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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제 [1881호 ~1890호]

문수봉(李楨汕) 2018. 1. 30. 15:23

대한민국 보물 제 [1881호 ~1890호]

 

보물  제1881호  서울 창의문 (서울 彰義門)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   수량 : 1 동,     지정(등록)일 :  2015.12.02,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서울특별시

 

 

창의문 정면


 

창의문 현판​


 

창의문 성문과 홍예​

 

 

창의문 홍예 그림


 

창의문 홍예 봉황 부조

 

창의문(彰義門)은 한양도성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때 건립되어 숙정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였으나 태종16년(1416) 풍수지리설에 의해 폐쇄하여 통행을 금지시키다가 중종 1년(1506)에 다시 문을 열어 통행이 가능해졌으며.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능양군을 비롯한 반정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하였던 무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문루가 불타 없어졌으나 영조 17년부터 영조 18년(1742)에 중건되었는데, 이때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문루에 걸어놓았다.

육축은 숭례문이나 흥인지문과 같은 장대석으로 축조하고 내부의 등성시설을 설치하였는데, 북쪽의 등성시설은 ‘ㄷ'자형의 일반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남쪽은 낮아지는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이고, 여장은 총안이 없는 전돌로 축조되어 있다. 가구 방식은 평주의 주두 위에 바로 대들보를 얹고 이 위에 다시 화반형 부재를 놓아 마룻보와 중도리의 짜임을 받쳤다. 마룻보 위에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파련대공을 놓아 뜬창방·장여·도리로 짜여 진 마룻도리를 받고 있다. 천장은 서까래를 모두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 물매는 가파르지 않다. 지붕마루는 양성마루로 하고, 그 위에 취두·용두·잡상을 배열하고 추녀 끝의 사래에는 토수를 끼웠다.

현재 한양도성의 문루는 숭례문, 흥인지문, 창의문 만이 남아있고, 각각 조선시대 문루 목조건축의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규범적 사례이며, 한양도성의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문루가 임란이후 18세기에 중건되어 큰 변형 없이 남아 있다.

위 내용으로 살펴 볼 때 창의문은 한양도성의 문루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건축 양식적 진정성과 조선후기 도성 문루의 형식을 보여주는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육축과 등성시설 또한 잘 보존되고 있어 그 가치와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겠다.

 

 

 

 

 

보물  제1882-1호  고려 십육나한도(제7 가리가존자)

(高麗 十六羅漢圖(第七 迦理迦尊者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탱화/ 나한조사도 ,   수량 : 1 쪽,     지정(등록)일 :  2016.1.07,  

소재지 :  부산 수영구 ,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현승훈,  관리자 :  현승훈

 

 

보물 제1882-1호

 

이 나한도는 16나한도 중 제7 존자인 가리가존자를 표현한 것으로,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사색하는 이국적인 모습의 수행자를 수묵담채로 담담하게 담아내었는데, 바위와 수목을 배경으로 하는 고려 오백나한도와 확연히 구분되는 도상적 특징이다.

이 작품은 국토의 태평, 국왕의 장수 등을 발원하며 병신년에 그려진 것인데, 필선과 색채, 표현방식 등에서 1235년에서 1236년 사이에 제작된 고려 나한도와 거의 같은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제작시기인 丙申年은 1236년으로, 다른 나한도와 마찬가지로 동량(棟梁) 김의인(金義仁) 등 무인들의 주도 하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불화가 제작될 당시는 몽고의 병란이 있었던 국가적 위기의 상황으로, 국난 시 크게 베풀어졌던 나한신앙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제작된 사례로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 불화는 고려시대 제작된 나한도와 16나한도 중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며, 16나한도로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제15 아벌다존자와 이 작품이 유일하다.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13세기에 제작된 불화는 매우 드물고 특히 16나한도는 그 예가 거의 없어, 이 작품은 고려시대 16나한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보물  제1882-2호  고려 십육나한도(제15 아벌다존자)

 (高麗 十六羅漢圖(第十五 阿伐多尊者))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탱화/ 나한조사도 ,   수량 : 1 쪽,     지정(등록)일 :  2016.1.07,  

소재지 :  서울 용산구 ,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882-2호 고려십육나한도(제15아벌다존자)

 

고려시대 나한신앙은 특정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전 시기에 걸쳐 유행하였으나, 현재 불화로 남아 있는 16나한도를 비롯하여 제7 가리가존자도와 이 작품이 유일할 정도로 그 유례가 드물다. 화제란에는 묵서로 “第十五 阿代多尊者”라고 적어 놓았으나, 무학대사의 의례집을 토대로 1809년에 영파성규(影波聖奎)가 다시 지은『五百聖衆請文』에는 “第15 阿伐多尊者”라고 등장한다.

 

아마 원래의 화제를 후대에 옮겨 쓰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아대존자와 그를 시봉하는 시자 2인을 그렸는데, 老尊者는 죽절형 주장자에 몸을 의지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노비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얼굴 표정에는 기백이 살아 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화면의 여백을 존중한 안정된 구도 속에 농묵의 변화를 통한 깊은 공간감과 입체감을 표현하였으며, 안정된 구도와 세밀하고 유려한 필선, 그리고 사실적인 인물 묘사와 백색과 붉은색, 짙은 농묵 등의 묘한 색채대비를 통하여 격조 높은 그림을 완성하였다.

특히 존자의 의자 밑에 자그맣게 묵서로 “惠間(또는 惠閒)라고 작자명을 적어 놓았는데, 고려 16나한도와 오백나한도를 통틀어 작자명이 기록된 유일한 예로서도 주목된다. 제작 이후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화면의 꺾임과 박락, 그리고 후대의 수리 등 아픈 상흔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으나 현재 고려시대 13세기에 조성된 불화는 세계적으로 그 수가 많지 않고, 더구나 국내에 잔존하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도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보물  제1883호  고려 오백나한도 (高麗 五百羅漢圖)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탱화/ 나한조사도 ,   수량 : 6 쪽,     지정(등록)일 :  2016.1.07,  

소재지 :  서울 용산구 ,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883호 고려 오백나한도



보물 제1883호 고려 오백나한도



보물 제1883호 고려 오백나한도



보물 제1883호 고려 오백나한도



보물 제1883호 고려 오백나한도


 

보물 제1883호 고려 오백나한도

 

고려시대 나한신앙은 특정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전 시기에 걸쳐 유행하였으나, 그 신앙의 내용을 불교회화라는 조형언어로 시각화한 것은 몇 폭밖에 남아 전하지 않는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려 오백나한도 중 제92 守大藏尊者, 제125 辰寶藏尊者, 제145 喜見尊者, 제170 慧軍高尊者, 제357 義通尊者, 제427 願圓滿尊者 등 6폭을 소장하고 있다.

 

제92 수대장존자는 두손으로 방광하는 사리병을 받쳐 들고 있으며, 제125 진보장존자는 신통력을 부리는 모습이며, 제145 희견존자는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사유에 잠긴 모습이며, 제170 혜군고존자는 향완에 향을 피우고 선정에 잠긴 모습이며, 제357 의통존자는 여의를 들고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며, 제427 원원만존자는 병향로를 들고 공양하는 모습 등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이와같이 오백나한도는 대체로 야외의 암산으로 배경으로 하여 깊은 산중에서 수행하거나 신통력을 부리는 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들 오백나한도는 남아 있는 화기분석을 통해 乙未年과 그 다음해인 丙申年에 걸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화풍과 도상 등으로 미루어 1235년~1236년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며, 제작의 주관자는 隊正 金義仁으로 확인된다.

크기는 대체로 세로 55~60cm 내외, 가로 35-40cm 내외의 絹本 위에 그려졌으며 입술이나 머리, 의자의 장식 직물, 가사, 지물 등 극히 일부에 제한적으로 채색을 사용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수묵을 기본으로 하여 담백한 맛을 준다. 특히 가사의 조와 원형의 두광 등에는 발묵법으로 무한 공간감과 입체감을 표현하였으며, 목깃이나 소매 등 가사장삼 사이로 새하얀 속옷을 드러냄으로서 맵시 있고 세련된 옷차림을 연출하였다. 붓놀림은 활달하고 번잡하지 않은 담백하고 세련된 선묘를 보여준다.

광배와 기물, 가사의 條와 문양 등에는 화려한 금니를 적극 사용한 점은 고려불화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암석의 표현에서 중앙부를 비워 照光효과를 주는 등 이른바 李郭派 화풍이 가미되어 있어 고려시대 산수화의 경향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모든 작품에서 존자의 차례와 尊名을 명시하여 도상의 이해를 돕고 있고, 화기를 통해 제작시기, 발원자, 그리고 발원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 고려시대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보물  제1884호 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 (辛卯三月 文武科殿試榜目)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활자본/ 금속활자본 ,   수량 : 1冊(6張),     지정(등록)일 :  2016.1.07 

소재지 :  서울 서초구 ,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홍명순,  관리자 :  홍명순, 

 



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 (辛卯三月 文武科殿試榜目)



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 (辛卯三月 文武科殿試榜目)


조사본 「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은 성화 7년(1471, 성종 2) 3월에 치러진 별시(別試)의 문무과(文武科) 합격자를 수록한 명단으로 현재 공개된 자료 가운데 가장 앞서는 유물이다.


또한 과시(科試)에 합격한 조빈(趙鑌)이 발문(跋文)을 직접 지어 수록하였다는 특별한 점도 보여주고 있다. 더욱 현재 전하는 인본이 적은 乙酉字 中間字만으로 印出되었다는 점에서 書誌学的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1885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   수량 :  10권 2책,     지정(등록)일 :  2016.1.07 

소재지 :  서울 서초구 ,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남풍현,  관리자 :  남풍현, 





보물 제 1885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조사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고려 충선왕 1년(1309)에 간행된 판본으로 자획(字劃)이 분명하고 묵색(墨色)도 선명하고 좋은 점으로 미루어 판각된 직후에 인출된 초인본(初印本)으로 추정된다.

특히 조사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독구결(順讀口訣)의 토가 기입되어 있어서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구결이 적어도 3종이 전하는데 이 책에 있는 구결이 가장 이른 시기의 구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훈민정음 이전의 국어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라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조사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비록 훼손상태는 심하나 고려 판본으로 초인본(初印本)이며, 훈민정음 이전의 국어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1886호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20 (再雕本 瑜伽師地論 巻二十)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   수량 :  1권 1축,     지정(등록)일 :  2016.1.07 

소재지 :  서울 용산구 ,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국립한글박물관, 



보물 제 1896호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20 (再雕本 瑜伽師地論 巻二十)


조사본 「유가사지론」은 唐의 玄奘이 한역한 100권 중의 제20권이다. 권말의 “丙午歳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라는 간기(刊記)로 볼 때 고려 고종 33년(1246, 丙午)에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판각한 재조대장경의 판본으로, 13~14세기경에 인출하여 권자본(巻子本)으로 장정한 후인본(後印本)으로 추정된다.

조사본은 비록 권수(巻首)의 제1장이 결락되고 제2~3장이 훼손되어 있으나 13~14세기경에 인출해낸 고려 재조대장경의 판본으로서 중요하며, 특히 각장 각행의 좌우에 석독구결(釋讀口訣)이 필사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따라서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여 연구하고 보존·관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보물  제1887호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魯英 筆 阿彌陀如來九尊圖 및 高麗 太祖 曇無竭菩薩 禮拜圖)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수량 :  1점,     지정(등록)일 :  2016. 2. 22 

소재지 :  국립중앙박물관 ,   시대 :  고려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887호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이 작품은 1307년 작가 노영(魯英)이 흑칠한 나무바탕 위에 금니로 그린 금선묘(金線描) 불화이다. 노영은 1327년에 강화도 선원사 비로전 벽화와 단청을 그릴 때 반두(班頭, 그 항렬의 우두머리)로 활약했던 화가로도 유명하다.

정면에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팔대보살을 표현하였고, 뒷면에는 고려 태조가 금강산 배재(拜岾, 절고개)에서 담무갈보살에게 예경하였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특히 고려 태조의 배재 이야기는 금강산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어, 당시 크게 유행했던 금강산 신앙의 일단면을 엿볼 수 있다.

바닥면에는 두 개의 촉을 달아 받침대에 꽂아 앞뒤의 불화를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면에 표현된 아미타여래팔대보살도는 엄격한 상하 2단 구도, 섬세하고 우아한 귀족적인 인물표현과 유려한 선묘, 단아한 형태미를 기반으로 하는 고려불화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

후면의 고려 태조의 금강산 배재 장면에서는 뚜렷한 윤곽선, 치형돌기(齒形突起), 침형세수(針形細樹) 등의 세부표현 기법에서 북송대 이곽파(李郭派) 화풍을 반영하고 있어 일반회화 작품이 거의 없는 고려시대 산수화풍을 읽을 수 있어 중요하다.

더욱이 수직준으로 표현된 금강산의 웅장하고 신비로운 모습은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보물  제1888호  구례 천은사 삼장보살도 (求禮 泉隱寺 三藏菩薩圖) 

분류 : 유물 / 불교회화 / 탱화/ 보살도 ,   수량 :  1쪽,     지정(등록)일 :  2016. 2. 22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노고단로 209 ,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관리자:  천은사,  



보물 제1888호 구례 천은사 삼장보살도


천은사 삼장보살도는 1776년에 천은사 대법당(극락전)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삼장보살도이다. 불화의 제작에는 수화승 신암화련(信庵華連)을 비롯하여 내숙(來淑), 덕잠(德箴), 민휘(敏徽), 태윤(泰閠), 육원(六圓), 환종(幻綜), 태화(泰華), 유운(有云), 성잠(性岑), 성활(性闊), 보잠(普岑), 행정(幸正), 성감(性鑑) 등 모두 14명의 화승이 참여하였다.


신암화련은 국보 제314호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를 그린 18세기 중후반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크게 활약한 화승이다. 이 불화는 수륙재의 중단의례용 불화로 제작된 것인데, 세로폭에 비해 가로 폭이 매우 넓은 중대형 불화이다.


화면의 중앙에는 천장보살과 협시 진주·대진주보살을 비롯한 권속을, 왼쪽에는 지지보살과 협시 용수·다라니보살을 비롯한 권속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지장보살과 협시 도명존자·무독귀왕을 비롯한 권속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각 주존 보살은 높은 수미단 위에 결가부좌하고 그 주위에 각각의 권속들이 주존을 둘러싸고 시립한 모습인데, 화면에 비하여 많은 권속들을 표현하였지만 비교적 여유 있는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삼장보살도는 16세기 이후 많은 수의 작품들이 남아 있는데, 천은사 삼장보살도는 각 보살의 아래 화기란에 화면에 도설된 권속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록해 놓은 유일한 자료로서 삼장보살도의 도상 연구에 기준이 되고 있다.


화기의 명칭에 의해볼 때 권속들의 명칭은 수륙재 의궤집인 『천지명왕수륙재의범음산보집』(1739년) 등에 근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장보살도 도상연구에 기준이 되고 삼장보살도와 수륙재 의궤와의 관련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 보호할 가치가 있다.     



보물  제1889호  구례 천은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

(求禮 泉隱寺 木造觀世音菩薩坐像 및 大勢至菩薩坐像)  

분류 : 유물 /불교조각/ 목조/ 보살상,   수량 : 보살상 2구, 발원문 1점,    지정일 :  2016. 2. 22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노고단로 209 ,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관리자:  천은사,  


 


보물 제1889호 구례 천은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대세지보살좌상 


구례 천은사에 소장되어 있는 2구의 목조보살좌상은 천은사 극락전 주불의 협시불로 조성되어 최근까지 예배되어온 보살상이다. 관음보살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여 조각승 현진(玄眞)을 비롯한 5명의 조각승들이 1614년 6월에 조성한 불상들임이 밝혀졌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17세기 전반까지 활동한 조각승 현진은 조선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던 조각승 중 한 명으로, 현재 그의 작품 중 7건 17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작품성과 학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두 보살상은 꽃잎 모양의 판을 겹쳐 만든 보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갸름한 얼굴형에 부푼 눈두덩과 넓은 콧망울, 상큼한 미소를 가진 순박한 청년의 모습을 담아 실재감이 있다. 무릎은 낮고 넓으며, 허리는 길어 장대한 형태미를 보여주며, 주름은 긴장감이 있는 탄력적인 주름을 사용하였다.

이 두 보살상은 현진의 초기 경향을 볼 수 있는 수작에 속하며, 조선 후기 불교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하므로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제1890호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益山 深谷寺 七層石塔 出土 金銅佛龕 및 金銅阿彌陀如來七尊坐像)   

분류 : 유물 /불교조각/ 금속조/ 보살상,   수량 : 불감 1점, 불상 7구,     지정일 :  2016. 2. 22 

​​소재지 : 전라북도 익산시 궁성로 666 (왕궁면, 왕궁리유적전시관), 시대 : 기타, 소유자 : 심곡사,관리자:  왕궁리유적전시관,  




보물 제1890호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보물 제1890호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은 2012년 6월 석탑의 해체 수리시, 지대석 윗면에 마련된 사각형의 홈(25.0×24.0cm, 깊이 18.0cm)에서 발견되었다. 불감은 밑판, 좌우측면판, 뒤판, 뚜껑 등이 각각 1판으로 제작되었고 문비만 2판으로 제작되었다.

뚜껑은 지붕의 네 면의 모를 죽인 녹정형(盝頂形)으로 정상에는 2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감실의 내면 중앙벽면에는 타출기법으로 아미타여래설법도를 나타내었고, 문비에는 역동적인 금강역사를 배치하였다. 7구의 불상은 불감의 앞쪽에서 아미타여래와 관음·대세지보살상이 발견되었고, 뒤쪽에서 2구의 여래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발견되었다.

이들 불상은 대체로 높은 육계、큼직한 연봉모양의 정상계주, 잘록한 허리와 육감적인 신체표현과 감각적인 세부 표현, 삼각형 모양으로 仰․覆蓮이 맞닿은 연화좌, 원반모양의 귀고리, U자형으로 두껍게 늘어진 목걸이 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 시기에 크게 유행했던 元․明代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여말선초기 소형 금동불상들과 양식적으로 상통하는 요소이다.

 7구의 불상은 2개의 양식군으로 분류되는데, 라마불상양식을 강하게 반영한 아미타여래삼존상과 이들 양식을 수용하여 어느 정도 우리식으로 변모시킨 4구의 불·보살상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이들 불상을 통해 여말선초기 원․명대 외래 양식의 전래와 수용 과정을 살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며, 또한 분명한 출토지에 7구의 불상이 모두 한 불감 내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지정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