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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경험담

문수봉(李楨汕) 2021. 5. 4. 15:43

나는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난산리 목상부락 509번지에서 태어났다

저는 태어난 집이 어마어마게 부유하였으며 유소년 시절은 고향에서 보내고

중학교 고등학교는 익산에서 6년을 하숙을 하면서 살았으며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다

어렸을적에 우리동네에 우리집에서 소유하고 있는 집이 많이 있는 것도 알았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소작인들이 소작료를 내느라 우리집을 분주히 드나들었으며

저의 집은 농토가 너무 많아서 가을에 추수를 다하지 못하고 다음해 봄까지 탈곡을 하였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때가 되면 일도 엄청 많이 했다

일감이 너무 많으니 그건 당연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콩밭 매는것과 고추 따는것은 고역이다

 

유소년시절 땅이 너무 많았는데 집안이나 집밖의 땅에도 유실수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과일은 아주 많이 먹고 자랐으며 동네에 사는 아이들에게도 많이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동네 어른들이 나를 말하기를 정산이 뒤에는 부하가 줄줄 따라 다닌다는 소리도 들었다

동네 또래들이 나를 따라다니면 나한테서 먹을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시절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집에 의탁해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어린시절 귀공자 대접을 받고 자랐다으며 그범위가 면소재지까지 통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할아버지께서 음력 설날이 되면 매년 쌀을 쌀자루에 한말씩 담아서

동네 어려운 집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는데 그걸 나한테 시키면서 부엌에 있는 솥단지에 넣어 두라 하셨다

이런 행위는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한번도 들켜 본적이 없었다

저의 어머님은 음식 솜씨가 대단히 좋으셔서 어렸을적부터 맛있고 귀한 음식도 많이 먹고 자랐다

그래서 큰병같은 것은 거의 걸린적이 없었으며 지금 기억하는 것은

중학교 1학년때 신체검사에서 56KG 이었던걸 담임 선생님이 놀란적이 있어서 기억한다

나는 아이큐(143)는 좋으나 중학교 2학년때에 학교에 가다가 철공소에서 산소용접 하는것이 신기해서

많이도 안보고 잠시 보다가 학교에 갔는데 그후에 눈이 너무 아파서 공부는 거의 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저의 할아버지와 저의 어머님께서 시골에 유명한 안질환을 잘 고치는 집은 거의다 찾아 다녔으며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안과는 거의 안가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서울은 물론 지방까지 많이도 찾아 다녔다

그런데 내가 대학을 다닐때 우리과에 대단히 유명한 교수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한순간의 염력으로 고쳐주셨다

그분은 일본인인데 박사학위가 무려 다섯개나 가지고 계시는 유명한 분이시다

그분은 투시능력도 가지고 계셨는데 그걸 증명하는 예로 내가 대학 3학년때 학교행사 부위원장을 했었는데

한 부서가 돈이 이십만원이 필요하다 해서 나의 재량으로 주어라 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생돈이 날아가게 되었는데 돈이 준비가 안되어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는데

그 교수님이 어디서 저를 보셨는지 갑짜기 나타나셔서 왜그냐고 묻는 것이다

돈 이십만원 때문이라고 했더니 즉석에서 주셔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그돈 이십만원은 나중에 교수님께 드렸지만 행사 위원회 측으로부터 끝내 받지 못했다

나는 경기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졸업 하였고 졸업후 삼화고속 그룹의 동서여행사에서 근무하였다

내가 근무 할때는 외국인 관광객을 가장 많이 유치하는 업체였으며 국내 랭킹1위 업체였다

그후 내가 다른업체로 옮긴후 그쪽 여행사 회장이 중요한 일을 많이 시켜서 매우 피곤하였는데

주위에 직원들이 좀 쉬는게 어떻겠느냐고 하길래 바로 휴직을 하고 쉬었다

이상해서 신경정신과에 갔는데 곳바로 입원 시켜버려 3개월동안 치료후 퇴원한후에

회사에 가보니 회사가 망해버려서 정말 어이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리과 직원 한사람이 남아서 마지막 정리를 하는것 같았다

그직원이 나에게 말하기를 퇴직금에 대해서 받아 가겠느냐고 해서 어안이 벙벙 해졌다

 

정말 어이가 없어서 퇴직금도 받지 안았다 정말 내가 그렇게도 회장에게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고

직접 일대일 단독 독대도 하였고 수시로 이렇게 적자가 나는 투어는 받아서는 절대 안된다고

견적서를 거의 매일 드렸는데도 내가 나가서 입원한후 3개월도 안되어 회사가 망해 버렸으니

퇴직금은 받을 생각이 없었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나이와 경력때문에 어디도 받아주지 안았다

구후로는 돈이되는 일은 아무거나 아무생각 없이 닥치는데로 별의별일을 안해본게 없을 정도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하게 되었다

삶의 지혜도 많이 터득 했으며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는것과 눈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눈치가 없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

또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할 것이다 자기 분수를 모르면 망한다 과욕을 부려서도 안된다

그런데 자기분수도 모르는 사람과 지위에 힘입어 과욕을 부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런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하늘에서 주는 천복을 받고 태어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른것은 잘 못해도 하늘에 천복을 쌓는 것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앞으로 여러분들도 내 이웃을 사랑하고 여력이 있으면 조금씩 베풀면서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더많은 복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1년 3월 13일(토요일)

문수봉 이정산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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