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적도보』로 보는 조선 사찰(寺刹) 옛 모습 Ⅳ (북한편)
개성 관음사 (開城 觀音寺)
황해북도 개성시 박연리 천마산 기슭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찰로 북한의 보물급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문화유물 제125호로 변경되었다. 박연리 대흥산성 북문에서 약 1km 정도 거리의 천마산 기슭에 있다.
970년(고려 광종 21)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처음 세우고, 1393년(조선 태조 1)에 크게 확장하였다. 1477년(성종 8) 산사태로 무너진 것을 1646년(인조 23)에 다시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797년(정조 21)에 중수한 것이다.
경내에는 현재 대웅전·승방·칠층석탑·관음굴이 남아 있다. 승방 중앙에 난 문으로 들어가면, 마당 안쪽에 대웅전이 있고 그 서쪽에 7층석탑, 북쪽으로 관음굴이 있다.
대웅전은 장대석을 쌓아올린 높은 기단 위에 있으며, 정면 3칸(8.4m), 측면 3칸(6.61m)의 겹처마를 댄 다포계 우진각지붕집이다. 배흘림기둥을 사용하였고, 모서리기둥에 귀솟음과 안쏠림 기법을 사용하여 안정감을 주었다. 공포 장식은 외부는 쇠서형으로 비교적 길게 뽑고 내부는 교두형(翹頭型)과 운공형(雲工型)으로 처리하여 운공 위에 연꽃 봉오리를 장식했다.
모서리에는 용머리를 장식했다. 창호는 꽃살문으로 달았는데, 특히 화병에 담긴 연꽃을 동판에 새긴 후면창호는 그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내부에는 중층 닫집을 설치하고 그 아래 불단을 놓았다. 천장에 학, 봉황 조각으로 장식하고 안팎을 모로단청으로 치장하였다.
승방은 정면 4칸(10.7m), 서쪽 측면 4칸, 동쪽 측면 2칸의 'ㄴ'자형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에 대문채가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7층석탑은 높이는 약 4.7m로, 고려 때 조성되었다. 단층기단 위에 7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쪽대기에 상륜을 장식한 석탑이다.
대웅전 뒤쪽에 있는 관음굴은 관음사가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현재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154호로 지정된 대리석관음보살상이 2구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평양시의 중앙역사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공포와 내부 장식 등 조선 중기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1400년(조선 태종 즉위년)에는 태종이 이 절에서 수륙재를 열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운나라는 소년이 손재주가 너무 좋아 관음사 대웅전 꽃살문을 만드는 데 동원되었다가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하자 자신을 왼손을 잘라 버리고는 손 잘린 자신의 모습을 살문에 조각해 놓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도 손 잘린 운나의 모습이 대웅전 꽃살문에 남아 있다.
개성 관음사 대웅전 (開城 觀音寺 大雄殿) 전면
경기도 관음사에 있는 법당. 정면 3칸, 측면 3칸의 우진각 지붕 건물로 사찰 건물에 우진각지붕을 쓴 예는 극히 드물다. 지붕의 용마루는 짧게 하면서도 처마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 장중한 느낌을 준다. 흘림기둥을 세우고, 모서리기둥은 귀솟음과 안쏠림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기둥의 간격은 어칸을 협칸보다 넓게 하여 시각보정효과를 극대화 하였다.
그 위에 바깥 7포, 안 7포로 된 화려한 포식두공(包式枓拱)을 놓았다. 공포의 장식은 외부는 쇠서형으로 비교적 길게 뽑았다. 내부는 교두형과 운궁형으로 처리하였데, 운궁 위에 연봉을 장식하여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켰다. 이러한 공포의 모습은 임진왜란 전·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서리 공포의 상단에는 용두를 장식하였으며, 창호는 정면은 3분합문, 측면 협칸과 후면 어칸에는 2분합문으로 구성하였다. 정면과 후면의 창호는 꽃살문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특히 후면의 창호는 화병에 담긴 연꽃을 동판에 새긴 것으로 그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내부의 닫집은 중층의 닫집으로 마치 2층의 누각을 세운 것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단청은 건물 전체에 모로단청으로 치장하였다. 관음사 대웅전은 공포와 내부 장식 등 조선중기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네 모서리와 앞면 가운데 기둥들의 두공위에는 봉의 머리조각을 얹었는데, 조각이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대들보 위에서 중보를 떠받드는 동자기둥은 연꽃을 새겨 아름답다.
불단 위에는 이층짜리 닫집이 있는데, 17포로 섬세하게 짜올리고 붉은색을 칠하였으며 매우 화려하다. 또한 지붕은 겹처마를 댄 우진각지붕으로 매우 희귀하며, 건물 전체에 입힌 금단청은 은근감을 준다.
대웅전의 평면배치에서 흥미있는 것은 장여와 장여 사이의 간격을 배수로 하여 두공을 배렬하고 평면을 이룬 것이다. 이 절에 세운 홀림기둥은 굵기는 43cm, 높이는 2.83m로서 높이가 밀굵기의 6.58배나 된다. 그리고 모서리기둥은 밑굵기 45cm로서 가운데기둥보다 굵으며 높이는 더 높게 하고 대각선방향으로 조금씩 기울여 세웠다.
평방 위에는 바깥 7포, 안 9포로 된 화려한 포식두공을 놓았다. 두공은 매개 기둥 위마다 1개씩 놓는 한편 정면과 측면 가운데칸에서는 기둥사이마다 2개씩, 측면 두 가녘 기둥 사이에는 1개씩 놓아 모두 32개이다.
소혀형제공으로 하면서 비교적 길게 뽑은 것이 특이하며 네 모서리와 정면 가운데기둥들의 두공 위에는 용머리조각을 하였다. 건물 안에는 소람반자를 높이 대고 거기에 잇대어 좁은 빗반자를 중도리까지 올려붙였다. 집 안 깊숙이 불단을 놓고 그 위에는 이층 짜리 닫집을 달아놓았다.
7포나 되게 섬세하게 짜올리고 붉은 빛이 돌게 한 닫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다. 관음사에는 겹처마를 댄 우진각지붕을 하였다. 지붕의 용마루는 짧게 하면서도 마루들과 지붕면, 처마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휘임을 주어 몸체에 잘 어울리며 아름다워 보인다. 건물전체에 입힌 금단청은 퍽 은근한 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