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등
부처님께 올리는 등불공양…‘광명지’상징 등불넣는 화사석부분 가장 중요 법주사 쌍사자 석등 예술성 으뜸 인물상 새겨진 화엄사 석등 이채
등을 밝히는 것을 연등이라 하고, 등불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밝히려 하는 것을 간등(看燈) 또는 관등(觀燈)이라 한다. 등공양은 반드시 등잔에 불을 붙여 부처님 전에 올려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지극한 신심으로 등불을 켜는 것만으로도 등공양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사진설명: 각 부재의 알맞은 비례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화사석 네 면에 조각된 보살입상과 복련석의 귀꽃 장식은 이 석등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 주고 있다. ‘등공양에 관한 내용이 여러 경전 속에 보이는데, 〈대방광불화엄경〉 60권본 ‘금강당보살십회향품’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보살마하살은 등불을 보시합니다. 이른바 소(?) 등불과 기름 등불, 보배 등불, 마니(摩尼) 등불, 칠(漆) 등불, 불(火) 등불, 침수향(沈水香) 등불, 전단향 등불, 일체 향 등불, 한량없는 빛깔과 광명 불꽃 등불 등이니, 이런 한량없는 등불을 보시할 때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회향합니다. ‘이 선근으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일체 중생을 섭취하여, 그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한량없는 광명을 얻어 모든 여래의 법을 두루 비추게 하리라.’”
석등을 제작한 의도가 등불 공양에 있었음을 밝힌 명문(銘文)이 나주서문석등(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 발견된 바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이 석등에 70여자에 이르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 “삼세제불성영헌공양(三世諸佛聖永獻供養)”이라고 쓴 대목이 있다. “과거 현재 미래세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이 명문을 통해 석등이 부처님께 올리는 등공양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석등은 이처럼 공양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석등의 불빛 자체는 부처님이 발하는 지혜 광명의 상징으로 관념되고 있다. 등불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경에서는, “캄캄한 삼계(三界) 안에 범부의 굴택(窟宅) 번뇌에 헤매는 삼악도의 인(因)을 영원히 씻은 듯이 소멸하고 앞길을 밝게 비춰 준다(〈대방광불화엄경〉 40권본 제4권)”, “등불은 세간을 두루 비치고 모든 지혜의 광명을 내며 선지식은 일체지(一切智)에 나아가게 하며, 나로 하여금 옳고 그른 길을 분별케 한다(같은 경, 제8권)” 라고 하였다. 이처럼 등불은 모든 여래의 법과 일체의 미세한 색깔과 법신의 깨끗한 광명과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추고, 중생이 없는 세계를 알게 하고, 부처님의 법에서 물러나지 않게 한다.
석등’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현존하는 유물과 몇몇 기록을 통해 명칭의 쓰임의 내력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신라 진성여왕 5년(891)에 건립된 담양 학선리의 개선사지석등의 명기(銘記)에 ‘건립석등(建立石燈)’이라는 말이 보이고, 고려 순종 10년(1093)에 제작된 나주서문석등 명문에서는 ‘등감(燈龕)’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서 석등이라는 말과 함께 등감이라는 말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등의 기본형은 하대석(下臺石).중대석(中臺石, 또는 竿柱石).상대석(上臺石)을 기대(基臺)로 삼고, 그 위에 등불을 직접 넣는 화사석(火舍石)과 옥개석을 얹으며, 정상부를 보주(寶珠) 등으로 장식하는 형식이다. 석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화사석이다. 직접 등불을 켜는 화사석은 8각, 4각이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4개 또는 8개의 화창(火窓)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면이 8각이고 4면에 화창을 낸 형태의 석등 중에 가장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우리가 잘 아는 부석사무량수전 앞 석등이다.
이 석등은 8각의 전형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네모난 지대석(地臺石) 위에 8각의 복련석(覆蓮石)을 얹고 그 위에 가늘고 긴 8각의 간주를 세웠으며, 다시 8각의 화사석을 받치기 위한 8각의 앙련석(仰蓮石)을 얹고 화사석 위에는 8각의 옥개석을, 옥개석 정상부에는 보주를 얹은 형식이다. 이 석등의 각 부재의 알맞은 비례는 매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화사석 네 면에 조각된 보살입상과 복련석의 모서리마다 귀꽃문양을 붙인 장식은 이 석등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 주고 있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사진설명: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두 마리 사자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앞발과 주둥이로는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우리나라 석등의 품위와 예술성을 한층 높여 주고 있는 것이 쌍사자석등이다. 쌍사자형태로 된 것 중 대표적인 것은 법주사쌍사자석등, 영암사지쌍사자석등, 회암사지쌍사자석등, 중흥산성쌍사자석등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보은 법주사쌍사자석등은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넓은 8각의 기대석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기대석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석등(보물 제282호)> 사진설명: 가운데 받침돌에 화려하고 정교한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웅크리고 앉은 사자 모습이 이색적이다. 신라시대 쌍사자석등의 전통은 고려시대로 이어져 고달사지쌍사자석등이라는 걸작을 남겼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석등은 직사각형의 기대석 4면에 둥글넓적한 모양의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아래 받침돌 대신 2마리의 사자가 좌우에서 앞발을 내밀고 웅크리고 앉아 있으며, 등 위로 구름이 솟아올라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 화려하고 정교한 느낌의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고, 윗 받침돌에는 연꽃이 시문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인 화사석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우리나라 쌍사자석등의 사자는 서있는 자세가 대부분인데, 이 석등의 사자는 웅크리고 앉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쌍사자석등으로는 양주시 회암동의 회암사지쌍사자석등을 꼽을 수 있다. 회암사지의 동쪽 능선 위에 지공과 나옹, 그리고 무학대사의 사리탑이 남과 북으로 나란히 서있고, 그 남쪽 끝에 이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기본형이 4각인 형태로 삼국시대 이래 고유의 8각 석등형태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주목된다. 충주시 소태면에 있는 청룡사터의 보각국사정혜원륭탑전사자석등도 회암사지의 것과 비슷하다.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인데,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자를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4각으로, 네 모서리를 둥근기둥처럼 조각하였고, 앞뒤로 2개의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을 돌출되게 조각해 놓았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앞 석등> 사진설명: 석등을 인 인물이 연기조사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등기를 손에 든 경우는 중국 등지에 있으나 석등에 인물상을 직접 조각한 것은 이 석등이 유일하다. 고복형(鼓腹形)이라 불리는 간주석 형태도 있는데, 이것은 간주석의 평면이 원형이고 중앙에 굵은 마디를 두어 마치 ‘북’ 모양을 이루고 있어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의 석등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복련석 혹은 옥개석의 귀꽃이 특히 크게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구례 화엄사각황전석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클 뿐 아니라 장엄하고 대담한 걸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색적인 석등 하나를 소개하자면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 앞 석등을 들 수 있다. 스님처럼 보이는 인물이 화사석을 머리에 이고 앞에 서 있는 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차를 공양하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사자탑 속에서 합장하고 서있는 스님상이 연기조사의 어머니이고, 석등을 이고 있는 스님상이 연기조사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처럼 석등에 인물상을 조각하는 수법은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밑이 넓고 위가 좁은 3개의 석주는 인물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석등 자체에 안정감을 부여하여 특이한 시각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출처;불교신문
*道窓스님***合掌 道窓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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