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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남방지강(南方之强)
스물네 살 나던 늦가을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과거 시험공부에 얽매여 경전 읽기를 게을리한 것을 반성하면서 '중용'을 펼쳤다. 9월 9일부터 시작해 11월 1일까지 날마다 '관독일기(觀讀日記)'를 썼다. 그날 읽은 '중용'의 해당 부분과 읽은 횟수, 그리고 소감을 적어 나갔다.
9월 23일자 '관독일기'에서 그는 독서를 약(藥)에다 비유했다. "중용이란 것은 원기가 충실하고 혈맥이 잘 통해, 손발이 잘 움직이고 귀와 눈이 총명해서 애초에 아무런 통증이 없는 종류이다. 중용을 잘하지 못하는 자는 처음에는 성대하고 씩씩하지 않음이 없으나 지니고 있던 병의 뿌리가 점차 번성하여 온갖 질병이 얽혀드니 만약 때에 맞게 조치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죽음의 지경에 이르고 만다."
이 글은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굳셈에 대해 묻는 '중용'의 한 대목을 읽고 썼다. 자로가 묻는다. "선생님! 진정한 강함은 어떤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한다. "남방의 강함을 말하느냐, 북방의 강함을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너의 강함을 말하느냐? 관대함과 온유함으로 가르치고, 무도한 자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이 남방의 강함이다. 군자는 이렇게 한다. 창칼과 갑옷을 두른 채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북방의 강함이다. 강한 자가 이렇게 한다.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抑而强與?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 袵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
진정한 강함은 남방의 강함에 있다는 말이다. 이를 이어 공자는 군자의 강함이 품은 네 가지 덕을 말했다. 먼저 먼저 '화이불류(和而不流)' 와 '중립불의(中立不倚)' 다. 화합하여 품되 한통속이 되지 않는다. 중간에 우뚝 서서 어느 한쪽만 편들지 않는다. 다시 두 가지가 더 있다. 나라에 법도가 있으면 빈천할 때의 지조를 변하지 않고(國有道不變塞), 나라에 법도가 없어도 죽을지언정 뜻을 바꾸지 않는다(國無道至死不變). 이것이 공자가 생각한 진정한 강함이다.
이덕무는 그해 연말에 쓴 '갑신제석기(甲申除夕記)'에서 자신이 '관독일기'를 쓰게 된 계기가 바로 '중용'의 이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442] 주미구맹(酒美狗猛)
술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술 맛이 훌륭했다. 그런데 맛이 시어 꼬부라지도록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연유를 몰라 이장(里長)을 찾아가 물었다. 이장이 말했다. "자네 집 술 맛이야 훌륭하지. 하지만 자네 집 개가 너무 사나워서 말이지."
제환공(齊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걱정거리가 있는가?" "사당의 쥐 때문에 걱정입니다. 쥐란 놈이 사당에 구멍을 뚫었는데, 연기를 피우자니 불이 날까 겁나 어쩌지를 못합니다."
위령공(衛靈公)이 옹저(癰疽)와 미자하(彌子瑕)를 등용했다. 두 사람이 권력을 전단해서 임금을 가렸다. 복도정(復塗偵)이 임금에게 나아가 말했다. "꿈에 임금을 뵈었습니다." "무얼 보았더냐?" "꿈에 조군(竈君), 즉 부뚜막 신을 보았습니다." "조군을 보고서 어째 나를 봤다는 게야?" "앞사람이 불을 쬐면 뒷사람은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임금 곁에서 불 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임금을 뵈었다고 했습니다." 신흠(申欽·1566~1628)의 '거폐편(去蔽篇)'에 나오는 얘기다.
신흠의 말이 이어진다.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사철가'는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로 시작한다. 가락이 차지다. 가는 세월을 늘어진 계수나무 끝 끄터리에다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國穀偸食) 하는 놈과 부모 불효 하는 놈과 형제 화목 못 하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 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아서 한잔 더 먹소 덜 먹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하는 끝 대목에 이르면 공연히 뜨끔해져서 마음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든다.
신관 사또에게 모진 매를 맞고 옥에 갇힌 춘향이의 심정을 노래한 12잡가 중 '형장가(刑杖歌)'에도 "국곡투식 하였느냐 엄형중치(嚴刑重治)는 무삼 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국곡투식은 나라 곡식을 훔쳐 먹는다는 말이다. 서리(胥吏)들이 장부를 조작하는 등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백성의 고혈을 빨고 국고(國庫)를 축내는 간악한 짓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목민심서' '곡부(穀簿)' 조에는 "윗물이 흐린지라 아랫물 맑기가 어렵다. 서리들이 간특한 짓을 함에 온갖 방법을 갖추지 않음이 없다. 귀신같이 간악하고 교활하니 밝게 살필 도리가 없다(上流旣濁, 下流難淸. 胥吏作奸, 無法不具. 神姦鬼猾, 無以昭察)"고 한 뒤 이들의 12가지 교활한 수단을 소개했다. 그 설명이 이해하기 어렵게 복잡할 뿐 아니라 수단이 교활하고 독랄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토호(土豪)들의 농간까지 끼어들면 백성이 유리걸식 신세가 되는 것은 실로 잠깐이었다. '목민심서' '형전(刑典)' 조에는 청주 목사(淸州 牧使) 정경순(鄭景淳)이 국곡(國穀)을 축내고 갚지 않는 토호에게 주패(朱牌)를 내어 독촉하니, 호족이 그 뒷면에 '정모역적(鄭某逆賊)'이라고 써서 돌려보내는 패악을 부렸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건드리느냐는 뜻이다. 당장 붙잡아 오게 해서 다짐장에다 썼다. "관의 명령을 거역함을 역(逆)이라 하고, 국곡을 투식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네놈이야말로 역적이다." 그러고는 30대의 호된 매질을 가했다. 그제야 영이 섰다. 나랏돈을 제 호주머니 돈 쓰듯 해 국고를 축내니, 그게 다 백성의 세금에서 나온 돈이다. 하기야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 맑기를 바라겠는가?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444] 괘일루만 (掛一漏萬)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임금께 올린 '물길을 따라 둔보(屯堡)를 두는 문제에 대해 올리는 글(措置沿江屯堡箚)'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신은 오랜 병으로 정신이 어두워 말에 두서가 없습니다. 하지만 얼마간 나라 근심하는 정성만큼은 자리에 누워 죽어가는 중에도 또렷합니다. 간신히 붓을 들었으나 괘일루만(掛一漏萬)인지라 모두 채택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하지만 삼가 성지(聖旨)에 대해 느낌이 있는지라 황공하옵게 아뢰나이다(臣病久神昏, 言無頭緖. 然其一段憂國之忱, 耿耿於伏枕垂死之中. 艱難操筆, 掛一漏萬, 皆不足採. 然伏有感於聖旨之下, 惶恐陳達)."
퇴계(退溪) 이황(李滉)도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에서
"신이 비록 평소 꾀가 어두우나 붉은 정성을 다하여 한 가지라도 얻으려는 어리석음을 본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또 아뢰는 즈음에 정신이 산란하고 말이 어눌하여 괘일루만일까 염려됩니다(臣雖素昧籌略, 不可不罄竭丹忱, 思效一得之愚. 而又恐口陳之際, 神茫辭訥, 掛一漏萬)."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는 '임덕함에게 보낸 답장(答林德涵書)'에서
"나머지는 인편이 몹시 바빠 서둘러 여기까지만 쓰니 괘일루만올시다. 모두 말없이 살펴두시지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도 만나지 않고는 다 말하기 어려운지라 종이를 앞에 두고 서글퍼할 뿐이외다(萬萬便人忙甚, 力疾暫此, 掛一漏萬. 都在嘿會. 有無限所欲言者, 非面難悉, 臨紙悵然而已)"라고 썼다.
반대로 괘만루일(掛萬漏一)이란 표현 도 쓴다. 1만가지를 고려하는 중에 정작 중요한 한 가지를 빠뜨렸다는 뜻이다. 백밀일소(百密一疎), 천려일실(千慮一失)과 의미가 같다. 빈틈없는 것이 좋긴 하지만, 폼만 잡고 핵심을 놓친 괘만루일과, 중심을 붙들어 소소한 것은 개의치 않는 괘일루만 중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후자가 더 낫지 싶다. 정작 문제는 핵심 역량의 우선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이다.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445] 이난삼구(二難三懼)
당 태종의 '집계정삼변(執契靜三邊)' 시에 "해 뜨기 전 옷 입어 이난(二難) 속에 잠들고, 한밤중에 밥 먹고 삼구(三懼)로 새참 삼네(衣宵寢二難, 食旰餐三懼)"라 한 구절이 있다. 의소(衣宵)는 해 뜨기 전 일어나 옷을 입는다는 말이고, 식간(食旰)은 해 진 뒤에 비로소 저녁 식사를 한다는 뜻이다. 의소식간(衣宵食旰)은 임금이 정사를 돌보느라 불철주야 애쓰는 것을 칭송하는 의미로 쓴다.
시에서 당 태종이 밤낮 바쁜 중에도 잊지 않겠다고 새긴 이난(二難)과 삼구(三懼)의 내용은 뭘까? 이난은 '좌전(左傳)' 양공(襄公) 10년 조에 나온다. 자공(子孔)이 정(鄭)나라의 반란을 평정한 뒤 관원들에게 일제히 충성 맹세를 받으려 했다.
자산(子産)이 만류하며 말했다.
"뭇사람의 분노는 범하기가 어렵고, 전권(專權)을 휘두르려는 욕심은 이루기가 어렵다. 이 두 가지 어려움을 한데 합쳐서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것은 위험한 방법이다(衆怒難犯, 專欲難成, 合二難以安國, 危之道也)."
자공이 자산의 충고에 따라 맹서(盟書)를 불사르자 그제야 정나라가 안정되었다. 이난은 뭇사람의 분노와 전권의 욕망이다. 품고 가는 포용이 없으면 무리의 분노를 부른다. 혼자 하겠다는 욕심을 거두어야 화합이 생긴다. 그게 참 어렵다.
당 태종.
삼구(三懼)는 밝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림에 응당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세 가지 일을 말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공자(孔子)의 말로 인용되어 있다.
"밝은 임금은 세 가지를 두려워한다. 첫째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그 허물을 못 들을까 염려하고, 둘째는 뜻을 얻고 나서 교만해질까 걱정하며, 셋째는 천하의 지극한 도리를 듣고도 능히 행하지 못할까 근심한다(明主有三懼. 一曰處尊位而恐不聞其過, 二曰 得志而恐驕, 三曰聞天下之至道, 而恐不能行)."
지위가 높아지면 아래에서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잘못은 눈감는다. 겸손하게 시작해도 자리가 그를 교만하게 만든다. 나중에는 옳은 말을 들어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위기가 시작된다. 두 가지 어려움과 세 가지 두려움, 당 태종은 이 마음을 간직해 후대에 정관지치(貞觀之治)로 일컫는 치세를 이끌었다.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출처] : 정민 한양대학교 교수 고전문학 : <정민의 世說新語> / 조선일보
[출처] 정민(鄭珉)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441회~480회]|작성자 ohyh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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