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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제 [1902호~1910호]

문수봉(李楨汕) 2018. 1. 30. 15:05

대한민국 보물 제 [1902호~1910호]

 

보물 제1902호  제주향교 대성전 (濟州鄕校 大成殿)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향교 . 수량 : 1동 / 155㎡ 지정일 :  2016. 6.  13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문로 43 (용담일동, 제주향교),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재)제주특별자치도향교재단,  관리자 : 재)제주특별자치도향교재단

 
 
제주향교 대성전 정면

 
제주향교 대성전 내부 1

 
제주향교 대성전 내부2

 
제주향교 대성전 공포


제주향교 대성전 귀포 덧기둥

 

제주향교는 태조 3년(1394년) 관덕정에서 동쪽으로 1리 정도 떨어진 가락천의 서안에 위치한 교동에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5차례 이건과정을 거치면서 순조 27년(1827)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제주향교는 애초 경사지형에 맞추어 ‘홍살문-외삼문-명륜당-대성전-계성사’로 이어지는 ‘전학후묘’의 배치였으나, 제주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영역이 축소되고 명륜당이 대성전 남쪽에 건립되어 현재의 ‘좌묘우학’ 배치가 되었다. 그러나 대성전 및 계성사는 이건 이후 현재까지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4칸으로 전면 퇴칸은 개방하여 고주열에 벽체를 설치하고 창호를 달았다. 나머지 삼면에는 현무암 화방벽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평주와 고주 모두 약한 민흘림을 주었다.

특징적인 것은 귀포와 배면포의 외목도리 장여 하부에 처마의 처짐방지를 위한 덧기둥을 설치하였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제주에서도 대정향교와 제주향교 대성전에만 나타난다. 다만, 제주향교 대성전 덧기둥 상부에는 다른 건물에서 보기 힘든 문양과 교두형 부재가 보이고 있어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이 건물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가구는 2고주 7량가로 부재가 길이에 비해 가늘고 긴 편이지만, 대들보를 항아리형에 가까운 형태로 가공하는 등 부재의 가공이 깔끔하여 정제된 느낌을 준다.

공포는 일출목 이익공 양식인데, 출목의 간격이 넓어 익공의 길이가 매우 길게 뻗어나가 있고, 내부 보아지 쪽은 하부의 익공이 상부보다 길어 상하가 뒤바뀐 듯한 형상이며, 익공의 형태 또한 육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양을 하고 있어 공포에서도 제주만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지만 물매가 완만하여 합각면의 크기가 작고, 처마의 앙곡과 안허리곡도 세지 않으며, 건물이 낮아 전체적으로 지면에 달라붙은 듯하지만, 건물의 규모가 커서 안정적이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특성은 바람이 세고 비가 잦은 제주도의 자연조건에 순응한 건축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제주도의 대표적인 유교건축 문화유산인 제주향교 대성전은 건립과 이건 이후 원위치에서 큰 변형없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제주지역 내 다른 건축문화재에 비해 역사가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건축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있다.

 

 

 

보물 제1903호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高麗 水月觀音菩薩圖)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탱화/ 보살도,  수량 : 1폭 지정일 :  2016. 7.  1.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152길 53 (신림동, 호림박물관),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성보문화재단,  관리자 : 호림박물관

 

 

보물 제1903호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고려 수월관음도의 도설내용은 『大方廣佛華嚴經』「入法戒品」에 근거하며,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가는 남방순례 중 28번째 관음보살을 방문하여 보살도는 묻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인데, 그림은 관음보살과 선재동자라는 이야기의 두 주인공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화면의 중심에는 보타락가산 금강암좌에 반가좌 앉은 관음보살을 압도적인 크기로 배치하였고, 우측 하단에는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합장하며 공손히 보살도를 묻는 선재동자를 조그맣게 배치하여 두 주인공 사이의 심오한 공간감을 나타내었다.

이외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를 이루는 청죽·바위·정병 등 경물의 표현과 배치 등은 고려 후기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며, 존상의 형태와 구도 등에서도 고려 불화답게 빈틈없는 짜임새와 균형감을 보여준다.

역시 굵고 가는 다양한 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물 흐르듯 유려한 선묘를 보여주고,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을 전신에 걸쳐 시문하였음에도 고귀한 품격을 놓치지 않았으며, 붉은색과 백색, 금색 등 고급스러운 색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요란하지 않은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출하였다.

이 작품은 비록 박락되고 손상된 부위가 후대에 수리되었지만, 고려 후기 수준 높은 불교회화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판단된다.

 

 

 

보물 제1904호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金泉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 出土 舍利莊嚴具)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기타/ 기타,  수량 : 사리기 4점, 준제다라니 1점,  지정일 :  2016. 7.  1.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 (황금동, 국립대구박물관),  

시대 :  통일신라,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국립대구박물관

 

 

보물 제1904호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지정사유 이 사리장엄구는 1916년에 갈항사 터의 동·서 삼층석탑을 경복궁으로 이건하던 중 발견되었다. 갈항사는 통일신라 초 승전법사(勝詮法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절로 동탑(東塔)의 상층기단(上層基壇) 면석(面石)에 경덕왕(景德王) 17년(758) 언적법사(言寂法師)와 그의 두 누이가 함께 발원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는 사실이 적혀 있는데, 사리장엄구도 탑의 건립과 함께 봉안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리장엄구는 동탑과 서탑 모두 동제항아리 안에 금동병이 넣어진 상태로 기단 아래에 마련된 사리공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 중 서탑에서 발견된 동제사리호는 뚜껑의 꼭지와 몸통의 두 귀를 청동 끈으로 연결하여 묶은 사리호로 9세기 이후 뼈항아리로 많이 사용된 연결고리 유개호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 탑의 사리병은 나팔형으로 벌어진 길고 아름다운 목과 균형 잡힌 타원형의 몸통을 가졌는데, 이러한 병의 형태는 8세기대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병의 형태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동탑의 사리병은 죽절형의 목과 꽃잎형의 굽을 달아내어 신라인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도 엿볼 수 있다. 이 사리기는 통일신라 감은사 식의 전각형 사리기와 달리 호형의 외함 안에 정병과 유사한 금속제 병을 사리병으로 봉안한 독특한 형식의 사리기이다.

최근의 보존처리를 하면서 작은 크기의 금속제 병에서 준제진언(准提眞言) 다라니 1매가 발견되어 당시의 불교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동탑 상층기단에 기록된 건립연대를 통해 사리기의 제작연대와 조성주체를 알 수 있어 통일신라 사리기 연구의 절대 기준자료라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가치가 크다.

 

 

보물 제1905호 서울 청진동 출토 백자항아리 (서울 淸進洞 出土 白磁壺)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백자,   수량 : 3점,   지정일 :  2016. 7.  1.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서울역사박물관)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서울역사박물관

 

 

보물 제1905호 서울 청진동 출토 백자항아리



보물 제1905호 서울 청진동 출토 백자항아리


 

보물 제1905호 서울 청진동 출토 백자항아리

이 백자항아리 3점은 2009년 종로구 청진동 235-1 일원 피맛골에서 일괄 출토된 것으로, 아무런 문양이 없는 순백자항아리이다. 15∼16세기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관요산 양질(良質)의 백자는 이 시기 이후 제작품보다 남아 있는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기본적으로 가치가 높은데, 이 항아리는 만듦새가 좋고 무엇보다 출토지가 명확하여 주목된다.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운종가(雲從街)라 불리우던 오늘날의 종로 청진지구에 대한 발굴 결과는, 조선 초 도시의 원형과 도로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도자 유물을 대거 드러냈다. 이 백자항아리 3점은 청진동 발굴의 대표적인 출토품이다.

조선 백자항아리는 접시‧대접‧병 등과 함께 조선시대 백자 중에서 많이 만들어진 그릇의 하나로, 전 시기를 통틀어 가장 중심적인 기종(器種)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백자항아리는 외형상 몸체의 무게중심이 어깨 부분에 있고 비교적 장신(長身)인 입호(立壺)와 무게중심이 몸체 중앙에 있어 둥글게 보이는 원호(圓壺)로 크게 나뉘는데, 청진동에서 출토된 항아리 3점은 조선 전기 항아리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항아리의 주둥이는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안쪽으로 비스듬히 서거나 밖으로 말린 두 가지 형태 중에 후자에 해당하며, 뚜껑은 함께 발견되지 않았으나 덮개처럼 씌우는 원반형의 뚜껑이었을 것이다. 조선 초기 순백자항아리의 희소성이나 작품의 완성도와 완전성, 출토지가 명확한 발굴품이라는 특성 등, 청진동 출토 백자호 3점은 조선 초기 순백자로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충분한 가치가크다

 

 

 

보물 제1906호  대명률 (大明律)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   수량 :  책(76張, 零本),   지정일 :  2016. 7.  1.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김영옥,  관리자 :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보물 제1906호 대명률

 

조선초기에 간행된 『대명률(大明律)』은 조선 왕조의 법률, 특히 형률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 태조는 1392년 반포한 즉위교서에서 『대명률(大明律)』을 쓰기로 선언한 이후, 형률(刑律)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담지 않고, 『대명률』을 우리 현실에 맞게 직해(直解)하여 사용하였다.

이『대명률』은『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의 저본이 된 홍무22년률(1389)로 판단되며, 국내외에 전본(傳本)이 알려지지 않은 희귀본이다. 지정 대상 『대명률(大明律)』은 전후 몇 장의 낙장이 있고, 판면의 마멸도로 보아 판각하고 얼마의 기간이 지난 후에 인출한 책이지만, 인쇄상태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유일본이다.

조선 시대의 법률은 물론 조선전기의 서지학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이다. 따라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보물 제1907호  함통6년명 청동북 (咸通六年銘 靑銅金鼓)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 :  1점,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대 :  통일신라,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금고는 범종과 함께 사찰 의식 때 범음(梵音)을 내는 주요 의식법구로, 불교전래 이후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금고는 직경 31.5cm, 폭 10.5cm 크기로 전체적으로 푸른 녹이 고르게 슬어 청록 빛을 띠고 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통일신라 기년명 금고로서 한국 금고의 기본형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다. 이 금고는 표면을 마치 빛의 파장이 둥글게 퍼져나가듯 굵고 가는 동심선대를 돌려 당좌구(撞座區), 중구(中區), 외구(外區)의 3구로 고면을 표현하였는데, 이는 금고를 태양의 빛에 비유한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권3 ‘몽견금고참회품(夢見金鼓懺悔品)’의 내용을 가장 적절한 조형 언어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이후 모든 금고에서 이와 같은 형태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금고의 공예사적 위치는 지대하다.

특히, 이 금고는 ‘咸通 陸歲乙酉二月十二日成內時(?)供(?)寺禁口’라는 제작과 관련된 명문을 남기고 있어 통일신라 금속공예의 기준자료이다. 함통 6년 을유는 신라 경문왕 5년(865)에 해당하며, 성내(成內)는 ‘이룬’, ‘이루다’의 이두식 표기이며, 명칭은 ‘금구(禁口)’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금고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금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연대를 가진 금고라는 데 공예사적 의미가 크고, 표면에 특출하거나 화려한 문양을 사용하지 않고도 담백하고 세련된 조형미를 만들어 낸 통일신라시대의 금속공예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데 그 의의가 크다.

 

 

 

보물 제1908호  묘법연화경 목판 (妙法蓮華經 木板)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판목류,   수량 :  104매,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길상면, 전등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전등사,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전등사

 

 

보물 제1908호 묘법연화경 목판

전등사에 소장된 ‘『묘법연화경』 목판’은 중종 38년(1543) 마니산(摩尼山) 정수사(淨水寺)에서 성달생(成達生) 서체 계열의 인본을 복각하여 1판 4장의 형태로 조성한 것이다. 전체 105매 가운데 첫 부분인 변상(變相) 및 홍전서(弘傳序)로 구성된 1매가 결실되었고, 일부 목판에서 충해로 인한 훼손이 보이나 대부분의 경판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 목판은 조선초기부터 16세기까지 성행되었던 성달생 서체 계열의 『묘법연화경』 가운데 시대가 가장 앞서는 목판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또한 각 권의 말미와 판면 광곽의 변란 밖에는 『중종실록』 등과 같은 관찬사서 등에서 확인되지 않은 수백 명의 시주질․연화질 및 각수 등이 새겨져 있어 16세기 중엽 정수사의 경판 조성과 관련된 역사상, 수록된 승려 등을 통한 불교사적 사실 등 다양한 역사․문화적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학술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물 제1909호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 (大方廣佛華嚴經疏 木板)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판목류,   수량 :  2,347매,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안길 100 (송광면, 송광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송광사,  관리자 : 송광사


 

보물 제1909호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

 

송광사에 소장된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은 송나라의 정원(淨源, 1011∼1088)이 기존의 『대방광불화엄경』 주석서를 적절하게 편차하여 120권으로 엮은 것이다.

이 불서는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요청으로 수입한 2,900여장의 판본이 국내에서 유통된 이후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에 왕실 주도로 판각하였고, 이어 명종 연간인 1557∼1564년에는 황해도 귀진사, 1629∼1631년에는 경기도 삭령의 용복사에서 간행한 사실이 있다.

송광사에서는 1634∼1635년에 전질을 간행하였는데, 현재 귀진사와 용복사의 간본은 목판이 전하지 않을뿐더러 인본 역시 아주 일부분만 전한다.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은 현재 100매 가량 일실(逸失)되었으나 보존된 2,347매는 큰 손상 없이 송광사의 화엄전에 수장되어 있다.

권21 등의 권말에 남아 있는 간행 기록에 의하면, 각성(覺性, 1575∼1660), 계훈(戒薰), 태능(太能, 1562∼1649), 태호(太湖), 희옥(熙玉), 응묵(應默) 등이 주도하여 숭정 7년(1634) 2월부터 숭정 8년(1635) 5월까지 1년 4개월에 걸쳐 완성되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간행장소는 “順天松廣寺開板”과 같이 송광사이다. 송광사 소장의 ‘『대방광불화엄경소』 목판’은 대장경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불서 목판 중에서 가장 방대하며 유일하다. 국가의 지원 없이 한 사찰에서 비교적 단기간에 120권이나 되는 분량을 많은 전문 인력들을 동원하여 간행된 사실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 목판은 간행 당시의 경판 조성과 관련된 역사상은 물론 불교사적 사실 등 다양한 역사․문화적 실체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보물 제1910호  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 (誡初心學人文(諺解) 木板)  

분류 :  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 (誡初心學人文(諺解) 木板), 수량 :  457매, 지정일 :  2016. 9.  1.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안길 100 (송광면, 송광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송광사,  관리자 : 송광사


보물 제1910호 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


송광사에 소장된 ‘『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은 전체 47매 가운데 현재 45매가 전하고 있는데, 일부 마구리가 결손된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내용은 크게 「계초심학인문」, 「사법어」, 「몽산법어」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지눌의 「계초심학인문」에 이어 신라 원효(元曉)가 지었다는 「발심수행장」, 고려 말 야운 각우(野雲覺牛)가 저술한 「자경서(自警序)」를 하나로 묶어 맨 앞에 두었고, 그 뒤로 사법어(四法語)인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晥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시각오선인법어(示覺悟禪人法語)」를 차례로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몽산화상법어약록」을 합부하였다.


『계초심학인문』의 언해본으로 세조연간 간경도감에서 『蒙山和尙法語略錄』과 『(四)法語』를 언해하여 간행한 판본이 전하고 있으나, 송광사에 전하는 『계초심학인문(언해)』은 종합적인 구성에 한자음을 달고 언해까지 첨부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몽산법어(언해)」가 끝나는 56장에 남아있는 간행 기록을 통하여 선조 10년(1577) 6월에 송광사나 송광사 인근에서 판각된 목판이 송광사에 소장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목판은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언해본 목판임과 동시에 조선전기의 국어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서 보물로 지정하여 원천자료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