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에 관한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 |
|
창조에 관한 성서의 계시를 바탕으로 하고 교부들의 가르침과 신학자 |
들의 창조론을 참조하여 교회가 창조에 대하여 믿는 교리를 종합해 보자. |
|
일단 창조는 하느님의 행위임을 인정해야 한다. 피조물을 있게하는 행위 |
는 오직 하느님께만 해당하는 행위이다. 하느님이 아닌 다른 존재들은 그 |
존재와 본성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피조물이다. 그래서 1870년 제 1 차 바 |
티칸 공의회의 공식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세상은 창조주 하느님 |
과 사실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 이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본 |
질적인 구별을 강조하는 것이며, 창조교리는 범신론과도 그리고 이원론과도 |
양립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
|
하느님께서 무(無)에서 피조물을 창조하셨다.(Creatio ex nihilo)는 것 역 |
시 교회의 신앙이다. 마카베오 하권 7장 28절에 이미 무에서의 창조에 대한 |
계시가 나타남다. ' 무에서의 창조 '는 하느님께서 어떤 재료를 이용하여 만 |
물을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배격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그것은 창조(創造) |
가 아니라 제조(製造)이다. 무에서의 창조교리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
아닌 다른 조물주를 배제하고, 하느님과 만물을 혼동하는 범신론도 배격한 |
다. |
창조사업이 하느님의 대내적인 활동이 아니라 하느님 아닌 다른 존재 |
와 관련된 대외활동인 이상,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창조행위의 공동원리 |
이시다. 창조는 삼위일체의 대내활동의 반영이다. 창조하시는 하느님은 |
유일하시지만 삼위일체로서 창조하신다. 창조사업은 하느님의 주업이 아니 |
라 부업이라고 볼 수있다. 하느님의 주업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 |
것이다. |
|
삼위일체로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은 대내관계로 만족하시고 다른 외적인 |
것에 구애받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수도 있고 |
안 하실 수도 있다. 그리고 반드시 최선의 세상을 꼭 창조할 필요도 없다. |
제 1차 바티칸 공의회가 무엇을 하고 안 하실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
공식으로 선언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선하심에서 창조의 필연성을 주장 |
하던 오류를 단죄하기 위함이었다. |
|
하느님께서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왜 |
창조하신 것일까? 하느님은 선하심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는 |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당신 사랑의 대상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러 |
나 하느님은 사랑의 배려로 당신 아닌 피조물이 당신의 선하심에 참여하 |
게 하시기 위해서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무슨 목적 |
으로 피조물을 창조하신 것일까?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다. 피 |
조물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께 영광 |
을 돌린다고 해서 하느님의 내적 영광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
하느님을 알아모심으로써 인간은 스스로의 선익 즉 구원을 얻개 된다. 하느 |
님은 당신 자신을 인간의 목적으로 설정하심으로써 당신이 영광을 누리게 |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영광을 누리게 되고 선익을 얻도록 하신다. |
사실 하느님의 내적인 영광은 불변적인 것이고, 하느님의 외적인 영광은 |
인간의 행복이다. 인간의 목적이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인간 측으로서 |
는 결코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영광이다. 사실 |
우리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면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無)로 사라질 존재이 |
다. |
|
마지막 때에 와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목적을 명 |
시하셨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덕분에 비로소 피조물의 목적이 명시 |
되고 규정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써 천지창조에서 |
부터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계시하셨고, 창조의 최후 목적 즉 인간을 비 |
롯한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계시하셨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으로 창 |
조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하셨고,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의 목적인 당신 영광을 드러내시리라는 것은 |
교회의 신앙이다. |
|
출처 ; 이중섭 신부. '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교리' |