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물 제 [1911호~1920호]
보물 제1911호 인천안목 목판 (人天眼目 木板)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판목류, 수량 : 42매,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안길 100 (송광면, 송광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송광사 관리자 : 송광사

보물 제1911호 인천안목 목판 (人天眼目 木板)
보물 제1912호 종경촬요 목판 (宗鏡撮要 木板)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판목류, 수량 : 17매,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안길 100 (송광면, 송광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송광사 관리자 : 송광사
보물 제1912호 종경촬요 목판
송광사에 소장된 ‘『종경촬요』 목판’은 모두 17매로 첫 판부터 제16판까지는 『종경촬요』의 1장부터 64장까지를 새겨 넣었으나, 마지막 판에는 65장과 함께 『청량답순종심요법문』의 제5장과 간기를 새겨 넣었다. 이같은 사례는 ‘『청량답순종심요법문』 목판’을 판각한 전문가들이 동일한 시기에 작업한 결과 때문으로 판단된다.
중국 송대에 간행된 『종경촬요』는 1213년(崇慶 2)에 수선사(修禪社)에서 혜심(慧諶)이 주관하여 중간(重刊)한 기록이 있으나 현재 전하는 목판은 없다. 송광사에 전하는 목판은 1531년에 조계산 은적암에서 복각한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유일판이다.
간행 기록은 제65장의 끝에 남아 있는데, “嘉靖十年辛卯(1531)季春全羅道順天府地曺溪山隱寂菴開刊”과 같이 중종 26년(1531) 3월에 송광사 인근의 은적암에서 간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판각 이후 바로 송광사에 옮겨 소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판은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으로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물 제1913호 청량답순종심요법문 목판 (淸凉答順宗心要法門 木板)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판목류, 수량 : 2매,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안길 100 (송광면, 송광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송광사 관리자 : 송광사
보물 제1913호 청량답순종심요법문 목판
송광사에 소장된 ‘『청량답순종심요법문』 목판’은 모두 2매로 본문인 제1∼4장은 2매의 목판, 나머지 제5장 및 간기는 『종경촬요』의 끝부분에 판각되어 있다. 이같은 사례는 『종경촬요』 목판을 판각한 전문가들이 동일한 시기에 작업한 결과 때문으로 판단된다.
간행기록은 『종경촬요』 목판에 남아 있는데, “嘉靖十年辛卯(1531)季春全羅道順天府土曺溪山松廣寺開刊”과 같이 중종 26년(1531) 3월에 송광사에서 간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각수와 연판을 담당한 기술자는 『종경촬요』에 참여한 인물과 동일하다.
이 목판은 비록 수량은 적으나, 1531년에 송광사에서 간행된 이후 계속 송광사에 완전하게 전하는 목판으로서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물 제1914호 천지명양수륙잡문 목판 (天地冥陽水陸雜文 木板)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판목류,
수량 : 광곽 20.0×31.9(cm),전체 23.7×79.4(cm) 내외,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안길 100 (송광면, 송광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송광사 관리자 : 송광사
송광사에 소장된 ‘『천지명양수록잡문』목판’은 모두 38매가 전하는데 일부 마멸된 글자가 있기는 하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조선전기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잡문』은 금속활자본(1464년, 왕실 발원)과 목활자본(1496년, 금강산 표훈사)의 간행 이후 순천 송광사본이 가장 이르다.
이후 강진 무위사본(1571년), 서산 강당사본(1581년) 등이 있으나, 모본이 되는 목판이 남아있는 경우는 순천 송광사본과 서산 강당사본이 유일하다. 목판의 간행기록을 통하여 “嘉靖十年辛卯(1531)五月日全羅道順天土曹溪山松廣寺開刊”과 같이 중종 26년(1531) 5월에 송광사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목판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잡문』의 현전 판본 중에서 가장 앞서는 것으로 더욱 완전하게 전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다. 따라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물 제1915호 달마대사관심론 목판 (達磨大師觀心論 木板)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판목류, 수량 : 8매,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개심사로 321-86 (운산면, 개심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개심사 관리자 : 개심사
보물 제1915호 달마대사관심론 목판
개심사에 소장된 ‘『달마대사관심론』 목판’은 모두 8매가 전하고 있다. 다만 제1장부터 제21장까지는 7판에 새겨져 있으나, 마지막 판에는 제22장과 함께 『도가논변모자리혹론(道家論辨牟子理惑論)』의 17장이 함께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달마대사관심론』은 고창 문수사간본(1538), 무등산 안심사간본(1570) 등이 있으나, 목판으로 현전하는 것은 개심사 소장본이 유일하다. 마지막 장인 제22장과 함께 새겨진 『도가논변모자리혹론』의 제17장에 남아 있는 ‘萬曆八年庚辰(1580)四月日新刊于伽耶山普願寺’라는 내용을 통하여 1580년 4월에 가야산 보원사에서 새로 간행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목판은 조선시대에 간행된 『달마대사관심론』의 현전 판본 가운데 그 모본이 완전하게 전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물 제1916호 달마대사혈맥론 목판 (達磨大師血脈論 木板)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판목류, 수량 : 7매,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개심사로 321-86 (운산면, 개심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개심사 관리자 : 개심사
보물 제1916호 달마대사혈맥론 목판
개심사에 소장된 ‘『달마대사혈맥론』 목판’은 모두 7매가 전한다. 한 면에 1장에서 3장까지 새긴 판도 있고, 더욱이 “팔(八)”자형으로 굽어진 목판도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굽어진 형태에 맞추어 해당 장을 새겨 놓았다.
이렇게 서적을 목판의 크기나 모양에 맞추어 자유분방하게 새긴 사례는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달마대사혈맥론 목판』은 1579년 5월에 간행되어 지금까지 거의 완전하게 전하는 것이다.
간행은 마지막 장의 “萬曆七年乙卯(1579)仲夏忠淸道瑞山地伽耶山普願寺留鎭”과 같이 선조 12년(1579) 5월에 개심사 인근에 있던 보원사나 보원사 인근에서 간행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달마대사혈맥론」의 국내 전본으로 개심사 소장본보다 앞선 판본으로는 광양 옥룡사간본(1473), 무등산 안심사간본(1570) 등이 있으나 목판으로 전하는 것은 없다. 오직 개심사 『달마대사혈맥론』의 목판만이 완전하게 전하고 있다. 따라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물 제1917호 예천 야옹정 (醴泉 野翁亭)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 수량 : 1동 / 57.76㎡, 지정일 : 2016. 9. 9,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맛질길 55 (용문면) ,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권재철 관리자 : 권재철
예천 야옹정
예천 야옹정
예천 야옹정
예천 야옹정
예천 야옹정
야옹정은 임진왜란 전인 1566년에 1566년(명종21)에 권심언(權審言)이 선고(先考)인 야옹(野翁) 권의(權檥:1475-1558)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로 초창 때의 모습이 거의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초창 때의 막새기와와 단청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임진왜란 이전 건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평면은 전체적으로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丁자형의 평면으로, 좌측 3칸을 대청으로 꾸미고 우측에는 온돌방을 연접시켰는데, 우측칸의 전면에는 누마루 1칸을, 배면에는 온돌방 1칸을 각각 돌출시켰다.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전면 담장 좌측에는 사주문을 세워 정자로 출입케 하였다.
정자의 전면과 배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는데, 전면 퇴칸의 하부에는 누하주 6본을 세워 전면의 퇴칸은 누마루를 이루게하였다. 배면의 퇴칸은 중수시인 숭정년간(崇禎年間)에 설치된 것이기는 하나 기존 건물과 어색하지 않게 설치하여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기둥 상부의 포작은 일출목한 주심포계열로 조선 초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우주 상부의 귀포는 귀한대를 구성하여 추녀를 받도록 하였고, 포간에는 깊게 초각한 화반을 놓아 처마 밑을 짜임새 있게 장식했다. 3포 초익공의 공포는 주심포 형식과도 유사하며 익공의 형식이 조선전기의 짧고 강직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출목을 보통 건물보다 많이 낸 것도 조선 전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출목 첨차를 장혀와 한 몸으로 만든 것은 고식이면서도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야옹정의 특징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평고대와 착고막이를 하나의 부재로 만든 구로대의 사용은 봉정사 극락전 등에서 볼 수 있는 고식기법으로 야옹정의 가치를 더해주는 상세라고 할 수 있으며 부연의 배걷이가 현격하고 말구 치의 경사가 센 것도 시대와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야옹정에는 단청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데, 누정건축에서 단청을 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대청 배면과 좌우측, 우측칸 전면의 창호는 가운데 설주가 세워진 고식의 영쌍창으로, 정자의 건립 연대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야옹정은 몇 안 되는 임진왜란 이전 건물이라는 것 하나로도 희소성의 가치가 있으며 이를 증거할 수 있는 건축 양식과 기법, 막새, 단청 등이 잘 남아 있어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해도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보물 제1918호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高敞 文殊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목조/ 불상, 수량 : 3구, 지정일 : 2016. 11. 16,
소재지 : 전라북도 고창군 칠성길 135 (고수면, 문수사) ,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문수사 관리자 : 문수사
보물 제1918호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중앙에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배치된 삼불형식이다. 석가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1756년의 「文殊寺創建記」현판, 1843년의 「高敞懸鷲領山文殊寺寒山殿重刱記」현판을 통하여 1654년에 彫刻僧 海心, 性守, 勝秋, 敏機, 道均, 妙寬, 勝照, 勝悅, 智文, 信日, 明照, 景性, 一安, 處仁, 元辨 등 15인의 조각승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의 중요한 기준자료이다.
석가여래와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로 구성된 이와 같은 삼불형식은 임진왜란·정유재란 이후 황폐해진 불교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신앙적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던 형식이다. 이 삼불상은 17세기 전반기 불상에 비해 양감이 강조되어 중량감이 있으며, 선묘는 비교적 깊이가 얕고 힘 있는 간결한 선묘를 구사하였다. 이는 17세기 전․중엽경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크게 활동한 조각승 無染派 조각의 특징이다.
불상 조각을 주도한 수조각승 해심은 무염의 조각을 계승한 조각승으로, 이곳에는 그의 스승의 조각풍에 존중하면서 그가 추구했던 조각적 의지도 함께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조각승 해심은 1930년대 초반부터 스승 무염의 조각 작업에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하여 조각적 역량을 키웠으며, 1640년대 후반부터는 일군의 조각승을 이끌 수조각승으로 성장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은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수조각승 해심의 조각 작품 중, 완성도와 완결성 등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는데 중요한 조각사적 의의를 가진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4년이라는 제작시기, 碧巖 覺性, 晦跡 性悟, 尙裕와 海心 등 제작주체와 조각승 등을 알 수 있어 17세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자료이다.
이와 더불어 팔각대좌의 윗면에 1844년에 白坡 亘璇의 증명으로 圓潭 乃圓이 중수화원으로 참여하여 불상을 중수하였다는 묵서명을 남기고 있어 불상의 중수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유익한 자료를 제공한다.
보물 제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奉化 淸凉寺 乾漆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건칠조 , 수량 : 불상 1구, 복장유물 일괄(19건 208점),
지정일 : 2016. 11. 16,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247 청량사 ,
시대 : 통일신라, 소유자 : 청량사 관리자 : 청량사
보물 제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은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각하여 만든 건칠불상이다. 이 불상은 오래전부터 청량사의 주불전인 유리보전의 주불로 봉안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며, 엄숙한 상호, 당당하고 육감적인 양감, 균형 잡힌 신체, 탄력과 절제된 선묘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 계통의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양식계통을 따르고 있다.
불상의 초창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바탕층 삼베에 대한 방사선탄소연대 측정 결과 AD 770~945(1차 중간 층 : 900-945, 2차 마감 층 : 칠 제거 전 770년/칠 제거 후 780-870)으로 도출되었다.
이에 이 불상은 이르면 8세기 후반, 늦어도 10세기 전반 경에는 조성된 것으로, 930년경으로 추정되는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건칠불상임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와 의미를 갖는 불상으로 평가된다.
복장유물은 중수과정에서 납입된 발원문과 후령통, 복장전적, 금강계만다라 등 모두 19건 208점에 이른다. 이 중 1560년 중수 때 납입된 「千人同發願文」은 처음 만들어진 후 고려후기와 조선 전기에 중수된 기록을 담고 있어 중요하고, 「三十七尊種字曼陀羅八葉一輪」은 고려의 侍中 崔宗峻이 1239년에 납시(納施)한 것으로 불상의 중수 연대 추정에 도움을 준다.
보물 제1920호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
(高敞 文殊寺 木造地藏菩薩坐像 및 十王像 一括)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목조 / 불상 , 수량 : 11구(지장보살상 1구, 시왕상 10구),
지정일 : 2016. 11. 16, 소재지 : 전라북도 고창군 칠성길 135 (고수면, 문수사) ,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문수사, 관리자 : 문수사
보물 제1920호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보물 제1920호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
고창 문수사 지장보살상 및 시왕상 일괄은 比丘形의 지장보살상과 帝王形의 十大王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 앞을 지키고 섰던 장군상 2구는 도난당하였고, 이외 판관, 귀왕, 동자 등의 권속들은 전하지 않는다.
이 상들은 제8 평등대왕상에서 발견된 ‘造成發願文’을 통해 1654년에 당시 불교계를 대표했던 碧巖覺性과 晦跡性悟, 그리고 회적성오의 제자 尙裕 등 벽암각성의 문도들이 주도한 불사임을 알 수 있고, 彫刻僧은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을 만들었던 해심 등 15인의 동일한 조각승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지장보살상은 팔각삼단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고, 왼손으로 보주를 들었다.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중후한 인상이며, 사용된 주름은 힘 있고 간결한 선을 사용하였다. 시왕상은 제왕의 관복을 갖추어 입고 엉덩이가 꼭 끼는 의좌에 앉아 지옥중생을 심판하는 모습인데,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익살스럽게 연출하였다.
이 지장시왕상을 조각한 수조각승 해심은 1630년대부터 무염의 문하에서 조각수업을 배운 조각승으로, 1640년대 후반에는 수조각승으로서의 조각적 역량을 갖추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작품으로는 1648년에 師翁 幸思와 養師 無染을 위로 모시고 首畵員으로 참여한 해남 도장사 석가여래삼존좌상과 1654년에 수조각승으로 제작한 같은 절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있는데, 대체로 중량감 있는 양감을 통해 중후하고 실재감 있는 존상 표현을 구현한 스승 무염의 조각 전통을 최대한 존중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장시왕상 역시 이러한 무염의 조각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해심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은 일부 권속들이 험난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소실과 도난을 당해 완전하지 않은 점은 아쉬우나, 고색찬연한 채색과 명부존상으로서의 위엄 있는 기품과 감각적인 표현기법이 돋보이는 17세기 중엽 경의 대표적인 명부조각의 기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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