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창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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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창조행위 덕분이다. 하느 |
님께서는 사람을 특별히 창조하셨다. 즉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을 중 |
심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창세기 1장을 통하여 알 |
수 있다.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이것저것 마구 창조하신 것이 |
아니라 질서 있게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닷새 동 |
안 모든것을 창조하신 후에 엿새째 되는 날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부 |
터 먼저 창조해 놓으면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갈 수 없으니 |
까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다른 모든것을 미리 다 창조하시고 |
맨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
아끼시지 않는다. 피조물들은 인간을 위하여 창조되었기에 인간에게로 향하 |
고, 인간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보통 |
피조물이 아니다. 인간은 하느님 창조사업의 핵심이며 절정이라고 말할 수 |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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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우리 모습 |
을 닮은 사람들을 만들자!" (창세 1,26).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 중에서 오직 |
사람만이 하느님을 닮아 창조되었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하느님 |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우선 먼저 자유를 들 수 있다. 자유를 가 |
진 인간은 인격자이다. 인격자로서의 인간은 자기가 택한 목적을 달성할 |
수 있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모실 수 |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하느님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 |
노동을 들 수 있다. 노동은 결코 원죄에 대한 벌이 아니다. 인간은 애초 |
부터, 에덴 동산에서부터 노동을 하도록 창조되었다 ( 창세 2,15 참조 ). 노동 |
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방불케 한다. 하느님은 창조하시고 인간은 노동 |
한다. 노동은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길이다. 인간은 노동을 |
통해서 참으로 인간이 되고 하느님과 일치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
하느님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은 원래 성서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
개념인데, 이 좋은 개념을 맑시즘(Marxism)에 빼앗긴 것 같아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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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더욱 드러났고 더 |
욱 큰 존엄성이 부여되었다. 모든 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근본적인 존 |
엄성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은 '인간의 신 |
비' 라는 표현을 쓴다. " 사실, 혈육을 취하신 말씀의 신비를 떠나서는 인간 |
의 신비가 참되게 밝혀지지 않는다." (제 22장). 이 표현은 인간의 존엄성 |
을 부각시키는 말이다. 온전히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덕분에 우리도 |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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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 즉 초 |
성은혜와 과성은혜를 주셨다. 초성은혜(超性恩惠)란 하느님께서 원조들에게 |
주신 은혜로서 인간의 본성을 초월한 은혜이기 때문에 초성은혜라고 한다. |
다시 말해서 성삼위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을 의미하 |
는데, 이 선물은 하느님의 사랑이요 하느님 자신이다. 이 은혜 덕분에 |
인간은 천당영복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었다. 과성은혜(過性恩惠) 역시 |
하느님께서 원조들에게 주신 은혜로서 인간의 본성을 더욱 완전하게 하 |
는 은혜를 뜻한다. 즉 탐욕과 이기심이 없으며 맑은 지혜 그리고 고통과 |
죽음을 당하지 않는 은혜이다. 그러나 원조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 |
께서는 이 두 가지 은혜를 거두어 버리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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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중섭 신부. '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