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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생애(2)]

문수봉(李楨汕) 2008. 10. 7. 11:11

--> 대표적인 공자의 업적

유교를 만들어낸 유교의 시조.

춘추》편찬.

논어》(공자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제자들이 편찬)

 

 

--> 공자의 생애

나라 곡부에서 숙량흘과 안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자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마을의 늙은 선생 밑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이윽고 17세 때부터 말단 관리가 되었고,

노나라의 대학에서 《시경》과 《서경》 등을 배웠고,

또 여러 가지 의식을 맡아보는 관리에게서 예법도 배웠으며, 음악도 배웠다.

공자는 《시경》과 《서경》의 저자인 주공(周公)을 청년 시절부터 사모하였고,

평생 동안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공자는 30세쯤 되자 관리로서의 지위도 오르고, 또한 학문도 많은 진전을 보였다.

공자는 정치는 법률보다는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무슨 일이든지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였다.

기원전 517년에 공자는 제나라에 갔다.

공자는 제나라의 왕과 신하들에게도 여러 가지로 진리를 가르쳤다.

기원전 509년 고국인 노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이 무렵부터 공자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간혹 나타나게 되었다.

공자의 제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은 총 77명인데,

처음에는 노나라 사람이 가장 많았으며 신분이 높은 사람은 적었다.

공자는 52세가 되었을 무렵 중도재를 거쳐 대사구로 지위가 올랐다.

그 이듬해에는 노나라의 정공을 따라 제나라와의 강화 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때 제나라에서는 사람을 몰래 숨어들어가게 하여 노나라를 위협하려고 하였으나

공자는 그것을 꿰둟어보고 회의 장소에 들어가려고 하는 남자를 잡아서

화를 미리 막고 노나라에 유리하게 강화를 맺었다.

공자의 인망은 갑자기 높아져서 기원전 499년에는 최고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공자는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는 계씨를 타도하려고 여러 가지로 계책을 꾸몄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공자는 기원전 496년에 노나라를 떠나,

대여섯 명의 제자와 함께 자기를 등용해 줄 왕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10년이나 걸린 이 방랑 생활은 공자에겐 가장 괴로운 기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다.

왕들은 올바른 길보다도 효과가 빠른 부국강병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의 이상이 지금 당장 실현되지 않는 것을 알자 미래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공자의 정치가로서의 생활은 끝나고, 교육가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공자는 중국에서 옛부터 전해 내려오던 고서들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만년의 공자에게는 여러 가지 불행이 겹쳤다.

아들인 백어가 죽고, 그 후에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회와 자로도 잇달아 죽었다.

공자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하며 슬퍼하였다.

공자는 만년을 불행하게 지내다가 72세가 된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어록을 모아서 《논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리하여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에 전해 내려와

천 수백 년에 걸쳐 중국 사회의 정치, 윤리 도덕의 규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