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만구족,(圓滿具足)
법문에서나
원만구족(圓滿具足)이라는 표현을 많이 접합니다.
이것은 어떠한 상태인 것이며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지요?
불자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용어 중에
오유지족(吾唯知足)이 있을 것입니다.
흔히 붓글씨로 많이 만났을 이 말은
‘나는 오직 만족할 줄을 안다’는 뜻이 됩니다.
원만구족을 현실에서 찾는다면 바로 이 오유지족의
경지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원만구족은 깨달음의
경지이면서 부처님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의 눈에
석가모니부처님의 삶이 과연 만족스러울까요?
석가모니부처님은
당신의 몫이 될 왕국을 버리고
평생을 걸식으로 얻어먹으며 살았으며,
출가 이후는
언제나 무더운 인도의 땅위를 걸어 다니셨던 분입니다.
겉모습만 보자면,
요즘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철저히 실패한 표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삶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그분은 25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평범한 보통의 삶이
얼마나 넉넉한 지를 잘 모릅니다.
우선 있는 그대로의 몸만 하더라도 원만구족입니다.
크게 불편한 곳이 없는
자신의 육체를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행복해하는 사람을 별로 보질 못했습니다.
늘 불만만 얘기하지요.
그러나 사고를 당해 팔다리가 불편해지면,
이전의 몸이 얼마나 완전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냥 평범하게 가고 싶은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다리가 얼마나 완전한지는
다리를 못 쓰게 되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뚫려 있어 전혀
신경도 쓰지 않던 콧구멍이 막혀 숨 쉬기가 불편해지면
그 때에야 비로소 이전의 코가 완벽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신체는 이처럼 타고난 그대로 완벽한 것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마음은 또 어떨까요?
어떤 부질없는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마음은 원만구족입니다.
그러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원만구족은 깨어집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념(無念)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이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불교의 무념은 아무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부질없는 생각이 없는 상태’라고 이해하면 좋습니다.
다시 말해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에는 어느 것 하나 고정적인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을 되풀이하며
그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눈앞의 상황을 엉뚱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눈앞의 상황에 대해 수용이 어렵게 됩니다.
이미 원만구족과는 멀어진 것입니다.
욕심을 계속 일으키면서
그것이 계속 채워지는 삶이란 불가능합니다.
물론 노력하면 일시적으로 만족할 수는 있겠으나
곧바로 다시 부족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결국 불만이 쌓이고 괴롭게 될 것입니다.
부유함과 가난함,
사치스러움과 검소함 등의 표현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잣대일 뿐입니다.
잣대를 들이대면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요.
게다가 그 잣대가 수시로 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므로 그 어떤 잣대도
저울도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만 원만 구족이
무엇인지를 진정 알게 될 것입니다.
객관적인 원만구족,
모든 사람이 번뇌를 일으키면서도
행복해할 그런 원만구족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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