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Who is Jehovah God?)
이 땅의 50억이 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하며,
더러는 모른다고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른 하나님(gods)을 믿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야웨)하나님으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은
어제오늘의 새로운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답을 얻기 위하여 제 1세기로 가 봅니다.
제1세기에 누가(Luke)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그의 친구 데오빌로에게 두 개의 긴 편지를 썼습니다.
첫 편지는 "누가복음"이었고, 두 번째 편지는 "사도행전"이었습니다.
그 사도행전을 보면 누가가 바울이라는 전도자와 그 일행의 전도 여행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 있고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 중에서 아덴(Athens)이라는 도시를 방문한 기록이 있는데(사도행전17:16-21),
그 도시에는 많은 사원들과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도시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서 변론하였습니다.
경건한 사람들과도 얘기했고, 시장 골목 사람들과도 얘기하였습니다.
또한 "에비구레오"철학자들 [Epicurean, 에피쿠로스 철학파 - 에피쿠로스(B. C. 342-270)가 창설한 철학파로, 불안과 공포.... 등을 버리고 쾌락과 기쁨을 영위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파]과 쟁론하였고, 스도이고 철학자들 [Stoic, 스토아 철학파 – 제논(B. C.340-265)이 창설한 철학파로서 인간은 도덕과 이성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파]과도 쟁론 하였습니다.
이 두개의 철학파들은 그 당시에 쌍벽을 이루었었고,
특히 스토아 철학파는 로마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덴(Athens) 사람들은 종교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신에게 (TO AN UNKNOWN GOD)"라는 명칭의 제단을 만들어 놓고도 숭배 할 정도였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이 세상에 하나 이상의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들 중에서 어떤 신이든 그 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신전들을 도시 전체에 만들어 놓고서도 만일 자신들이 미처 알지를 못해서 빠뜨렸을지도 모르는 그 신을 위한 신전을 만들어 모셨던 것입니다.
전도자 바울은 아레오바고[Areopagus, 새로운 것들만 연설하고 듣는 공적인 연설 장소]에서 하나의 유명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 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 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 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사도행전17:22-31)
전도자 바울은 그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서 얻은 마음의 행복과 기쁨과 영생의 소망을 방방곡곡에 다니며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인류학자들은 그들의 국적과 인종에 상관 없이 ,
인간의 기원을 유푸라테스 강 근처의 계곡으로 봅니다.
그 곳은 이스라엘에서 그리 멀지 않고, 지금은 터어키 나라인 것에 거의 동의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창2:14) 장소였다고 보는 유프라테스 계곡으로부터 인류는 나라에서 나라로 동, 서, 남, 북으로 이동하여 세계에 퍼졌습니다.
인류가 진보되면서 이 유푸라테스 골짜기로부터 애굽으로, 인도로, 중국으로, 만주로, 한국으로, 일본으로, 소련의 윗 지방으로부터 알래스카, 캐나다, 미국, 그리고 멕시코로 퍼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언어가 발전하고 변화되므로 자연적으로 그 하나님의 이름도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고,
예배하는 방법도 자신들의 욕망이나 의견에 따라서 자기들 마음대로 변경시켰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신화에는 나라를 세운이가 단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 신화를 실화로 하겠다는 학계의 주장입니다.
우리 나라 최남단의 섬 제주도에는 세 사람이 세 개의 땅굴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들이 고. 양. 부. 씨들의 조상입니다.
그들이 이 지역의 설립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산과 나무와 바다와 냇가에서 삼라만상을 운행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농작물을 축복하는 능력의 절대자를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확기가 되면 민족들 나름대로의 기쁨의 축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인류보다 위대하신 신에게 복을 빌고,
그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이 들면 그것은 그 사람 속에 어떤 나쁜 것 (그것을 병균이라 부르던 악령이라 부르던 상관없이)이 들어가서 그 사람을 좋지 않게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약품을 준비해 놓고 치료를 합니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북과 춤으로 소리를 내고, 주문을 외워서 그것들을 몰아 내려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 속에 영이있다는 기본적인 이해를 갖고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은 누구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누가 햇빛과 비와 더위와 추위를 주는 능력자입니까?
곡물과 나무들과 물고기들과 각종 동물들과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는 능력자입니까?
누가 인간에게 기본적인 욕망을 줍니까?
누가 인간에게 재능을 주고, 살아가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이 전능하신 신에게 여러가지 다른 많은 이름들을 붙여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라" 라고 도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그냥 "아도나이(주님)"라고 히브리어 "야웨"(하나님의 실제 이름)의 모음만을 따서 불렀고, 보통은 "엘로힘"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능력자"입니다.
영어로는 "Jehovah God" 한글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그 분의 정식 이름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냥 "하늘 혹은 하늘님"이라고도 했고,
때에 따라서는 "신령님", "대감님", "용왕님", "천지신명", "천왕"....등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어떤 사람들은 그 전능자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전능하신 신(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가 인정한다고 존재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그런분이 아니십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미국의 과학자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1790년에 태어났고, 다른 어떤 과학자들 보다 더 많은 기계들을 발명하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의 고문이었고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는 죠지 와싱턴 당시에 하원의원이었고,
영국 런던 사회의 귀족이었습니다.
어느 날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기 책상 위에다 천문관 견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천문관 견본이란?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달이 지구의 주위를 운행하며 또 다른 위성들이 동시에 태양의 주위를 운행하는가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견본입니다. 이것이 최초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방문하였는데,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외교관이었습니다.
그가 그 천문관 견본을 가지고 한참 장난을 치다가,
그것이 참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벤자민에게 "누가 이것을 만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벤자민은 무신론자인 그에게 "아무도 만든 사람이 없다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무신론자 친구가 반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농담하지 말게! 누가 이것을 만들었는지 말해 주게나!"
벤자민이 다시 대답했습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없다네. 그저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네!" 그러자, 그 외교관 친구는 그 천문관 견본을 자세히 쳐다보면서 "이것은 우연히 생겨날 수가 없어, 이렇게 정교하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지구, 달, 화성, 목성, 토성, 그리고 태양....등을 보라구, 이 기계는 분명히 만들어 졌어야만 한다고 나는 믿네!"
이번에는 벤자민이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왜 자네는 이것이 만들어 진 것이라고 믿는가?"
그 친구가,
"왜냐하면 이 기계는 너무나 계획적이고 또 질서가 있기 때문이라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벤자민이 말했습니다.
"자네의 말이 옳다네. 이 계획과 질서는 설계자와 창조자를 요구하지. 이와 같이 질서와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는 우주 또한 창조자를 요구하는데, 그 창조자를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네."
그 외교관 친구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속에서 지혜를 찾았습니다.
이 우주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자로 믿고, 그의 절대권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신론자가 유신론자로 바뀌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분의 이름을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기독교인(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님을 믿는 것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법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막2:27).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인간에 대한 그의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고,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인간을 위하여 바치시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최고의 순종의 예를 남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로서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인간이 죽음 후에도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 '사랑과 평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등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므로
인류가 연합하여 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이름을 여러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동물로 착각하여 섬기는 오류까지도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류는 종족 별로 제각기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도 하나 이상의 하나님을 섬기고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 가신지도 어언 2000여년....
인류는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못하였고,
기독교는 단합의 실패로 그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버렸고,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적어도 500개 이상의 각기 다른 기독교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켰고, 지금도 꾸준히 변경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하고, 단합하기를 원하십니다.
평화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인간들이 비록 죄 가운데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된 자식이라도 부모는 그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한 사랑과 평화의 천국으로 부터,
인간들이 서로 싸우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이 세상으로 오셔서
사랑하는 방법과 평화 하는 방법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인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시지 않고,
우리가 영원히 살 처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처소가 완성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 곳에 영접하여
영원히 살 수 있도록 계획을 다 세우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14:1-4).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 주는 것들인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3-14).
인간의 존재, 아니 나(myself)라고 하는 존재, 그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만일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존재하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당신의 선조도, 당신의 후세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여호와(야웨)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600여개가 넘는 교파주의로 혼미해진 당신의 영혼의 이정표를 찾아서 바른 신앙의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여호와 (야웨)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인류가 어떻게 그 여호와(야웨)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의 답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원 하시는 분은 아래의 주소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은 마치 환자가 바른 약을 쓰는 것과도 같습니다.
옛날 우리 나라 광고에 "약 좋다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 말자"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약을 잘 쓰면 병이 낫고 건강 해 지지만,
약을 잘못 쓰면 오히려 병이 더욱 악화되고 생명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오진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도 바른 신앙의 길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녹십자(green cross)의 사연을 아십니까?
그 녹십자(green cross)는 의사의 오진으로 죽은 사람들의 무덤의 돌 십자가에 낀 이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영혼의 녹십자의 비극을 하나라도 더 막을 수 있다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님,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영혼의 눈을 뜨게 하소서!"
이 바울 / Evangelist, Paul Lee
P. O. Box 1696 Bellflower, CA 90707-1696
U. S. A.
'☆종교와영의세계☆ > ♡기독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사렛 예수 (Jesus von Nazareth)] (0) | 2008.10.22 |
---|---|
[하나님의 위대한 선언(The Great Declaration of God)] (0) | 2008.10.22 |
[당신은 기독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0) | 2008.10.22 |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0) | 2008.10.22 |
[예수의 생애(Life of Christ)] (0) | 2008.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