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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생애(사라쌍수사이에서 북쪽으로 머리를 두시다)]

문수봉(李楨汕) 2008. 10. 10. 20:51

[석가모니의 생애] 사라쌍수사이에서 북쪽으로 머리를 두시다

 

춘다에게 마지막 공양을 받으시고 부처님께서는 병이 더 위독해졌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아난, 춘다등의 제자들과 함께 쿠시나가라를 향하여 걸음을 옮기셨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고 도중에 부처님은 어느 나무 밑에 쉬시고는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셨다. 곧 아난을 데리고 그 나무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가셔서 하혈을 하시고는 나무 밑으로 되돌아 오셨다. 그리고는  승가리를 네번 접은채로 땅에 깔라고 지시하시고는 더 이상 몸이 아파 나아갈 수 없다 하시며, 목이 마르니 가쿳타강에 가서 물을 떠오라고 말씀하셨다.


아난은 부처님께 방금 장수 오백명이 그 강을 건너감으로 해서 혼탁하여 발은 씻을 수 있을지언정 마실 수는 없다 아뢰니, 부처님은 세번이나 반복해서 갈증을 호소하셨다.

시자 아난은 그제야 바루를 들고 그 강가로 가니 물이 맑은 것을 보고 마음이 크게 송구하여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열흘이나 걸려야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은 물이 될 것이라고 파악했는데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잠깐동안에 물이 맑아진 것이었다. 아난은 곧 그 물을 받아다가 부처님께 드리니 곧 그 물을 받아 드시고는 조금 기운을 차리신 듯 하였다. 부처님은 다시 제자들과 함께 가쿳타강에 이르시어 곧 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시고는 강가에 앉으시었다.


그 때에 춘다는 마음속으로 <내가 올린 공양으로 부처님께서 몸이 아프시어 열반하시겠다고 하시는구나> 하고 괴로워하였다. 춘다의 마음을 읽으신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려고 할 때에 받들어 보시하는 자와 여래가 열반에 드시려고 할 때를 당하여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린 자의 공덕은 무량하여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은 보시는 우담바라꽃과 같이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니 응당 어려운 보배를 얻었으니 행복하고 경사스럽게 여기라 이르셨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쿠시나가라 역사가 태어난 곳인 사라쌍수로 가자고 하셨다. 부처님은 힘겹게 천천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아난에게 <아난아, 사라 숲속에 가서 두 나무가 외롭게 한 곳에 있는 것을 보아 그 밑을 청소하여 깨끗하게 하고 평상을 잘 놓되 머리를 북쪽으로 하라. 내 지금 몸이 몹시 피곤하다>하셨다.
아난이 곧 자리를 마련하자, 오른 옆구리를 평상에 부치어 발을 포개고 누은 것이 마치 잠자는 사자와 같았다.

그 때에 두 나무에서 갑자기 때아닌 꽃이 생기어 부처님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팔부대중들이 갖가지 꽃가루를 뿌리며 전단향을 피우고 풍악을 연주하고 찬탄하였다. 이러한 광경을 보신 부처님은 아난에게 <나에게 공양하여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이 향과 꽃과 풍악등으로 할 필요가 없다.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고 경전을 읽고 외우며 모든 멉의 깊고 미묘한 이치를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참다운 공양이다>고 하셨다.


한편, 아난은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를 입멸장소로서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였었다. 결국 부처님께 건의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이 쿠시나가라성은 근처 왕사성, 비사리성, 사위성, 첨파성등의 성등은 중앙지대에 위치하고, 백성들도 많으며, 국토도 풍성하고 안락하오며 모두들 믿는 마음이 많고 슬기롭고 총명한데 비하여 이 성은 아주 변두리이고 협소하오며, 백성들도 또한 많지 않으니 그런 큰 나라에 가셔서 열반하십시요.”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아난아, 그런말 하지 말라 과거 이 곳은 대선견이라는 전륜성왕이 통치하였던 나라였다”고 하시며 옛날을 회상하시면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쿠시나가라성의 왕에게는 천명의 아들이 있었고, 원수와 적국을 능히 굴복시키고 모두 바른 법으로 모든 백성들을 다스렸다. 그 때의 성이름은 쿠시성이었는데, 동쪽과 서쪽의 두문 사이의 거리가 12유순이요, 남쪽과 북쪽의 문사이의 거리가 8유순이나 되었다. 그 성의 사면은 두루 일곱 겹으로 겹겹히 쌓였는데 처음은 순수한 황금으로,

그리고 둘째 겹은 백은, 그 다음은 유리, 자거, 마노 온갖 보배로 차례로 성을 두루고 있었다. 그 성의 누대와 망루는 모두 7층인데, 창과 바라지의 난간은 7보로 아로새기고 꾸미었으며, 뭇 보배 방울과 그물을 그 뒤에 달아서 그 사이의 거리가 한 화산 길의 정도였다. 그 성의 네문에는 문마다 9겹으로써 장엄되고 꾸며져서 광채가 화려하여 매우 보기 좋았다. 일곱겹의 성 밖에는 각각 연못의 물이 있는데 그 물은 맑고 깨끗하여 여덟 공덕을 갖추었으며, 모두 7보로 된 계단과 섬돌이었다. 모든 온갖 새들과 난조, 봉황, 공작, 오리, 기러기, 원앙새들이 놀고 날으며 춤추고 그 안에서 울며 모인다.

그 연못에는 신기한 꽃들이 다채롭게 피어 있었다. 언덕 위에는 일곱줄의 보배나무가 있는데, 줄마다 각기 다른 보배이고 산들바람이 천천히 일어나서 그 나무 가지에 불면 가지와 잎이 서로 닿아 그 소리가 하늘 음악과 같았다. 성 안에는 백성들이 가득 차있었으며 그들은 모두 안락하고 풍요롭고 즐겁게 지내고 있었는데 오욕락을 누리는 것이 도리천과 같았다. 또한 이 성안에서는 항상 10가지의 미묘한 음성이 나는데, 그것은 코끼리, 말, 수레, 북, 소라, 거문고 비파, 노래소리이고, 그리고 종치고 경쇠를 쳐서 큰 모임을 베푸는 소리, 계행지키는 사람을 찬탄하는 소리, 함께 설법하며 말하고 의논하는 소리가 언제나 들렸다.”


“아난아, 그리고 대선견왕의 위덕은 단정하기가 제일이어서 그를 본 여러 사람들은 바로 공경심을 내게 되고 장수하고 늘 즐거우며 몸에는 적은 병도 없었다. 그리고 왕의 성격은 인자하여 일체를 모두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치 사랑하는 아버지가 그 아들을 사랑하는 것 같으며 일체 백성들도 또한 왕을 아버지와 같이 친하고 공경하였다. 왕이 동산숲에 나가 노닐려고 하면 네 종류의 군대와 후궁에 있는 부인과 채녀들이 각기 팔만사천의 수레를 장엄하여 앞 뒤로 호위하는데 모든 백성들이 그를 우러러 친견하기 위해 길가가 가득 찼다.

그리고 왕이 다니던 길은 모두가 평탄하며, 또 칠보의 나무가 나열하여 그늘을 이루었으나 연못물이 없는 것을 보고 곧 한 신하에게 명령하여 길 가에 칠보의 연못을 만들게 하되 그 사이의 거리는 오척이 되게 하였다. 또 여러종류의 꽃을 심게 하며, 연못들 사이에는 모든 시중하는 사람을 두게 하여 목욕하러 오는 이가 있으면 향과 꽃으로 공급하고 또 음식을 주어 마음껏 만족하게 먹도록하여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공급하도록 하였다.”

“또 사방의 먼곳에 있는 백성들이 와서 구걸하면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공급하여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어느 대신이 건의하기를 대왕께 문안드리려 할 때 궁전이 너무 좁아서 사람들과 서로 부딪치니 머무시는 곳을 더 넓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잠자코 허락하셨다. 그 때 제석천은 대선견왕의 뜻을 알고 매우 공교로운 솜씨를 가진 천자 <비수갈마>를 불러 염부제의 전륜성왕의 거처를 넓힐 것을 분부하였다. 천자는 즉시 공사를 시작하여 궁성을 확장하되 성의 네 문에 그 사이 거리가 24유순이 되게 하고 왕을 위하여 궁전을 세우되 높고 낮은 길이와 넓니는 각각 8유순이 되게 하고 칠보로 화려하게 장엄하여 제석의 궁과 다름없이 하였다.

그 궁전은 무릇 팔만사천의 칸칸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모두 칠보의 평상과 장막과 침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왕을 위하여 설법전을 세우되 높고 낮음의 길이와 넒이를 또한 8유순이 되게 하고 칠보로 장엄한 것이 앞의 궁궐과 다름없이 하였다.

그 궁전의 사면에는 칠보 나무가 있는데 또 유명한 꽃을 열을 지어 심어서 그늘지고 비치게 하였으며, 또 보배 못을 만들었나니 그 물을 맑고 깨끗하여 여덟공덕이 구족하였다. 그 궁전의 중앙에는 사자자리를 설치하되 칠보로 장엄하여 아주 높고 넓게 하고서 보배 휘장으로 덮고 칠보의 깃발을 드리웠으며, 또 사방 먼곳에서 와서 법을 듣는이를 위하여 네가지 보배인 황금, 백은, 유리, 파리의 자리를 만들었으니 그 수효는 무릇 팔만사천이었다. 비수갈마는 이미 저 왕을 위하여 궁성을 다 만들고는 왕과 하직하여 고별하고 홀연 사라져서 천상으로 되돌아갔었다. 이 때 대선견왕은 궁성이 벌써 다 이룩됨을 보고 곧 명령하여 북을 치고 전국에 명을 내리어 외치되 <대선견왕이 7일 후에는 여러분을 위하여 온갖 법을 연설하시리니 만일 듣기를 좋아하는 이는 모두 설법전에 와 모이라>”고 하였다.


“아난아, 그 때를 맞아 사부대중들은 모두 와 설법전의 사자자리에 앉아 법을 설하는 전륜성왕이 펼치는 십선법(十善法)을 말씀하고 다음엔 다른법을 설하여 많은 중생들을 이익케 하셨다.”

“아난아, 이와 같은 삶을 살다가 왕은 심한 병을 얻어 스스로 목숨이 마칠 것을 알고 곧 태자를 세워 왕을 삼으려고 그 밖의 대신과 바라문, 장자, 거사들을 모아놓고 네 바닷물로써 태자의 정수리에 부어 주었다. 그 일을 끝내고는 왕은 곧 목숨을 마쳐 범천에 올라 태어났다. 이같이 대선견왕이 사천하에서 왕노릇하였으나 그가 거처하는 곳은 오직 염부제이었고, 큰 성이 비록 팔만사천이었으나 그가 거처한 곳은 오직 쿠시성이었다.

설산안에 팔만사천 흰코끼기의 보배가 있었으나 왕의 타는 바는 한 코끼리에 지나지 아니했으며, 비록 팔만 사천의 준마가 있었으나 왕의 타는 바는 한 필에 지나지 않았으며, 비록 팔만 사천의 칠보의 수레가 있었으나 왕의 항상 타는 것은 한 수레에 지나지 않았으며, 비록 팔만사천의 부인이 있었으나 왕의 사랑하는 바는 오직 한사람이었으며, 장엄한 궁전이 비록 팔만사천이었으나 왕의 거처하는 바는 한 궁실에 지나지 아니하여 몸에 소용되는 것이며 만족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쿠시성이 변두리이며 좁다고 말하지 말라”고 아난에게 이르시며 결코 나는 이 성에서 열반하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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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사와법진 원문보기 글쓴이 : 法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