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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제 [1891호 ~1900호]

문수봉(李楨汕) 2018. 1. 30. 15:21

대한민국 보물 제 [1891호 ~1900호]

 

보물 제1891호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서울 興天寺 金銅千手觀音菩薩坐像)

분류 : 유물 불교조각/ 금속조/ 보살상,   수량 : 1 구,     지정(등록)일 :  2016.2.22,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29 ,  시대 :  기타,   소유자,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보물 제1891호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흥천사 금동천수관음상은 현재 국내에 현전하는 매우 희귀한 42수 천수관음상으로, 1894년에 작성된 「三角山興天寺四十二手觀世音菩薩佛糧施主」현판기록을 통해 적어도 19세기부터는 흥천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작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얼굴 모습이라든가 비례, 영락, 잘록한 허리 등의 형식 및 양식적인 특징에서 고려에서 조선 초에 걸쳐 제작된 작품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의 문헌기록에는 천수경이라든지 천수관음상 제작에 대한 기록이나 발원문이 전한다. 천수관음은 많은 손과 다양한 지물로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로 이끌어 주며 동시에 호국적 성격이 강한 원력을 가진 보살상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천수관음 신앙은 통일신라 초에 관련 경전이 수용된 이후 널리 유행하였고, 이에 따른 천수관음보살상의 조성도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전하는 작품은 고려 후기 제작으로 추정되는 국립중앙박물관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파리 국립기메동양미술관의 금동천수관음보살상, 그리고 그림으로 호암미술관 천수관음보살도 등 극히 드물게 전한다. 따라서 흥천사 천수관음상은 고려~조선 초에 제작된 천수관음보살상의 매우 드문 작례로서 천수관음 도상 및 관음신앙 연구에 조각사적 가치가 크다.

 

 

 

보물 제1892호  익재난고 권6~7 (益齋亂藁 卷六~七)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수량 :  2권 1책,     지정(등록)일 :  2016.2.22,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관리자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보물 제1892호 익재난고 권6~7

「익재난고」는 고려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문신이며 학자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1287~1367)의 시문집으로 전 10권이다. 이 문집은 저자의 77세 때인 1363년(공민왕 12)에 저자의 차자 이창로(李彰路)와 장손 이보림(李寶林)의 편집으로 경주에서 처음 간행하였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그 후 세종의 명에 따라 1432년에 강원감영(원주)에서 「역옹패설」 등과 함께 간행하였다. 지정 대상본은 그 중의 2권 1책(권6-7)이다. 이 중간본은 국내에는 이겸로(李謙魯)의 산기문고(山氣文庫)에 일부(권9∼10)가 남아있고, 국외에는 일본 호사분코[蓬左文庫]에 일부가 전한다.

이 판본의 특징은 조선이 개국한 지 40년이 지난 후임에도 고려의 국왕과 元의 천자를 높이기 위한 개행(改行)과 간자(間字)의 방식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본의 문집에서 자주 보이는 행초(行草)가 여전히 혼용되고 있고 같은 자가 반복될 때에 쓰이는 기호인 ‘ 〟’표도 자주 쓰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전기의 한문학 연구는 물론 당시의 출판문화와 서지학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

보물 제1893호 역옹패설 (櫟翁稗說)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수량 :  4권 1책,     지정(등록)일 :  2016.2.22,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관리자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

 


보물 제1893호 역옹패설

 

「역옹패설」은 고려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문신이며 학자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1287~1367)의 시문평론집으로 4권 1책본이다. 처음 간행된 것은 저자 생존시기인 1363년(공민왕 12)에, 그의 차자 이장로(李彰路)와 장손 이보림(李寶林)이 편집하여 경주에서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초간본은 전하지 않는다.

본 계명대 소장본은 조선시대에 처음 간행된 것으로, 세종의 명에 따라 1432년에 원주에서 판각한 목판에서 인출한 책이다. 이 판본의 특징은 판각 후 초기에 인출한 것인 듯 본문의 상태가 매우 선명한 선본(善本)이라는 점과 함께, 조선이 개국한 지 40년이 지난 후에 판각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국왕을 높이기 위한 간자(間字)의 방식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 고려본의 문집에서 자주 보이는 바와 같이 같은 자가 반복될 때에 쓰이는 기호인 ‘ 〟’표가 자주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전기의 시문의 비평에 대한 연구는 물론 당시의 출판문화와 서지학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보물 제1894호 퇴계선생문집 (退溪先生文集)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수량 : 46권 24책[本集45권 23책(卷1~31, 34~43, 46~49), 別集1권 1책(目錄·卷1)],     지정(등록)일 :  2016.2.22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관리자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


보물 제1894호 퇴계선생문집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은 조선시대가 배출한 탁월한 학자이며, 동시에 영남학파의 종장(宗匠)이다. 퇴계가 그러한 인물이기에 그의 학문적 성과를 집성한 문집인 「퇴계선생문집」의 가치 또한 높다.

 

「퇴계선생문집」은 그 내용의 풍부함이나 분량의 방대함은 물론, 이를 편집하고 간행하는 과정에서 구축한 문집편집의 방법과 성과가 조선후기 문집의 편집과 판각의 전범(典範)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정 대상본은 「퇴계선생문집」의 초판본으로, 「퇴계선생문집」이 판각되던 시기에 초래된 여러 곡절과, 오랜 진통 끝에 판각되면서 안게 된 제반 문제를 모두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문집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다양한 장서인과 장서 관련 묵기(墨記)는 장서의 변천에 관한 연구의 좋은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지정가치가 크다. ​

보물 제1895 퇴계선생문집목판 (退溪先生文集木板)   

분류 : 기록유산 / 목판,   수량 :  752매 (본집 709매, 외집 15매, 별집 28매), 

지정일 :  2016.2.22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1997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도산서원, 관리자 : 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

 

 

 

보물 제1895호 퇴계선생문집목판

지정 대상 <퇴계선생문집목판>은 「퇴계선생문집」 경자년(1600) 초간본을 인출해낸 목판이다. 「퇴계선생문집」은 원래 본집 목록 2권 2책, 본집 49권 25책, 별집 1권 1책, 외집 1권 1책, 연보 4권 2책 등 모두 57권 3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지정 대상 <퇴계선생문집 목판>의 본래 수량은 경자년 초간본 「퇴계선생문집」의 전질이 전래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경자년 초간본의 「퇴계선생문집」은 조선시대 중기에 성리학을 독자적인 학문체계로 수립하여 후일 영남학파의 종주가 된 퇴계의 전집으로 퇴계의 학문관과 문학관의 연구에는 물론 성리학 등의 사상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따라서 경자년 초각의 <퇴계선생문집목판>은 경자년 초간본 「퇴계선생문집」에 못지않게 판본학적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일 뿐 아니라, 서지학연구와 조선시대 중기의 목판인쇄문화연구 등에도 크게 활용될 수 있을 자료이다.

 

보물 제1896호  부산 운수사 대웅전 (釜山 雲水寺 大雄殿)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 :  1동 / 48.6㎡지정일 :  2016.2.22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1997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도산서원, 관리자 : 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

 

 

 


부산 운수사 대웅전 정면


부산 운수사 대웅전 측면


부산 운수사 대웅전 내부




부산 운수사 대웅전 내부


부산 운수사 대웅전 내부

부산 운수사 대웅전은 2013년 대웅전 전면 해체 수리 때 발견된 2개의 종도리 묵서명에 의해 1647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655년에 완공된 것으로 확인된다.



정면3칸, 측면3칸 규모의 단아한 주심포계 맞배집으로 자연석 초석 위의 기둥은 모두 민흘림한 원주로 외진에 평주 8개와 고주 4개, 내부 불단 좌우에 고주 2개 등 총 14개를 배치하였다. 우주의 하부에는 기둥 높이의 1/2정도까지 원형석주를 세워 목재기둥을 받고 있으며, 이는 범어사 대웅전, 범어사 일주문 등 부산 동래지역 건축물에서 다수 보여지고 있어 내륙지방에 비해 태풍이 잦고 비가 많은데 따른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구의 경우 내부는 1고주 5량가, 측면은 2고주 5량가 구조이며, 건물의 시대성을 볼 수 있는 공포는 배면이 정면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있다. 배면 공포의 소박한 살미와 결구방법은 조선 중기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양산 신흥사 대광전,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동일한 형식이다.

반면, 정면은 후대에 화려한 치장형 살미를 사용하여 장식적인 공포로 변화된 것으로, 동래향교 반화루, 범어사 종루와 유사한 모습으로 주심포계 익공식 건물이 다포계 건축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익공식 건물의 경우 주두 아래의 기둥머리에 초익공을 끼워 공포를 구성하는데 이와 달리 주두 위에서 구성한 것은 운수사 대웅전만의 큰 건축적 특징이다.



또한 종도리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은 많은 건축 정보를 담고 있는 소중한 연구자료일 뿐만아니라 그 자체로도 지역 불교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운수사 대웅전은 창호, 천장, 단청 등이 교체되고 변화되었으나 기본적 구조는 1655년 초창과 1771년 중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건물에 남아 있는 묵죽도 등 4점의 벽화는 창건 또는 18세기 중수시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운수사 대웅전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입증하고 있다.

묵서명에 의해 명확한 연혁이 확인되어 부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자리잡은 운수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 불전의 변화상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흔치않은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으로 건축사적 가치가 크므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보물 제1897  서경우 초상 및 함 (徐景雨 肖像 및 函)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 :  1건 2점(초상화 1폭, 함 1점), 

지정일 : 2016.5.3,  소재지 : 경기 포천시,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서동성, 관리: 서동성




보물 제1897호 서경우 초상 및 함

서경우(徐景雨, 1573∼1645)는 1603년(선조 36)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정주목사, 좌승지를 거쳐 대사간, 대사헌, 이조참판, 경기도관찰사, 도승지, 형조판서, 우의정 등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서경우 초상은 지금까지 큰 손상 없이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작품으로 17세기 초상화의 우수성과 수준 및 특징을 잘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서경우 초상 및 함>은 오사모에 흑색 단령을 입은 좌안 7분면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서 쌍학흉배를 하고 있다. 화면 속 인물의 안정적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 양 어깨의 형태나 경사 각도를 약간 과장하여 처리했다. 사모는 모정이 평평하고 양각은 넓고 짧으면서 둥근 17세기 초의 모제(帽制)를 반영하였다.

사모는 굵고 검은 선으로 윤곽을 규정하고, 그 안에 엷은 먹으로 운문(雲紋)을 그려 넣었다. 안색은 옅고 밝은 살빛을 띠고 이목구비는 약간 짙은 갈색 선으로 하였다. 선묘로 이목구비를 그렸고 눈썹과 수염의 검은 부분은 담묵처리를 한 후 털 올을 그렸는데, 전반적으로 세밀한 묘사와 표현이 돋보인다.

코는 옆에서 본 형이고 팔자주름 부위에도 약간의 선염(渲染)을 넣어 입체감을 주었다. 17세기 전기의 공신상에서 익히 보듯이 양 미간에 몇 개의 주름 선을 집어넣어 생각에 잠긴 듯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며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 얼굴모습을 통해 40대 장년이었던 광해군대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단령은 검은색 운문단 무늬로 채색을 두텁게 입혀 의습(衣褶)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주름들을 간략하게 나타내 몸체의 윤곽과 굴곡을 드러내지 않았다. 단령의 틈새로 녹색 내공(內工)과 청색 철릭(帖裏)이 보이는데, 내공과 철릭의 문양도 섬세하게 그려 넣었다. 한편 흉배의 묘사는 매우 화려하다.

 

수놓은 학의 깃털을 세밀하게 표현하였고 모란과 구름 묘사 역시 섬세하고 화려하여 전래작이 드문 동시대 궁중장식화나 채색 영모화에 대해 시사하는 바 크다. 바깥 양쪽으로 뻗치는 의자 손잡이의 모습은 17세기 초라는 시대성을 보여주는 특징이다.

회화사적 의의가 큰 초상이다. 함은 조선시대 후기의 것으로서 초상화와 함께 역사성을 일정 정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국가지정문화재로 가치가 크다.

 

 

보물 제1898호  서문중 초상 및 함 (徐文重 肖像 및 函)    

분류 : 유물/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 :  1건 2점(초상화 1폭, 함 1점),  지정일 :  2016.5.3,   

재지 : 경기 포천시,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서동성, 관리: 서동성





보물 제1898호 서문중 초상 및 함

서문중(1634∼170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80년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당상관에 올랐으며, 후 판서를 비롯한 여러 요직을 거쳤다. 1698년에는 우의정에, 1699년에는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소론(小論)에 속했으며, 군사제도와 기근구제 등에 많은 업적을 남기는 등 족적이 선명하다.

서문중 초상은 조선시대 시복본 전신좌상 가운데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사모에 담홍색 시복을 착용하고 삽은대를 두른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교의에는 표범가죽이 덮여 있고 족좌 대에는 민돗자리가 깔려 있다.

 

얼굴과 신체의 비례가 적절하고 인물의 개성과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좌안 7분면의 얼굴은 코와 눈두덩 주위의 움푹 들어간 부분, 입 주위 등의 주름을 뚜렷이 지시한 후 음영을 넣어 묘사하였다. 특히 풍성한 수염의 치밀하고도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오사모의 각(角)은 왼쪽을 조금 길게 하여 인물의 얼굴과 시선의 방향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단령은 깊게 파이지 않았고 옷 주름은 비수(肥瘦)의 변화가 거의 없는 분홍색의 가는 선으로 다소 경직됨을 감추기 힘들며 옷소매도 대칭적 느낌을 준다. 알맞은 신체 비례와 비교적 사실적인 옷 주름선, 상과 교의, 족좌대의 합리적 연관성 등은 18세기 초 이후의 양식이다.

족좌대의 모습은 정면의 모습과 측면의 모습이 혼재 되었으며, 돗자리 윗부분은 역원근법으로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이다. 전반적으로 표피(豹皮)를 제외하면 흑색, 담홍색, 하늘색, 흰색만을 사용하였고 옷 주름이나 기타 세부 표현을 제한하여 절제미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표피와 삽금대는 세밀하고 정교하게 표현하여 정조(精粗)를 함께 해 장식적인 효과에 성공적이다. 함은 조선시대 후기의 것으로서 초상화와 함께 역사성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기에 함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가치가 크다.   

 

 

보물 제1899호 은제도금화형탁잔 (銀製鍍金花形托盞)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금속공예,  수량 :  1조(잔과 잔 받침),  지정일 :  2016.5.3,   

소재지 : 국립중앙박물관,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899호 은제도금화형탁잔

이 은제도금화형탁잔은 잔과 함께 잔을 받치는 잔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 잔과 함께 한 벌을 이룰 때에 ‘탁잔(托盞)’이라고 명명한다. 이 탁잔은 표면에 도금이 고루 입혀져 금색이 완연하며, 잔과 잔 받침은 모두 육화형(六花形)을 띠며 잔 받침대에는 화문을 타출시켜 화려함과 정교한 세공기술을 더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은제도금 탁잔뿐만 아니라 은제 주전자, 은제 합, 팔찌 등에도 타출기법을 사용하여 화려한 장식문양을 시문하는 것이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시대 탁잔은 잔 받침대의 형태에 따라 일반적으로 2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연꽃이 폈을 때의 모습과 같은 앙련식(仰蓮式)과 연꽃을 엎어 놓은 모습과 같은 복련식(覆蓮式)으로 구분된다.

복련식 탁잔에는 탁과 잔의 형태가 원형으로 된 것과 화판형(花瓣形)으로 된 것이 있는데, 화판형은 잔은 물론 탁(托)의 받침대와 구연부까지 모두 꽃잎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정 대상 탁잔은 잔의 받침대가 복련식으로 되어 있고 잔과 잔탁이 공히 화판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형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탁잔이다.

잔 받침은 높은 굽이 달려있고 굽 위의 넓은 전에는 꽃송이 무늬가 선으로 새겨져있으며 가운데에는 괴임이 높게 솟아 있다. 이 괴임 부분에는 꽃송이 무늬를 도드라지게 압출(押出)시켜 다른 장식에 비해 단연 돋보이게 하였다. 괴임 위에 받쳐진 잔은 6잎의 꽃모양으로 면을 구획하여 선조로 모란절지문(牧丹折枝文)을 음각하였다.

안정된 비례와 단정한 형태를 지닌 은제 탁잔의 세부에는 압출, 음각 등의 다양한 세공 기술을 발휘하여 시문하였고 전면에 도금을 입혀 더욱 장식성이 돋보인다. 고려 은제탁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조형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시문된 문양이 세련되고 조화로우며 타출기법 또한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하여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중앙에서 활동했던 우수한 장인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되며, 시기적으로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고려 인종 1)『선화봉사고려도경』를 통해 언급한 고려시대 탁잔의 형태와 기법이 거의 일치하고 12세기에 제작된 청자 탁잔과도 유사성이 깊기 때문에, 이 탁잔 역시 문벌귀족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12세기 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1900호  주역참동계 (周易參同契)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활자본/ 금속활자본,  수량 :  2권2책,  지정일 :  2016.5.3,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시대 : 조선시대,

소유쟈 : 국유,    관리자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보물 제1900호 주역참동계

 

보물 제1900호 주역참동계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는 후한조(後漢朝) 위백양(魏伯陽, 100~170)의 저술로 도가(道家)의 심신수련(心身修練)의 방식과 장생불노(長生不老)를 위하여 복용하는 단약(丹藥)의 제조법에 관하여 4~5자의 운문(韻文)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정 대상 「주역참동계」는 명조(明朝)초기에 장본진(張本鎭, ?~?)이 송말원초(宋末元初)에 유염(兪琰, 1258~1327)이 저술한 「주역참동계발휘(周易參同契發揮)」(3편)와 「주역참동계석의(周易參同契釋疑)」(3편)를 합본(合本)하여 간행한 것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1441년(세종 23)년에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출(印出)된 것이다.

 

「주역참동계」가 초주갑인자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나 실물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진 바 없어 본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유일본이며, 조선시대 초기의 도가사상(道家思想) 및 장례풍속(葬禮風俗)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는 점에서 학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귀중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