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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예수님]

문수봉(李楨汕) 2008. 6. 13. 14:19



달라이 라마의 잔잔한 미소,
자비스러움과는 달리 명쾌하고 정곡을 관통하는 혜안의 사자후.

 
* 출처 : 펌글
[부처님과 예수님]
우보(宇寶) 황전(黃田)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어서 모처럼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었는데, 스승님을 잘 아는
거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 중에 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함께
가도 되는지 물어왔습니다.

잠시 후에 중년 남자 셋이서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스승님께 삼배를 하고, 한 사람은 두 사람이 스승님께 절을 하는 것이
이상했는지 멍하니 서서 기분 나쁘다는 듯이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스님, 이 친구는 20년째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우리를 만나기만
하면, 불교는 우상숭배를 한다면서 교회를 다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스님께
이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그래, 거사님은 불교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우상숭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길을 가다 보면 허름한 집에, 불교에서 쓰는 卍자의 깃발을 꽂아 놓고 점을 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작은 암자나, 절 같은 곳에서도 부처를 모셔 놓고 푸닥거리를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미신이며 우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하하…… 잘도 보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미신이며,
우상을 섬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아무리 미신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위대한 종교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 미신만도 못한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신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미신이나 우상숭배를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자, 거사님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좀 특별한 분입니다. 다른 스님들은 미신이나 우상숭배를 나쁘다고만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절대로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곤
했습니다. 스님도 불교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불교가 '미신이다, 우상숭배다' 하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등불 삼아 나를 찾아가는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 우화에 보면,
무학 대사님과 태조 이성계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성계 : '내가 스님을 보니 돼지로 보입니다.'
무학 대사 : '저는 태조께서 부처로 보이십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호탕하게 껄껄 웃으셨습니다. 그러자 무학 대사님께서
무어라고 하신 줄 압니까?"

"압니다. 연속극에서 보았습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일
뿐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하하…… 맞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믿든, 수행을 열심히 해서
자신의 안목이 밝아지면, 그 어떤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다 감싸 안아야 합니다.
무엇 눈에는 무엇만 보인다는 무학 대사님의 가르침이 맞습니다. 거사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좀 되십니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님, 예수님과 부처님 중에 누가 더 능력이 대단합니까?"

"거사님은 종교를 믿는데 절대자의 능력을 보고 믿습니까?"

"어차피 종교를 믿을 바에는 능력이 대단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어야지요."

"그럼, 친구 분께서는 '부처님보다 예수님이 더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어떤 능력이 더 대단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 하고 외치셨습니다. 얼마나 능력이 대단하셨으면 나를
따르라고 하셨겠습니까? 역사상 나를 따르라고 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스님, 예수님께서는 능력이 대단하셔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셨는데, 부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부처님 말씀을 하기 이전에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거사님은 예수님을 20여 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스님, 저는 오직 '주님의 종'일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오직 '주님의 종'이라……? 거사님, 부처님께서는 나를 따르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부처님을 만나 뵙고 법에 대해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질문에 답을
해주시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 부처의 말이라 해도 완전히 믿지 마라.'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여서 뜨거운 눈물로 온몸을 녹였습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분이십니다. 부처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아니, 스님! 부처님을 만나 뵐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본인이 수행을 열심히 해서 부처님을 만날 만한 자격을 갖추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 분은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 본 일이 없습니까?"

"꿈속에서는 어렴풋이 한 번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 부처님께서 '나를 완전히
믿지를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불교 공부가 재미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의 말을 들었는데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을 깊이 참구를 하다가, 언젠가는 스스로 체험을 해서 알게 되면서 자신의 안목이
조금씩 밝아집니다. 수행자는 그 밝아짐을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올바른
수행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나를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조사님들께서는 '부처와
조사님을 의지할 단계에 이르면 부처와 조사님의 목까지 치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입니다. 이런 도리를 제대로 알아야, 불교에 대하여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님 말씀을 듣다 보니 제 머리가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친구를 따라올 때에는 스님을
꼼짝 못하게 할 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왔는데, 오히려 지금 제가 꼼짝을 못하겠습니다.
스님, 무엇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까?"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오직 '나는 주님의 종이로소이다' 하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스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주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이며,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거사님은 지금 순종하는 것이 진리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오래 전에 서울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할머니 두 분이 나에게 와서 하는 말이,
'스님은 어째서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찾지 않고 삿된 종교를 믿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저에게 단 한 마디만 일러주신다면,
제가 주님이 아니라 할머니를 따르겠습니다.' 그랬더니 두말도 않고 도망치듯이
가 버렸습니다.

거사님께서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리'라고 하셨는데, 만약에 주님의 진리를 저에게
단 한 마디만 일러주신다면 저 또한 거사님을 따르겠습니다."

"스님, 방금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오직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진리라고요. 그리고
주님의 말씀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말씀 그 자체가 진리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그 진리를 단 한 마디만
일러 보십시오."

"알았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의 것이요.'"

"거사님, 그 말이 진리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말씀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거사님, 잘 들으십시오. 그래도 오늘 저하고 이렇게 만난 것은 전생에 많은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인이십니다. 성인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성인의
말씀을 흉내내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진리라는 것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님,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셨는데, 어째서 진리는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성인들께서는 진리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아시기에, 방편으로 언어를 빌려 쓰는
것입니다. 그 빌린 언어를 통해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켜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오직 진리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리만이
당신을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스님, 저는 그런 말을 처음 듣습니다. 스님, 스님 말대로 그 미묘한 파장이 진리라면,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지금은 진리를 알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인 성경이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방편의 언어를 다 외운다고 해도, 진리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언어는 진리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앵무새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한다고 해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님, 스님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라면, 그 방편
속에서 진리를 어떻게 찾습니까?"

"거사님, 바로 그것이 수행입니다. 성경이나 경전의 방편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수행인 것입니다. 이 방편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참으로
알게 되면, '나는 오직 주님의 종'이라는 말이나, '주님께 순종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을 하셨다면서, 자신들도 예수님께
순종한다는 말을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예수님께서 아버지인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으면 무엇을 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순종' 하는 것이 아니라 '순응'을 했던 것입니다. '순종'은 남에게
의지해서 행복을 구하려는 수단입니다. 반면 '순응'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참으로 알게
되면 '순응'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까지만 해도,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왔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음에 이르러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그 동안 순종했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신심이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응'은 오직 성인의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주여,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 말씀이 바로
'순응'입니다.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사랑하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밖에 없는, 그 근본 도리를 그 순간에 알아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순종'에서
'순응'으로 바뀐 것입니다. '수행자'에서 '성인'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깨달음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처럼 쉽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순간에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상황의 근본 도리를 알아버리면, 자신의 근기에 맞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그 도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들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셨다'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가셨다는데, 세상이 왜 이 모양입니까? 거사님, 이러한 도리를 깊이 참구하고 또 참구해서
스스로 증득을 해야 합니다. 절대로 진리는 군중 속에 있지 않습니다. 거사님의 안목 속에
있습니다. 무슨 말인 줄 알겠습니까?

거사님, 불교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대사님에게 전해 내려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정법안장'(正法眼藏)입니다. 정법을 바로 보는 안목을 말하는 것입니다.
좀더 쉬운 말로 하자면, '진리는 당신의 안목 속에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거사님, 모든 종교가 언어가 달라서 그렇지, 진리는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그 나라 기질과 풍습, 그리고 그 나라 언어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야만이
사람들이 따라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하나인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교회에서 말하는 '원죄'가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종교가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원죄를 보지 못한 채, '종교가 다르다'고 말들을
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할말을 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한마디만 더
해주신다면, 무슨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 '순종'에서 '순응'으로 바꿔 가는 성경공부를 하십시오. 그리고 '순종'의 삶에서
'순응'의 삶을 살아간다면 거사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미소가 온몸으로 드러나서,
거사님을 보는 사람마다 조금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진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이라도 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참된 '전도'이며, 참된 '포교'입니다."

"스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거사님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삼배를 올렸다.

[추신] 어제 "불교인이 본 기독교"란 제목으로 이 글이 올라왔었는데요. 그 원본을
찾아 교정을 봤고, 제목과 지은이, 출처를 정확히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