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업적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가인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濟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공자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대부로서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스스로 나서서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를 설피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는 분명히 실패한 정치가이지만,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향에 돌아와 옛 전적들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게 된다. 공자의 일생을 통틀어보면 젊은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연구하고 남을 가르치는데 보낸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가장 많이 지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편찬한 전적으로는 <시경>과 <서경>, 그리고 <춘추>가 대표적이다. 또한 <역경>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깊이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의 제자는 직접 수학한 제자만 수 천 명에 달하고, 뛰어난 이만 꼽아도 7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가운데 특히 덕행에 뛰어난 제자로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같은 인물을 곱을 수 있고, 언어에 능한 이로는 재아와 자공이 있으며, 정사에 유능한 제자로는 염유와 계로가 있으며, 문학을 잘 하는 이로는 자유와 자하같은 인물을 꼽을 수 있는 등각 분야에 뛰어난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후에 공자사상을 정리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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