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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의 생애

문수봉(李楨汕) 2017. 11. 23. 18:02

율곡이이의 생애

(1)4가지 시기로 나누어본 율곡의 생애

▶ 1기 : 입지기(立志期 :1세부터 28세까지) 선생이 시류와 도학(道學)사이에서 정신적 방황을 하다가 어머니 사임당과의 사별을 기점으로 마침내 홀로서기를 하고 금강산에서 하산한 후 삶의 큰 뜻을 세운 시기

-출생: 1536년 음력 12월 31일

-3세 : 말과 글을 배우고, 석류를 보고 “석류는 껍질 속에 부서러진 붉은 구슬을 싸고 있네”라는 옛 시귀절을 읊음.

-5세 : 외조부 사당에서 신사임당의 쾌유를 빔

-8세 : 화석정1)이라는 시를 지음

-10세 : 불서를 통독하고 도교에 대한 공부. 경포대부를 지음.

-16세 : 자모상.

-19세 : 입산수도 (입산수도의 이유에 대한 네가지 설2)).

-23세 : 퇴계 이황을 만나 도를 물음.

-26세 : 아버지 이원수공이 별세함.

▶ 2기 : 출사기(出仕期 : 29세부터 40세까지) 호조좌랑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탁월한 시사의 진단과 처방으로 선조임금의 총애를 받던 시기

-29세 : 호조좌랑에 임명되어 벼슬길에 나감.

-30세 : 윤원형의 잘못 상소하여 논박함.

-32세 : 명종이 승하하자 명종대왕의 만사3)를 지음

-34세 : 동호문답을 지어 올림.

-40세 : 성학집요4)를 지어 올림

▶ 3기 : 은거(隱居)와 후진양성기(後進養成期 : 41세부터 45세까지) 해주 석담에 은거하여 격몽요결, 경연일기 등의 집필활동과 사계 김장생 등 후진양성에 몰두하던 시기

-42세 : 격묭요결 완성.

-43세 : 고산구곡가5)를 지음

-45세 : 기자실기를 지음.

▶ 4기인 재출사기(再出仕期 : 46세부터 49세까지) 다시 정계로 돌아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대비책을 마련코자 10만 양병을 주장하였다가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위 사람들에게 넌지시 가르쳐주는 등 그 동안의 경륜으로 민족과 나라를 위해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시기

-46세 : 경연일기 완성.

-48세 : 십만양병설 주장.

-49세 : 정월 16일 서울 대사동의 집에서 별세함.

 

1)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어라.

멀리 강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맞은 단풍은 햇빛 향해 붉구나.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울음소리 석양의 구름 속에 끊기네.

2) 1.색비지설 2. 양기설  3. 성리학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들어갔다는 설  4.가정불화설

 

3)우뚝한 일각 군왕의 의표(儀表)여서, 日角眞天表

어릴 적부터 총명이 남다르셨네. 聰明自弄璋

천지(天地)의 수려한 정기 모으고, 乾坤鐘秀氣

은하(銀河)의 문체는 빛이 났네 雲漢煥文章 .......이하생략

 

4)대학(大學)의 가르침을 여러 성현의 말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성리학적 입장에서 해설함

 

5) 율곡이 해주 석담(石潭)에서 후학(後學)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고산의 아홉 굽이의 경치를 읊은 총 10수의 연시조로, 주희의 '무이도가'를 본떠 지었다고 하나 주희의 미의식을 추종하지 않고 독창적인 시경을 개척하였다.

 

(2)유교*불교*도교의 삼교합일을 시도한 율곡

  율곡이 살았던 그 시대는, 성리학을 신봉하고 성리학이 아닌 다른 학문은 모두 이단시 하고 배척하는 풍토가 있었으나 율곡 이이 선생은 불교나 노자의 근본적이고 순정한 것은 과감하게 수용하여 도교와 불교의 정수한 사상을 가려냄으로써 유교의 입장에서 셋의 합일점을 찾고자 하였다. 다시 말하면, 율곡은 일찍이 삼교합일(三敎合一)을 시도했고 또 그것을 달성하고자 노력했던 창조적인 지성인이었다. 그가 독창적인 성리설의 정립에 불교의 사상과 노자의 사상을 수용하여 유교 이념의 보편화를 기도했다는 점이 바로 그 근거가 된다.   당시 불교나 노장과 같은 이단시되는 학문을 하게 되면 사문난적으로까지 몰리게 되었기 떄문에 그러한 그의 노력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그는 의연하고 정관적인 자세로 불교와 노자를 연구하여 그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는 데 과감하게 수용하였던 것이다. 그는 성리학을 정립하는데 있어서도 퇴계처럼 정주를 모방하지 않았고, 또 퇴계처럼 불교나 노자를 무조건 이단시하지도 않았다.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그는 주체적 정신과 창조적 의지를 가지고 다른 학문의 이념을 연구한 뒤에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철학과 생활의 이념으로 삼았다.

▶율곡과 불교.

**조선조의 독창적 유학자인 율곡의 유가사상의 이론 체계 속에 불교의 영향이 어떻게 전달되고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 배불적 태도가 강하게 나타난 이유

= 주돈이나 정호*정이 등과 같은 11c 의 성리학자들과 12c 주희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불교의 교리를 잘 알고 또 그것을 유가적 체계에 수용하였음도 명백하다. 그러나 그들이 유가 인륜의 도통을 재정립하고 유가의 도덕 규범을 선양함으로써 인륜적 체계가 희박한 불교를 비난하고 배불적 태도를 강화함.

= 조선조 개국과 함께 배불숭유의 정치이념이 정립되었기 때문.

= 불교를 수업하는 사람이 공空에 집착되어 적멸(나라는 의식의 적멸을 통해 내 속에 남을 품을 공(空)을 부른다)주의를 주장하였으므로 배척받음.

2) 입산수도의 길

=율곡의 금강산 입산과 하산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지만 그의 일생에 커다란 전환기 였다. 율곡의 입산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색비지설 : 자모상을 당한 율곡이 삼년상을 치른 후에도 어머니를 여윈 슬픔에 불교에서                인생의 고뇌를 연구하며 색비(슬픔을 막음)를 위해서라는 설.

  *양기설 : 기를 기르기 위해 입산수도를 결심했다는 설.

  *불교에 대한 공부 : 성리학에 영향을 끼친 불교 공부를 하기 위해서 들어갔다는 설.

  *가정불화설 : 모의 상을 당한후 성질이 좋지 못한 서모가 들어와 가정의 풍파를 일으키                  자 율곡이 여러차례 간하여 보았으나 듣지 아니하므로 가정의 낙을 잃고                   금강산에 입산하였다고 보는 설

            ⇒율곡의 인품으로 미루어 보아 가정불화설에는 타당성이 없다고 보고, 나머지                세가지 설 모두를 배경으로 입산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음.

=입산수도가 율곡에게 미친 영향.

  *입산하여 수도한 것은 그가 유가 철학을 더욱 대성시키는 밑거름이 되어 그의 철학이 독창성과 이색을 발할수 있게끔 만들어 주었다고 짐작된다. 실제로 율곡의 성리학에서는 불교적 지식과 경험이 다른 유학자보다 뚜렷이 부각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그의 문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불교적인 면이 나타나는 그의 말과 문학

  *율곡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연비의 시문

고기가 뛰고 소리개가 날아, 본래 아래 위가 하나인데,

저것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니 “색즉공色卽空, 공즉색空卽色”이니라.

등한일소 하고 내 신세를 돌아보며,

석양 빗긴 숲 속에 홀로 서 있더라.

유가의 눈으로 불가를 보려 했으나 오히려 불가의 진리를 유가의 이론으로 변호하였다는 느낌 마저 들 정도로 율곡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7)을 확연히 이해하고 깨치고 있다.

  *도를 배움이 곧 집착이 없음이라. 인연을 따라 어디든 놀 수 있네.

   청학동을 잠깐 이별하고 백구주8)를 구경하노라.

   이내 몸 신세는 구름 천리요, 건곤은 바다 한 모퉁이로다.

   초당에서 잘 자고 가는도다. 매화에 비친 달이 풍류로다.

집착이 없음은 곧 무착無着을 나타내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무집착이야말로 사물의 진상을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함. 즉, 이 시는 율곡과 불교적 세계의 합일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사림파 문학은 문학이 자기성찰의 구실을 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는 것이 그 특징인데, 율곡이 지은 자경문(자기를 환성 시키는 글)을 비롯하여 성학집요, 격몽요결, 학교모범에서도 입지立志를 모두冒頭에 놓아두었다. 이 말은 불교의 심즉시불心卽是佛9)의 견해와도 상통한다.

 

 

7) 승불교의 경전인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말.

8) 지명 : 白鷗州

9)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


▶율곡과 도교(노자)

**율곡과 퇴계의 사상이나 문학에는 서로 대립되는 면이 많았는데, 율곡은 성리학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퇴계처럼 불교나 노자를 무조건 이단시하지 않음. 율곡은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그는 주체적 정신과 창조적 의지를 가지고 다른 학문의 이념을 연구한 뒤에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철학과 생활의 이념으로 삼았다.

1) 도교가 배척받은 이유.

=노자를 배우는 사람이 허虛와 무無에 고착되어 허무주의를 주장하였으므로, 사림들에게 배척받음

2) 순언 醇言

=순언10)은 전율곡작으로, 이 책을 통하여 그와 도교를 연결 시켜 보려한다. 이 책은 노자의 말을 새로이 해석한 책이다.

 

10) 노자의 도덕경 중에서 유도(儒道)와 가까운 말들을 취하여 엮은 책으로, 도덕경 중에서 순정한 것을 뽑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순언이라 편명을 붙이게 되었다고 전해짐.

 

3) 순언에 나타난 도교적 색채.

  *노자 : 무심 無心

   율곡 : “성인은 천하에 한 터럭의 사심도 없이 다만 민심에 따를 뿐이다.” (순언 29장)

  *노자 : 무위無爲이기에 무패無敗하고 무집無執이기에 무실無失하다.

   율곡 : “조작하는 자는 패하고 잡는 자는 잃는다는 것은 역수와 천도를 거역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순언             38장)

  *노자 : “도의 실행은 날마다 더는 것인, 덜고 또 덜어서 무위에 도달하는 것”(도덕경)

   율곡 : 노자의 말이 유가의 본연지성의 회복과 같은 뜻이라고 해석함.

       ⇒“대개 인성의 가운데에 만선이 자족하니 선에 추가하고 더할 이치가 없다. 다만 마땅히 그 기품*물            욕의 누를 덜어버리는 것일 뿐이다. 덜고 또 덜어서 덜 것이 없는데에 이르면 그 본연의 성은 회복            된다 (순언 6장)      

  위에 나타난 세 개의 예에서 모았듯이, 율곡의 노자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의도는 유가 사상과 노자 사상의 근본 명제에 대한 근원적 일치점을 모색하는데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유가 사상의 근본 명제에 위배되는 것은 아예 배제시켜버렸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4) 그의 시 [도중途中]에 나온 노장사상.

밥짓는 연기 나고 한낮의 닭은 우는데, 炊烟一抹午鷄鳴

(중략)

늙은이 하는 말이, 지나온 세상 햇수조차 기억 못해, 翁言閱世不記年

편코 괴로움과 슬프고 기쁨을 다 맛보았다오. 勞逸悲歡皆染指

인정은 얄팍한 매미 날개 무상도 하여라, 人情蟬翼苦無常

말하고 웃는 그 속에도 칼날이 감춰 있더군. 刀劒藏於言笑裏

나는 이제 옹졸한 생활로 여생을 보전하노니, 我今持拙保餘年

본래 칭찬이 없는데 누가 헐뜯을 것인가. 本來無譽誰爲毁

그대 만난 김에 세상 일들 묻고 싶노니, 逢君欲問蝸角事

시국 운수가 몇 번이나 통했다 막혔다 했는고. 時運幾泰還幾否

부디 이름 갖고 속세에 퍼뜨리지 말기를, 莫將名字播紅塵

나는 지금 숨어 사는 사람이라오. 我是當年被衣子

그리고는, 닭 잡고 기장밥 하여 나를 배불리고, 旋將鷄黍飽我饑

함께 빈 집에 누워 자면서 성리를 이야기하였네. 伴宿虛齋談性理

기이한 말과 험한 이야기 가끔 상도에 벗어나, 奇言險語或不經

장자(莊子), 열자(列子)쯤은 개미처럼 내려다보기도, 下視莊列如蟻

이른 아침 잠깨어 보니 사람은 간 데 없고, 明朝睡覺寂無人

단지 빈 뜰에 벗어둔 신만 보이네. 只見空庭遺脫

= 여기에 나오는 선인노옹(늙은이)과의 수작은 율곡 스스로 선인의 경지에 있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에 있는 시구중 나는 지금 숨어사는 사람이라오 라는 말은 도가사상 그대로를      나타낸 것으로, 장자 열자 또한 도가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정리*** :  율곡은 불교를 그의 사상에 인용하였고, 유가사상과 노자사상의 근본 명제에                대한 근원적 일치점을 모색하였으며, 이것이 문학에도 반영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의 사상가 10人)율곡 이이 / 예문동양사상연구원 ; 황의동 예문서원

           명심보감 ; 격몽요결 /  박양숙편역   자유문고 

           사림파 문학의 연구/ 형설출판사

           숭늉(다산,율곡,퇴계선생이 들려주는 인생이야기)/정약용  큰산

           栗谷先生全書/ 이이


참고싸이트 : http://yulgok.co.kr  율곡사랑

             http://www.yulgok.or.kr 율곡학회

             http://guilbut.netian.com 한국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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