

저우언라이 권유로 공산당 입당 - 비밀 당원으로 국민당 요원 접촉

베이징대 부총장 취임날 첫 공개

마오·저우, 신정권 포고문 작성 지시

 

자택 문전에서 부인, 자녀, 손녀, 손자들과 함께한 젠보짠. [사진 김명호]

“5·1구호(五一口號) 초고”는 총 24조였다. 내용도 종전과 큰 차이 없었다. 각계에 경의를 표하고 안부나 묻는 정도였다. 초안을 본 마오쩌둥은 당대의 명문장가였다. 5조가 맘에 안 들었다.

“공인(工人·노동자)계급은 중국인민혁명의 영도자다. 신중국의 주인공은 공인계급이다.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해 하루빨리 최후의 승리를 실현하자”

“각 민주당파와 인민단체, 사회 명망가(賢達)들이 정치협상회의를 열고, 토론과 인민대표대회를 소집해 민주연합정부를 수립하자”로 수정했다. “중국인민의 영수 마오 주석 만세”는 눈에 거슬렸다. 직접 붓으로 지워버렸다.

 

4월 30일, 중앙서기처 확대회의는 마오쩌둥이 수정한 “5·1 노동절 기념구호”를 통과시켰다. 구호가 전파를 타자 홍콩과 해외의 민주인사들은 연합정부 수립을 제의한 마오의 절묘한 한 수에 열광했다. 국부 쑨원(孫文·손문)의 유지를 계승한 국민당 좌파와 군소정당 대표들은 귀국을 서둘렀다.

마오쩌둥은 구호선포 당일 홍콩에서 활동 중인 국민당 혁명위원회(民革) 주석 리지선(李濟深·이제심)과 민주정당동맹(民盟)을 이끌던 선쥔루(沈鈞儒·심균유)에게 친필 서신을 보냈다.

두 사람의 의견을 구했다. “회의 장소는 하얼빈을 제의한다. 시간은 금년 가을이 적합하다. 중국 국민당 혁명위원회와 중국민주동맹 집행위원회,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이달 안으로 연합성명을 발표하자.”

민맹과 민혁은 중공을 뒤에 넣은 것 보고 겸손함에 감동했다. 온갖 군소정당과 무당당파 인사, 미주와 동남아 화교 지도자들의 중공 지지 선언이 줄을 이었다.

 

 

중국과학원 사회과학부 성립대회에서 총리 저우언라이(왼쪽 첫째)와 환담하는 젠보짠(왼쪽 둘째).

1955년 6월 베이징. [사진 김명호]

민혁 주석 리지선은 중공의 통전대상 1호였다. 국민당 내의 지위도 군사위원회 부주석 펑위샹(馮玉祥)보다 높았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와의 인연도 뿌리가 있었다. 장이 황푸군관학교 교장일 때 부교장이었다. 북벌 시절엔 총참모장으로 총사령관 장제스를 보좌했다.

정변을 일으킨 장이 공산당을 도살할 때도 모른 체하지 않았다. 광저우(廣州)에서 공산당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광시(廣西)파의 영수였다. 딸의 구술을 소개한다.

“부친과 장제스는 광둥(廣東)과 광시, 양광의 군정 대권을 놓고 모순이 발생했다. 두 차례나 당에서 제명당했다. 일본 패망 후 장의 초청으로 난징(南京)에 갔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유명한 시국 선언서를 발표하고 장과 철저히 결별했다.

장이 체포령을 내리자 홍콩으로 몸을 피했다. 국민당 좌파와 연합해 민혁을 결성했다. 민혁의 구성원은 쑨원의 옛 친구와 추종자였다. 뉴욕에 있던 펑위샹과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펑의 소개로 가까워진 역사학자 젠보짠(翦伯贊·전백찬)도 홍콩의 우리 집에 함께 살았다. 펑위샹의 비보를 듣고 두 분이 통곡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젠보짠은 5·1구호 이후 펑위샹의 부인과 함께 동북으로 갔다. 한발 늦게 베이징에 도착한 부친은 신중국 초대 국가 부주석을 지냈다. 매달 정부에서 지급받는 돈이 마오 주석보다 많았다.

부친은 젠이 중공 비밀당원인 줄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

 

젠, 문혁 발발 2년 뒤 극단적 선택

 

 

고향을 방문, 학생들에게 역사 얘기 해주는 젠보짠. [사진 김명호]

펑위샹의 사망 소식을 접한 젠보짠은 국민당의 처사에 울분을 감추기 힘들었다. 홍콩 언론에 세 차례 기고했다.

“처형당한 한간(漢奸)의 추도회를 여는 것들이 장군의 억울한 죽음에 침묵하는 세태가 한심하다. 대한간이 감옥에서 사망하자 고관들의 애도가 가관이다. 조문객까지 파견한 장제스는 국가 지도자 자격을 상실했다.”

문혁 발발 2년 후인 1968년, 펑위샹 사망 20년 후, 젠보짠은 부인과 함께 수면제를 복용하고 세상을 떠났다.

홍위병들도 소문처럼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집 안에 연금 중이던 젠이 어디서 다량의 수면제를 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도 젠의 자살을 애통해했지만, 젠을 심문한 홍위병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지금도 살아있다.

 

젠보짠은 1937년 국민정부 수도 난징에서 저우언라이의 권유로 공산당에 입당했다. 저우만 아는 비밀 당원이었다. 1961년, 베이징대학 부총장으로 취임하는 날 자신이 당원임을 처음 밝혔다. 20여년간 비밀당원 생활하다 보니 국민당 요원들과 접촉이 빈번했다. 문혁 시절은 살벌했다. 오해를 피하기 힘들었다.

[출처] : 김명호 성공회대학교 교수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근현대> - 3. 젠보짠 “펑위샹 억울한 죽음에 침묵하는 세태 한심” / 중앙Sunday, 2021. 3. 6. 제7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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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시장 우궈쩐 https://blog.naver.com/ohyh45/221506795007

○둔황 수호신 창수훙 https://blog.naver.com/ohyh45/221196714587

○33년연금 된 항일전 명장 쑨리런https://blog.naver.com/ohyh45/221179374022

○광둥상단 단장 첸렌보 https://blog.naver.com/ohyh45/221154790356

○국공내전 화이하이 전역 패장 황웨이 https://blog.naver.com/ohyh45/221149265831

○장제스 신4군 지휘한 홍군출신 샹잉 https://blog.naver.com/ohyh45/221131474329

○덩샤오핑 이야기 https://blog.naver.com/ohyh45/221112808998

○중공 지하조직 이끈 판한넨 https://blog.naver.com/ohyh45/221089366857

○시진핑 아버지 시중쉰 https://blog.naver.com/ohyh45/221013298311

○덩샤오핑의 젊은 인재발굴 https://blog.naver.com/ohyh45/221009305674

○마오쩌뚱이 칭찬한 왕홍원 https://blog.naver.com/ohyh45/221009294165

○중공의 핵무기 개발 https://blog.naver.com/ohyh45/220962898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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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에게 항모건조제안한 38세 함대사령관 천샤오콴 https://blog.naver.com/ohyh45/20205207367

○실용파 대교육자 장멍린https://blog.naver.com/ohyh45/20203935022

○1910년대 폐스트 대재앙과 우렌더 https://blog.naver.com/ohyh45/2020345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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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실세'왕둥싱과 덩샤오핑 https://blog.naver.com/ohyh45/20199585594

○장칭과 4인방의 제거 https://blog.naver.com/ohyh45/20198722247

○덩샤오핑의 등장 https://blog.naver.com/ohyh45/20193779511

○마지막 황제 푸이의 생부 섭정왕 짜이펑 https://blog.naver.com/ohyh45/2019063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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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 전야 동북해방- 베이징 입성 https://blog.naver.com/ohyh45/20104170241

○난징정부 주석 왕정웨 이이야기 https://blog.naver.com/ohyh45/20103643991

○중국국보의 대만 피난 작전 https://blog.naver.com/ohyh45/2010364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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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천재 린뱌오 이야기 https://blog.naver.com/ohyh45/20103640275

○장쉐량의 반세기 연금 생활 https://blog.naver.com/ohyh45/20103439025

○서태후 이야기 https://blog.naver.com/ohyh45/20100202866

[출처] 『베이징 정변의 주역 펑위샹』 Ⅱ - 풍위샹(馮玉祥)을 높이 평가한 역사가 젠보짠(翦伯贊)과 심복 위신칭(余心淸)·딸 위화신(余華心) [중국근현대]|작성자 ohyh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