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세상☆/♡☞시문학방♡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정호승]

문수봉(李楨汕) 2009. 2. 18. 09:12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정호승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이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주다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

 

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껌 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

 

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주고 있다가

 

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엄마의 시신을 몇개월이나 안방에 둔

 

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주다가

 

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

 

한 갓난아기를 건져내고 엉엉 울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부지런히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소주를 들이켜고

 

눈 위에 라면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다듬은 뒤

 

서울역 청동빛 돔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비둘기처럼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알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해요. 그걸 실천하는 게 괜찮은 삶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